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기 생애와 견습생 시절
사토 아마히코는 일본 후쿠오카현 후쿠오카시에서 태어나 자랐다. 그는 쇼기 견습생으로 입회하기 전부터 두각을 나타냈으며, 견습생 시절에는 프로 자격을 포기하고 리그에 잔류하는 등 독특한 행보를 보였다.
1.1. 출생, 유년기 및 교육
q=후쿠오카시|position=right
사토는 1988년 1월 16일 후쿠오카에서 태어났다. 그에게는 형과 누나가 있다. 초등학교 5학년이던 1998년, 그는 초등학생 쇼기 명인전 서일본 대회에서 이토타니 테츠로에게 패배하여 베스트 16에 들었다. 같은 해 9월, 6급으로 일본 쇼기 연맹 산하의 간사이 장려회에 입회하며 쇼기 기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는 후쿠오카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한 후, 고등학교 진학을 계기로 지바현으로 이주하여 도쿄학관 우라야스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의 스승은 같은 후쿠오카 출신인 쇼기 기사 나카타 이사오 8단이며, 나카타 8단은 사토에게 온라인으로 쇼기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q=지바현|position=left
1.2. 견습생 시절의 특별한 사건
사토는 2001년에 초단으로 승단했으며, 2002년부터 프로 입단 직전 단계인 3단 리그에 참가했다. 3단 리그 시절, 그는 두 가지 주요 사건으로 주목을 받았다.
첫째, 2004년 그는 통산 두 번째로 '차점' (3위)을 기록하여 프리 클래스 기사로서 프로에 입단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으나, 이 권리를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10승 6패 이후 2연승으로 갑작스럽게 얻은 권리였기에, 당시 16세였던 사토는 "이대로 프로가 되어도 괜찮을까"라는 고민에 빠졌다. 스승 나카타 8단은 "이 나이에 프리 클래스로 가서 승급을 목표로 하는 것보다, 3단 리그에서 동년배 라이벌들과 싸우는 것이 낫다"고 조언하며 장려회에 남을 것을 권유했다.
둘째, 2005년 7월 18일, 61년 만에 처음으로 시행된 세가와 쇼지의 프로 편입 시험 제1국에서 심판(시험관)을 맡았다. 일본 쇼기 연맹은 세가와가 과거 장려회에서 나이 제한으로 퇴회했음에도 다시 프로에 도전하는 상황과 대비되는 사토의 행보(프리 클래스 권리 포기)를 고려하여, "세가와와 완전히 상반되는 승부사적 관점과 인생관을 가진 자로서, 장려회원들의 마음에 대한 배려 측면에서 적합하다"고 판단하여 사토를 시험관으로 선정했다. 이 대국은 공개 대국으로 진행되었으며, 전형은 요코후도리 8오비차였다. 결과는 91수 만에 선수를 잡은 사토가 승리했다.
2006년 상반기 리그에서 14승 4패를 기록하여 토베 마코토에 이어 2위를 차지했으며, 이로써 4단으로 승단하여 그해 가을 프로 기사로 정식 데뷔했다.
2. 프로 쇼기 경력
사토 아마히코는 2006년 프로 데뷔 이후 꾸준히 실력을 향상시키며 일본 쇼기계의 정상급 기사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다수의 타이틀전에 도전하고 획득하며 명인 타이틀을 세 차례 방어하는 등 뛰어난 성과를 기록했다.
2.1. 데뷔와 초기 성과
사토의 데뷔전은 2006년 12월 11일 여류 기사 치바 료코와의 대국이었으며, 이 경기에서 승리했다. 이후 2007년 3월 5일까지 데뷔 9연승을 기록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세가와 쇼지와의 재대결에서 승리했으며, 가토 히후미, 츠카다 야스아키, 나카무라 오사무 등 세 명의 전 타이틀 보유자들을 꺾었다. 2007년 3월 16일, 제20기 용왕전 6조 3회전에서 동년배 라이벌인 히로세 아키히토에게 프로 첫 패배를 기록하며 연승이 중단되었지만, 9연승 중 히로세와의 첫 대결에서 승리했기에 히로세가 설욕한 셈이 되었다. 같은 용왕전 6조 패자 부활전에서는 다시 세가와와 대결했으나 이번에는 패배했다.
