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기 생애 및 배경
세베리아노 바예스테로스는 어린 시절부터 골프에 대한 남다른 열정과 기술을 발전시켰으며, 그의 가족 배경은 그의 경력에 큰 영향을 미쳤다.
1.1. 어린 시절과 골프 개발
세베리아노 바예스테로스 소타는 1957년 4월 9일 스페인 칸타브리아의 페드레냐 마을에서 농장 노동자였던 발도메로 바예스테로스 프레스마네(1919~1987)와 카르멘 소타 오세호(1919~2002)의 다섯 아들 중 막내로 태어났다. 형제 중 한 명은 어린 시절 사망했고, 나머지 형제들은 모두 프로 골프 선수가 되었다. 그는 학교에 가야 할 시간에 주로 집 근처 해변에서 놀면서 골프를 배웠다. 8살 때 형 마누엘 바예스테로스에게 받은 3번 아이언 클럽 하나로 작은 돌멩이를 치며 독학으로 골프의 기초를 다졌다. 그는 단 하나의 골프공이 닳아 내부 고무가 드러날 때까지 계속해서 쳤다. 12세 무렵에는 이미 스크래치 플레이어 수준의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1.2. 가족
그의 외삼촌인 라몬 소타는 스페인 프로 챔피언십에서 4차례 우승했으며, 1965년 마스터스 토너먼트에서 6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바예스테로스의 큰형 마누엘은 1972년부터 1983년까지 매년 유러피언 투어 상금 순위 100위 안에 들었으며, 나중에는 바예스테로스의 매니저가 되었다. 그의 다른 형제인 비센테와 발도메로, 그리고 조카인 라울과 이반도 모두 프로 골프 선수이다.
2. 프로 경력
세베리아노 바예스테로스는 16세의 어린 나이에 프로로 전향하여 수많은 승리와 중요한 업적을 달성하며 골프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2.1. 프로 데뷔와 초기 성공
바예스테로스는 1974년 3월 16세의 나이로 프로에 입문했다. 그는 1976년 로열 버크데일 골프 클럽에서 열린 1976년 디 오픈 챔피언십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국제 무대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그는 3라운드까지 2타 차 선두를 달렸으나, 최종 라운드에서 74타를 기록하며 우승자 조니 밀러에 6타 뒤진 공동 2위로 잭 니클라우스와 동률을 이뤘다. 그는 그 해 유러피언 투어 상금왕을 차지했으며, 이후 2년 연속으로 상금왕을 차지하는 등 총 6차례 상금왕에 올라 당시로서는 기록적인 성과를 거두었다(이 기록은 후에 콜린 몽고메리에 의해 경신되었다). 바예스테로스는 1979년 1979년 디 오픈 챔피언십에서 최종 라운드 70타를 기록하며 첫 디 오픈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했다. 이 라운드에서 그는 16번 홀에서 티샷이 주차장으로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버디를 기록하는 유명한 장면을 연출했다.
2.2. 메이저 챔피언십 우승
바예스테로스는 총 5번의 메이저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1980년과 1983년 마스터스 토너먼트에서, 그리고 1979년, 1984년, 1988년 디 오픈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1980년 마스터스 우승은 유럽 선수로는 최초의 우승이었으며, 당시 23세로 대회 최연소 우승 기록을 세웠다(이 기록은 1997년 21세의 타이거 우즈에 의해 깨졌다). 1979년 디 오픈 챔피언십 우승 또한 20세기 최연소 우승 기록이었으며, 1907년 아르노 마시 이후 유럽 대륙 출신 선수로는 최초로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한 기록이었다. 바예스테로스는 비로 인해 연기된 1983년 마스터스에서 5타 차로 우승했다. 2023년 현재, 그는 월요일에 마스터스에서 우승한 마지막 골프 선수이다. 그는 세인트앤드루스의 18번 홀에서 1984년 디 오픈 챔피언십 우승을 확정 지은 퍼팅을 "내 평생 스포츠 경력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회상했다.
1988년, 바예스테로스는 로열 리덤 & 세인트 앤스 골프 클럽에서 열린 1988년 디 오픈 챔피언십에서 자신의 5번째이자 마지막 메이저 타이틀을 획득했다. 최종 라운드는 토요일 경기가 폭우로 취소된 후 월요일에 진행되었다. 그는 닉 프라이스를 2타 차로 꺾고 기록한 최종 라운드 65타를 "아마도 내 경력 전체에서 최고의 라운드"라고 표현했다.
2.3. 유럽 투어에서의 지배력
바예스테로스는 유러피언 투어에서 총 50승을 기록하며 역대 최다 우승 기록을 세웠다. 그는 1976년 더치 오픈에서 첫 유러피언 투어 우승을 차지한 이래 1992년까지 17년 연속으로 매년 최소 한 번의 유러피언 투어 대회에서 우승하는 꾸준함을 보였다。 그의 마지막 유러피언 투어 우승은 1995년 푸조 스페인 오픈이었다.
