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바이에른의 엘리자베트(1383년 ~ 1442년 11월 13일)는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프리드리히 1세의 배우자이자, 그의 부재 시 탁월한 섭정 활동을 수행한 인물입니다. 그녀는 남편의 장기적인 부재 동안 브란덴부르크의 복잡한 정치적 문제들을 현명하고 유능하게 처리함으로써 국가의 안정과 행정적 연속성을 유지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이러한 능력은 당대 여성 통치자의 중요한 역할 모델이 되었으며, 그녀의 섭정은 단순히 대리 역할에 그치지 않고 호엔촐레른 가문이 브란덴부르크를 통치하는 기반을 확고히 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녀는 별칭으로 "아름다운 베트"(Beautiful Beth영어) 또는 "가인 엘제"(Schöne Else쇠네 엘제독일어)로도 불렸습니다.

2. 생애 및 섭정 활동
바이에른의 엘리자베트는 남편 프리드리히 1세의 부재 시 브란덴부르크의 섭정으로서 중요한 정치적 역할을 수행하며, 그녀의 현명하고 유능한 리더십으로 당면한 여러 문제들을 해결했습니다.
2.1. 초기 생애 및 결혼
엘리자베트는 1383년, 바이에른-란츠후트 공국의 공작인 '현명공' 프리드리히와 그의 두 번째 아내인 마달레나 비스콘티의 장녀로 트라우스니츠 성 (Burg Trausnitz부르크 트라우스니츠독일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에게는 동명이인인 이복언니 바이에른의 엘리자베트(1361년 ~ 1382년)가 있었으나, 그녀가 태어나기 전 사망했습니다. 1401년 9월 18일, 엘리자베트는 뉘른베르크 성백 프리드리히 6세와 결혼했습니다. 이 프리드리히 6세는 훗날 1415년에 선제후로 승격되어 브란덴부르크의 초대 선제후인 프리드리히 1세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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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선제후비 및 섭정 역할
엘리자베트의 남편 프리드리히가 1415년에 브란덴부르크 선제후로 승격된 이후, 엘리자베트는 선제후비로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습니다. 특히 프리드리히 1세가 이탈리아와 헝가리로의 장기적인 원정이나 콘스탄츠 공의회 참석 등으로 인해 오랫동안 영지를 비울 때, 엘리자베트는 브란덴부르크의 섭정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당시 브란덴부르크는 여러 심각한 정치적 문제에 직면해 있었지만, 엘리자베트는 이를 현명하고 유능하게 처리함으로써 국가의 안정과 행정 기능을 유지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그녀의 섭정 기간은 1415년 4월 30일부터 1440년 9월 20일까지 남편의 사망 전까지 이어졌습니다.
3. 자녀
엘리자베트와 남편 프리드리히 1세 사이에는 열 명의 자녀가 있었습니다.
- 엘리자베트 (1403년 ~ 1449년 10월 31일):
- 1418년 콘스탄츠에서 브제크와 레그니차 공작 루트비크 2세와 결혼했습니다.
- 1438년 체신 공작 바츠와프 1세와 재혼했습니다.
- 요한 (1406년 ~ 1465년): '연금술사'(Johann der Alchemist요한 데어 알히미스트독일어)라는 별명을 가졌으며, 브란덴부르크-쿨름바흐 변경백이 되었습니다.
- 1416년 작센-비텐베르크의 바르바라 공주 (1405년 ~ 1465년)와 결혼했습니다.
- 체칠리아 (1405년경 ~ 1449년 1월 4일):
- 1423년 5월 30일 베를린에서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 공작 빌헬름 1세와 결혼했습니다.
- 마르가레테 (1410년 ~ 1465년 7월 27일):
- 1423년 메클렌부르크 공작 알브레히트 5세와 결혼했습니다.
- 1441년 7월 20일 잉골슈타트에서 바이에른-잉골슈타트 공작 루트비히 8세와 재혼했습니다.
- 1446년 발덴펠스 백작 마르틴 (1471년 사망)과 삼혼했습니다.
- 마그달레나 (1412년경 ~ 1454년 10월 27일):
- 1429년 7월 3일 탕거뮌데에서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작 프리드리히 2세와 결혼했습니다.
- 프리드리히 2세 (1413년 ~ 1471년): '강철 이빨'(Friedrich II. Eisenzahn프리드리히 2세 아이젠찬독일어)이라는 별명을 가졌으며,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가 되었습니다.
- 1446년 작센의 카타리나 공주 (1421년 ~ 1476년)와 결혼했습니다.
- 알브레히트 3세 아킬레스 (1414년 ~ 1486년): '아킬레스'(Albrecht Achilles알브레히트 아킬레스독일어)라는 별명을 가졌으며,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가 되었습니다.
- 1446년 바덴의 마르가레테 공주 (1431년 ~ 1457년)와 결혼했습니다.
- 1458년 작센의 안나 공주 (1437년) (1437년 ~ 1512년)와 재혼했습니다.
- 조피 (1417년 출생 및 사망).
- 도로테아 (1420년 2월 9일 ~ 1491년 1월 19일):
- 1432년 메클렌부르크 공작 하인리히 4세와 결혼했습니다.
- 프리드리히 (1424년경 ~ 1463년 10월 6일): '뚱뚱한'(Friedrich der Fette프리드리히 데어 페테독일어)이라는 별명을 가졌으며, 알트마르크의 영주였습니다.
- 1449년 포메라니아의 아그네스 공주 (1436년 ~ 1512년)와 결혼했습니다.
4. 유산
바이에른의 엘리자베트는 남편 프리드리히 1세가 선제후로서 통치하던 시기,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의 중요한 정치적 전환기에 섭정 역할을 수행하며 국가의 안정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그녀의 섭정 활동은 단순한 대리 통치가 아닌, 당시 브란덴부르크가 겪고 있던 "심각한 정치적 문제들"을 "현명하고 유능하게" 해결해 나간 행정적 능력의 발현이었습니다. 이는 여성 통치자가 남성 통치자 못지않게 국가의 중대한 위기 상황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됩니다. 또한, 그녀는 그녀의 셋째 아들 알브레히트 3세 아킬레스를 통해 호엔촐레른 가문의 왕실 혈통의 선조가 되었으며, 이는 후대 프로이센 왕국과 독일 제국의 지배 가문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역사적 맥락을 형성했습니다. 엘리자베트의 생애와 활동은 호엔촐레른 가문의 부흥과 브란덴부르크의 정치적 기반 확립에 기여한 중요한 유산으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