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린 시절과 아마추어 경력
브라이언 리치는 아이스하키와 야구에서 두각을 나타낸 학창 시절을 보냈으며, 보스턴 칼리지에서 뛰어난 기량을 선보인 뒤 캘거리 동계 올림픽에 참가하며 프로 데뷔 전부터 큰 기대를 모았다.
1.1. 어린 시절과 학업
리치는 1968년 3월 3일 미국 텍사스주 코퍼스크리스티에서 태어났으나, 생후 3개월 만에 가족과 함께 코네티컷주 체셔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성장했다. 그는 아버지 잭 리치(Jack Leetch영어)가 운영하던 지역 아이스링크에서 처음 하키를 배웠다. 고등학교 시절, 리치는 체셔 고등학교(Cheshire High School)와 에이본 올드 팜스(Avon Old Farms)에서 야구와 하키 스타로 활약했다.
체셔 고등학교 2학년 때, 그의 시속 145 km/h의 강속구는 체셔 램스(Cheshire Rams) 야구팀이 주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는 데 기여했다. 에이본 올드 팜스 졸업반 때는 한 경기 최다 탈삼진 19개라는 학교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그가 가장 뛰어났던 종목은 아이스하키였다. 체셔 고등학교 2학년 당시 53골 50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올스테이트 영예를 안았다. 에이본 올드 팜스에서 두 시즌 동안 수비수로서 54경기에서 70골 90어시스트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우며 NHL 스카우트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뉴욕 레인저스는 1986년 드래프트에서 그를 1라운드 전체 9순위로 지명했으며, 이는 그 해 주요 주니어 하키 리그에서 뛰지 않은 선수 중 가장 먼저 지명된 사례였다. 리치는 아버지 잭의 발자취를 따라 1986년 가을 보스턴 칼리지에 입학했고, 아버지처럼 이글스 팀의 올아메리칸 수비수가 되었다.
1.2. 대학 및 프로 이전 국제 경기 경력
보스턴 칼리지에서 한 시즌을 보낸 후, 리치는 1988년 캘거리 동계 올림픽에서 미국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출전했다. 그는 캘거리 올림픽에서 활약한 뒤 1988년 2월 29일 세인트루이스 블루스와의 경기를 통해 뉴욕 레인저스 소속으로 NHL에 데뷔했다. 데뷔 경기에서 켈리 키시오의 골을 어시스트하며 첫 NHL 포인트를 기록했다. 그는 1987-88 시즌을 17경기 14포인트로 마무리했다. 국제 경기 경력으로는 1985년 세계 주니어 아이스하키 선수권 대회, 1986년 세계 주니어 아이스하키 선수권 대회(동메달 획득), 1987년 세계 주니어 아이스하키 선수권 대회, 1987년 세계 아이스하키 선수권 대회에도 참여했다.
2. 프로 선수 경력
브라이언 리치는 뉴욕 레인저스에서 전설적인 활약을 펼치며 팀의 스탠리 컵 우승을 이끌었고, 이후 토론토와 보스턴에서도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다. 그는 미국 국가대표팀의 핵심 선수로 여러 국제 대회에 참가하며 뛰어난 성과를 거두었다.

2.1. 뉴욕 레인저스 시절 (1988-2004)
리치는 1988-89 NHL 시즌에 첫 풀타임 NHL 시즌을 소화하며 71포인트(수비수 신기록인 23골 포함)를 기록했고, 콜더 메모리얼 트로피와 NHL 올 루키 팀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뉴욕 레인저스가 점차 챔피언십급 팀으로 발전하면서, 리치는 그의 차분한 태도와 공격적인 플레이로 팬들의 존경을 받았다.