2.4. PGA 투어 및 국제 대회 우승
바예스테로스는 PGA 투어에서 9승을 거두었으며, 여기에는 1978년 그레이터 그린즈버러 오픈, 1983년 및 1988년 매뉴팩처러스 하노버 웨스트체스터 클래식, 1985년 USF&G 클래식이 포함된다. 1983년 9월 30일 PGA 투어에 가입했으며, 1984년에는 회원 자격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 출전 대회 수인 15개 대회에 참가했다. 그러나 다음 시즌에는 9개 대회에만 출전하여 PGA 투어의 의무 출전 규정을 지키지 못해 징계를 받기도 했다.
그는 일본 골프 투어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며 6승을 기록했다. 1977년 일본 오픈 골프 선수권 대회에서 20세 7개월의 나이로 우승하며 일본 투어 최연소 우승 기록을 세웠고(이 기록은 2007년 이시카와 료에 의해 경신될 때까지 유지되었다), 1978년에도 일본 오픈에서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또한 1977년과 1981년 던롭 피닉스 토너먼트에서 2회 우승, 1988년 비자 태평양 클럽 마스터스 우승, 1991년 더 크라운즈 우승을 기록했다. 일본에서의 그의 마지막 투어 우승은 1991년 국제 초청 골프 중일 크라운즈였다.
이 외에도 PGA 투어 오브 오스트레일리아에서 1승(1981년 메인 닉리스 호주 PGA 챔피언십), 뉴질랜드 골프 서킷에서 1승(1977년 오타고 자선 클래식), 사파리 서킷에서 1승(1978년 케냐 오픈)을 거두었다. 또한 1974년 스페인 25세 이하 내셔널 챔피언십, 1976년 랑콤 트로피 및 골프 월드컵 (마누엘 피녜로와 함께), 1977년 브라운 인터내셔널 골프 (독일) 및 골프 월드컵 (안토니오 가리도와 함께), 1981년, 1982년, 1984년, 1985년 산토리 월드 매치 플레이 챔피언십, 1983년, 1984년 밀리언 달러 챌린지 (남아프리카), 1985년, 1987년 스페인 프로 폐쇄 챔피언십 등 27개의 기타 대회에서 우승하며 전 세계적으로 총 90승을 기록했다.
2.5. 라이더컵
1980년대와 1990년대에 걸쳐 바예스테로스는 유럽 라이더컵 팀의 핵심 선수였다. 그는 미국 팀과의 37번의 경기에서 총 22.5점을 획득했다. 특히 동료 스페인 선수 호세 마리아 올라사발과의 파트너십은 대회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조합으로, 15번의 페어 경기에서 11승 2무를 기록했다. 바예스테로스는 1985년, 1987년, 1989년(컵 유지), 1995년 라이더컵 우승 팀의 일원이었으며, 라이더컵 경력의 정점은 1997년 스페인 소토그란데의 발데라마 골프 클럽에서 열린 대회에서 우승한 유럽 팀의 비선수 주장으로 활약했을 때였다. 이 대회는 유럽 대륙에서 개최된 최초의 라이더컵이었다.
2.6. 세계 랭킹 및 수상 경력
바예스테로스는 1986년 4월 공식 세계 골프 랭킹이 도입된 이래 1989년 9월까지 총 61주 동안 세계 랭킹 1위를 유지했으며, 1988년 시즌 말에는 세계 랭킹 1위로 마감했다. 그는 또한 1983년, 1984년, 1985년 맥코맥의 "월드 오브 프로페셔널 골프" 연감에 실린 맥코맥의 세계 골프 랭킹(공식 랭킹의 기반이 됨)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그는 1977년부터 1991년까지 15년 연속으로 시즌 말 세계 랭킹 10위권 내에 꾸준히 이름을 올렸다.
1999년, 바예스테로스는 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그는 2000년 세베 트로피 창설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대회는 라이더컵과 유사한 팀 대항전으로, 영국과 아일랜드 연합팀과 유럽 대륙팀이 맞붙는 형식이다. 2000년 골프 다이제스트 매거진은 바예스테로스를 역대 16번째 위대한 골프 선수로 선정했으며, 그는 유럽 대륙 출신 선수 중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2009년에는 BBC 올해의 스포츠인상에서 두 번째로 평생 공로상을 수상했으며, 로레우스 세계 스포츠 아카데미의 회원이었다.
