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Early life and playing background
에두아르두 안투니스 코임브라는 브라질 축구계에 깊은 뿌리를 둔 가족 출신이며, 어린 시절부터 축구에 대한 재능을 보였다.
1.1. Family and childhood
에두는 1947년 2월 5일 리우데자네이루 외곽의 퀸티누(Quintino) 지역에서 하위 중산층 가정의 6남매 중 한 명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골키퍼였고, 맏딸을 제외한 5명의 자녀 모두가 프로 축구 선수로 활동할 만큼 축구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가정이었다. 특히 그의 막냇동생인 지코는 브라질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에두의 어머니는 그가 축구선수가 아닌 피아니스트가 되기를 바랐다고 알려져 있다.
1.2. Early club career
에두는 어린 시절부터 아메리카 FC의 유소년 시스템에 합류하여 축구 경력을 시작했다. 1966년 프로 무대에 데뷔한 그는 1974년까지 8년간 아메리카 FC에서 활약하며 클럽의 간판 선수로 성장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395경기에 출전하여 267골을 기록하는 경이로운 득점력을 선보였으며, 이는 그를 아메리카 FC의 역대 최고 득점자 중 한 명이자 클럽의 전설적인 인물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 Playing career
에두 코임브라는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탁월한 득점력과 드리블 능력을 선보였으며, 아메리카 FC의 전설적인 선수이자 브라질 국가대표로 활약했지만 월드컵 본선 출전은 아쉽게도 좌절되었다.
2.1. Club career highlights
아메리카 FC에서의 성공적인 활약 이후, 에두는 다른 브라질의 주요 클럽들에서도 뛰었다. 그는 1975년에 CR 바스쿠 다 가마에 입단했으며, 같은 해 EC 바이아에서도 활동했다. 1975년부터 1976년까지는 CR 플라멩구에서 짧은 기간 동안 뛰었는데, 이 시기에 그는 동생 지코와 함께 경기에 나설 기회를 가졌다. 이후 그의 클럽 경력은 콜로라도 EC (1976년~1977년), 조인빌리 EC (1978년), 브라질리아 FC (1979년), 그리고 캄푸 그란지 AC (1980년~1981년) 등 여러 팀에서 이어졌다.
2.2. National team career
에두는 1967년에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에 처음 발탁되어 데뷔전을 치렀다. 그는 뛰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FIFA 월드컵 본선 무대와는 인연이 없었다. 1970년 FIFA 월드컵을 앞두고 대표팀에 합류했지만, 당시 펠레나 로베르투 히벨리누와 같은 전설적인 선수들의 존재로 인해 최종 명단에서 제외되는 아픔을 겪었다. 또한, 1974년 FIFA 월드컵 직전에는 불의의 부상을 당하면서 월드컵 출전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2.2.1. National team statistics
브라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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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 | 출전 | 골 |
1967 | 2 | 0 |
합계 | 2 | 0 |
2.3. Playing style and achievements
에두는 주로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했으며, 탁월한 득점 능력으로 명성을 날렸다. 그는 1970년대 브라질 축구계에서 가장 재능 있는 드리블러 중 한 명으로 널리 인정받았다. 1969년에는 토르네이우 로베르투 고메스 페드루사에서 득점왕을 차지하며 절정의 기량을 과시했다. 같은 해에는 남미 최고의 선수에게 주어지는 영예로운 남미 올해의 축구 선수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3. Managerial career
선수 경력 은퇴 후 에두 코임브라는 여러 클럽과 국가대표팀에서 감독 및 코치직을 역임하며 지도자로서 성공적인 경력을 이어갔다.
3.1. Transition to management
에두아르두 안투니스 코임브라는 1981년에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은퇴했다. 선수로서의 풍부한 경험과 축구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그는 곧바로 축구 감독 및 코치의 길로 들어섰다.
3.2. Club management roles
에두의 첫 감독직은 1982년, 자신이 선수 시절 전설적인 활약을 펼쳤던 아메리카 FC였다. 이후 1984년부터 1985년까지는 CR 바스쿠 다 가마를 이끌었다. 1987년에는 조인빌리 EC와 크리시우마 EC의 지휘봉을 잡았다. 1988년에는 에콰도르의 바르셀로나 SC 감독을 맡았고, 1989년에는 코리티바 FC의 감독으로 부임하여 팀을 캄페오나투 파라나엔시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 시기 그는 일본의 축구 스타 미우라 카즈요시를 핵심 선수로 기용하며 그의 성장을 도왔다. 1990년에는 보타포구 FR의 감독으로서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우승을 달성했다.
그의 클럽 감독 경력은 이후 멕시코의 티브로네스 로호스 데 베라크루스 (1991년), 페루의 스포르트 보이스 (1992년), 브라질의 클루비 두 헤무 (1992년), 플루미넨시 FC (1993년) 등으로 이어졌다. 1994년부터 1995년까지는 일본 J리그의 가시마 앤틀러스 감독을 역임했다.
3.3. National team management roles
에두는 클럽뿐만 아니라 국가대표팀 감독으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는 1983년부터 1984년까지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을 맡았다. 특히 1986년에는 이라크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1986년 FIFA 월드컵 본선에 진출시키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이는 이라크 축구 역사상 첫 월드컵 본선 진출이었다.
