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브랜든 더웨인 로이(Brandon Dawayne Roy, 1984년 7월 23일 출생)는 미국의 농구 코치이자 전 농구 선수이다. 그는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와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에서 NBA 선수로 여섯 시즌을 뛰었다. 워싱턴 대학교에서 4년간 대학 농구를 마친 후, 2006년 NBA 드래프트에서 전체 6순위로 지명되었다. 그의 별명은 "B-로이"였지만, 트레일 블레이저스 아나운서 브라이언 휠러는 그를 "더 내추럴(the Natural영어)"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로이는 시애틀에서 태어나 트레일 블레이저스에서 즉각적인 영향력을 보여주며 주목받았다. 그는 NBA 신인왕을 거의 만장일치로 수상했으며, 두 번의 올-NBA 팀에 선정되었고, 2008년, 2009년, 2010년 세 차례 NBA 올스타전에 예비 선수로 선정되었다. 2011년 12월 10일, 그는 퇴행성 무릎 질환으로 인해 농구 선수로서의 은퇴를 발표했으나, 2012년에 복귀하여 팀버울브스에서 5경기를 뛰었다. 선수 생활을 마친 후, 그는 네이선 헤일 고등학교와 가필드 고등학교에서 농구 코치로 활동하며 2017년 네이스미스 전국 고등학교 올해의 코치상을 수상하는 등 지도자로서도 성공적인 경력을 이어갔다.
2. 초기 생애 및 학창 시절
브랜든 로이는 워싱턴주시애틀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농구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 그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카데미 초등학교에 다녔으며, 미국 최대 스포츠 단체 중 하나인 AAU에서 농구를 시작하면서 농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2.1. 고등학교 시절
로이는 시애틀의 가필드 고등학교에 다녔으며, 주 내 최고의 고등학교 농구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직후인 2002년 NBA 드래프트에 조기 참가 후보로 고려되었으나, 심사숙고 끝에 이름을 철회하고 대학 진학을 선택했다. 스카우트닷컴은 로이를 4성급 유망주로 평가하며 2002년 전국 슈팅 가드 중 6위, 전체 선수 중 36위로 선정했다.
2.2. 대학 시절
로이는 대학 입학 전부터 여러 어려움에 직면했다. 그의 부모님과 형은 대학에 다니지 않았고, 학습 장애로 인해 SAT 시험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독해 속도가 느려 시험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는 NCAA 자격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튜터와 함께 4번의 시험을 치렀다. 4년제 대학에 진학할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했던 로이는 시애틀 부두에서 시간당 11 USD를 받으며 선박 컨테이너를 청소하는 일을 하기도 했다.
2002년, 로이는 워싱턴 대학교(UW)에서 농구를 시작했다. 그는 로렌조 로마르 감독 아래에서 4년 동안 선수 생활을 이어갔으며, 미국 민족학을 전공했다. 3학년을 마친 후, 로이는 2005년 NBA 드래프트 참가를 고려했지만, 팀 동료인 네이트 로빈슨과 고등학교 선배이자 워싱턴 대학교 입학 예정자였던 마텔 웹스터가 드래프트에 참가할 의사를 밝히자 마음을 바꿨다. 그는 대학 팀에서 순위를 높이고 드래프트 지명 순위를 개선할 기회를 보았다.
2005년 12월 29일, 로이는 애리조나 주립 선 데블스 농구팀을 상대로 대학 경력 최고인 35득점을 기록하며 워싱턴 대학교의 승리를 이끌었고, 워싱턴 대학교 역사상 31번째로 통산 1,000득점을 달성한 선수가 되었다. 다음 경기에서는 애리조나 와일드캐츠 농구팀과의 더블 오버타임 패배에도 불구하고 다시 35득점을 기록하며 자신의 경력 최고 기록과 동률을 이루었다.
4학년 때 로이는 경기당 평균 20.2득점을 기록하며 워싱턴 대학교를 26승 7패 시즌으로 이끌었고, 2년 연속 스위트 식스틴에 진출했다. 시즌이 끝날 무렵 로이는 Pac-10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고 올-아메리칸 영예를 안았으며, 존 R. 우든 상, 네이스미스 대학 올해의 선수상, 오스카 로버트슨 트로피, 아돌프 럽 트로피의 최종 후보에도 올랐다.
