1. 초기 생애와 가족
에리크 빌헬름 아들레르즈는 1892년 7월 23일 스웨덴-노르웨이 연합 왕국의 수도였던 스톡홀름에서 태어났다. 그의 유년기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많지 않지만, 아들레르즈 가문은 스포츠, 특히 수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의 형인 메르타 아들레르즈 또한 수영 선수로 활동했으며, 에리크와 마찬가지로 1912년 스톡홀름 올림픽에 스웨덴 국가대표로 출전했다. 에리크 아들레르즈는 스톡홀름 KK 클럽에 소속되어 선수 생활을 했다.
2. 다이빙 경력
에리크 아들레르즈는 스웨덴을 대표하는 다이빙 선수로서 1908년부터 1924년까지 네 차례의 올림픽에 참가하며 국제적인 명성을 쌓았다. 특히 1912년 스톡홀름 올림픽에서는 다이빙 2관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2.1. 올림픽 데뷔와 초기 경력 (1908년)
아들레르즈의 올림픽 데뷔는 1908년 영국 런던에서 열린 1908년 하계 올림픽이었다. 당시 그는 겨우 16세의 나이로 남자 10미터 플랫폼 종목에 출전했다. 어린 나이와 첫 올림픽이라는 경험 부족 때문인지, 그는 첫 라운드에서 아쉽게 탈락하며 더 이상의 진출은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이 경험은 그가 이후의 올림픽에서 놀라운 성과를 거두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2.2. 스톡홀름 올림픽 2관왕 (1912년)
1912년, 에리크 아들레르즈는 자국 스톡홀름에서 열린 1912년 하계 올림픽에서 절정의 기량을 선보였다. 그는 남자 10미터 플랫폼 종목에서 뛰어난 연기를 펼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어서 '플레인 하이 다이빙'으로도 불리는 일반 고도 다이빙 종목에서도 압도적인 실력을 과시하며 두 번째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로써 아들레르즈는 스톡홀름 올림픽에서 다이빙 2관왕이라는 위업을 달성하며 스웨덴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2.3. 전후 경기 (1920년-1924년)
제1차 세계 대전의 발발로 인해 올림픽 경기가 중단되는 시기가 있었으나, 전쟁이 끝난 후 아들레르즈는 다시 한번 국제 무대에 모습을 드러냈다. 1920년 벨기에 안트베르펜에서 열린 1920년 하계 올림픽에 출전한 그는 남자 10미터 플랫폼에서 숙련된 기량을 바탕으로 은메달을 획득했다. 그러나 같은 대회 일반 고도 다이빙 종목에서는 스웨덴 동료 선수 세 명에게 밀려 4위에 머물렀다.

그의 마지막 올림픽 출전은 1924년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1924년 하계 올림픽이었다. 이 대회에서 그는 남자 10미터 플랫폼 종목에서 4위를 차지하며 메달권에는 들지 못했다. 또한 일반 고도 다이빙에서는 첫 라운드에서 결승 진출에 실패하거나 기권하며 아쉽게 선수 경력을 마무리했다.
3. 말년과 사망
올림픽 다이빙 선수로서 화려한 경력을 마친 에리크 아들레르즈의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많이 남아 있지 않다. 그는 1975년 9월 8일, 83세의 나이로 스웨덴의 도시 예테보리에서 사망했다. 그의 시신은 스웨덴 스톡홀름에 위치한 스코그스키르코고르덴 묘지에 안장되었다.
4. 영예와 유산
에리크 아들레르즈는 올림픽에서 두 개의 금메달과 한 개의 은메달을 획득하며 스웨덴 다이빙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선수로 평가받는다. 그의 뛰어난 업적과 다이빙 스포츠에 대한 기여를 인정받아, 사후인 1986년에는 수영 스포츠의 전설적인 인물들을 기리는 국제 수영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이는 그가 단순한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넘어, 다이빙 역사상 중요한 인물로 기억되고 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