3. 플레이 스타일과 철학
바예스테로스의 골프 스타일은 독특하고 공격적이며 창의적인 접근 방식으로 정의된다. 그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비정형적인 샷을 구사하는 능력과 코스에서의 열정적인 태도로 유명했다. 그의 플레이는 진 사라젠이 "니클라우스는 퍼트를, 나는 드라이버 거리를 가졌다. 골프의 신은 모두에게 한 가지 결점을 주지만, 세베는 예외다"라고 평할 정도로 독보적이었다. 그는 선천적으로 왼팔보다 오른팔이 길어 오른 어깨를 내리지 않고도 그립을 잡을 수 있었는데, 이는 그의 골프에 유리하게 작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드라이버의 안정성은 최고 수준의 선수답지 않은 면이 있었지만, 아이언샷의 날카로움과 다양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특히 숲 속이나 그린을 직접 노리기 어려운 곳에서도 파나 버디를 잡아내는 능력으로 "일곱 빛깔 아이언샷"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의 플레이를 대표하는 가장 유명한 일화는 1979년 디 오픈 최종 라운드에서 나온 "주차장 샷"이다. 16번 홀에서 티샷이 크게 오른쪽으로 휘어져 임시 주차장의 차 밑으로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잔디가 없는 흙바닥에서 그린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홀컵으로부터 불과 4 m 떨어진 곳에 볼을 올려 기적 같은 버디를 잡으며 첫 메이저 타이틀 획득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플레이는 디 오픈의 전설로 남아있다. 또한 어프로치샷과 벙커샷을 포함한 쇼트 게임에도 능했으며, 특히 퍼팅은 골프 역사상 최고의 명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톰 왓슨은 "스윙을 완벽하게 하려 생각하지만, 세베는 오직 이기는 것만 생각한다"고 말했으며, 벤 크렌쇼는 "세베는 거의 완벽한 골프 선수다. 트러블 상황도 그에게는 난제가 아니다"라고 평했다. 마루야마 시게키는 "정말 잘 쳤다. 동경해서 자주 흉내 냈다"고 했고, 요코타 신이치는 "마치 페라리와 같은 약동감으로 다른 선수들과는 전혀 달랐다"고 언급했다. 마루야마 다이스케는 "이 사람에게 불가능은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으며, 쿠라모토 마사히로는 "다양하게 볼을 다루는 기술은 타이거 우즈보다 훨씬 위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4. 후기 경력 및 은퇴
바예스테로스는 경력 후반기에 여러 어려움에 직면했으며, 결국 경쟁적인 골프에서 은퇴를 선언했다.
4.1. 어려움과 부상
바예스테로스는 1990년대 후반부터 허리 통증을 비롯한 부상으로 인해 경기에 거의 출전하지 못했다. 메탈 우드와 티타늄 우드가 등장하면서 스윙 개조를 시도했으나 실패하면서 더욱 부진에 빠졌고, 세계 랭킹은 급락했다. 2005년 마드리드 오픈에서 오랜만에 경기에 나섰지만, 지속적인 허리 문제로 인해 2007년 챔피언스 투어에서 유일하게 출전한 대회에서도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골프계에 계속 관여했다. 2000년에는 세베 트로피를 창설하여 영국과 아일랜드 연합팀과 유럽 대륙팀 간의 팀 대항전을 개최했다. 또한 2006년부터 로열 트로피의 유럽 팀 비선수 주장으로 활동하며 2006년과 2007년 팀의 우승을 이끌었다. 그는 또한 골프 코스 디자인 사업을 활발히 운영했으며, 특히 1997년 라이더컵을 앞두고 발데라마의 17번 홀을 변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일본에도 그가 코스 감수에 참여한 골프 클럽이 세 곳 있다. 후쿠시마현 이와키시의 세베 바예스테로스 골프 클럽 이즈미 코스, 이바라키현 이나시키시의 세베 바예스테로스 골프 클럽(데이비드 토마스와 공동 감수), 그리고 오이타현 구니사키시의 퍼시픽 블루 골프 & 리조트 구니사키(구 BFR 골프 클럽)가 그것이다.

4.2. 은퇴
바예스테로스는 2007년 7월 16일, 지속적인 허리 문제로 인해 경쟁적인 골프에서 은퇴를 선언하며 화려했던 경력에 막을 내렸다. 기자회견에서 그는 자신에 대한 자살 시도 보도가 "현실과 전혀 거리가 멀다"고 일축했다. 그는 심장 상태에 대한 우려로 잠시 입원했으나, 같은 날 건강에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고 퇴원했다.
5. 개인 생활
바예스테로스는 1988년부터 2004년까지 에밀리오 보틴의 딸인 카르멘 보틴 오셰아와 결혼 생활을 했다. 이들은 칸타브리아의 마리나 데 쿠데요에서 이혼했다. 부부 사이에는 하비에르, 미겔, 카르멘 세 자녀가 있었다. 그의 결혼 생활은 바예스테로스가 자신의 경력 쇠퇴를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고 전해진다.
6. 질병 및 사망
바예스테로스는 뇌암과의 힘겨운 싸움을 벌이다가 결국 사망했다.