2006년 1월 22일,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 트로잔스 농구팀과의 워싱턴 대학교 홈 경기 전에 그의 등번호 3번은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다.
3. 프로 선수 경력
브랜든 로이는 NBA에 입성하여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와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에서 활약하며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3.1. NBA 드래프트 및 트레이드
로이는 2006년 NBA 드래프트에서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에 의해 전체 6순위로 지명되었다. 그러나 그는 지명 직후 랜디 포이의 드래프트 권리와 맞교환되어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로 트레이드되었다. 이 트레이드는 로이의 NBA 경력 시작점이 되었다. 그해 NBA 서머리그에서 로이는 평균 19득점, 65%의 야투 성공률을 기록하며 올-루키 세컨드 팀에 선정되었다.
3.2.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
로이는 2006년부터 2011년까지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에서 활약하며 팀의 핵심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3.2.1. 데뷔 및 신인왕 (2006-07 시즌)

로이의 NBA 데뷔는 그의 고향 팀인 시애틀 슈퍼소닉스와의 경기에서 이루어졌다. 그는 이 경기에서 20득점을 기록했으며, 다음 경기에서도 19득점을 올렸다. 시즌 초 왼쪽 발뒤꿈치 충돌 증후군으로 인해 20경기에 결장했지만, 복귀 직후인 2006년 12월 22일 토론토 랩터스와의 경기에서 첫 더블더블을 기록했다. 2007년 1월 말까지 로이는 경기당 평균 14.5득점으로 모든 NBA 신인 선수 중 득점 1위를 달렸다. 그는 1994년 NBA 올스타 위켄드의 루키 챌린지가 시작된 이래 네 번째로 루키 선수단에 선정된 트레일 블레이저스 선수가 되었다. 또한, 2001년 라시드 월러스가 올스타 예비 선수로 선정된 이후 처음으로 올스타 위켄드에 참가한 트레일 블레이저스 선수였다.
그는 2007년 1월, 2월, 3월 서부 컨퍼런스 이달의 신인으로 선정되었다. 2006-07 NBA 시즌 동안 경기당 평균 16.8득점, 4.4리바운드, 4.0어시스트를 기록한 로이는 NBA 올해의 신인상을 수상했다. 그는 128표 중 127표의 1위 표를 받았다. 부상으로 인해 그 시즌에 57경기만 출전했는데, 이는 올해의 신인상을 수상한 선수 중 두 번째로 적은 경기 수였다. 그는 제프 페트리와 시드니 윅스에 이어 이 상을 수상한 세 번째 트레일 블레이저스 선수가 되었다. 로이의 첫 시즌이 끝날 무렵, 당시 팀의 주장이었던 잭 랜돌프가 뉴욕 닉스로 트레이드되면서 로이가 팀의 리더십 역할을 맡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3.2.2. 올스타 선정 및 올-NBA 팀 (2007-09 시즌)

2007-08 NBA 시즌의 첫 48경기에서 로이는 선발 출전하여 평균 19.1득점, 5.8어시스트, 4.6리바운드를 기록했다. 그는 또한 블레이저스를 12월 한 달 동안 13연승으로 이끌었다. 로이는 2008년 NBA 올스타전의 예비 선수로 선정되었다. 그는 이 경기에서 18득점을 기록했으며 9리바운드도 잡았다. 올스타 위켄드 직전 마지막 경기에서 오른쪽 발목 부상을 입었다. 위켄드 동안의 플레이로 찬사를 받았지만, 이 부상은 다음 몇 주 동안 그의 플레이에 영향을 미쳤다. 그는 루키 챌린지에 두 번째로 참가했는데, 이번에는 "2년차 선수" 자격이었고, 팀 동료 라마커스 올드리지도 2년차 선수단에 포함되었다. 로이는 올스타전에서 서부 컨퍼런스 선수 중 가장 많은 약 29분을 뛰었으며, 18득점으로 크리스 폴과 아마레 스타더마이어와 함께 최다 득점을 기록했다.
