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메리 조이 페르난데스는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태어났으며, 그녀의 부모는 이민자였다. 그녀의 아버지 호세는 스페인 아스투리아스 출신이고, 어머니 실비아 피노는 쿠바 출신이다. 그녀는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 위치한 캐럴턴 성심 학교에서 고등학교 교육을 마쳤다.
1.1. 어린 시절 및 교육
페르난데스는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재능을 보인 주니어 테니스 선수였다. 특히 오렌지 볼 주니어 타이틀을 4회 연속으로 우승하며 테니스계의 주목을 받았다.
1.2. 주니어 경력
1985년 US 오픈에서 14세 8일의 나이로 본선 경기에서 승리하며 US 오픈 본선 경기에서 승리한 최연소 선수가 되었다. 당시 그녀는 첫 라운드에서 사라 고머를 꺾었다.
1.3. 프로 경력
페르난데스는 1986년에 프로 테니스 선수로 전향했다. 1989년 달라스에서 벳시 나겔센과 짝을 이루어 첫 투어 복식 타이틀을 획득했다. 같은 해 1989년 프랑스 오픈에서는 준결승에 진출했으나 아란차 산체스 비카리오에게 패했다.
1990년 호주 오픈에서 첫 그랜드 슬램 단식 결승에 진출했으나 슈테피 그라프에게 3-6, 4-6으로 패했다. (2세트에서 4-1로 앞서기도 했다.) 같은 해 도쿄에서 열린 도쿄 실내 선수권 대회에서 첫 WTA 투어 단식 타이틀을 획득했으며, 그 해를 세계 랭킹 4위로 마쳤다.
1991년 호주 오픈 준결승에서는 모니카 셀레스를 상대로 매치 포인트를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3-6, 6-0, 7-9로 아쉽게 패했다. 같은 해 패티 펜딕과 팀을 이루어 호주 오픈 여자 복식 타이틀을 획득했다. 윔블던에서는 준결승에 진출했으나 슈테피 그라프에게 스트레이트 세트로 패했다.
1992년 호주 오픈 단식 결승에 다시 진출하여 준결승에서 세계 랭킹 3위 가브리엘라 사바티니를 꺾었지만, 결승에서 모니카 셀레스에게 2-6, 3-6으로 패했다. 또한 US 오픈 준결승에도 진출했으나 다시 모니카 셀레스에게 패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는 미국 대표로 선발되어 여자 복식에서 지지 페르난데스와 함께 금메달을, 단식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1993년 인디언 웰스에서 아만다 코체르를 꺾고 타이틀을 획득했다. 프랑스 오픈에서는 준준결승에서 세계 랭킹 5위 사바티니를, 준결승에서 세계 랭킹 3위 산체스 비카리오를 꺾었다. 결승에서 슈테피 그라프를 상대로 마지막 세트에서 3-0으로 앞설 수 있는 여러 포인트를 잡았으나, 결국 6-4, 2-6, 4-6으로 패했다.
1996년 프랑스 오픈에서 린제이 대븐포트와 짝을 이루어 두 번째 그랜드 슬램 복식 타이틀을 획득했다. 이들은 같은 해 연말 WTA 투어 챔피언십 복식 타이틀도 거머쥐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는 찬다 루빈을 대신하여 미국 팀에 뒤늦게 합류했다. 그녀는 지지 페르난데스와 다시 짝을 이루어 두 번째 여자 복식 금메달을 획득했다. 단식 경기에도 출전하여 준준결승에서 세계 랭킹 2위 콘치타 마르티네스를 꺾고 준결승에 진출했으나, 동메달 결정전에서 야나 노보트나에게 패했다. 같은 해 페르난데스는 페더레이션컵에서 우승한 미국 팀의 일원이었다.
1997년 호주 오픈 준결승에 진출했으나 마르티나 힝기스에게 1-6, 3-6으로 패했다. 5월에는 베를린에서 열린 독일 오픈에서 첫이자 유일한 티어 I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이 대회에서 준결승에서 야나 노보트나를, 결승에서 메리 피어스를 꺾었다. 연말 WTA 파이널에서는 세계 랭킹 2위 린제이 대븐포트를 꺾기도 했다.