2008년 9월 25일, 제39회 신인왕전 결승 3번 승부에서 장려회 3단인 호시노 요시오에게 연승하여 첫 기전 우승을 달성했다. 이는 호시노가 사상 최초로 장려회 3단으로서 우승하는 것을 저지한 것이었다. 같은 해, 제21기 용왕전 6조 3위 결정전에서 동년배 라이벌 타카사키 잇세이에게 패배했지만, 5조 결원 보충을 위한 추가 승급 결정전(5위 결정전, 대 코바야시 히로시 전)에서 승리하여 용왕전 참가 2년 만에 5조로 승급했다. 이 해 그는 쇼기 대상의 신인상을 수상했다.
2009년 4월 30일, 제22기 용왕전 5조 준결승에서 야스요지 타카노리에게 승리하며 4조로 승급함과 동시에 5단으로 승단했다(연속 2회 승급에 의한). 이 대국은 프로 입단 후 통산 100번째 대국이었다(68승 32패). 하지만 5조 결승에서는 신예 기사인 토요시마 마사유키에게 패배하며 본선 토너먼트 진출에는 실패했다.
2010년에는 제81기 기성전에서 1차 예선과 2차 예선에서 6연승을 거두며 결승 토너먼트에 진출했다. 1회전에서 타니가와 코지에게 승리했지만, 2회전에서 고다 마사타카에게 패했다. 제23기 용왕전 4조에서는 10월 28일 3위 결정전에서 히우라 이치로에게 승리하여 3기 연속 승급으로 3조로 승급했다. 제69기 순위전 C급 2조에서는 10전 전승의 성적을 거두며 C급 1조로 승급했다. 또한 9월부터 이듬해 2011년 2월까지 공식전에서 17연승을 달성했으며, 이 해 통산 성적이 35승 9패(승률 0.795)를 기록하여 쇼기 대상의 연승상과 승률 1위상을 수상했다.
2011년 4월 21일, 제24기 용왕전 3조 준결승에서 토미오카 에이사쿠에게 승리하며 4기 연속 승급으로 2조로 승급함과 동시에 6단으로 승단했다(2조 승급 및 연속 2회 승급에 의한). 그로부터 일주일 후인 2011년 4월 28일, 제82기 기성전 본선 결승(도전자 결정전)에서 후카우라 코이치와 대결했지만 패배하여 첫 타이틀 도전에는 실패했다. 그러나 본선 결승에 진출하는 과정에서 2차 예선에서 모리우치 토시유키와 키무라 카즈키 등을 꺾었으며, 본선에서는 와타나베 아키라와 고다 마사타카 등을 꺾는 인상적인 활약을 보였다. 제24기 용왕전 3조에서는 결승에서도 승리하여 첫 조별 우승과 본선 진출을 달성했다(본선 첫 대국에서 2조 2위인 야마자키 타카유키에게 패배). 10월에는 제42회 신인왕전 결승 3번 승부에서 토요시마 마사유키를 꺾고 두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2.2. A급 승급과 첫 타이틀 도전
사토는 2012년 2월 7일, 제70기 순위전 C급 1조에서 8승 1패를 기록하며 최종국을 남겨두고 B급 2조로의 승급을 확정 지었다(최종 성적은 8승 2패, 1위).
2014년 1월 23일, 제72기 순위전 B급 2조에서 9승 0패를 기록하여 최종국을 남겨두고 B급 1조로의 승급을 확정 지었다(최종 성적은 10전 전승).
2015년 1월 8일, 제73기 순위전 B급 1조에서 9승 2패를 기록하며 남은 두 대국을 포함하여 A급으로의 승급과 8단 승단을 확정 지었다. 8승 2패로 잠정 1위를 달리던 그는 7승 2패로 잠정 2위였던 야시키 노부유키와의 직접 대결에서 승리하며 승급을 결정지었다(최종 성적은 10승 2패, 1위). 같은 해 7월 21일, 제63기 왕좌전 도전자 결정전에서 토요시마 마사유키 7단에게 승리하며 하부 요시하루 왕좌(명인·오이·기성)에 대한 첫 타이틀 도전이 결정되었다. 첫 타이틀 도전이었지만, 2승 3패로 아쉽게 패배했다. 2015년 12월, 제41기 기왕전 패자 부활전에서 승리하여 도전자 결정 2번 승부에 진출했다. 사토 야스미츠 9단에게 2연승하며 와타나베 아키라 기왕(용왕)에 대한 도전을 결정했지만, 1승 3패로 패배했다.
