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기 생애 및 교육
양성철은 어린 시절 전라남도 곡성에서 성장했으며, 이후 서울대학교에서 학업을 시작하여 미국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며 학문적 기틀을 마련했다.
1.1. 어린 시절 및 성장 과정
양성철은 1939년 11월 20일 전라남도 곡성군에서 태어났다. 그는 대학 재학 중이던 1960년부터 1962년까지 학생 징집병으로 대한민국 육군에 자원 입대하여 복무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결혼하여 슬하에 두 자녀를 두었다.
1.2. 학력
양성철은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1965년에는 하와이 대학교 마노아 캠퍼스 동서문화센터의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미국으로 유학길에 올랐으며, 1967년 이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석사 과정을 마친 뒤 1967년부터 켄터키 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 과정을 시작하여 1970년에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의 박사 학위 논문은 이승만 대통령의 사임과 하와이 망명으로 이어진 1960년 4월 혁명과 박정희의 집권을 가져온 1961년 5.16 군사정변을 비교 연구하는 내용이었다.
2. 학문 및 언론 활동
양성철은 한국일보 기자로서 언론계에 발을 들인 후 미국에서 여러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학문적 역량을 쌓았고, 북미 한국인 정치학자협회 창립에 참여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2.1. 언론인 활동
양성철은 1963년 10월부터 한국일보 기자로 활동하며 언론인으로서의 경력을 시작했다. 이 시기의 경험은 그의 이후 학문적, 정치적 활동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2.2. 미국에서의 학문 활동
박사 학위를 취득한 1970년부터 4년간 리치먼드에 소재한 이스턴 켄터키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1975년부터 1987년까지는 켄터키 대학교에서 정교수이자 대학원 교수로 봉직했다. 이 외에도 일리노이주 에번스턴의 노스웨스턴 대학교, 인디애나주 블루밍턴의 인디애나 대학교, 노스캐롤라이나주 펨브로크의 펨브로크 주립 대학교에서 초빙교수로 강의했다. 미국에 머무르는 동안 그는 북미 한국인 정치학자협회(Association of the Korean Political Scientists in North America)의 창립 회원 중 한 명으로, 사무총장으로도 활동하며 학술 교류에 기여했다.
3. 정치 경력
양성철은 미국에서의 학문 활동을 마치고 대한민국으로 돌아와 경희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정치 활동의 기반을 다졌고, 이후 제15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활발한 의정 활동을 펼쳤다.
3.1. 대한민국 복귀 및 교수 활동
양성철은 1986년 봄 학기에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초빙교수로 한국에 돌아왔다. 같은 해 가을 학기부터는 경희대학교 평화복지대학원 정교수로 부임하여 1996년까지 교학부장 및 원장대행을 역임하며 후학 양성에 힘썼다. 그는 귀국 직후 국적 회복 신청을 하여 1989년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한국 국적을 회복했다. 또한 1994년에는 한국국제정치학회 회장으로 봉사했으며, 국방부, 외무부, 통일원 정책자문위원과 유네스코 운영위원으로도 활동했다.
3.2. 국회의원 활동
양성철은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소속으로 전라남도 곡성군·구례군 지역구에 출마하여 70.37%의 득표율(28,251표)로 당선되어 초선 국회의원이 되었다. 국회에서는 통일외무위원회 위원 및 간사로 활약하며 외교 정책과 남북 통일 문제에 대한 전문성을 발휘했다. 1998년에는 한화갑 의원의 뒤를 이어 새정치국민회의 전라남도 도당위원장 직무대행을 맡았으며, 당내 국제협력위원장과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4. 주미대사 활동
양성철은 2000년부터 2003년까지 주미 대한민국 대사를 역임하며 김대중 정부의 중요한 외교적 임무를 수행했다.

2000년 5월, 제1차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한국 언론들은 양성철이 차기 주미 대사로 내정되었다고 보도하기 시작했다. 그의 임명은 상대적으로 정치적, 외교적 경험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파격적인 인사로 평가되었다. 국제 전략 정보 회사인 스트랫포는 김대중 대통령이 양성철을 주미 대사로, 그리고 40년 경력의 외교관이자 통상 전문가인 홍순영을 주중 대사로 임명한 것을 햇볕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분석했다. 북한 문제 전문가인 양성철을 워싱턴에 파견한 것은 대한민국의 대북 정책 자율성을 상징하는 반면, 홍순영의 역할은 중국과의 관계를 증진하고 남북 관계 개선에 대한 중국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양성철의 주미 대사 임기는 2000년 9월 5일부터 2003년 4월 16일까지였으며, 그의 전임자는 이홍구였고 후임자는 한승주였다. 그는 2003년 2월 중순 퇴임하는 김대중 대통령에게 사표를 친서로 제출했다.
5. 후기 경력 및 사회 활동
주미 대사직에서 물러난 후 양성철은 학계로 돌아와 후학을 양성하고, 김대중 평화재단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등 사회 공헌 활동을 지속했다.
대사직 퇴임 후 양성철은 부인과 함께 귀국했다. 그는 2003년부터 2008년까지 고려대학교 국제대학원 석좌교수로 임용되어 학생들을 가르쳤다. 또한 2007년 8월부터 2012년까지 김대중 평화센터 자문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으며, 현재까지 자문위원 및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5년 7월 28일, 양성철과 그의 부인 이정진(데이지 리 양)은 하와이 대학교 기금재단과 '양성철 이정진 강의 시리즈' 기부금 협약을 체결했으며, 2021년 6월 8일 수정 협약을 맺었다. 이 기금은 하와이 대학교 마노아 캠퍼스 한국학 연구센터에서 한국 또는 아시아 문제에 대한 저명한 학자를 초청하여 2년마다 강연을 개최하는 데 사용된다.