2.1.1. 스탠리 컵 우승 및 플레이오프 MVP
1992년, 그는 역사상 다섯 번째이자 유일한 미국인 수비수로서 한 시즌 100포인트(102포인트)를 달성했으며, 노리스 트로피를 수상했다. 리치는 에리크 칼손이 2022년에 이 기록에 도달하기 전까지 NHL에서 100포인트를 기록한 마지막 수비수였다. 1993년 3월 21일, 리치는 택시에서 내리다 빙판길에 미끄러져 발목 골절을 당했다. 이 부상으로 인해 그는 남은 시즌을 결장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레인저스는 침체기를 겪으며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1993-94 NHL 시즌에 리치는 정규 시즌에서 다시 자신의 커리어 최다인 23골을 기록하며 레인저스가 프레지던츠 트로피를 차지하는 데 기여했다. 그 해, 레인저스는 밴쿠버 캐넉스를 상대로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스탠리 컵 파이널에서 승리하며 54년간의 우승 가뭄을 끝냈다. 리치는 콘 스미스 트로피를 수상한 최초의 비캐나다인이 되었고, 2011년 보스턴 브루인스의 팀 토머스가 수상하기 전까지 유일한 미국인 수상자였다. 리치는 보비 오어에 이어 NHL 역사상 콜더 메모리얼 트로피, 노리스 트로피, 콘 스미스 트로피를 모두 수상한 두 번째 선수였다. 이후 케일 마카르만이 이 업적을 달성했다.
2.1.2. 주장직 및 후기 활약
1994년 스탠리 컵 우승 이후, 리치는 계속해서 팬들의 사랑을 받는 팀 리더로 남았다. 마크 메시어가 밴쿠버 캐넉스로 떠난 후인 1997년부터 2000년까지 팀의 주장을 맡았으며, 메시어가 2000년에 레인저스로 복귀하자 다시 주장직을 메시어에게 넘겨주었다. 1997년 그는 다시 노리스 트로피를 수상했고, 레인저스는 놀랍게도 동부 콘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했지만 필라델피아 플라이어스에게 패배했다. 그러나 이후 몇 년간은 팀의 실망스러운 성적이 이어지며 레인저스는 매년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2.2. 말년의 NHL 시즌 (2004-2006)
2003년 6월 30일, 리치는 자유 계약 선수 신분을 앞두고 주시 마르카넨과 2004년 드래프트 4라운드 픽을 대가로 에드먼턴 오일러스로 트레이드되었다. 그러나 오일러스와 계약하지 않았고, 한 달 후 2년 계약을 맺고 레인저스로 돌아왔다. 특히 부진했던 2003-04 NHL 시즌 이후 레인저스는 고액 연봉을 받는 베테랑 선수들을 대거 트레이드했다. 리치는 트레이드 마감일 직전에 토론토 메이플리프스로 이적했는데, 그 대가로 막심 콘드라티예프, 야르코 임모넨, 2004년 드래프트 1라운드 픽(이후 크리스 처코가 지명되었으나 캘거리 플레임스로 트레이드됨), 그리고 2005년 드래프트 2라운드 픽(마이클 사우어 지명)이 레인저스로 넘어왔다.
리치는 2004-05 NHL 시즌을 메이플리프스에서 보낼 예정이었으나, 2004-05 NHL 파업으로 인해 그의 계약 마지막 해가 만료되었고, 그는 자유 계약 선수가 되었다. 리치는 2005-06 NHL 시즌 전에 보스턴 브루인스와 1년 400.00 만 USD 계약을 체결했다. 브루인스는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지만, 리치는 팀의 일원으로서 커리어 1,000번째 포인트를 달성했다. 2006-07 시즌 내내 리치는 여러 NHL 팀으로부터 계약 제안을 받았지만, 어떤 제안도 수락하지 않았다. 2007년 5월 24일, 리치는 공식적으로 은퇴를 발표하며 18년간의 NHL 경력을 마감했다.
2.3. 국제 대회 경력
리치는 프로 선수로서 미국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다양한 국제 대회에 참가하여 조국에 기여했다. 그는 1991년 캐나다 컵과 1996년 아이스하키 월드컵에 미국 대표팀으로 출전했으며, 1996년 월드컵에서는 팀의 주장을 맡아 우승을 이끌었다. 또한 1988년 캘거리 동계 올림픽, 1998년 나가노 동계 올림픽,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 올림픽에 출전하여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에서는 은메달을 획득했다. 이 외에도 1989년 세계 아이스하키 선수권 대회에 참가했다.
3. 은퇴 및 은퇴 후 활동
선수 경력을 마무리한 브라이언 리치는 아이스하키 스포츠에 대한 기여를 인정받아 여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NHL 관련 직책도 역임했다.
2007년 9월 18일, 리치는 2007년 레스터 패트릭 트로피 수상자 4명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다.