6.1. 진단 및 치료
2008년 10월 6일, 바예스테로스는 마드리드 바라하스 공항에서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6일 후, 그는 자신이 악성 뇌종양 진단을 받았다고 확인했다. 10월 15일, 스페인 통신사 EFE는 그가 종양 절제 수술을 위해 12시간 동안 수술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이는 그가 받게 될 네 번의 수술 중 첫 번째였다. 병원 대변인은 외과 의사들이 종양의 상당 부분을 제거했다고 밝혔다. 10월 23일, 종양이 희소돌기아교세포성 성상세포종으로 분류된 악성 종양임이 공식적으로 확인되었고,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10월 24일 추가 수술이 진행되어 그를 안정시키고 남은 종양을 제거하려 노력했다. 10월 24일, 6시간 반의 수술 끝에 종양이 제거되었음이 확인되었다. 11월 3일, 병원은 그가 중환자실에서 재활을 시작했으며 안정적으로 호흡하고 있다고 확인했다. 11월 18일, 그는 재활을 계속하기 위해 마드리드 라파스 병원의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
바예스테로스는 2008년 12월 9일 병원에서 퇴원했다. 이후 스페인 북부의 자택으로 돌아가 화학 요법 치료를 통원 치료로 받았다. 2009년 1월, 그의 웹사이트에 올라온 메시지에는 그가 첫 번째 화학 요법 과정에 잘 반응했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그는 "매우 의욕적이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회복이 더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인내심과 많은 결단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의사들이 지시하는 모든 지침을 엄격히 따르고 있다. 게다가 물리치료사들이 나에게 훌륭한 일을 해주고 있으며, 나는 매일 더 나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바예스테로스는 2009년 2월 마드리드 라파스 병원에서 두 번째 화학 요법 과정을 마쳤다. 그는 웹사이트를 통해 "검진 결과가 정말 긍정적이었고, 첫 번째보다 훨씬 좋았다"고 말했다. 그는 2009년 3월 세 번째 치료를 마쳤고, 한 달 후 네 번째이자 마지막 화학 요법 과정을 완료했다. 2009년 6월, 바예스테로스는 뇌종양 치료 후 첫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살아있는 것이 "기적"이라고 말하며 자신을 돌봐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6.2. 사망
2011년 5월 6일, 바예스테로스의 가족은 그의 신경학적 상태가 "심각하게 악화되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는 이 발표가 있은 지 몇 시간 후인 2011년 5월 7일 새벽 5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의 형 발도메로는 사망 시각이 CEST 오전 2시 10분이었다고 확인했다.
7. 유산과 영향력
세베리아노 바예스테로스는 골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죽음 이후에도 그의 유산은 전 세계적으로 기억되고 있다.
7.1. 추모 및 기념
바예스테로스가 사망했을 당시 스페인 오픈이 진행 중이었다. 유러피언 투어는 바르셀로나의 레알 클럽 데 골프 엘 프라트에서 열린 3라운드 도중 묵념의 시간을 가지며 그의 죽음을 추모했다.
타이거 우즈는 바예스테로스를 "역대 가장 재능 있고 흥미진진한 골프 선수 중 한 명"이라고 묘사했다. 리 웨스트우드는 "세베가 오늘날의 유럽 골프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필 미컬슨은 2010년 마스터스 토너먼트 우승자로서 2011년 마스터스 챔피언스 디너에서 바예스테로스를 기리기 위해 스페인 테마의 메뉴를 선택했다. 주요 요리로는 해산물 파에야와 만체고 치즈를 얹은 필레 미뇽이 있었고, 샐러드, 아스파라거스, 토르티야가 곁들여졌으며, 디저트로는 아이스크림을 얹은 애플 엠파나다가 제공되었다.
마드리드 오픈 테니스 토너먼트에서는 라파엘 나달과 로저 페더러의 준결승 경기 전에 묵념의 시간이 있었다. 바예스테로스의 절친한 친구였던 나달은 비디오 화면을 보며 눈물을 닦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5월 8일 EST 오후 3시 8분, 미국의 3대 남자 투어는 경기를 중단하고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5월 10일, 아이리시 인디펜던트는 그에 대해 "그는 또한 명예, 위엄, 스포츠맨십, 품위, 페어 플레이, 충성심, 진실성, 그리고 결국에는 불굴의, 잊을 수 없는, 놀라운 용기라는 다른 많은 언어들을 구사했다. 간단히 말해, 그의 스포츠나 그의 나라를 위한 더 훌륭한 대사는 없었다"고 평했다.
화장된 바예스테로스의 장례식은 그의 고향인 페드레냐의 산 페드로 교구 교회에서 거행되었다. 참석자 수가 많아 400명 수용 규모의 교회 밖에 여러 대형 스크린이 설치되었다. 그의 유골은 그의 자택 부지에 뿌려졌다.
바예스테로스 사망 당일, 플로리다주의 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에는 스페인 국기가 게양되었고, 미국 국기는 조기 게양되었으며, 매표소에는 바예스테로스의 사진이 걸리고 그의 라커 외부에는 검은 리본이 걸렸다. 다음 주말, 인근 TPC 소그래스에서 열린 2011년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는 디펜딩 챔피언 팀 클라크의 요청으로 그의 모국인 남아프리카 공화국 국기 대신 스페인 국기가 조기 게양되었다. 클라크는 "세베는 제가 자랄 때의 영웅이었다... 지난주 그를 잃으면서 골프계 전체가 슬픔에 잠겼다고 생각한다. 그의 국기를 여기에 올리는 것은 그에게 작은 추모일 뿐이다. 분명히 그는 훨씬 더 많은 것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2012년 라이더컵은 바예스테로스 사망 후 처음으로 열린 대회였다. 유럽 팀은 세베를 기리기 위해 최종일에 네이비 블루와 흰색 유니폼을 착용했는데, 이는 세베가 전통적으로 대회 마지막 날에 입던 색상이었다. 또한 팀 유니폼에는 1984년 디 오픈 챔피언십 우승 후 바예스테로스의 상징적인 "경례" 실루엣이 새겨져 있었다. 아일랜드 골프 선수 패드라그 해링턴, 닉 팔도 등 유럽 선수들은 유러피언 투어의 공식 로고에 있는 해리 바든의 이미지를 바예스테로스의 실루엣으로 교체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바예스테로스의 고향인 칸타브리아의 공항은 2015년 4월 16일 스페인 정부가 명칭 변경을 승인한 이후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산탄데르 공항의 이름은 세베 바예스테로스 - 산탄데르 공항으로 변경되었다. 이 변경은 2014년 5월 지역 의회가 만장일치로 청원을 승인한 후 이루어졌다. 이 대중적 이니셔티브의 동기는 바예스테로스가 칸타브리아 출신 중 가장 보편적인 인물 중 한 명이자 스포츠와 삶의 모범이었음을 기리기 위함이었다.