6. 사상 및 연구
양성철은 한국 정치사, 북한 정치, 통일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깊이 있는 연구를 수행했으며, 그의 학문적 성과는 민주주의 발전과 평화 통일에 대한 그의 확고한 신념을 반영한다.
6.1. 주요 연구 분야
양성철의 학문적 핵심은 한국 정치 체제, 특히 혁명과 쿠데타에 대한 비교 연구에 있었다. 그의 박사 학위 논문은 1960년 4월 혁명과 1961년 5.16 군사정변을 비교 분석하며 한국 현대 정치사의 주요 전환점을 탐구했다. 그는 이 연구를 통해 민주주의의 좌절과 권위주의의 등장을 학문적으로 조명했다.
그의 주요 연구 주제는 다음과 같다.
- 한국 정치사 및 한국의 정치 체제 분석
- 혁명과 쿠데타의 비교 연구
- 북한 정치 및 외교 정책
- 남북 통일론 및 통일 전략
6.2. 정치 철학 및 사상
양성철의 정치 철학은 그의 학문적 연구와 공직 활동 전반에 걸쳐 민주주의와 평화에 대한 깊은 신념을 바탕으로 한다. 그는 권위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유지하며, 특히 4월 혁명과 5.16 군사정변의 비교 연구에서 민주주의의 가치와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적 지지자로서 햇볕정책의 추진에 기여했으며, 이를 통해 남북 관계의 평화적 진전을 모색하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 그의 저술과 활동은 한국 사회의 민주적 발전과 남북한 간의 평화로운 통일에 대한 그의 일관된 지향점을 보여준다. 그는 학문과 정치를 통해 사회 변화와 발전에 기여하고자 하는 실천적 지식인의 면모를 보였다.
7. 개인사 및 국적 변동
양성철은 미국에서 결혼하여 가정을 꾸렸으며, 이후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가 한국으로 돌아와 이를 포기하고 한국 국적을 회복하는 등 독특한 개인사를 가지고 있다.
양성철은 미국 유학 중 결혼하여 두 자녀를 두었다. 그는 1977년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는데, 이는 당시 미국 내 대학을 상대로 한 인권 침해 문제 소송 제기, 박정희 유신체제에 대한 반대와 절망, 그리고 소련에서 열린 세계정치학회 총회 참가에 따른 비자 문제 등 복합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1986년 한국으로 귀국한 직후 국적 회복 신청을 하여 1989년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한국 국적을 다시 취득했다.
8. 수상 경력
양성철은 학문적 성취와 공직 생활에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다양한 훈장과 상을 수상했다.
- 1963년: 4월 학생혁명 3주년 기념 건국포장 (대한민국 대통령 표창)
- 1998년: 자랑스러운 광고인 (광주고등학교 총동문회)
- 2000년: 곡성군 올해의 인물 (전라남도 곡성군)
- 2004년: 광주고 자랑스러운 동문 (재경광주고등학교동문회)
- 2010년: 학교를 빛낸 졸업생 전당 (미국 켄터키 대학교, 렉싱턴)
- 2010년: 동서문화센터 50주년 기념 '50년, 50가지 이야기' 선정
- 2012년: 곡성중앙초등학교 100주년 '학교를 빛낸 동문상' (곡성군)
- 2021년: 광주고 동문 영예대상 (광주고등학교 동문회)
9. 주요 저술
양성철은 한국 정치, 북한, 통일, 국제 관계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다수의 저서와 논문을 발표했다.
- 영어 저술
- Revolution and change: a comparative study of the April Student Revolution of 1960 and the May Military coup d'etat of 1961 in Korea (박사학위 논문, 켄터키 대학교, 1970)
- Revolution and change: a comparative study of the April Student Revolution of 1960 and the May Military coup d'etat of 1961 in Korea (고려대학교 출판부, 2015)
- Korea and Two Regimes: Kim Il Sung and Park Chung Hee (Schenkman Publishing Co, 1981)
- The North and South Korean political systems: A comparative analysis (Westview Press, 1994)
- Polemics & Foibles: Fragments on Korean Politics, Society and Beyond (서울프레스, 1998)
- (편집) Democracy and Communism: Theory, Reality and the Future (한국국제정치학회, 1995)
- (제임스 릴리 외 공저) Ambassadors' Memoir: U.S.-Korea Relations Through the Eyes of the Ambassadors (Korea Economic Institute, 2008)
- 한국어 저술
- (박한식 외 공저) 북한 기행: 재미 한국인 학자 9인이 본 80년대 북한 (한울출판사, 1986)
- 남북통일 이론의 새로운 전개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1989)
- (박성조 공저) 독일통일과 분단한국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1991)
- 한국정부론: 역대정권 고위직 행정엘리트 연구(1948-1993) (박영사, 1994)
- 북한정치 연구 (박영사, 1995, 2판)
- (강성학 공편) 북한외교정책 (서울프레스, 1995)
- (이용필 공저) 북한체제변화와 협상전략 (박영사, 1996)
- 삶의 정치: 이제 정치도 새롭게 태어나자 (서울프레스, 1997)
- 물구나무서기 정치 (서울프레스, 1998)
- 통일: 우리도 분단을 극복할 수 있다, Volume I and II (서울프레스, 1999)
- 움: 민구의 작은 발견 (현대시문학, 2007)
- (이정복 공저) 21세기 한국 정치의 발전방향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9)
- 한국 외교와 외교관: 양성철 전주미대사 (국립외교원, 2015)
- (이상근 공저) 김대중 외교: 비전과 유산 (연세대학교 대학출판문화원, 2015)
- 학문과 정치: 막스 베버와 21세기 전자 인간시대 (고려대학교 출판문화원, 2017)
- 글이 금이다 (박영사,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