3.4. Assistant and technical advisory roles
에두는 감독 외에도 다양한 팀에서 수석 코치나 기술 고문으로 활동하며 지도자로서의 경험을 확장했다. 그는 2006년부터 2007년까지 튀르키예의 페네르바흐체 SK에서 동생 지코 감독을 보좌하는 수석 코치로 일했으며, 이 기간 동안 팀은 쉬페르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2009년에는 러시아의 PFC CSKA 모스크바에서도 지코 감독의 수석 코치로 함께했다. 2009년부터 2010년까지는 그리스의 올림피아코스 FC에서 수석 코치를 역임했다. 또한 2003년부터 2006년까지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의 기술 고문으로 활동했으며, 2011년부터 2012년까지는 이라크 축구 국가대표팀의 수석 코치를 맡기도 했다. 이 외에도 그는 1996년부터 1997년까지 가시마 앤틀러스 사커 스쿨에서, 1998년부터 1999년까지 JSCC 사가미하라 스쿨에서, 2000년부터 2002년까지 CFE 미에에서 지도자 생활을 했다. 그는 지코가 페네르바흐체 감독으로 재직할 당시 로베르투 카를루스의 아버지인 오스카르 실바, 페네르바흐체의 트레이너인 모라시 산트아나, 마르코 아우렐리우의 삼촌인 세바스티아웅, 에두 드라세나의 형 등 브라질 출신 인사들과 함께 지코의 베테랑 팀 일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3.5. Coaching philosophy and talent identification
에두 코임브라는 특히 젊은 선수들의 재능을 발굴하고 성장시키는 데 뛰어난 안목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훗날 세계 최고의 라이트백 중 한 명으로 평가받게 되는 조르지뉴의 잠재력을 일찌감치 알아보고 그를 성인 팀으로 스카우트하여 기량 발휘를 도왔다. 코리티바 FC 감독 시절에는 당시 젊었던 미우라 카즈요시를 팀의 핵심 선수로 중용하며 그의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그는 또한 "Soccer Dance사커 댄스영어"로 불리는 독특한 기초 훈련 방법을 고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춤을 추는 동작을 통해 선수들의 유연성, 리듬감, 볼 감각, 그리고 스텝워크 등을 향상시키는 데 중점을 둔 훈련 방식이다.
4. Honours
에두 코임브라는 선수 및 감독으로서 다양한 리그와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개인상을 수상하며 뛰어난 업적을 남겼습니다.
4.1. Player honours
- 팀
- 아메리카 FC
- 타사 구아나바라: 1974
- EC 바이아
- 캄페오나투 바이아누: 1975
-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 코파 리우 브랑쿠: 1967
- 아메리카 FC
- 개인
- 토르네이우 로베르투 고메스 페드루사 득점왕: 1969
- 남미 올해의 축구 선수: 1969
4.2. Managerial honours
- 팀
- 아메리카 FC
- 타사 히우: 1982
- 토르네이우 도스 캄피온이스: 1982
- 코리티바 FC
- 캄페오나투 파라나엔시: 1989
- 보타포구 FR
-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1990
- 쉬페르리그: 2006-2007 (수석 코치)
- 아메리카 FC
5. Legacy and evaluation
에두 코임브라는 선수 및 감독으로서 브라질 축구와 국제 축구계에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젊은 선수들의 성장을 돕고 혁신적인 훈련 방식을 도입하여 중요한 유산을 남겼습니다.
5.1. Influence on clubs and players
아메리카 FC에서 에두는 뛰어난 득점 기록과 오랜 기간의 헌신으로 전설적인 위상을 지니고 있으며, 클럽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그의 젊은 선수 발굴 및 육성 능력은 조르지뉴와 같은 선수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에두는 조르지뉴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를 1군 팀으로 데려와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또한 코리티바 FC 감독 시절 미우라 카즈요시를 핵심 선수로 기용하며 그의 프로 경력 초기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5.2. Overall impact on football
에두 코임브라가 축구계에 미친 전반적인 영향은 그의 선수 및 감독으로서의 성과를 넘어선다. 유연성, 리듬감, 볼 컨트롤 등을 강조하는 그의 "Soccer Dance사커 댄스영어" 훈련 방식은 선수 개발에 대한 혁신적인 접근 방식을 제시하며 축구 발전에 기여했다. 이라크 축구 국가대표팀을 사상 첫 월드컵 본선에 진출시키는 등 여러 클럽과 국가대표팀에서의 지도자 활동을 통해 그는 뛰어난 전략적 역량과 코칭 능력을 입증했으며, 브라질 축구뿐만 아니라 국제 축구계에도 지속적인 영향을 남겼다.
6. Personal life
에두아르두 안투니스 코임브라는 축구와 깊이 연관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브라질의 축구 영웅이자 전설로 존경받는 지코의 형이다. 그의 아버지는 골키퍼였으며, 여섯 명의 형제자매 중 맏딸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가 프로 축구선수로 활동했다. 이러한 축구 가문의 배경에도 불구하고, 그의 어머니는 에두가 축구선수가 아닌 피아니스트가 되기를 바랐다고 전해진다. 그는 또한 동생 지코가 페네르바흐체 SK에서 감독으로 활동할 때 지코의 베테랑 팀에 합류하는 등 가족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