1999년 프랑스 오픈 3라운드에서 세레나 윌리엄스를 꺾었으며, 그녀의 마지막 그랜드 슬램 출전은 같은 해 US 오픈 4라운드에서 비너스 윌리엄스에게 패한 경기였다. 그녀는 2000년에 투어에서 은퇴했으며, 총 7개의 단식 타이틀과 17개의 복식 타이틀을 포함하여 총 24개의 타이틀을 획득했다.
2. 주요 활동 및 성과
메리 조이 페르난데스는 꾸준함과 뛰어난 복식 실력으로 테니스계에서 중요한 발자취를 남겼다. 특히 그랜드 슬램 단식 결승에 세 차례 진출하고, 두 차례의 올림픽 복식 금메달을 획득하는 등 인상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2.1. 단식 경력
페르난데스는 그랜드 슬램 단식 결승에 세 차례 진출했지만, 아쉽게도 타이틀을 획득하지는 못했다. 1990년 호주 오픈과 1992년 호주 오픈 결승에서는 각각 슈테피 그라프와 모니카 셀레스에게 패했다. 1993년 프랑스 오픈 결승에서는 다시 슈테피 그라프를 만났는데, 이 경기에서 그녀는 1-6, 1-5로 뒤지던 가브리엘라 사바티니와의 준준결승에서 대역전승을 거두며 결승에 올랐지만, 결승에서는 6-4, 2-6, 4-6으로 역전패를 당했다. 그녀의 최고 세계 랭킹은 4위였으며, WTA 투어에서 총 7개의 단식 타이틀을 획득했다.
2.2. 복식 경력
페르난데스는 복식에서 특히 강한 면모를 보였다. 1991년 호주 오픈에서 패티 펜딕과 짝을 이루어 첫 그랜드 슬램 복식 타이틀을 획득했다. 이후 1996년 프랑스 오픈에서는 린제이 대븐포트와 함께 두 번째 그랜드 슬램 복식 타이틀을 추가했다. 이들은 같은 해 WTA 투어 챔피언십 복식에서도 우승하며 뛰어난 호흡을 자랑했다. 그녀의 최고 복식 세계 랭킹 또한 4위였으며, WTA 투어에서 총 17개의 복식 타이틀을 획득했다. 그녀는 지지 페르난데스, 패티 펜딕, 린제이 대븐포트 등 여러 파트너와 성공적인 협력을 보여주었다.
2.3. 올림픽
페르난데스는 올림픽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두었다.
-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단식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당시에는 동메달 결정전이 없어 준결승에서 패한 두 선수 모두 동메달을 받았다. 복식에서는 지지 페르난데스와 짝을 이루어 금메달을 획득했다.
-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다시 지지 페르난데스와 함께 여자 복식 금메달을 획득하며 2회 연속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되었다. 단식에도 출전하여 준결승까지 진출했으나, 동메달 결정전에서 야나 노보트나에게 패했다.
2.4. 페더레이션컵
페르난데스는 1996년 페더레이션컵(현 빌리 진 킹 컵)에서 미국 팀의 일원으로 참가하여 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3. 은퇴 후 활동
프로 선수 생활을 은퇴한 후에도 메리 조이 페르난데스는 테니스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그녀는 2008년부터 2016년까지 미국 페더레이션컵 팀의 감독을 역임했다. 또한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미국 올림픽 테니스 팀의 여자 코치로 활동했다. 현재는 ESPN의 스포츠 분석가이자 해설가로 활동하며 테니스 경기를 분석하고 해설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4. 개인 생활
메리 조이 페르난데스는 2000년 4월 IMG의 스포츠 에이전트인 앤서니(토니) 갓식과 결혼했다. 그녀의 결혼식에는 모니카 셀레스가 신부 들러리로 참여했다. 부부는 두 명의 자녀를 두고 있으며, 그들의 아들 니콜라스 갓식 또한 테니스 선수로 활동하고 있다. 그녀의 남편 토니 갓식은 현재 로저 페더러의 에이전트를 맡고 있다. 그녀는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와 플로리다주 키 비스케인에 집을 가지고 있다.
5. 경기 스타일 및 기록
메리 조이 페르난데스는 오른손잡이 선수였으며, 백핸드 스트로크는 양손으로 구사했다. 그녀의 신체적 특징은 키 176 cm, 체중 63 kg이었다. 그녀는 프로 경력 동안 총 781승 344패의 전적을 기록했으며, 이 중 단식에서는 437승 203패, 복식에서는 344승 141패를 기록했다. 총 상금은 525.85 만 USD를 넘어섰다. 그녀의 최고 세계 랭킹은 단식과 복식 모두 4위였다.