2017년, 유러피언 투어 올해의 선수상은 그의 이름을 따서 세베 바예스테로스상으로 개칭되었다. 이 상의 첫 수상자는 헨리크 스텐손이었다.
7.2. 세베 바예스테로스 재단
바예스테로스는 2009년 6월 "세베 바예스테로스 재단"의 설립을 발표했다. 이 재단은 암 환자들이 암과 싸울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설립되었다. 재단은 특히 뇌종양을 포함한 암 연구에 전념하는 동시에,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젊은 골프 선수들이 그처럼 성공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7.3. 골프에 미친 영향
바예스테로스는 유럽 골프의 재부상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스포츠의 대사로서 전 세계 골프 선수들에게 지속적인 영감을 주었다. 그의 카리스마와 혁신적인 플레이 스타일은 많은 젊은 선수들에게 영향을 미쳤고, 특히 유럽 골프가 미국에 대항할 수 있는 강력한 세력으로 성장하는 데 기여했다. 그의 사망 소식에 일본 골프계 또한 깊은 슬픔에 잠겼다. 나카지마 쓰네유키는 1986년 마스터스에서의 추억을 이야기하며 라이벌의 죽음에 눈물을 흘렸고, 아오키 이사오는 바예스테로스가 자신을 플로리다주의 집으로 초대한 일화를, 오자키 마사시는 트러블 상황에서의 신들린 탈출 샷에 대한 기억을 회상했다. 이시카와 료 또한 "옆 홀이나 숲 속에서의 리커버리 샷 등 전설적인 플레이에 동경심을 가졌다"고 말했다. 2011년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 발생 5일 후인 3월 16일, 바예스테로스는 자신의 웹사이트에 "일본, 나는 당신과 함께 있다"는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 해 11월 던롭 피닉스 토너먼트에서는 개최지인 미야자키 피닉스 컨트리 클럽에서 추모 전시회가 열려 그의 용맹한 모습을 기리고 고인의 생전 모습을 추억했다.
8. 주요 우승 기록
세베리아노 바예스테로스는 다양한 투어와 대회에서 수많은 우승을 차지하며 골프 역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다.
8.1. 메이저 챔피언십 우승
| 연도 | 대회 | 54홀 성적 | 우승 스코어 | 타수 차이 | 준우승자 |
|---|---|---|---|---|---|
| 1979 | 디 오픈 챔피언십 | 2타 뒤짐 | -1 (73-65-75-70=283) | 3타 | 잭 니클라우스, 벤 크렌쇼 |
| 1980 | 마스터스 토너먼트 | 7타 앞섬 | -13 (66-69-68-72=275) | 4타 | 기비 길버트, 잭 뉴턴 |
| 1983 | 마스터스 토너먼트 | 1타 뒤짐 | -8 (68-70-73-69=280) | 4타 | 벤 크렌쇼, 톰 카이트 |
| 1984 | 디 오픈 챔피언십 | 2타 뒤짐 | -12 (69-68-70-69=276) | 2타 | 베른하르트 랑거, 톰 왓슨 |
| 1988 | 디 오픈 챔피언십 | 2타 뒤짐 | -11 (67-71-70-65=273) | 2타 | 닉 프라이스 |
8.2. PGA 투어 우승 (9승)
| No. | 날짜 | 대회 | 우승 스코어 | 타수 차이 | 준우승자 |
|---|---|---|---|---|---|
| 1 | 1978년 4월 2일 | 그레이터 그린즈버러 오픈 | -6 (72-75-69-66=282) | 1타 | 잭 레너, 퍼지 조엘러 |
| 2 | 1979년 7월 21일 | 디 오픈 챔피언십 | -1 (73-65-75-70=283) | 3타 | 벤 크렌쇼, 잭 니클라우스 |
| 3 | 1980년 4월 13일 | 마스터스 토너먼트 | -13 (66-69-68-72=275) | 4타 | 기비 길버트, 잭 뉴턴 |
| 4 | 1983년 4월 11일 | 마스터스 토너먼트 (2) | -8 (68-70-73-69=280) | 4타 | 벤 크렌쇼, 톰 카이트 |
| 5 | 1983년 6월 12일 | 매뉴팩처러스 하노버 웨스트체스터 클래식 | -8 (69-67-70-70=276) | 2타 | 앤디 빈, 크레이그 스태들러 |
| 6 | 1984년 7월 22일 | 디 오픈 챔피언십 (2) | -12 (69-68-70-69=276) | 2타 | 베른하르트 랑거, 톰 왓슨 |
| 7 | 1985년 3월 17일 | USF&G 클래식 | -11 (68-69-68=205)* | 2타 | 피터 야콥센, 존 마하피 |
| 8 | 1988년 6월 12일 | 매뉴팩처러스 하노버 웨스트체스터 클래식 (2) | -8 (72-68-69-67=276) | 플레이오프 | 데이비드 프로스트, 켄 그린, 그레그 노먼 |
| 9 | 1988년 7월 17일 | 디 오픈 챔피언십 (3) | -11 (67-71-70-65=273) | 2타 | 닉 프라이스 |
- 1985년 USF&G 클래식은 악천후로 인해 54홀로 축소되었다.
