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및 배경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의 출생과 가족 관계, 그리고 사도로서의 소명에 대한 내용은 성서와 초기 교회 전승에 따라 다양하게 전해진다.
1.1. 출생 및 가족 관계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아버지 알패오와 어머니 마리아 사이에서 태어났다. 초기 교회 전승에 따르면, 그의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의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의 자매 또는 사촌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카이사레아의 에우세비우스가 인용한 히에라폴리스의 파피아스의 기록에 따르면, "소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이자 알패오의 아내인 마리아는 주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자매였으며, 요한 복음사가가 '클로파스의 마리아'라고 부른 인물이다." 이러한 견해는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가 예수의 사촌 관계였음을 시사한다. 히에로니무스 역시 그의 저서 복되신 마리아의 영원한 동정성에서 소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가 알패오의 아내이자 주님 어머니 마리아의 자매이며, 요한이 '클로파스의 마리아'라고 부른 인물이라고 주장한다.
1.2. 사도로서의 소명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예수가 선택한 열두 제자 중 한 명으로, 신약성서에 네 번 언급되는데, 모두 사도 명단에서이다. 그는 마태오 복음서 (마태오 10:3), 마르코 복음서 (마르코 3:18), 루카 복음서 (루카 6:15), 그리고 사도행전 (사도행전 1:13)의 사도 명단에 포함되어 있다. 성서에는 그가 사도로서 부름받은 것 외에 구체적인 행적이나 언행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다.
2. 정체성 논란 및 구분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신약성서에 여러 명의 '야고보'가 등장하기 때문에 그의 정체성과 다른 야고보들과의 관계에 대해 많은 논란과 학설이 존재한다.
2.1. 소 야고보(작은 야고보)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종종 '소 야고보'(Ἰάκωβος ὁ μικρός이아코보스 호 미크로스고대 그리스어 (1453년 이전), '작은 야고보' 또는 '어린 야고보')와 동일시된다. 이 '소 야고보'라는 명칭은 마르코 복음서 15장 40절에서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를 언급할 때 등장하며, 마르코 복음서 16장 1절과 마태오 복음서 27장 56절에서도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로 언급된다.
예수의 열두 제자 중 이미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라는 또 다른 야고보가 있었기 때문에,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를 '소 야고보'와 동일시하는 것은 혼동을 피하고 두 인물을 구별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는 때때로 '대 야고보'(큰 야고보)로 불리기도 했다. 히에로니무스는 그의 저서 복되신 마리아의 영원한 동정성에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를 소 야고보와 동일시하며, 소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가 알패오의 아내이자 주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자매, 즉 요한 복음사가가 '클로파스의 마리아'라고 부른 인물이라고 주장한다. 히에라폴리스의 파피아스 (서기 70-163년경) 또한 그의 저서 주님의 말씀 해설의 남아 있는 단편에서 알패오의 아내 마리아가 소 야고보의 어머니라고 언급한다.
현대의 성서 학자들은 이러한 동일시가 정확한지에 대해 의견이 나뉜다. 존 폴 마이어는 이 동일시를 가능성이 낮다고 보지만, 새 성서 사전(New Bible Dictionary)은 전통적인 동일시를 지지한다. 돈 카슨과 대럴 복은 이 동일시가 가능하지만 확실하지는 않다고 본다.
2.2.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의 구분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인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는 명확히 다른 인물이다. 성서의 모든 사도 명단(마태오 10:3, 마르코 3:18, 루카 6:15, 사도행전 1:13)에서 이 두 야고보는 별개의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는 때때로 '대 야고보'로 불리며,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소 야고보'로 불려 구분된다.
2.3. 예수의 형제 야고보와의 동일성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가 예수의 형제 야고보(야고보서의 저자이자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와 동일 인물인지에 대한 논란은 초기 교회부터 시작되었다. 히에로니무스는 성모 마리아의 평생 동정설을 옹호하기 위해, 갈라티아인들에게 보낸 서간 1장 19절에 언급된 "주님의 형제 야고보"를 사촌으로 해석하며,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동일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이 '히에로니무스적 견해'는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널리 받아들여졌다. 반면 동방 가톨릭교회, 동방 정교회, 그리고 개신교에서는 이 두 야고보를 별개의 인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일부 학자들은 클로파스와 알패오가 같은 인물의 다른 이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요한 복음서 19장 25절에 언급된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가 알패오의 아내 마리아와 동일 인물일 수 있다는 견해로 이어진다. 이 경우,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클로파스의 아들 야고보와 동일하며, 이는 예수의 형제 야고보와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히에라폴리스의 파피아스의 저서 주님의 말씀 해설의 단편에는 "클로파스 또는 알패오의 아내 마리아는 주교이자 사도인 야고보와 시몬, 타대오, 그리고 요셉의 어머니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주님의 형제 야고보'가 알패오의 아들이자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의 남편인 알패오의 아들이라는 견해를 뒷받침한다. 그러나 조지프 라이트풋과 같은 일부 신학자들은 이 단편의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야코부스 데 보라기네가 13세기에 편찬한 황금 전설에는 "소 야고보 사도는 대 야고보보다 나이가 많았지만 소 야고보라 불렸다. 그는 또한 주님과 몸과 얼굴, 태도가 매우 흡사하여 '주님의 형제'라고 불렸다. 그는 또한 그의 위대한 거룩함 때문에 '의인 야고보'라고 불렸다. 그는 또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라고 불렸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최초의 미사를 집전했으며, 예루살렘의 첫 번째 주교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소 야고보, 의인 야고보, 그리고 주님의 형제 야고보를 동일 인물로 보는 전통을 보여준다.