2016년 2월 27일, 제74기 순위전 A급에서 나메카타 히사시 8단에게 승리하며 8승 1패를 기록, A급 첫 해 만에 명인 타이틀 도전권을 획득했다. 같은 해 4월 1일, 제43회 쇼기 대상 수상자가 발표되었는데, 감투상, 최다 대국상(59국), 최다 승리상(41승), 연승상(15연승)을 수상했다. 또한 같은 해 3월 21일 열린 기왕전 제4국(대 와타나베 아키라 기왕 전)은 명국상에 선정되었다.
2.3. 명인 재위와 다른 주요 승리
q=닛코 동조궁|position=right
2016년 5월 31일, 명인전 제5국에서 하부 요시하루 명인에게 승리하며 4승 1패로 역대 4번째로 어린 나이에 자신의 첫 타이틀인 명인위를 획득했다. 또한 명인 탈환으로 같은 날짜로 9단으로 승단했다. 명인위 탈환에 의한 9단 승단은 타니가와 코지, 사토 야스미츠, 마루야마 타다히사, 모리우치 토시유키에 이어 14년 만에 5번째 기록이었다. 첫 대국 패배 후 4연승으로 명인위를 탈환한 것은 1952년 명인전 7번 승부(오야마 야스하루 대 키무라 요시) 이후 64년 만의 일이었다. 또한 1997년도 타니가와 코지 이후 약 20년 만에 하부 세대 이외의 명인이 탄생한 것이기도 하다. 이 해 그는 최우수 기사상을 수상했다.
9단 타이틀을 보유한 상태로 출전한 제2기 예왕전에서 결승에 진출했으며, 치다 쇼타 5단과의 결승 3번 승부에서 2연승으로 우승했다. 이 우승으로 마지막으로 개최되는 제2기 전왕전에 타이틀 보유자로서 처음으로 출전하게 되었다. 2번 승부의 제1국은 2017년 4월 1일 닛코 동조궁에서 진행되었으며, 71수 만에 쇼기 프로그램 Ponanza포난자일본어에게 패배했다. 제2국은 같은 해 5월 20일 히메지성에서 진행되었으나 94수 만에 포난자에게 패배하며, 마지막 전왕전은 기사 대표의 2연패로 막을 내렸다.
q=히메지성|position=left
2017년도에 접어들어, 이나바 아키라 8단을 도전자로 맞이한 제75기 명인전 7번 승부에서는 6월 6일 제6국을 112수 만에 사토가 승리하며 4승 2패로 명인위를 첫 방어했다. 특히 제4국부터 3연승을 거두며 타이틀을 지켜냈다.
2018년도 제76기 명인전에서는 하부 요시하루 용왕(기성)을 도전자로 맞이했으며, 6월 20일 제6국을 145수 만에 사토가 승리하며 4승 2패로 명인위를 2번째 방어했다. 이 제76기 명인전 제1국은 명국상에 선정되었다. 사토에게는 두 번째 명국상이지만, 두 번 모두 사토가 패배한 대국이었다. 또한, 제26기 은하전에서도 첫 우승을 차지했다. 현역 명인이 은하전에서 우승한 것은 사토가 처음이었다.
2019년 4월 2일, 용왕전 2조 랭킹전에서 니시카와 카즈히로 6단을 꺾고 같은 조 결승 진출 및 도전자 결정 토너먼트 진출을 확정 지었다. 이로써 다음 기 용왕전 1조 복귀가 결정되었다.
2.4. 명인 이후 경력과 논란
2019년도 제77기 명인전에서는 토요시마 마사유키 2관(오이·기성)의 도전을 받아, 0승 4패로 스트레이트 패배하며 명인 타이틀을 상실했다.