2008년 프리시즌 동안 로이는 워싱턴주 밴쿠버에서 20분간의 의학적 시술을 받았다. 이 시술에서 팀 주치의 돈 로버츠는 로이의 왼쪽 무릎에 염증을 유발하는 연골 조각을 제거했다. 로이는 재활로 인해 몇 주 동안 경기에 나서지 못했지만,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와의 시즌 개막전에는 준비를 마쳤다. 11월 6일 휴스턴 로케츠와의 경기에서는 연장전에서 0.8초를 남기고 30피트 거리의 역전 결승 슛을 성공시켰다.
12월 18일, 로이는 피닉스 선즈를 상대로 경력 최고인 52득점을 기록했다. 그는 야투 27개 중 14개, 자유투 21개 중 19개, 3점슛 7개 중 5개를 성공시켰다. 또한 6어시스트, 5리바운드, 1블록을 기록했으며, 턴오버는 하나도 없었다. 1월 24일, 로이는 워싱턴 위저즈를 상대로 10개의 스틸을 기록하며 블레이저스 프랜차이즈 기록과 동률을 이루었다. 2월 8일, 블레이저스가 뉴욕 닉스에 1점 뒤진 상황에서 로이는 버저비터 레이업 슛을 성공시켜 109-108로 승리했다. 2009년 2월 16일 기준으로 로이는 35초 이내에 경기를 동점 또는 승리로 이끈 슛을 24번 성공시켰다. 로이는 2009년 NBA 올스타전에 다시 예비 선수로 선정되었으며, 이 경기에서 7/8 야투 성공률로 14득점을 기록하고 5리바운드, 5어시스트를 기록하며 경기 최다인 31분을 뛰었다. 4월 13일, 로이는 네 번째로 서부 컨퍼런스 이달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당시 클라이드 드렉슬러만이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 선수 중 네 번 이 상을 수상한 유일한 선수였다. 로이는 2008-09 시즌 MVP 투표에서 4위 표 1개와 5위 표 4개를 포함해 총 7점으로 9위를 기록했다. 5월 13일, 로이는 올-NBA 세컨드 팀에 선정되었는데, 이는 1991-92 시즌 이후 올-NBA 팀에 선정된 첫 번째 블레이저스 선수였다.
3.2.3. 부상과 마지막 시즌 (2009-11 시즌)

2009년 8월 5일, 로이는 5년차 선수 옵션이 포함된 4년 최대 계약에 합의하여 적어도 2013-14 시즌까지 트레일 블레이저스에 남게 되었다。
로이는 2010년 NBA 올스타전에 출전 선수로 선정되어 세 번째 NBA 올스타 선정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1월 13일 밀워키 벅스와의 경기에서 입은 오른쪽 햄스트링 부상으로 인해 출전하지 못했으며, 1월 20일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와의 경기에서 부상이 재발했다.
2010년 4월 11일, 로이는 오른쪽 무릎 부상을 입었다. 그날 밤 MRI 검사 결과 오른쪽 무릎 뼈 타박상(골 타박상)이 확인되었고, 4월 12일 추가 MRI 검사에서는 경미한 반월판 파열이 발견되었다. 로이는 4월 16일 수술을 받았고, 2010년 NBA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는 결장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8일의 회복 기간 만에 4차전에 복귀하여 블레이저스를 승리로 이끌었다. 5월 6일, 로이는 올-NBA 서드 팀에 선정되었고, 이는 2년 연속 올-NBA 팀에 선정된 것이었다. 다음 시즌이 시작되기 직전, 컨퍼런스 라이벌 코비 브라이언트는 로이를 서부 컨퍼런스에서 가장 막기 어려운 선수라고 칭하며, "그의 경기에는 약점이 없다"고 주장했다. 로이는 NBA 10: 더 인사이드 게임의 표지 모델이었다.

