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알베르토 오라시오 수피시(Alberto Horacio Suppici알베르토 오라시오 수피시스페인어)는 1898년부터 1981년까지 활동한 우루과이의 축구 선수이자 축구 감독이다. 그는 1930년 우루과이에서 개최된 초대 FIFA 월드컵에서 우루과이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우승을 차지하며 축구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수피시는 'El Profesor엘 프로페소르스페인어'(교수)라는 별칭으로도 잘 알려져 있으며, 불과 31세의 나이로 월드컵을 우승하여 역대 최연소 월드컵 우승 감독이라는 기록을 현재까지 보유하고 있다.
2. 생애
알베르토 수피시는 우루과이의 축구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로, 그의 삶과 경력은 초기 우루과이 축구의 발전과 궤를 같이한다.
2.1. 출생과 초기 활동
알베르토 오라시오 수피시는 1898년 11월 20일 우루과이 콜로니아주의 콜로니아 델 사크라멘토에서 태어났다. 그의 사촌인 엑토르 수피시 세데스는 유명한 프로 자동차 경주 선수였다. 1917년 4월 22일, 수피시는 자신의 고향인 콜로니아 델 사크라멘토에 플라사 콜로니아 축구단을 창단했다. 이 구단의 홈 경기장은 현재 12,000명을 수용할 수 있으며,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에스타디오 프로페소르 알베르토 수피시로 명명되었다.
2.2. 선수 경력
수피시는 1915년부터 1923년까지 클루브 나시오날 데 풋볼에서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선수 시절 총 143경기에 출전하여 6골을 기록했으며, 그의 신장은 167 cm였다.
3. 감독 경력
수피시는 선수로서의 경력보다는 축구 감독으로서의 업적으로 더 큰 명성을 얻었다. 특히 FIFA 월드컵 초대 우승을 이끌며 축구사에 한 획을 그었다.
3.1. 초기 감독 활동
알베르토 수피시는 1928년 우루과이 국가대표팀의 기술 단장으로 부임하며 감독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이듬해인 1929년에 개최된 코파 아메리카의 전신인 1929년 남미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우루과이 대표팀을 3위로 이끌었다. 국가대표팀 외에도 1935년 센트랄 에스파뇰, 1938년 몬테비데오 원더러스의 감독을 맡기도 했다.
3.2. 1930년 FIFA 월드컵 우승
1930년, 우루과이에서 역사적인 초대 FIFA 월드컵이 개최되었고, 알베르토 수피시는 개최국 국가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았다. 이 대회에서 그는 과감한 결정을 내리기도 했는데, 1928년 하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던 주전 골키퍼 안드레스 마살리가 대회를 앞두고 몬테비데오의 숙소에서 통금 시간을 어기자 그를 팀에서 제외시켰다.
수피시 감독은 이러한 단호한 리더십으로 선수단을 통솔하며 팀을 결승으로 이끌었다. 몬테비데오의 에스타디오 센테나리오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우루과이는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1-2로 뒤지던 경기를 후반전에만 3골을 몰아넣어 4-2로 역전승을 거두며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이 역사적인 순간을 93,000명의 관중이 지켜보았다. 당시 알베르토 수피시의 나이는 불과 31세로, 그는 FIFA 월드컵 역사상 최연소 우승 감독이라는 기록을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다. 그의 기술진에는 페드로 아리스페, 에르네스토 피골리, 루이스 그레코, 그리고 페드로 올리비에리가 포함되어 있었다.
3.3. 이후 클럽 및 국가대표팀 감독 활동
1930년 FIFA 월드컵 우승 이후에도 알베르토 수피시는 축구 감독으로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는 1935년부터 1941년까지 우루과이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두 번째 재임하며 여러 국제 대회를 치렀다. 클럽 경력으로는 1945년에 페냐롤의 감독을 맡아 팀을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으로 이끌기도 했다.
4. 수상 및 영예
알베르토 수피시는 클럽과 국가대표팀을 오가며 많은 트로피와 영예를 안았다.
4.1. 클럽 감독
- 페냐롤
-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1945
4.2. 국가대표팀 감독
- 우루과이
- FIFA 월드컵: 1930
- 남미 선수권 대회
- 준우승: 1939, 1941
- 3위: 1929, 1937
- 기타 국제 대회:
- 코파 뉴턴: 1929 (우승), 1937 (준우승)
- 코파 리프톤: 1928 (준우승), 1929 (우승), 1937 (준우승)
- 코파 후안 미그나부루: 1935 (준우승), 1936 (준우승), 1938 (준우승)
- 코파 엑토르 고메스: 1936 (우승), 1938 (준우승), 1940 (우승)
- 타사 히우 브랑쿠: 1931 (준우승), 1932 (준우승), 1940 (우승)
4.3. 국가대표팀 감독 기록
알베르토 수피시는 두 차례에 걸쳐 우루과이 국가대표팀을 이끌었으며, 그의 전반적인 감독 기록은 다음과 같다.
연도 | 경기 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승률 % |
---|---|---|---|---|---|---|---|
1928-1932 | 12 | 6 | 2 | 4 | 24 | 16 | 50.00 |
1935-1941 | 24 | 11 | 1 | 12 | 47 | 46 | 45.83 |
5. 별칭 및 유산
알베르토 수피시는 그의 상징적인 별칭과 함께 우루과이 축구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후대에 길이 기억되고 있다.
5.1. '교수' 별칭
알베르토 수피시는 선수와 감독 시절 내내 'El Profesor엘 프로페소르스페인어'(교수)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이 별칭은 그의 뛰어난 전술적 통찰력, 축구에 대한 깊은 지식, 그리고 선수들을 가르치고 이끄는 방식에 대한 존경과 찬사를 담고 있다.
5.2. 기념 및 후대 영향
수피시의 고향인 콜로니아 델 사크라멘토에 위치한 플라사 콜로니아의 홈 경기장은 그의 이름을 따서 에스타디오 프로페소르 알베르토 수피시로 명명되어 그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그는 FIFA 월드컵 역사상 초대 우승 감독이자 최연소 우승 감독이라는 독보적인 기록을 통해 축구계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발자취를 남겼다. 그의 리더십과 전략은 후대 우루과이 축구뿐만 아니라 전 세계 축구에 영향을 미쳤다.

6. 사망
알베르토 수피시는 1981년 6월 21일, 우루과이의 수도 몬테비데오에서 8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