2022년 10월 28일, 제81기 순위전 A급 대 나가세 타쿠야 왕좌 전에서, 장시간 마스크 미착용으로 인해 반칙패를 당했다. 이는 일본 쇼기 연맹이 2022년 1월 26일에 제정한 임시 대국 규정에 따른 것으로, 착용 위반으로 인한 반칙패 적용 사례는 사토가 처음이었다. 사토는 일본 쇼기 연맹에 불복 신청서를 제출했으나, 2023년 1월 13일에 기각되었다. 사토는 마스크를 벗은 것이 의도적이지 않았으며 경고 없이 실격 처리된 것이 과도하다고 주장했지만, 연맹은 회장 사토 야스미츠와 전무이사 스즈키 다이스케의 조치가 적절했다고 판단했다.
이후 2023년의 기왕전에서는 준결승에서 후지이 소타 용왕을 꺾고 승자조 결승에서도 하부 요시하루 9단을 꺾으며 도전자 결정전에 진출했다. 하지만 패자조에서 올라온 후지이 소타 용왕에게 2연패를 당하며 도전권을 놓쳤다. 2024년 휴릭배 제95기 기성전에서는 준결승에서 전기 도전자 사사키 다이치 7단을 꺾고 도전자 결정전에 진출했지만, 야마자키 타카유키 8단에게 패배하여 도전에는 실패했다.
3. 기풍
사토 아마히코의 쇼기 기풍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해왔으며, 독특한 전략과 전술적 강점을 보여왔다. 그는 특히 종반전에서 끈기 있는 수비를 바탕으로 한 역전승을 여러 차례 기록했다.
데뷔 초부터 이비샤당(정석비차를 선호하는 기사)이었지만, 2023년도부터는 후리비샤당으로 전향했다. 2014년경부터는 선수는 카쿠가와리, 후수는 요코후도리를 주력 전법으로 삼았으며, 특히 후수 요코후도리에서는 매우 높은 승률을 자랑했다. 종반전에서 끈기 있는 수비수를 특기로 삼아, 정상급 기사들을 상대로 여러 차례 역전승을 거두었다. 명인위를 획득한 후에는 야구라나 아이가카리, 나아가 역전승 등 다양한 전법을 적극적으로 구사하며 전술의 폭을 넓혔다. 제75기 명인전 7번 승부 제2국(2017년 4월 20~21일)에서는 마지막까지 거옥으로 싸워 이나바 아키라에게 72수 만에 승리했다. 2020년 왕장전 도전자 결정 리그에서 후지이 소타를 상대로 나카비샤를 채택한 이후에는 공식전에서 후리비샤도 자주 사용하게 되었다.
그 후 한동안 이비샤를 주체로 가끔 후리비샤를 채택했지만, 2023년경부터는 후리비샤를 중심으로 두게 되었다. 동시에, 상대가 후리비샤당인 경우에는 아이후리비샤가 아닌 대항형을 지향하며, 수비가 강한 끈기 있는 기풍과 더불어 대사승인 오야마 야스하루를 방불케 하는 기풍을 보이고 있다.
대국 중에는 상대가 자리를 비웠을 때 몸을 앞이나 옆으로 기울이거나, 팔걸이에 몸을 기대는 등 독특한 자세를 취하는 경우가 있다.
4. 개인 생활과 관심사
쇼기 기사로서의 삶 외에도, 사토 아마히코는 다양한 개인적인 관심사와 독특한 취미를 가지고 있다. 그의 이러한 면모는 대중적 이미지 형성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4.1. 성격과 관계
사토의 이름 '아마히코'는 "하늘을 나는 메아리가 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는 형과 누나가 있는 집안에서 자랐다.
사토는 이토타니 테츠로, 히로세 아키히토, 타카사키 잇세이, 토베 마코토 등 1987년 전후에 태어나 1998년 장려회에 입회한 동세대 기사들과 함께 '헤이세이의 차일드 브랜드'로 불리며 전반적으로 높은 승률을 기록했다.