2010-11 NBA 시즌의 첫 달 동안 로이는 평소와 같은 득점률을 기록했지만, 12월부터 대학 시절부터 그를 괴롭혔고 4월에 부상당했던 무릎이 연골 부족으로 인해 통증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트레일 블레이저스가 무기한 결장할 것이라고 발표하기 전 9경기에 결장했다. 이로 인해 주변에서는 로이가 더 이상 올스타 수준의 플레이를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팀에게 이는 공격을 라마커스 올드리지와 새로 영입된 웨슬리 매튜스에게 의존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2011년 1월 17일, 로이는 양쪽 무릎에 관절경 수술을 받았다. 그는 2월 25일 라인업에 복귀하여 벤치에서 18득점을 기록했는데, 여기에는 연장전을 강제하는 클러치 3점슛이 포함되어 블레이저스가 덴버 너기츠를 107-106으로 꺾는 데 기여했다.
블레이저스는 2011년 NBA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댈러스 매버릭스를 만났다. 로이는 첫 2경기에서 8개의 야투 중 1개만 성공시켰고, 특히 2차전에서는 8분만 뛰고 무득점에 그쳤다. 블레이저스는 두 경기를 모두 패하며 시리즈에서 0-2로 뒤처졌다. 그는 1, 2쿼터 동안 마지막으로 교체 투입되는 것과 1차전에서 26분을 뛴 후 8분만 뛰는 것에 대한 좌절감을 표출했다.
블레이저스와 매버릭스 모두 4차전 전반전을 조용하게 시작했고, 댈러스가 약간 앞섰다. 블레이저스는 후반전 시작 후 첫 15개의 슛을 모두 놓치면서 매버릭스의 리드가 67-44까지 벌어졌다. 로이는 3쿼터 막판 3점슛을 성공시켜 리드를 67-49로 줄였다. 4쿼터에서 로이는 이전 3쿼터 동안 3개 중 1개만 성공했던 야투를 18득점으로 폭발시켰는데, 여기에는 경기를 동점으로 만드는 결정적인 4점 플레이와 49초를 남기고 페인트 존 중앙에서 던진 뱅크 슛이 포함되어 그의 팀에 영구적인 리드를 안겨주었다. 로이는 24득점으로 경기를 마무리하며 블레이저스를 믿을 수 없는 84-82 승리로 이끌어 시리즈를 동점으로 만들었다. 이 경기는 NBA 플레이오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역전극 중 하나로 평가받으며, 로이는 경기 후 "그때는 존에 들어 있었다"고 말했다. 결국 블레이저스는 6차전에서 매버릭스에 패했지만, 로이의 4차전 활약은 로이 자신의 다음 시즌 이후에 대한 희망을 이어주는 내용이었다.
2011년 NBA 록아웃이 해결된 후 NBA 트레이닝 캠프가 시작되기 직전, 로이는 양쪽 무릎의 연골이 모두 없어져 퇴행이 너무 심해 농구에서 은퇴한다고 발표했다. 그의 은퇴 발표 후,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는 샐러리캡 유연성을 위해 로이에게 사면 조항을 적용했다.
3.3. 미네소타 팀버울브스
3.3.1. 복귀 시도 및 시즌 (2012-13 시즌)
2012년 6월, 로이는 NBA 복귀를 계획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그는 코비 브라이언트도 무릎 건강을 위해 받았던 혈소판 풍부 혈장 시술 후 충분히 회복하여 뛸 수 있다고 말했다. 2011년 포틀랜드의 사면 조항 때문에 현재 NBA 단체 협약 하에서는 포틀랜드에서 뛸 수 없었다. 로이는 2012년 7월 1일 자유 계약 시장에 나왔다. 로이는 댈러스 매버릭스,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미네소타 팀버울브스, 인디애나 페이서스, 시카고 불스와 계약하는 데 관심을 표명했다고 알려졌다.
