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기 생애 및 배경
미루츠 이프테르는 에티오피아 티그라이주의 잘람베사(Zalambessa) 또는 아디그라트(Adigrat)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는 다양한 공장에서 일하거나 마차를 운전하며 생계를 꾸렸다. 그의 장거리 달리기 재능은 에티오피아 공군에 입대하면서 비로소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공군 복무 중 그의 뛰어난 운동 능력이 발견되었고, 이는 그가 전문 육상 선수의 길을 걷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2. 육상 경력
미루츠 이프테르는 올림픽 데뷔부터 주요 국제 대회에서의 활약, 그리고 그만의 독특한 주법으로 세계 육상계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2.1. 올림픽 데뷔 및 초기 성과
미루츠 이프테르는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에 참가할 에티오피아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었으나, 실제 올림픽 데뷔는 4년 뒤인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이루어졌다. 뮌헨에서 그는 남자 10,000m에서 동메달을 획득하며 올림픽 메달리스트로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5,000m 결승전에는 너무 늦게 도착하여 출전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겼는데, 일부에서는 복통으로 인해 화장실에 머물다 최종 호출 시간을 놓쳤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올림픽 이후, 1973년 라고스에서 열린 올아프리카 경기 대회에서는 남자 10,000m에서 금메달을, 5,000m에서 은메달을 획득하며 아프리카 대륙에서도 그의 기량을 입증했다.
2.2. 주요 국제 대회 참가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는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대회를 보이콧하면서 미루츠 이프테르 역시 출전이 좌절되었다. 하지만 4년 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서 그는 이러한 실망감을 만회하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10,000m 결승전에서는 결승선을 300 m 앞두고 폭발적인 스퍼트를 시작하여 다른 선수들을 따돌리고 10 m 차이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5일 뒤 열린 5,000m 결승전에서는 마지막 바퀴에서 선두 그룹에 갇히는 위기에 처했으나, 결승선을 300 m 남기고 에티오피아 동료 선수인 모하메드 케디르가 옆으로 비켜주면서 이프테르는 다시 한번 전력 질주하여 두 번째 금메달을 획득했다. 그는 이 금메달을 "세계의 젊은이들과 아프리카 대륙에 바치고 싶다"고 말했다.
올림픽 이후에도 이프테르는 1980년대 초반까지 꾸준히 활약했다. 1982년과 1983년 세계 크로스컨트리 선수권 대회에서는 에티오피아 팀의 일원으로 단체전 금메달을 획득하는 데 기여했다. 또한 1977년 2월 6일 푸에르토리코 코아모에서 열린 대회에서는 하프 마라톤에서 1시간 2분 57초의 기록으로 당시 세계 최고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는 1978년부터 1982년까지 국제 대회에서 무패 행진을 이어갔으며, 헨리 로노와 함께 1970년대 후반 최고의 장거리 주자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다.
2.3. 독특한 주법과 별명
미루츠 이프테르는 경기 막판에 갑작스럽고 폭발적인 가속으로 결승선을 향해 질주하는 독특한 주법으로 유명했다. 이러한 그의 주법은 '이프터 더 쉬프터(Yifter the Shifter)'라는 별명을 안겨주었다. 일본에서는 '이프타 스퍼트'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이때 '이프터'는 그의 아버지 이름이므로 엄밀히는 '미루츠 스퍼트'라고 부르는 것이 맞다는 설명도 있었다. 그의 경기 운영 방식은 주로 레이스 내내 후방에 머물다가 마지막 300 m에서 400 m 지점에서 선두로 치고 나가는 데 집중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승부사적인 전략 때문에 그는 세계 기록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주요 대회에서 승리를 거머쥐는 데는 매우 효과적이었다.
2.4. 개인적인 일화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당시 미루츠 이프테르를 둘러싼 가장 큰 미스터리 중 하나는 그의 정확한 나이였다. 당시 언론에서는 그의 나이가 33세에서 42세 사이로 다양하게 보도되었으나, 이프테르는 명확한 답변을 거부하며 "사람들은 내 닭을 훔칠 수도 있고, 내 양을 훔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도 내 나이를 훔칠 수는 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의 생년월일은 주로 1938년 1월 1일 또는 1944년 5월 15일로 알려져 있으나, 여전히 불확실성이 남아 있다.
이프테르는 후배 선수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에티오피아의 또 다른 육상 영웅인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는 자신의 자서전적 영상에서 "그는 나의 영웅이다. 그의 달리는 모습을 보고 육상을 시작했다"고 언급하며 이프테르에 대한 존경심을 표했다.
3. 개인 최고 기록
미루츠 이프테르의 주요 종목별 개인 최고 기록은 다음과 같다.
- 5,000m: 13분 13초 82 (1977년)
- 10,000m: 27분 40초 96 (1972년)
- 하프 마라톤: 1시간 2분 57초 (1977년)
4. 사망
미루츠 이프테르는 2016년 12월 22일, 향년 72세의 나이로 캐나다 온타리오주 토론토에서 사망했다. 그는 2000년부터 토론토에서 거주해왔다. 가족들에 따르면, 그는 사망 전 호흡기 질환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그의 장례는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에 위치한 성 삼위일체 대성당 묘지에 안장되었다.

5. 평가 및 영향력
미루츠 이프테르는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세계 육상계에서 가장 지배적인 장거리 주자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그의 독특하고 전술적인 경기 운영 방식, 특히 경기 막판의 폭발적인 스퍼트는 그를 '이프터 더 쉬프터'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하며 많은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비록 세계 기록을 세우지는 못했지만, 그는 올림픽 금메달 두 개를 포함한 수많은 국제 대회에서의 승리를 통해 자신의 기량을 증명했다.
이프테르는 단순히 뛰어난 선수에 그치지 않고, 후대의 에티오피아 육상 선수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와 같은 전설적인 선수들이 이프테르를 보며 육상의 꿈을 키웠다는 사실은 그의 영향력을 잘 보여준다. 그는 에티오피아가 장거리 육상 강국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중요한 초석을 놓은 인물로, 에티오피아 스포츠 역사에 길이 남을 영웅으로 기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