사적으로는 와타나베 아키라와 친분이 깊다. 사토의 스승 나카타가 와타나베와 온라인 쇼기를 두던 중 "후쿠오카에 제자가 있는데, 주변에 쇼기를 둘 사람이 적으니 가르쳐 달라"고 부탁한 것이 계기가 되어, 사토가 아직 후쿠오카에 거주하던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이미 프로 기사였던 와타나베(당시 고등학교 2학년)와 쇼기 클럽 24에서의 온라인 대국과 감상전(채팅)을 통해 친분을 쌓았다. 2015년 봄에는 와타나베, 히로세와 함께 유럽 여행을 갈 예정이었으나, 기성전 도전자 결정전에 진출하게 되어 일정이 겹치는 바람에 여행을 가지 못했다.
기사들 사이에서 그의 별명은 '귀족'(貴族)이다. 이 별명은 사토 신이치가 붙여주었으며, 본인 또한 "싫지 않고, 객관적으로 봤을 때 즐겁다"고 말한다. NHK 쇼기 강좌 텍스트에 연재했던 에세이 제목도 별명에 착안하여 '『귀족』 아마히코가 가다'였다.
2017년 명인전에서는 6국 모두 둘째 날 점심에 카레라이스를 주문했다. 이는 카레를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국 전날에 이틀치 식사를 미리 주문해야 하는데, 이틀 뒤에 무엇을 먹고 싶을지 상상하기 어려워 안정적으로 카레를 선택한다는 이유도 있다. '둘째 날 점심 카레' 주문은 2018년과 2019년 명인전에서도 이어졌다.
그는 봉제인형을 좋아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현재 사토의 트위터 아이콘 이미지에는 오래전부터 소중히 여기는 담비 봉제인형이 사용되고 있다. 본인은 어릴 때 이 인형을 햄스터로 착각했었다고 하며, 그에 착안한 이름을 붙였지만 이름을 공개하는 것은 "부끄럽다"고 말한다. 이전 타이틀전에서는 검은색 바탕에 물범 무늬가 들어간 하오리(일본식 겉옷)를 입고 나타난 적이 있다. 본인 말로는 포목점에서 기모노를 만들 원단을 고르던 중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범 인형과 무늬의 물범이 매우 닮아서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다만 가게 사람은 속으로 '정말 이걸로 할 건가?'라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프로 데뷔 전부터 친분이 깊은 와타나베 아키라 또한 봉제인형을 좋아한다. 사토는 와타나베의 봉제인형을 보고 "크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상형의 여성으로는 18세기 프랑스의 패션 리더였던 마담 드 퐁파두르를 꼽았다.
4.2. 문화적 관심사
사토는 중학교 시절 드보르자크 작곡의 『교향곡 제9번 《신세계로부터》』와의 만남에 충격을 받아 클래식 음악에 심취했다. 특히 모차르트나 베토벤과 같은 고전주의 음악을 선호한다. 2021년 인터뷰에서 그는 음악 이론과 회화 교실에 다니고 있다고 밝혔다.
애니메이션으로는 우주전함 야마토 시리즈의 팬이며, 특히 극장판 『우주전함 야마토 완결편』을 좋아하는 작품으로 꼽았다.
4.3. 패션과 대중적 이미지
사토는 패션에 대한 남다른 고집으로도 유명하며, 그와 관련된 여러 일화가 있다. 그는 원래 고등학생 시절 "내가 멋있지 않다"고 자각하기 시작한 것이 패션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였다고 한다.
특히 21세 때 처음 접한 앤 드뮐미스터 브랜드를 좋아한다. 젊은 시절에는 적은 수입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고가로 알려진 이 브랜드의 옷을 계속 구매하다가 저금이 바닥나 전기마저 끊길 뻔한 적도 있다고 한다. 2015년 현재, 이 브랜드의 옷을 100벌 이상 소유하고 있어 "수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한다.
이외에도 평소에는 생 로랑 파리 브랜드를 선호하며, "꼼꼼한 성격" 때문에 정장도 패턴 오더 등을 이용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 전통 의상인 와후쿠는 첫 타이틀 도전에 나서기 전까지 한 번도 입어본 적이 없었지만, 2017년 현재는 약 10벌을 소유하고 있다. 2017년 명인전을 앞두고는 일부러 원단 도매상까지 방문하여 5시간 정도를 들여 직접 옷감을 골랐다고 한다.