2012년 7월 31일, 로이는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와 계약했다. 이 계약으로 로이는 올스타 포워드 케빈 러브와 포인트 가드 리키 루비오와 함께 뛰게 되었다. 그는 대학 시절 워싱턴에서 입었던 등번호 3번을 다시 달기로 결정했다. 그는 트레이닝 캠프 동안 몸 상태가 좋다고 느꼈지만, 2012년 10월 26일 프리시즌 경기 중 충돌로 부상을 입었다. 그는 2012-13 NBA 시즌에 5경기를 뛰었지만, 오른쪽 무릎에 시즌 아웃 수술이 필요했다. 그는 경기당 평균 5.8득점, 2.8리바운드, 4.6어시스트를 24.4분 동안 기록했다. 로이는 2013년 5월 10일 미네소타에서 방출되었다. 그 후 그는 "경기를 떠날 때마다 '만약 그랬다면' 하는 생각이 든다. 작년에 나가서 시도해봄으로써 그 질문들에 답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4. 선수 스타일
로이는 조기 드래프트에 참가하지 않고 대학에서 4년간 플레이했기 때문에 NBA에 입성할 당시 이미 완성된 선수로 평가받았다. 그는 슈팅 가드와 포인트 가드를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콤보 가드였을 뿐만 아니라, 스몰 포워드까지 소화하는 스윙맨이기도 하여 플레이의 폭이 넓은 올라운더였다. 냉철한 판단력과 리더십으로 젊은 팀을 이끌 수 있는 에이스였으며, 득점력은 해마다 향상되었다. 볼 핸들링이 뛰어나 특히 크로스오버 드리블의 날카로움이 탁월했고, 패스 센스도 비범했다. 또한, 1, 2점 차를 다투는 경기에서 그의 승부욕이 발휘되어 버저비터를 성공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5. 지도자 경력
선수 경력을 마친 후, 브랜든 로이는 고등학교 농구 코치로 새로운 경력을 시작했다.
5.1. 네이선 헤일 고등학교
로이는 2016년 워싱턴주 네이선 헤일 고등학교의 남자 농구팀 헤드 코치로 부임했다. 2017년 3월, 그의 팀이 정규 시즌 동안 29승 0패의 완벽한 기록을 달성한 후 그는 네이스미스 전국 고등학교 올해의 코치상을 수상했다.
5.2. 가필드 고등학교
마이클 포터 주니어, 존테이 포터, P.J. 풀러가 네이선 헤일 고등학교를 떠난 후, 로이는 2017년 5월 가필드 고등학교 남자 농구팀의 헤드 코치로 임명되었다. 그는 2018-19 시즌 동안 불특정한 이유로 헤드 코치직에서 물러났지만 2019년에 복귀했다. 2019-20 시즌 이후 다시 물러났다가 2022년에 복귀했다.
6. 수상 경력 및 영예
브랜든 로이는 선수 및 지도자 경력 동안 다음과 같은 주요 수상 경력과 영예를 얻었다.
- Pac-10 올해의 선수: 2006
- NBA 올해의 신인상: 2007
- NBA 올-루키 팀 퍼스트 팀: 2007
- NBA 올스타전 출전: 2008, 2009, 2010 (3회)
- 올-NBA 세컨드 팀: 2009
- 올-NBA 서드 팀: 2010
- 워싱턴 대학교 영구 결번: 등번호 3번
- 네이스미스 전국 고등학교 올해의 코치: 2017
7. 경력 통계
7.1. NBA 정규 시즌
연도 | 팀 | 출장 경기 | 선발 출장 경기 | 평균 출장 시간 | 야투 성공률 | 3점슛 성공률 | 자유투 성공률 | 평균 리바운드 | 평균 어시스트 | 평균 스틸 | 평균 블록 | 평균 득점 |
---|---|---|---|---|---|---|---|---|---|---|---|---|
2006-07 | 포틀랜드 | 57 | 55 | 35.4 | .456 | 0.377 | .838 | 4.4 | 4.0 | 1.2 | .2 | 16.8 |
2007-08 | 포틀랜드 | 74 | 74 | 37.7 | .454 | .340 | .753 | 4.7 | 5.8 | 1.1 | .2 | 19.1 |
2008-09 | 포틀랜드 | 78 | 78 | 37.2 | 0.480 | 0.377 | .824 | 4.7 | 5.1 | 1.1 | 0.3 | 22.6 |
2009-10 | 포틀랜드 | 65 | 65 | 37.2 | .473 | .330 | .780 | 4.4 | 4.7 | .9 | .2 | 21.5 |