8.3. 유러피언 투어 우승 (50승)
| No. | 날짜 | 대회 | 우승 스코어 | 타수 차이 | 준우승자 |
|---|---|---|---|---|---|
| 1 | 1976년 8월 8일 | 더치 오픈 | -13 (65-73-68-69=275) | 8타 | 하워드 클라크 |
| 2 | 1977년 5월 8일 | 프랑스 오픈 | -6 (69-70-71-72=282) | 3타 | 존 블랜드, 안토니오 가리도, 마누엘 피녜로, 이안 스탠리 |
| 3 | 1977년 6월 25일 | 유니로얄 인터내셔널 챔피언십 | -12 (70-70-67-69=276) | 플레이오프 | 닉 팔도 |
| 4 | 1977년 7월 17일 | 스위스 오픈 | -7 (68-66-70-69=273) | 3타 | 존 슈로더 |
| 5 | 1978년 5월 21일 | 마티니 인터내셔널 | -14 (67-67-67-69=270) | 5타 | 닉 팔도 |
| 6 | 1978년 7월 30일 | 브라운 독일 오픈 | -20 (64-67-70-67=268) | 2타 | 닐 콜스 |
| 7 | 1978년 8월 6일 | 스칸디나비아 엔터프라이즈 오픈 | -9 (73-69-68-69=279) | 1타 | 데일 헤이스 |
| 8 | 1978년 9월 3일 | 스위스 오픈 (2) | -8 (68-68-68-68=272) | 3타 | 마누엘 피녜로 |
| 9 | 1979년 7월 1일 | 라다 잉글리시 골프 클래식 | -2 (73-71-71-71=286) | 6타 | 닐 콜스, 사이먼 홉데이 |
| 10 | 1979년 7월 21일 | 디 오픈 챔피언십 | -1 (73-65-75-70=283) | 3타 | 벤 크렌쇼, 잭 니클라우스 |
| 11 | 1980년 4월 13일 | 마스터스 토너먼트 | -13 (66-69-68-72=275) | 4타 | 기비 길버트, 잭 뉴턴 |
| 12 | 1980년 4월 27일 | 마드리드 오픈 | -18 (68-63-70-69=270) | 3타 | 마누엘 피녜로 |
| 13 | 1980년 5월 18일 | 마티니 인터내셔널 (2) | -2 (74-75-67-70=286) | 1타 | 브라이언 반스 |
| 14 | 1980년 7월 27일 | 더치 오픈 (2) | -8 (69-75-65-71=280) | 3타 | 샌디 라일 |
| 15 | 1981년 7월 5일 | 스칸디나비아 엔터프라이즈 오픈 (2) | -11 (69-70-68-66=273) | 5타 | 안토니오 가리도 |
| 16 | 1981년 10월 4일 | 벤슨 & 헤지스 스페인 오픈 | -15 (71-67-70-65=273) | 1타 | 스티브 마틴 |
| 17 | 1982년 4월 25일 | 켑사 마드리드 오픈 (2) | -15 (70-69-66-68=273) | 1타 | 호세 마리아 카니자레스 |
| 18 | 1982년 5월 9일 | 파코 라반 오픈 드 프랑스 (2) | -10 (71-70-72-65=278) | 4타 | 샌디 라일 |
| 19 | 1983년 4월 11일 | 마스터스 토너먼트 (2) | -8 (68-70-73-69=280) | 4타 | 벤 크렌쇼, 톰 카이트 |
| 20 | 1983년 5월 30일 | 선 얼라이언스 PGA 챔피언십 | -2 (69-71-67-71=278) | 2타 | 켄 브라운 |
| 21 | 1983년 8월 14일 | 캐롤스 아이리시 오픈 | -17 (67-67-70-67=271) | 2타 | 브라이언 반스 |
| 22 | 1983년 10월 2일 | 랑콤 트로피 | -19 (71-65-64-69=269) | 4타 | 코리 파빈 |
| 23 | 1984년 7월 22일 | 디 오픈 챔피언십 (2) | -12 (69-68-70-69=276) | 2타 | 베른하르트 랑거, 톰 왓슨 |
| 24 | 1985년 6월 23일 | 캐롤스 아이리시 오픈 (2) | -10 (70-69-73-66=278) | 플레이오프 | 베른하르트 랑거 |
| 25 | 1985년 7월 7일 | 푸조 오픈 드 프랑스 (3) | -21 (62-68-64-69=263) | 2타 | 샌디 라일 |
| 26 | 1985년 9월 22일 | 산요 오픈 | -16 (66-70-65-71=272) | 3타 | 제프 혹스 |