2008년 1월 24일, 뉴욕 레인저스는 매디슨 스퀘어 가든 천장에 리치의 등번호 2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하는 행사를 가졌다. 이로써 리치의 등번호는 1994년 스탠리 컵 우승 동료인 마크 메시어와 마이크 리히터, 그리고 로드 길버트, 에디 지아코민에 이어 영구 결번이 되었다. 이날 뉴욕 양키스의 데릭 지터는 비디오 메시지를 통해 리치에게 "또 다른 2번으로서 축하한다"며 영구 결번을 축하했다. 리치는 또한 자신의 은퇴식에서 친구이자 전 동료인 애덤 그레이브스의 등번호가 2008-09 시즌에 영구 결번될 것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2008년 10월 10일, 리치와 리히터는 덴버에서 미국 하키 명예의 전당에 함께 헌액되었다. 두 선수 모두 2002년 동계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미국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 소속이었다.
2009년 6월 23일, 리치가 하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것이라고 발표되었으며, 11월 6일부터 9일까지 진행된 헌액 주말 동안 스티브 아이저먼, 브렛 헐, 뤽 로비타이와 함께 영예를 안았다. 이로써 리치는 2007년 메시어, 2008년 글렌 앤더슨에 이어 1994년 레인저스 스탠리 컵 우승팀의 세 번째 멤버로서 하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015년 8월, 리치는 NHL 선수 안전 부서의 선수 안전 관리자로 활동했으나, 한 시즌 만에 이 직책을 떠났다. 2023년에는 국제 아이스하키 연맹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4. 수상 및 영예
브라이언 리치는 선수 생활 동안 NHL과 국제 대회에서 수많은 개인 및 팀 상을 받았으며, 은퇴 후에는 아이스하키의 전설로서 여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4.1. 주요 NHL 및 국제 대회 수상
- 올림픽 은메달 (2002)
- 올림픽 토너먼트 올스타 팀 (2002)
- 제임스 노리스 메모리얼 트로피 (NHL 최고 수비수): 1992년, 1997년
- NHL 퍼스트 팀 올스타: 1992년, 1997년
- NHL 세컨드 팀 올스타: 1991년, 1994년, 1996년
- 스탠리 컵 챔피언: 1994년
- 콘 스미스 트로피 (NHL 플레이오프 MVP) 수상 최초의 미국 태생 선수: 1994년
- 콜더 메모리얼 트로피 (NHL 최고 신인): 1989년
- NHL 올 루키 팀: 1989년
- 하키 이스트 올해의 선수: 1987년
- 하키 이스트 올해의 신인: 1987년
- 하키 이스트 토너먼트 MVP: 1987년
- 1986년 세계 주니어 아이스하키 선수권 대회 동메달
- 1987년 세계 주니어 아이스하키 선수권 대회 올스타 선정 (수비수)
- NHL 올스타전 선정: 1990년, 1991년, 1992년, 1993년, 1994년, 1996년, 1997년, 1998년, 2001년, 2002년, 2003년
- 1996년 아이스하키 월드컵 금메달 (미국 팀 주장)
- 더 하키 뉴스 선정 "역대 위대한 NHL 선수 100인" 중 71위 (현역 시절)
- 2009년 저서 100 레인저스 위대한 선수들(100 Ranger Greats)에서 역대 뉴욕 레인저스 선수 중 최고 선수로 선정
4.2. 뉴욕 레인저스 팀 내부 수상
- MVP: 1989년, 1991년, 1997년, 1999년, 2001년, 2003년
- 선수 선정상 (Players' Player Award): 2001년, 2002년, 2003년, 2004년
- 프랭크 부처 상 (Frank Boucher Award): 2001년
- 크럼 범 상 (Crumb Bum Award): 1994년
- 스티븐 맥도널드 엑스트라 에포트 상 (Steven McDonald Extra Effort Award): 1997년
- 굿 가이 상 (Good Guy Award): 2002년
- 세실 사이델 기념상 (Ceil Saidel Memorial Award): 2002년, 2003년
- 뉴욕 레인저스 영구 결번 (등번호 2번, 2008년 1월 24일)
4.3. 명예의 전당 헌액
- 미국 하키 명예의 전당: 2008년
- 하키 명예의 전당: 2009년
- 국제 아이스하키 연맹 명예의 전당: 2023년
5. 기록
브라이언 리치는 NHL과 뉴욕 레인저스 팀에서 여러 인상적인 기록들을 남겼으며, 특히 신인 수비수로서의 득점 기록과 레인저스 수비수로서의 통산 어시스트 및 포인트 기록은 독보적이다.