2016년에는 제34회 마이니치 패션 대상 화제상을 수상했다. 2017년 11월, GQ JAPAN 주최 'GQ MEN OF THE YEAR 2017'에서 '붐 오브 더 이어'(Boom of the Year) 상을 수상했다.
『가정화보』 2018년 1월호에 실린 쇼기 특집 기사에서는 명인 재위 중이던 사토의 자택에서 인터뷰가 진행되었고, 그가 수집한 가구와 장식품에 둘러싸인 사토의 사진이 게재되었다. 사토의 자택 모습이 공개된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5. 수상 및 기록
사토 아마히코는 그의 쇼기 경력 전반에 걸쳐 다양한 영예와 타이틀을 획득했으며, 꾸준히 높은 경기 기록을 유지했다.
5.1. 승단 이력 및 재적 클래스
사토 아마히코의 승단 이력은 다음과 같다.
- 1998년 9월: 6급, 장려회 입회
- 2001년 7월: 초단
- 2002년: 3단
- 2006년 10월 1일: 4단, 프로 입단
- 2009년 4월 30일: 5단 (용왕 랭킹전 연속 승급)
- 2011년 4월 21일: 6단 (용왕전 2조 승급 및 용왕 랭킹전 연속 승급)
- 2012년 4월 19일: 7단 (용왕전 1조 승급)
- 2015년 1월 8일: 8단 (순위전 A급 승급)
- 2016년 5월 31일: 9단 (명인위 획득)
사토의 순위전 및 용왕전 재적 클래스는 다음과 같다.
연도 | 순위전 클래스 | 용왕전 클래스 |
---|---|---|
2006 | C급 2조 | 6조 |
2007 | C급 2조 | 6조 |
2008 | C급 2조 | 5조 |
2009 | C급 2조 | 4조 |
2010 | C급 2조 | 3조 |
2011 | C급 1조 | 2조 |
2012 | B급 2조 | 1조 |
2013 | B급 2조 | 1조 |
2014 | B급 1조 | 1조 |
2015 | A급 | 1조 |
2016 | 명인 | 1조 |
2017 | 명인 | 2조 |
2018 | 명인 | 2조 |
2019 | A급 | 1조 |
2020 | A급 | 1조 |
2021 | A급 | 1조 |
2022 | A급 | 1조 |
2023 | A급 | 2조 |
2024 | A급 | 2조 |
5.2. 타이틀 및 우승 경력
사토는 메이저 타이틀전에서 총 6회 등장했으며, 이 중 명인 타이틀을 3회 획득했다.
타이틀 | 획득 연도 | 등장 횟수 | 획득 기수 | 연패 |
---|---|---|---|---|
명인 | 2016년-2018년 | 4회 | 3기 | 3연패 |
왕좌 | - | 1회 | - | - |
기왕 | - | 1회 | - | - |
총 타이틀 획득: 3기 / 총 타이틀전 등장 횟수: 6회 (2019년도 명인전 종료 기준)
타이틀 외에, 사토는 경력 동안 다음 4개의 쇼기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 신인왕전 2회 (2008년, 2011년)
- 예왕전 1회 (2016년)
- 은하전 1회 (2018년)
5.3. 쇼기 대상 및 기타 영예
사토는 경력 전반에 걸쳐 일본 쇼기 연맹의 연간 쇼기 대상을 여러 차례 수상했다.
- 2008년: 신인상
- 2010년: 승률 1위상, 연승상 (17연승)
- 2015년: 감투상, 최다 승리상 (41승), 최다 대국상 (59국), 연승상 (15연승), 명국상 (제41기 기왕전 제4국 대 와타나베 아키라 기왕 전)
- 2016년: 최우수 기사상, 감투상
- 2017년: 명국상 (제76기 명인전 제1국 대 하부 요시하루 용왕 전)
- 2019년: 명국상
쇼기 관련 수상 외에, 사토는 2017년 GQ 재팬의 '맨 오브 더 이어' 중 한 명으로 선정되어 '붐' 상을 수상했다.
