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스테팡 타타우는 1963년 3월 31일 카메룬 야운데에서 태어나 2020년 7월 31일 사망한 카메룬의 전 축구 선수로, 주로 오른쪽 수비수와 중앙 수비수로 활약했습니다. 그는 카메룬 국내 리그와 일본 J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했으며, 특히 1990년과 1994년 FIFA 월드컵에서 카메룬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장으로 출전하여 뛰어난 리더십을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1990년 월드컵에서는 아프리카 국가 최초로 8강에 진출하는 역사적인 성과를 이끌며 아프리카 축구의 위상을 전 세계에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또한 그는 아프리카 축구 선수로는 최초로 일본 프로 클럽에서 활약하며 아시아 축구에 선구적인 발자취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타타우는 현역 은퇴 후에도 축구계와 꾸준히 인연을 이어갔으며, 그의 업적과 리더십은 카메룬 축구 역사에 중요한 유산으로 남아있습니다.
2. 어린 시절과 배경
스테팡 타타우 에타는 1963년 3월 31일 카메룬의 야운데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키 175 cm, 몸무게 67 kg의 체격을 지녔으며, 주로 오른쪽 발을 사용했습니다. 수비수로 활약한 그는 오른쪽 풀백과 센터백 포지션을 소화했습니다.
3. 클럽 경력
스테팡 타타우는 고국 카메룬과 일본에서 클럽 축구 경력을 쌓았습니다.
3.1. 카메룬 초기 경력
타타우는 쿰바의 Cammack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1988년부터 1991년까지 토네르 야운데에서 활약했고, 1992년부터 1994년까지는 올랭피크 음볼리예 소속이었습니다. 토네르 야운데는 당시 카메룬의 주요 클럽 중 하나였지만, 기본적인 시설조차 부족했습니다. 팀은 샤워실이나 라커룸이 없는 경기장에서 맨땅의 피치에서 경기를 치렀습니다. 1991년 타타우는 토네르에서 주당 60 GBP를 받았으며, 카메룬 라디오 텔레비전의 명목상 직책으로 주당 100 GBP를 추가로 벌었다고 알려졌습니다.
특히 1992년 카메룬컵 결승전을 며칠 앞두고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디아망 야운데와의 경기를 앞두고 타타우는 네 명의 무장한 남자들에게 차에서 끌려 나와 구타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사건에도 불구하고 결승전에 출전하여 팀의 주장을 맡았고, 뛰어난 활약을 펼쳐 결승골로 이어진 페널티 킥을 얻어냈습니다. 이 페널티 킥을 팀 동료인 베르탱 에브웰레가 성공시키며 올랭피크 음볼리예는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3.2. 유럽 입단 테스트
1990년 10월, 타타우는 잉글랜드 풋볼 리그 1부 디비전 소속의 퀸즈 파크 레인저스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았습니다. 그는 이 경험에 대해 "당황스러웠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는 당시 감독이었던 돈 하우가 자신에게 "훌륭하다"고 말했지만, 이미 팀에 포지션이 가득 차서 오른쪽 수비수가 필요 없다고 했다며, 미리 알려주지 않은 것에 대해 의아함을 표현했습니다. 이듬해 11월에는 풋볼 리그 2부 디비전의 브라이턴 앤 호브 앨비언에서도 입단 테스트를 받았습니다. 당시 그는 퀸즈 파크 레인저스에서 훈련을 마친 중앙 수비수로 보도되었으며, 국제 이적 허가가 나오면 브라이턴의 리저브 팀에서 뛸 예정이었습니다.
3.3. 일본에서의 활동 및 은퇴
1995년, 타타우는 일본의 도스 퓨처스에 입단했습니다. 이로써 그는 아프리카 축구 선수로는 최초로 일본 프로 클럽에서 뛰게 된 선구적인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는 J리그 승격을 목표로 팀을 이끌고자 했으나, 1997년 메인 스폰서의 철수로 인해 도스 퓨처스가 해체되는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는 사간 도스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창단된 팀에 잔류하기를 희망했지만, 재계약 조건에 합의하지 못했고, 결국 일본을 떠나며 선수 경력을 마무리했습니다.
4. 국가대표 경력
스테팡 타타우는 카메룬 국가대표팀의 핵심 선수이자 상징적인 주장으로 활약하며 팀의 황금기를 이끌었습니다.
4.1. 데뷔 및 초기 활동
타타우는 1986년 12월, 적도 기니의 말라보에서 열린 UDEAC컵 경기에서 콩고 공화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상대로 카메룬 축구 국가대표팀에 데뷔했습니다. 이후 몇 년간 그는 대표팀의 주전 선수로 확고히 자리매김했습니다.
4.2. 1990년 FIFA 월드컵
타타우의 가장 성공적이고 기억에 남는 국제 대회는 1990년 FIFA 월드컵이었습니다. 그는 이 대회에서 카메룬의 주장으로서 아프리카 국가 최초로 월드컵 8강에 진출하는 역사적인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카메룬은 1990년 FIFA 월드컵 B조에 편성되어 1986년 FIFA 월드컵 우승팀인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개막전으로 월드컵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압도적인 우승 후보였으나, 카메룬은 프랑수아 오맘비이크의 결승골로 1대 0 승리를 거두는 대이변을 연출했습니다. 이 경기에서 카메룬의 앙드레 카나-비이크와 뱅자맹 마싱이 퇴장당해 9명이서 싸웠음에도 승리하여 더욱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이 경기 후에는 당시 폴 비야 카메룬 대통령이 경기를 관전한 것이 선수들에게 큰 동기 부여가 되었다는 후일담이 전해졌습니다.
