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인 정보
에디 탄실은 인도네시아의 화교 출신 사업가로, 대규모 은행 사기 및 횡령 사건으로 악명을 떨쳤습니다.
1.1. 출생 및 배경
에디 탄실은 1953년 2월 2일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남부 술라웨시의 마카사르에서 Tan Tjoe Hong탄추홍nan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한자 이름은 陳珠芳천주방중국어입니다. 그는 화교 혈통을 가진 인도네시아인입니다.
1.2. 가족 관계
에디 탄실은 은행가 헨드라 라하르자의 형제입니다. 헨드라 라하르자는 자신의 회사와 가족 사업에 대출을 제공했으나 이를 상환하지 못해 2.64 억 USD의 손실을 초래했으며, 인도네시아로의 송환 절차 중 호주에서 구금 상태로 사망했습니다. 에디 탄실의 조카로는 루디 쿠르니아완이 있습니다.
2. 범죄 활동
에디 탄실은 인도네시아의 국영 은행에서 대규모 사기 및 횡령을 저질러 막대한 국가적 손실을 야기했습니다.
2.1. 은행 사기 및 횡령
에디 탄실은 골든 키 그룹을 통해 인도네시아 개발 은행(바핀도 은행)으로부터 대출 사기 및 횡령을 저질렀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바핀도 은행은 파산하여 이후 만디리 은행에 합병되었습니다. 피해 규모에 대해서는 자료마다 차이가 있는데, 한 자료에 따르면 그는 은행 대출금 4.20 억 USD를 횡령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다른 자료에서는 5.65 억 USD (당시 환율로 약 1.50 조 IDR)를 횡령한 것으로 보고되었습니다.
2.2. 형사 처벌
1994년 중앙 자카르타 지방법원은 에디 탄실에게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그는 횡령 혐의로 징역 17년 또는 20년형을 선고받았으며, 3000.00 만 IDR의 벌금과 5000.00 억 IDR의 배상금 지급 명령을 받았습니다. 또한, 국가 손실액 1.30 조 IDR을 변상하라는 명령도 내려졌습니다.
3. 도주 및 도피 생활
에디 탄실은 수감 중이던 교도소에서 탈출하여 해외로 도피했고, 이후에도 사업 활동을 이어가며 인도네시아 정부의 송환 노력을 피해 다녔습니다.
3.1. 교도소 탈출
에디 탄실은 1996년 5월 4일 자카르타 치피낭 교도소에서 수감 중이던 17년 또는 20년형을 마치지 않은 채 탈출했습니다. 그의 탈출은 부패한 교도소 공무원들의 도움을 받아 이루어졌으며, 이 사건과 관련하여 약 20명의 치피낭 교도소 관계자들이 조사를 받았습니다.
3.2. 해외 활동 및 사업
탈출 후 에디 탄실의 행방은 묘연했으나, 1998년 또는 1999년 반부패 감시 단체인 젬피타(Gempita)는 에디 탄실이 중국 푸젠성 푸톈시에서 독일 맥주 회사 벡스 비어의 라이선스를 받아 맥주 공장을 운영하고 있음을 밝혀냈습니다.
2002년, 에디 탄실은 중국은행으로부터 3.90 억 CNY (당시 약 4700.00 만 USD)를 대출받았으나, 푸톈에 있는 토지 자산과 두 개의 공장을 담보로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상환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자산 압류 노력에 저항하기도 했습니다. 2011년부터 그의 중국 내 존재가 확인되었으며, 2015년에는 마카오에 거주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3.3. 송환 노력
인도네시아 정부는 에디 탄실의 송환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왔습니다. 2007년 10월 29일, 검찰청, 법무인권부, 경찰청의 합동팀인 '부패 사냥팀(Tim Pemburu Koruptor, TPK)'은 에디 탄실을 추적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이는 금융거래보고분석센터(PPATK)가 에디 탄실이 1년 전 인도네시아로 송금한 증거를 확보했기 때문입니다. 2013년 말, 검찰청은 에디 탄실의 소재가 2011년부터 중국에서 추적되었으며, 중국 정부에 범죄인 인도 요청이 제출되었음을 밝혔습니다.
4. 평가
에디 탄실은 인도네시아 사회에서 '부패한 인물'의 대명사로 여겨지며, 그의 대규모 횡령과 교도소 탈출 사건은 인도네시아의 고질적인 부패 문제와 사법 시스템의 허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됩니다. 그의 도피 생활은 인도네시아 정부의 부패 척결 의지에 대한 시험대 역할을 해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