5.4. 상금 및 경기 기록
사토는 일본 쇼기 연맹의 연말 상금 및 대국료 랭킹에서 총 여섯 차례 '톱 10'에 진입했다.
- 2015년: 6위 (2166.00 만 JPY)
- 2016년: 3위 (5722.00 만 JPY)
- 2017년: 2위 (7255.00 만 JPY)
- 2018년: 2위 (5999.00 만 JPY)
- 2019년: 6위 (3687.00 만 JPY)
- 2022년: 8위 (1819.00 만 JPY)
그는 용왕전에서 5기 연속 승급(21기 6조 → 26기 1조)을 달성하여 역대 4번째 기록을 세웠다.
사토 아마히코의 연도별 공식 기전 성적은 다음과 같다.
연도 | 대국 수 | 승수 | 패수 | 승률 |
---|---|---|---|---|
2006 | 12 | 11 | 1 | 0.9167 |
2007 | 38 | 22 | 16 | 0.5789 |
2008 | 47 | 33 | 14 | 0.7021 |
2009 | 40 | 25 | 15 | 0.6250 |
2010 | 44 | 35 | 9 | 0.7955 |
2006-2010 (소계) | 181 | 126 | 55 | |
2011 | 36 | 25 | 11 | 0.6944 |
2012 | 41 | 27 | 14 | 0.6585 |
2013 | 30 | 23 | 17 | 0.7667 |
2014 | 40 | 29 | 11 | 0.7250 |
2015 | 59 | 41 | 18 | 0.6949 |
2016 | 46 | 32 | 14 | 0.6957 |
2017 | 35 | 16 | 19 | 0.4571 |
2018 | 42 | 27 | 15 | 0.6429 |
2019 | 38 | 17 | 21 | 0.4474 |
2020 | 42 | 21 | 21 | 0.5000 |
2011-2020 (소계) | 409 | 288 | 121 | |
2021 | 39 | 23 | 16 | 0.5897 |
2022 | 37 | 18 | 19 | 0.4865 |
2023 | 37 | 21 | 16 | 0.5676 |
2021-2023 (소계) | 113 | 62 | 51 | |
통산 | 703 | 446 | 257 | 0.6344 |
2023년도까지의 기록이다.
6. 저서 및 미디어 출연
사토 아마히코는 쇼기 관련 저술 활동과 다양한 미디어 출연을 통해 대중과의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6.1. 저서
사토가 저술하거나 감수한 주요 서적은 다음과 같다.
- 居飛車穴熊必勝ガイド이비샤 아나구마 필승 가이드일본어 (2008년 4월, 마이내비) - 쇼기 전략 가이드.
- 佐藤天彦に学ぶ勝利へのプロセス ~順位戦全勝記~사토 아마히코에게 배우는 승리로의 과정 ~순위전 전승기~일본어 (2014년 12월, 마이내비) - 자전적 저술이자 순위전 전승 기록.
- 理想を現実にする力이상을 현실로 만드는 힘일본어 (2017년 4월, 아사히 신문 출판) - 자전적 에세이.
- 天彦流 中盤戦術-「局面の推移」と「形勢」で読みとく아마히코류 중반 전술 -「국면의 추이」와 「형세」로 읽어내기일본어 (2017년 10월, NHK 출판) - 쇼기 중반 전술서.
그가 감수한 책으로는 다음이 있다.
- 終盤 寄せの妙手 基本編종반 요세의 묘수 기본편일본어 (2012년 11월, 마이내비) - 쇼기 종반 기술 가이드.
6.2. 미디어 출연
사토는 다양한 TV 및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 TV**:
- 쇼기 강좌 『天彦流 中盤の読みとき方아마히코류 중반 읽는 법일본어』 (NHK E테레, 2016년 하반기)
- 라디오**:
- 王手!最後のお願い오테! 마지막 부탁일본어 (NHK 라디오 제1, 2020년 2월 11일) - 제3회, 제4회에 출연.
- Welcome to SHOGI World 駒テラスへようこそWelcome to SHogi World 코마 테라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일본어 (뮤직버드, AuDee, 2024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