5.1. NHL 기록
- 신인 수비수 최다 득점: 23골 (1988-89 시즌)
5.2. 뉴욕 레인저스 프랜차이즈 기록
- 정규 시즌 기록
- 통산 최다 어시스트: 741개
- 수비수 통산 최다 골: 240골
- 수비수 통산 최다 포인트: 981점
- 단일 시즌 최다 어시스트: 80개 (1991-92)
- 수비수 단일 시즌 최다 포인트: 102점 (1991-92)
- 수비수 단일 시즌 최다 파워 플레이 골: 17골 (1993-94)
- 플레이오프 기록
- 통산 최다 어시스트: 61개
- 통산 최다 포인트: 89점
- 단일 플레이오프 시즌 최다 어시스트: 23개 (1993-94)
- 단일 플레이오프 시즌 최다 포인트: 34점 (1993-94)
- 수비수 통산 최다 골: 28골
- 수비수 단일 플레이오프 시즌 최다 골: 11골 (1993-94)
6. 유산과 영향
브라이언 리치는 그의 뛰어난 실력과 리더십으로 아이스하키 스포츠, 특히 내셔널 하키 리그(NHL)와 뉴욕 레인저스 구단에 지대한 유산과 영향을 남겼다. 그는 공격적인 수비수의 전형을 보여주며 이 포지션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데 기여했다. 특히 1994년 스탠리 컵 우승의 주역으로서, 레인저스의 54년 묵은 우승 가뭄을 해소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구단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그의 등번호 2번이 영구 결번으로 지정된 것은 그가 레인저스 팬들에게 어떤 존재였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리치는 콜더 메모리얼 트로피, 제임스 노리스 메모리얼 트로피, 콘 스미스 트로피를 모두 수상한 단 세 명의 선수 중 한 명이라는 점에서 그의 다재다능함과 탁월함을 입증했다. 이는 그가 단순한 수비수를 넘어 경기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선수였음을 의미한다. 또한 미국 하키 국가대표팀의 주장이자 핵심 멤버로서 1996년 아이스하키 월드컵 우승과 2002년 동계 올림픽 은메달을 이끌며 미국 아이스하키의 위상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는 하키 명예의 전당, 국제 아이스하키 연맹 명예의 전당, 미국 하키 명예의 전당에 모두 헌액됨으로써 국제적으로 그의 업적과 위상을 인정받았다. 리치의 플레이 스타일과 업적은 후대의 수비수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그는 아이스하키 역사에 영원히 기억될 위대한 선수로 남아 있다.
정규 시즌 | 플레이오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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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 팀 | 리그 | 경기 수 | 골 | 어시스트 | 포인트 | 페널티 시간 | 경기 수 | 골 | 어시스트 | 포인트 | 페널티 시간 | ||
1983-84 | 체셔 고등학교 | HS | 28 | 52 | 49 | 101 | 24 | - | - | - | - | - | ||
1984-85 | 에이본 올드 팜스 | HS | 26 | 30 | 46 | 76 | 15 | - | - | - | - | - | ||
1985-86 | 에이본 올드 팜스 | HS | 28 | 40 | 44 | 84 | 18 | - | - | - | - | - | ||
1986-87 | 보스턴 칼리지 이글스 아이스하키 | HE | 37 | 9 | 38 | 47 | 10 | - | - | - | - | - | ||
1987-88 | 미국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 | Intl | 50 | 13 | 61 | 74 | 38 | - | - | - | - | - | ||
1987-88 | 뉴욕 레인저스 | NHL | 17 | 2 | 12 | 14 | 0 | - | - | - | - | - | ||
1988-89 | 뉴욕 레인저스 | NHL | 68 | 23 | 48 | 71 | 50 | 4 | 3 | 2 | 5 | 2 | ||
1989-90 | 뉴욕 레인저스 | NHL | 72 | 11 | 45 | 56 | 26 | - | - | - | - | - | ||