2.4. 마태오 사도와의 관계
마르코 복음서 2장 14절에 따르면, 세리였던 레위의 아버지는 알패오이다. 이 레위는 마태오 복음서 9장 9절에서 마태오로 언급된다. 따라서 알패오가 레위(마태오)의 아버지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마태오가 형제일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한다. 그러나 성서의 사도 명단에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에 대해 언급된 유일한 가족 관계는 그의 아버지가 알패오라는 것뿐이며, 다른 야고보와 요한이 형제로 명시된 것과는 달리 야고보와 마태오가 형제라는 명시적인 언급은 없다.
3. 성서 기록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신약성서에서 주로 예수의 열두 제자 명단에 등장하며, 그의 구체적인 행적에 대한 기록은 매우 드물다.
3.1. 복음서에서의 언급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공관 복음서인 마태오 복음서, 마르코 복음서, 루카 복음서의 열두 제자 명단에 모두 포함되어 있다.
- 마르코 복음서: 마르코 복음서는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를 열두 제자 중 한 명으로 단 한 번 언급한다 (마르코 3:16-19). 마르코 복음서에는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대 야고보"(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 그리고 "예수의 형제 야고보"(마르코 6:3)의 세 명의 야고보가 등장한다. 그러나 예수의 변모 사건 (마르코 9:2), 올리브 산 (마르코 13:3), 겟세마네 동산 (마르코 14:33)에서 언급되는 야고보가 누구인지는 명확히 밝히지 않아 혼동을 준다. 다만, 마르코 복음서 15장 40절에서는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를 언급하는데, 마르코 복음서 6장 3절에서 예수의 형제 야고보에게 요셉이라는 형제가 있다고 이미 언급한 바 있다.
- 마태오 복음서: 마태오 복음서 역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를 열두 제자 중 한 명으로 명단에 포함한다 (마태오 10:3). 마태오 복음서에는 가족 관계와 함께 명확히 식별되지 않은 야고보는 없다. 마태오는 예수의 형제 야고보 (마태오 13:55),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 (마태오 10:2), 그리고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를 언급한다. 변모 사건 (마태오 17:1)과 겟세마네 동산 (마태오 26:37)에 있던 야고보는 제베대오의 아들로 명시된다. 마태오 복음서 27장 56절에서는 십자가 처형 현장에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가 있었다고 언급하지만, 마르코 복음서와 달리 그를 '작은 야고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 루카 복음서: 루카 복음서 또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를 열두 제자 명단에 포함한다 (루카 6:15).
3.2. 사도행전에서의 언급
사도행전 1장 13절에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예수의 승천 이후 예루살렘의 다락방에 모인 사도들 중 한 명으로 언급된다. 그러나 사도행전 12장 1-2절에 헤로데 아그리파 왕에 의해 처형된 야고보는 일반적으로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로 간주된다. 이는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에게는 요한이라는 형제가 있었고 (마태오 4:21),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에게 형제가 있다는 명시적인 언급이 없기 때문이다.
4. 초기 교회에서의 역할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성서에 그의 행적이 거의 기록되어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초기 교회 전승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4.1.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
초기 교회 전승에 따르면,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의 초대 주교 또는 감독이었다. 카이사레아의 에우세비우스와 같은 초기 교회사 학자들은 그가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였다고 명확히 언급한다. 사도 바울로가 기독교로 개종한 후 처음 접촉한 인물 중 하나가 야고보였으며 (갈라티아인들에게 보낸 서간 1:19), 베드로가 기적적으로 감옥에서 풀려난 후 자신의 소식을 전해달라고 부탁한 이도 야고보였다 (사도행전 12:17). 이는 그가 예루살렘 공동체 내에서 상당한 권위를 가지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고대 시리아 문헌인 사도들의 교훈은 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 사마리아, 필리스티아, 아라비아, 페니키아, 카이사레아 지역이 사도 야고보로부터 사제직의 영감을 받았으며, 그가 사도 시대 교회의 입법자이자 지도자였다고 묘사한다.