다음 경기에서는 바리의 스타디오 산 니콜라에서 루마니아 축구 국가대표팀을 2대 1로 꺾었습니다. 이 경기에서는 로제 밀라가 교체 투입되어 10분 만에 두 골을 터뜨리며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는 소련 축구 국가대표팀에 0대 4로 패했지만, 앞선 두 경기에서의 승리 덕분에 조 1위로 다음 라운드에 진출할 수 있었습니다.
16강전에서는 콜롬비아 축구 국가대표팀과 맞붙었고, 다시 한번 로제 밀라가 영웅으로 떠올랐습니다. 정규 시간 동안 득점 없이 비긴 후 연장전에서 밀라가 연달아 두 골을 넣으며 앞서나갔습니다. 비록 콜롬비아가 한 골을 만회했지만, 카메룬은 2대 1 승리를 지켜냈습니다.
8강전 상대는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이었습니다. 잉글랜드가 데이비드 플랫의 골로 앞서나갔지만, 카메룬은 후반에 4분 만에 두 골을 넣어 2대 1로 역전했습니다. 하지만 잉글랜드가 페널티 킥으로 동점을 만들며 경기는 연장전으로 돌입했습니다. 연장전에서 카메룬은 또다시 페널티 킥을 허용하며 2대 3으로 패배, 아쉽게 대회를 마감했습니다.
1990년 월드컵 개막 전 카메룬 대표팀에는 내부적으로 여러 혼란이 있었습니다. 당시 주전 골키퍼로 예상되던 조제프앙투안 벨이 팀 상태에 대해 불만을 표출하며 일부 선수들과 갈등을 빚었고, 이로 인해 토마스 은코노가 주전 골키퍼로 나서게 되었습니다. 또한 로제 밀라의 갑작스러운 대표팀 합류 등 여러 변수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타우는 주장으로서 팀을 잘 이끌었습니다.
4.3. 1994년 FIFA 월드컵
타타우는 1994년 FIFA 월드컵에도 카메룬 대표팀 주장으로 출전했습니다. 이 대회에서 러시아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경기가 그의 마지막 국가대표 경기가 되었습니다.
4.4. 국가대표 통산 기록
스테팡 타타우는 국가대표팀에서 총 51번의 국제 A매치에 출전하여 3골을 기록했습니다.
| 연도 | 출전 | 득점 |
|---|---|---|
| 1987 | 8 | 2 |
| 1988 | 7 | 0 |
| 1989 | 7 | 0 |
| 1990 | 10 | 0 |
| 1991 | 3 | 0 |
| 1992 | 5 | 0 |
| 1993 | 6 | 0 |
| 1994 | 5 | 1 |
| 합계 | 51 | 3 |
그는 또한 1988년, 1990년, 1992년, 1994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대회에도 출전했습니다.
5. 선수 은퇴 이후 경력
스테팡 타타우는 선수 은퇴 이후에도 축구계와 꾸준히 인연을 이어갔습니다.
5.1. 지도자 경력
2018년 4월, 스테팡 타타우는 당시 공석이 된 카메룬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직에 지원한 77명의 후보 중 한 명이었습니다. 이는 그가 선수 은퇴 이후에도 축구계에 대한 열정을 이어갔음을 보여주는 행보입니다. 또한, 2017년까지 카메룬 대표팀 감독을 맡았던 위고 브로스의 후임 후보 중 한 명으로도 거론되었습니다.
6. 수상 경력 및 업적
스테팡 타타우는 클럽과 국가대표팀에서 여러 차례의 우승과 개인적인 영예를 안았습니다.
6.1. 클럽 수상
- 카메룬컵: 1989년, 1991년, 1992년
- (1989년, 1991년은 토네르 야운데 소속, 1992년은 올랭피크 음볼리예 소속으로 우승)
6.2. 국가대표 수상
-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1988년 (우승)
-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1992년 (4위)
6.3. 개인 수상
-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베스트 11: 1988년
7. 사생활 및 사망
7.1. 사생활
스테팡 타타우는 1963년 3월 31일 카메룬 야운데에서 태어났습니다.
7.2. 사망
스테팡 타타우는 2020년 7월 31일, 57세의 나이로 고향인 야운데 자택에서 사망했습니다.
8. 유산과 영향
스테팡 타타우는 그의 축구 경력과 리더십을 통해 여러 방면에서 중요한 유산을 남겼습니다.
8.1. 아시아 축구에서의 선구자 역할
타타우는 1995년 일본 도스 퓨처스에 입단하며 아프리카 축구 선수로는 최초로 일본 프로 축구 리그에서 뛰게 되었습니다. 이는 아프리카 선수들이 아시아 리그로 진출하는 길을 개척한 선구적인 업적으로 평가됩니다. 그의 이러한 발자취는 이후 다른 아프리카 선수들에게도 아시아 무대에서의 활약을 위한 영감을 주었습니다.
8.2. 카메룬 축구에 미친 영향
스테팡 타타우는 1990년 FIFA 월드컵에서 카메룬 대표팀의 주장을 맡아 아프리카 국가 최초로 월드컵 8강에 진출하는 역사적인 성과를 이끌었습니다. 이 업적은 카메룬 축구의 황금기를 상징하며, 전 세계에 카메룬 축구의 저력을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1992년 카메룬컵 결승전 전의 피습 사건에도 불구하고 팀을 이끌고 승리한 일화는 그의 뛰어난 리더십과 정신력을 보여주는 사례로, 카메룬 축구 역사에 중요한 상징으로 남아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