1990-91 | 뉴욕 레인저스 | NHL | 80 | 16 | 72 | 88 | 42 | 6 | 1 | 3 | 4 | 0 | ||
1991-92 | 뉴욕 레인저스 | NHL | 80 | 22 | 80 | 102 | 26 | 13 | 4 | 11 | 15 | 4 | ||
1992-93 | 뉴욕 레인저스 | NHL | 36 | 6 | 30 | 36 | 26 | - | - | - | - | - | ||
1993-94 | 뉴욕 레인저스 | NHL | 84 | 23 | 56 | 79 | 27 | 23 | 11 | 23 | 34 | 6 | ||
1994-95 | 뉴욕 레인저스 | NHL | 48 | 9 | 32 | 41 | 18 | 10 | 6 | 8 | 14 | 8 | ||
1995-96 | 뉴욕 레인저스 | NHL | 82 | 15 | 70 | 85 | 30 | 11 | 1 | 6 | 7 | 4 | ||
1996-97 | 뉴욕 레인저스 | NHL | 82 | 20 | 58 | 78 | 40 | 15 | 2 | 8 | 10 | 6 | ||
1997-98 | 뉴욕 레인저스 | NHL | 76 | 17 | 33 | 50 | 32 | - | - | - | - | - | ||
1998-99 | 뉴욕 레인저스 | NHL | 82 | 13 | 42 | 55 | 42 | - | - | - | - | - | ||
1999-2000 | 뉴욕 레인저스 | NHL | 50 | 7 | 19 | 26 | 20 | - | - | - | - | - | ||
2000-01 | 뉴욕 레인저스 | NHL | 82 | 21 | 58 | 79 | 34 | - | - | - | - | - | ||
2001-02 | 뉴욕 레인저스 | NHL | 82 | 10 | 45 | 55 | 28 | - | - | - | - | - | ||
2002-03 | 뉴욕 레인저스 | NHL | 51 | 12 | 18 | 30 | 20 | - | - | - | - | - | ||
2003-04 | 뉴욕 레인저스 | NHL | 57 | 13 | 23 | 36 | 24 | - | - | - | - | - | ||
2003-04 | 토론토 메이플리프스 | NHL | 15 | 2 | 13 | 15 | 10 | 13 | 0 | 8 | 8 | 6 | ||
2005-06 | 보스턴 브루인스 | NHL | 61 | 5 | 27 | 32 | 36 | - | - | - | - | - | ||
NHL 합계 | 1,205 | 247 | 781 | 1,028 | 571 | 95 | 28 | 69 | 97 | 36 |
연도 | 팀 | 대회 | 경기 수 | 골 | 어시스트 | 포인트 | 페널티 시간 |
---|---|---|---|---|---|---|---|
1985 | 미국 | WJC | 7 | 0 | 0 | 0 | 2 |
1986 | 미국 | WJC | 7 | 1 | 4 | 5 | 2 |
1987 | 미국 | WJC | 7 | 1 | 2 | 3 | 6 |
1987 | 미국 | WC | 10 | 4 | 5 | 9 | 4 |
1988 | 미국 | OG | 6 | 1 | 5 | 6 | 4 |
1989 | 미국 | WC | 10 | 3 | 4 | 7 | 4 |
1991 | 미국 | CC | 7 | 1 | 3 | 4 | 2 |
1996 | 미국 | WCH | 7 | 0 | 7 | 7 | 4 |
1998 | 미국 | OG | 4 | 1 | 1 | 2 | 0 |
2002 | 미국 | OG | 6 | 0 | 5 | 5 | 0 |
2004 | 미국 | WCH | 5 | 0 | 1 | 1 | 6 |
주니어 합계 | 21 | 2 | 6 | 8 | 10 | ||
시니어 합계 | 55 | 10 | 31 | 41 | 24 |
7. 외부 링크
- [https://www.hockeydb.com/ihdb/stats/p.php?id=3071 HockeyDB.com의 브라이언 리치 선수 통계]
- [https://www.eliteprospects.com/player.php?player=8994 Eliteprospects.com의 브라이언 리치 선수 통계]
- [http://www.nhl.com/ice/player.htm?id=8448769 브라이언 리치] - 내셔널 하키 리그
- [https://www.olympedia.org/athletes/89513 브라이언 리치] - Olympedia
- [https://web.archive.org/web/20171101000000/http://www.sports-reference.com/olympics/athletes/we/doug-weight-1.html 브라이언 리치] - Sports Refer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