| 27 | 1985년 10월 27일 | 벤슨 & 헤지스 스페인 오픈 (2) | -14 (67-68-65-66=266) | 4타 | 고든 브랜드 주니어 |
| 28 | 1986년 6월 8일 | 던힐 브리티시 마스터스 | -13 (67-68-70-70=275) | 2타 | 고든 브랜드 주니어 |
| 29 | 1986년 6월 22일 | 캐롤스 아이리시 오픈 (3) | -3 (68-75-68-74=285) | 2타 | 로저 데이비스, 마크 맥널티 |
| 30 | 1986년 6월 28일 | 조니 워커 몬테카를로 오픈 | -11 (66-71-64-64=265) | 2타 | 마크 맥널티 |
| 31 | 1986년 7월 7일 | 푸조 오픈 드 프랑스 (4) | -19 (65-66-69-69=269) | 2타 | 비센테 페르난데스 |
| 32 | 1986년 7월 27일 | KLM 더치 오픈 (3) | -17 (69-63-71-68=271) | 8타 | 호세 리베로 |
| 33 | 1986년 10월 19일 | 랑콤 트로피 (2) | -14 (67-69-68-70=274) | 공동 우승 | 베른하르트 랑거 |
| 34 | 1987년 4월 19일 | 수즈 오픈 | -13 (69-70-68-68=275) | 플레이오프 | 이안 우스남 |
| 35 | 1988년 3월 13일 | 마요르카 오픈 드 발레아레스 | -16 (70-68-67-67=272) | 6타 | 호세 마리아 올라사발 |
| 36 | 1988년 7월 17일 | 디 오픈 챔피언십 (3) | -11 (67-71-70-65=273) | 2타 | 닉 프라이스 |
| 37 | 1988년 7월 31일 | 스칸디나비아 엔터프라이즈 오픈 (3) | -18 (67-70-66-67=270) | 5타 | 게리 테일러 |
| 38 | 1988년 8월 28일 | 독일 오픈 (2) | -21 (68-68-65-62=263) | 5타 | 고든 브랜드 주니어 |
| 39 | 1988년 9월 18일 | 랑콤 트로피 (3) | -15 (64-66-68-71=269) | 4타 | 호세 마리아 올라사발 |
| 40 | 1989년 4월 23일 | 켑사 마드리드 오픈 (3) | -16 (67-67-69-69=272) | 1타 | 하워드 클라크 |
| 41 | 1989년 5월 7일 | 엡손 그랑프리 오브 유럽 매치플레이 챔피언십 | 4 & 3 | 데니스 더니안 | |
| 42 | 1989년 9월 3일 | 에벨 유러피언 마스터스 스위스 오픈 (3) | -14 (65-68-66-67=266) | 2타 | 크레이그 패리 |
| 43 | 1990년 3월 11일 | 오픈 르노 드 발레아레스 (2) | -19 (66-65-70-68=269) | 플레이오프 | 마그누스 페르손 |
| 44 | 1991년 5월 27일 | 볼보 PGA 챔피언십 (2) | -17 (67-69-65-70=271) | 플레이오프 | 콜린 몽고메리 |
| 45 | 1991년 6월 2일 | 던힐 브리티시 마스터스 (2) | -13 (66-66-68-75=275) | 3타 | 이몬 다시, 데이비드 길포드, 토니 존스톤, 샘 토런스, 키스 워터스 |
| 46 | 1992년 2월 9일 | 두바이 데저트 클래식 | -16 (66-67-69-70=272) | 플레이오프 | 로넌 래퍼티 |
| 47 | 1992년 3월 8일 | 투레스파냐 오픈 드 발레아레스 (3) | -11 (70-70-69-68=277) | 플레이오프 | 예스퍼 파르네비크 |
| 48 | 1994년 5월 8일 | 벤슨 & 헤지스 인터내셔널 오픈 | -7 (69-70-72-70=281) | 3타 | 닉 팔도 |
| 49 | 1994년 10월 3일 | 메르세데스 독일 마스터스 | -18 (68-70-65-67=270) | 플레이오프 | 어니 엘스, 호세 마리아 올라사발 |
| 50 | 1995년 5월 21일 | 푸조 스페인 오픈 (3) | -14 (70-67-66-71=274) | 2타 | 이그나시오 가리도, 호세 리베로 |
- 바예스테로스와 랑거는 플레이오프 4홀 후 어둠으로 인해 경기가 중단되자 1986년 랑콤 트로피에서 공동 우승을 합의했다.