4.2. 예루살렘 공의회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사도행전 15장에 묘사된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이 공의회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모세의 율법을 따라 할례를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을 해결하기 위해 소집되었다. 베드로의 연설 이후, 야고보가 최종적인 판결을 내렸다. 그는 이방인 신자들이 할례를 받을 필요는 없지만,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 음행, 목 졸라 죽인 고기, 그리고 피를 멀리해야 한다고 선포했다 (사도행전 15:13-21). 그의 이 결정은 초기 교회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베트남어 원문은 그의 성공이 사도행전 21장 20절에 "형제여, 그대는 유대인으로서 믿는 자가 수만 명이나 되는 것을 보니, 다 율법에 열심 있는 자라"는 말로 나타난다고 언급한다.
5. 저술
5.1. 야고보서 저자 논란
신약성서의 야고보서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에 의해 저술되었다는 전승이 존재하지만, 이에 대한 학계의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야고보서의 저자는 자신을 "하느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야고보서 1:1)라고 소개할 뿐, 자신이 사도이거나 예수의 형제라고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는다.
야고보서는 그리스도인의 신앙이 실제적인 행동으로 이어져야 함을 강조하며,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야고보서 2:17)이라고 역설한다. 또한 이 서간은 병자성사에 대한 성서적 근거를 제공하는 유일한 본문이다 (야고보서 5:14-15). 일부 해석에 따르면, 야고보서의 저자는 자연 현상에 대한 묘사(꽃이 피고 지는 것, 비가 내리는 것 등)를 통해 농부의 삶에 익숙한 배경을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야고보서는 가톨릭 공동 서간 중 첫 번째 서간이다.
6. 죽음과 순교 전승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의 죽음과 순교 방식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전승이 전해진다.
한 전승에 따르면, 그는 바리사이파의 시기와 경계심 때문에 순교했다. 유월절에 바리사이파는 야고보를 강제로 예루살렘 성전으로 끌고 가 배교를 강요했다. 그러나 야고보가 끝까지 거부하자, 분노한 바리사이파는 그를 성전 꼭대기에서 밀어 떨어뜨린 후 돌로 쳐서 순교시켰다고 한다. 이 순교 방식은 예수의 형제 야고보의 순교 방식과도 유사하여, 두 야고보를 동일 인물로 보는 전승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다른 전승에 따르면, 그는 이집트 하부의 오스트라키네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십자가형에 처해졌다고 한다. 또한, 일부 전승에서는 그가 톱으로 썰려 죽었다고도 전해지며, 이 때문에 기독교 미술에서 그의 상징물 중 하나로 톱이 사용되기도 한다. 타이 소스에서는 그의 상징으로 톱과 책이 언급된다.
그의 순교 시기는 대략 서기 62년경으로 추정된다.
7. 평가 및 유산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신약성서에서 직접적인 언급이 적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체성과 초기 교회에서의 역할에 대한 논의를 통해 중요한 역사적, 신학적 유산을 남겼다.
그의 정체성에 대한 학계의 견해는 여전히 분분하며, 그가 '소 야고보'인지, '예수의 형제 야고보'와 동일 인물인지에 대한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교회는 그를 '소 야고보'이자 '예수의 형제 야고보'와 동일시하는 전통을 유지하며, 필립보 사도와 함께 5월 3일을 그의 축일로 기념한다. 반면 동방 정교회와 개신교는 대체로 그들을 별개의 인물로 보며, 동방 정교회에서는 10월 9일과 6월 30일(사도들의 시낙시스)에 그의 축일을 지낸다. 한국의 일부 동방 정교회에서는 10월 23일을 축일로 지내기도 한다.


전승에 따르면,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어린 시절부터 깊은 신앙심을 지니고 엄격하고 경건한 수도 생활을 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고기와 술을 멀리하고, 소박한 옷을 입었으며, 맨발로 다녔다고 한다. 오랜 기도 생활로 그의 무릎은 낙타의 발바닥처럼 굳어졌다고 묘사된다. 또한 그는 유대인으로서 율법을 철저히 준수했다고 한다. 이러한 그의 경건한 삶은 모든 출처에서 강조되며, 그의 성덕을 높이 평가한다.
그가 예루살렘 교회의 초대 주교였다는 전승과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이방인 그리스도인에 대한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은 초기 기독교 형성 과정에서 그의 영향력을 보여준다. 또한 그가 야고보서의 저자라는 전승은 그의 신학적 중요성을 더한다.
기독교 미술에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종종 풀러의 곤봉이나 톱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그의 순교 전승과 관련이 있다. 그는 약사, 약제사, 임종을 앞둔 이들, 모자 제조공, 그리고 여러 도시와 국가의 수호 성인으로 공경받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