2010-11 | 포틀랜드 | 47 | 23 | 27.9 | .400 | .333 | 0.848 | 2.6 | 2.7 | .8 | 0.3 | 12.2 |
2012-13 | 미네소타 | 5 | 5 | 24.4 | .314 | .000 | .700 | 2.8 | 4.6 | .6 | .0 | 5.8 |
경력 합계 | 326 | 300 | 35.5 | .459 | .348 | .800 | 4.3 | 4.7 | 1.0 | .2 | 18.8 | |
올스타 | 2 | 0 | 30.0 | .833 | .667 | .000 | 7.0 | 5.0 | .5 | .5 | 16.0 |
7.2. NBA 플레이오프
연도 | 팀 | 출장 경기 | 선발 출장 경기 | 평균 출장 시간 | 야투 성공률 | 3점슛 성공률 | 자유투 성공률 | 평균 리바운드 | 평균 어시스트 | 평균 스틸 | 평균 블록 | 평균 득점 |
---|---|---|---|---|---|---|---|---|---|---|---|---|
2009 | 포틀랜드 | 6 | 6 | 39.7 | .459 | 0.471 | 0.870 | 4.8 | 2.8 | 1.3 | 1.2 | 26.7 |
2010 | 포틀랜드 | 3 | 1 | 27.7 | .303 | .167 | .778 | 2.3 | 1.7 | .0 | .0 | 9.7 |
2011 | 포틀랜드 | 6 | 0 | 23.0 | 0.500 | .286 | .615 | 2.1 | 2.8 | .2 | .0 | 9.3 |
경력 합계 | 15 | 7 | 30.6 | .442 | .326 | .809 | 3.3 | 2.6 | .5 | .6 | 16.3 |
7.3. 대학
연도 | 팀 | 출장 경기 | 선발 출장 경기 | 평균 출장 시간 | 야투 성공률 | 3점슛 성공률 | 자유투 성공률 | 평균 리바운드 | 평균 어시스트 | 평균 스틸 | 평균 블록 | 평균 득점 |
---|---|---|---|---|---|---|---|---|---|---|---|---|
2002-03 | 워싱턴 | 13 | 2 | 17.2 | .500 | .100 | .486 | 2.9 | 1.0 | .3 | .2 | 6.1 |
2003-04 | 워싱턴 | 31 | 31 | 30.3 | .480 | .222 | .785 | 5.3 | 3.3 | 1.2 | .4 | 12.9 |
2004-05 | 워싱턴 | 26 | 5 | 24.2 | 0.565 | .350 | .741 | 5.0 | 2.2 | .6 | .3 | 12.8 |
2005-06 | 워싱턴 | 33 | 33 | 31.7 | .508 | 0.402 | 0.810 | 5.6 | 4.1 | 1.4 | 0.8 | 20.2 |
경력 합계 | 103 | 71 | 27.6 | .513 | .297 | .744 | 5.0 | 3.0 | 1.0 | .5 | 14.4 |
7.4. 커리어 하이
- 52득점: 2008년 12월 18일 피닉스 선즈전. 블레이저스 프랜차이즈 역사상 2위 기록이다.
- 16개의 야투 성공: 2009년 12월 25일 덴버 너기츠전.
- 5개의 3점슛 성공: 2회 기록.
- 19개의 자유투 성공: 2008년 12월 18일 피닉스 선즈전.
- 5개의 공격 리바운드: 2회 기록.
- 12개의 수비 리바운드: 2008년 2월 21일 시애틀 슈퍼소닉스전.
- 14개의 리바운드: 2008년 2월 21일 시애틀 슈퍼소닉스전.
- 12개의 어시스트: 2회 기록.
- 10개의 스틸: 2회 기록. 블레이저스 프랜차이즈 기록이다.
- 2개의 블록: 4회 기록.
8. 개인사
8.1. 가족 및 결혼

로이의 오랜 여자친구인 티아나 바드웰은 2007년 3월 27일 시애틀에서 첫 아이인 브랜든 주니어(애칭 BJ)를 출산했다. 로이와 바드웰은 2009년 1월 둘째 아이인 머라이어 레일라니를 얻었다. 그들은 2010년 9월 4일 오리건주 웨스트 린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8.2. 총격 사건
2017년 4월 29일, 로이는 캘리포니아주 컴튼에 있는 할머니 집에서 열린 파티에 참석했다가 총격을 당해 생명에 지장이 없는 부상을 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