8.4. 일본 골프 투어 우승 (6승)
| No. | 날짜 | 대회 | 우승 스코어 | 타수 차이 | 준우승자 |
|---|---|---|---|---|---|
| 1 | 1977년 11월 20일 | 일본 오픈 골프 선수권 대회 | E (69-72-72-71=284) | 1타 | 무라카미 다카시 |
| 2 | 1977년 11월 27일 | 던롭 피닉스 토너먼트 | -6 (68-70-73-71=282) | 1타 | 아라이 키쿠오 |
| 3 | 1978년 11월 5일 | 일본 오픈 골프 선수권 대회 (2) | -7 (68-67-71-75=281) | 플레이오프 | 그레이엄 마시 |
| 4 | 1981년 11월 22일 | 던롭 피닉스 토너먼트 (2) | -9 (72-66-69-72=279) | 3타 | 나카지마 쓰네유키 |
| 5 | 1988년 11월 13일 | 비자 태평양 클럽 마스터스 | -7 (71-71-68-71=281) | 3타 | 후나토가와 야스히로 |
| 6 | 1991년 5월 5일 | 더 크라운즈 | -5 (67-75-64-69=275) | 1타 | 로저 맥케이 |
8.5. PGA 투어 오브 오스트레일리아 우승 (1승)
| No. | 날짜 | 대회 | 우승 스코어 | 타수 차이 | 준우승자 |
|---|---|---|---|---|---|
| 1 | 1981년 11월 8일 | 메인 닉리스 호주 PGA 챔피언십 | -6 (73-74-66-69=282) | 3타 | 빌 던크 |
8.6. 뉴질랜드 골프 서킷 우승 (1승)
| No. | 날짜 | 대회 | 우승 스코어 | 타수 차이 | 준우승자 |
|---|---|---|---|---|---|
| 1 | 1977년 12월 4일 | 오타고 자선 클래식 | -17 (69-67-66-67=271) | 3타 | 밥 바이먼 |
8.7. 사파리 서킷 우승 (1승)
| No. | 날짜 | 대회 | 우승 스코어 | 타수 차이 | 준우승자 |
|---|---|---|---|---|---|
| 1 | 1978년 3월 12일 | 케냐 오픈 | -10 (73-66-69-66=274) | 1타 | 버나드 갤러처 |
8.8. 기타 우승 (27승)
- 1974년 스페인 25세 이하 내셔널 챔피언십, 오픈 데 비스카야
- 1975년 스페인 25세 이하 내셔널 챔피언십
- 1976년 도널드 스와엘렌스 추모 대회, 카탈루냐 챔피언십, 테네리페 챔피언십, 랑콤 트로피, 골프 월드컵 (마누엘 피녜로와 함께)
- 1977년 브라운 인터내셔널 골프 (독일), 골프 월드컵 (안토니오 가리도와 함께)
- 1978년 스페인 25세 이하 내셔널 챔피언십
- 1979년 오픈 엘 프라트
- 1981년 산토리 월드 매치 플레이 챔피언십
- 1982년 산 레모 마스터스 (이탈리아), 산토리 월드 매치 플레이 챔피언십
- 1983년 밀리언 달러 챌린지 (남아프리카)
- 1984년 산토리 월드 매치 플레이 챔피언십, 밀리언 달러 챌린지 (남아프리카)
- 1985년 스페인 프로 폐쇄 챔피언십, 산토리 월드 매치 플레이 챔피언십, 캄페오나토 데 에스파냐-코도르니우
- 1987년 스페인 프로 폐쇄 챔피언십
- 1988년 APG 라리오스
- 1991년 도요타 월드 매치 플레이 챔피언십
- 1992년 코파 퀸토 센테나리오 포르 에키포스
- 1995년 투르누아 페리에 드 파리 (호세 마리아 올라사발과 함께)
8.9. 라이더컵 포인트 기록
| 1979 | 1981 | 1983 | 1985 | 1987 | 1989 | 1991 | 1993 | 1995 | 총점 |
|---|---|---|---|---|---|---|---|---|---|
| 1 | - | 3 | 3.5 | 4 | 3.5 | 4.5 | 2 | 1 | 22.5 |
8.10. 팀 출전
- 라이더컵 (유럽 대표): 1979년, 1983년, 1985년 (우승), 1987년 (우승), 1989년 (무승부, 컵 유지), 1991년, 1993년, 1995년 (우승), 1997년 (우승 - 비선수 주장)
- 월드컵 (스페인 대표): 1975년, 1976년 (우승), 1977년 (우승), 1991년
- 더블 다이아몬드 인터내셔널: 1975년 (세계 연합팀), 1976년 (유럽 대륙팀), 1977년 (유럽 대륙팀)
- 헤네시 코냑 컵 (유럽 대륙 대표): 1976년, 1978년, 1980년
- 던힐 컵 (스페인 대표): 1985년, 1986년, 1988년
- 세베 트로피 (유럽 대륙 대표): 2000년 (우승 - 선수 겸 주장), 2002년 (선수 겸 주장), 2003년 (선수 겸 주장), 2005년 (비선수 주장), 2007년 (비선수 주장)
- 로열 트로피 (유럽 대표): 2006년 (우승 - 비선수 주장), 2007년 (우승 - 비선수 주장)
9. 관련 항목
- 골프 선수 목록
- 골프 메이저 대회 우승자 목록
- 유러피언 투어 최다승 골프 선수 목록
- 남자 골프 세계 랭킹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