연말 세계 랭킹은 다음과 같다.
- 1990년: 4위
- 1991년: 8위
- 1992년: 6위
- 1993년: 7위
- 1995년: 8위
- 1997년: 10위
6. 그랜드 슬램 주요 성적
메리 조이 페르난데스는 그랜드 슬램 대회에서 단식 3회 준우승, 복식 2회 우승을 포함하여 인상적인 성적을 거두었다.
6.1. 단식 결승
페르난데스는 그랜드 슬램 단식 결승에 세 차례 진출했으나, 모두 준우승에 머물렀다.
결과 | 연도 | 대회 | 표면 | 상대 | 점수 |
---|---|---|---|---|---|
준우승 | 1990 | 호주 오픈 | 하드 | 슈테피 그라프 | 3-6, 4-6 |
준우승 | 1992 | 호주 오픈 | 하드 | 모니카 셀레스 | 2-6, 3-6 |
준우승 | 1993 | 프랑스 오픈 | 클레이 | 슈테피 그라프 | 6-4, 2-6, 4-6 |
6.2. 복식 결승
페르난데스는 그랜드 슬램 복식에서 두 차례 우승하고 다섯 차례 준우승했다.
결과 | 연도 | 대회 | 표면 | 파트너 | 상대 | 점수 |
---|---|---|---|---|---|---|
준우승 | 1989 | US 오픈 | 하드 | 팸 슈라이버 | 하나 만들리코바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 | 7-5, 4-6, 4-6 |
준우승 | 1990 | 호주 오픈 | 하드 | 패티 펜딕 | 야나 노보트나 헬레나 수코바 | 6-7(5-7), 6-7(6-8) |
우승 | 1991 | 호주 오픈 | 하드 | 패티 펜딕 | 지지 페르난데스 야나 노보트나 | 7-6(7-4), 6-1 |
준우승 | 1992 | 호주 오픈 | 하드 | 지나 개리슨 | 아란차 산체스 비카리오 헬레나 수코바 | 4-6, 6-7(4-7) |
준우승 | 1996 | 호주 오픈 | 하드 | 린제이 대븐포트 | 찬다 루빈 아란차 산체스 비카리오 | 5-7, 6-2, 4-6 |
우승 | 1996 | 프랑스 오픈 | 클레이 | 린제이 대븐포트 | 지지 페르난데스 나타샤 즈베레바 | 6-2, 6-1 |
준우승 | 1997 | 프랑스 오픈 | 클레이 | 리사 레이먼드 | 지지 페르난데스 나타샤 즈베레바 | 2-6, 3-6 |
7. 평가
메리 조이 페르난데스는 테니스계에서 꾸준하고 다재다능한 선수로 평가받는다. 그녀는 단식과 복식 모두에서 세계 랭킹 4위를 기록하며 정상급 기량을 유지했고, 특히 올림픽에서 두 차례 금메달을 획득하며 미국을 대표하는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7.1. 긍정적 평가
페르난데스는 1990년대 여자 테니스의 강자들 사이에서 꾸준히 상위권에 머물렀던 선수로 평가된다. 그녀의 복식 실력은 특히 뛰어나 그랜드 슬램 복식 타이틀 2회 우승과 올림픽 복식 금메달 2회 획득이라는 빛나는 업적으로 증명되었다. 그녀는 패티 펜딕, 린제이 대븐포트, 지지 페르난데스 등 다양한 파트너와 성공적인 호흡을 보여주며 복식 전문 선수로서의 역량을 입증했다. 또한 페더레이션컵 우승 팀의 일원으로서 미국 팀에 기여한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7.2. 비판 및 논란
메리 조이 페르난데스의 경력에서 가장 아쉬운 점으로 꼽히는 것은 그랜드 슬램 단식 타이틀을 획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녀는 세 차례나 단식 결승에 진출했지만, 모두 슈테피 그라프나 모니카 셀레스와 같은 당대 최고의 선수들에게 패하며 우승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특히 1993년 프랑스 오픈 결승에서는 슈테피 그라프를 상대로 마지막 세트에서 우위를 점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역전패를 당해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가브리엘라 사바티니에게는 강한 면모를 보이며 '사바티니 킬러'로 불리기도 했지만, 슈테피 그라프와의 17번의 대결에서는 한 번도 승리하지 못했다는 점도 그녀의 경력에서 언급되는 부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