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리처드 케어 페틱 판크허스트(Richard Keir Pethick Pankhurst, Officer of the Order of the British EmpireOBE영어, 1927년 12월 3일 ~ 2017년 2월 16일)는 영국의 저명한 학자이자 에티오피아 연구소의 설립 멤버이며,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베바 대학교의 전직 교수였다. 그는 에티오피아의 경제사와 사회문화 연구 분야에서 깊이 있는 연구로 잘 알려져 있다. 특히 학술 저널에서 그의 저서 『에티오피아인들 (The Ethiopians)』은 에드워드 울렌도르프(Edward Ullendorff)로부터 "에티오피아 연구에 대한 그의 놀라운 근면함과 노력"을 증명하는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판크허스트는 에티오피아 역사와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수많은 저서와 논문을 출판하며 이 분야의 지식을 확장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의 가족은 사회 운동가로서의 유산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그의 학문적 경력과 에티오피아 문화유산 보호를 위한 사회 운동에 영향을 미쳤다. 그는 2004년 대영 제국 훈장 Officer of the Order of the British EmpireOBE영어를 수훈하며 에티오피아 연구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2. 어린 시절과 교육
리처드 판크허스트는 1927년 12월 3일 영국 우드퍼드 그린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린 시절과 교육 과정은 그의 학문적, 사회적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우드퍼드의 뱅크로프트 스쿨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이후 런던 정치경제대학교에서 경제사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당시 그의 박사 학위 논문 지도 교수는 해럴드 래스키였다.
2.1. 가족 배경
리처드 판크허스트의 가족 배경은 영국의 사회 운동사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그의 어머니는 좌익 공산주의자이자 전직 서프러제트였던 실비아 판크허스트이며, 아버지는 이탈리아의 아나키스트 실비오 코리오이다. 외조부모는 저명한 서프러제트 에멀린 판크허스트와 정치인이자 변호사였던 리처드 판크허스트이다.
그의 어머니 실비아 판크허스트는 1935년 제2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 이후 에티오피아의 문화와 독립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활동가였다. 리처드는 어린 시절부터 많은 에티오피아 난민들을 알게 되면서 에티오피아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 실비아는 에티오피아 제국의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 1세의 친구였으며, 1955년에는 『에티오피아, 문화사 (Ethiopia, a Cultural History)』를 출판하기도 했다. 이러한 가족의 사회적, 정치적 활동 유산은 리처드 판크허스트의 학문적 방향과 에티오피아에 대한 헌신에 큰 영향을 미쳤다.
3. 에티오피아에서의 경력
1956년, 리처드 판크허스트는 어머니 실비아와 함께 에티오피아로 이주하며 그곳에서 전문 경력을 시작했다. 그는 아디스아베바 대학교에서 근무를 시작하며 에티오피아 연구 분야의 핵심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3.1. 에티오피아 연구소 설립 및 운영
1962년, 리처드 판크허스트는 에티오피아 연구소의 설립 이사로 임명되며 에티오피아 학술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그는 이 연구소의 설립과 운영에 깊이 관여하며 에티오피아 연구의 기반을 다지는 데 기여했다.
3.2. 학술 활동 및 출판
그의 연구 관심사는 에티오피아의 경제사와 사회문화 연구에 집중되었다. 그는 에티오피아 연구소의 학술지인 『에티오피아 연구 저널 (Journal of Ethiopian Studies)』과 『에티오피아 옵저버 (Ethiopia Observer)』를 편집하며 에티오피아 관련 학술 출판물 발전에 기여했다. 그는 에티오피아 역사에 관한 광범위한 주제에 대해 수많은 책과 논문을 발표했다.
4. 영국에서의 후기 경력 및 귀환
1976년, 하일레 셀라시에 1세의 사망과 에티오피아 내전의 발발 이후, 리처드 판크허스트는 에티오피아 연구소와 아디스아베바 대학교 교수직을 떠나 영국으로 돌아왔다.
영국으로 돌아온 그는 런던 대학교 동양 아프리카 연구 학원과 런던 정치경제대학교의 연구원으로 활동했으며, 이후 왕립 아시아 학회에서 사서로 근무했다. 1986년, 그는 다시 에티오피아로 돌아와 에티오피아 연구소에서 연구 활동을 재개하며 에티오피아 역사에 대한 깊이 있는 학술 작업을 이어갔다.
5. 주요 업적 및 활동
리처드 판크허스트는 에티오피아의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반환하는 데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그의 주요 업적 중 하나는 악숨 오벨리스크의 에티오피아 반환 캠페인을 주도한 것이다.
5.1. 악숨 오벨리스크 반환 캠페인
판크허스트는 1937년 이탈리아가 에티오피아에서 약탈해간 악숨 오벨리스크를 에티오피아로 반환하기 위한 캠페인을 헌신적으로 이끌었다. 그의 끊임없는 노력 덕분에 오벨리스크는 2008년 에티오피아 악숨에 성공적으로 재설치되었다. 이 캠페인에서의 그의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북미 티그라이인 연합으로부터 에티오피아의 명예 칭호인 "데자즈마치 벤키루 (Dejazmach Benkirew)"를 수여받았다. 또한, 그는 에티오피아 연구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4년 영국 국왕 생일 포상에서 대영 제국 훈장 Officer of the Order of the British EmpireOBE영어를 수훈했다.
6. 개인적인 삶
리처드 판크허스트는 1957년 리타 엘든과 결혼했으며, 슬하에 딸 헬렌 판크허스트와 아들 알룰라 판크허스트를 두었다. 그는 아들 알룰라와 함께 최소 한 권의 책을 공동으로 집필하기도 했다.
그는 에티오피아에 관한 수많은 저서 외에도, 어머니 실비아 판크허스트에 대한 책들을 집필했다. 대표작으로는 『실비아 판크허스트: 예술가이자 십자군 (Sylvia Pankhurst: Artist and Crusader)』과 『실비아 판크허스트: 에티오피아를 위한 조언자 (Sylvia Pankhurst: Counsel for Ethiopia)』가 있다.
7. 사망과 유산
리처드 판크허스트는 2017년 2월 16일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베바에서 8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의 사망 소식에 에티오피아는 깊은 애도를 표했다.
그는 2017년 2월 21일 아디스아베바에 위치한 성 삼위일체 대성당에 안장되었다.
7.1. 평가 및 인정
에티오피아의 외무장관 워르크네 게베예후는 그를 "에티오피아의 가장 위대한 친구 중 한 명"이라고 묘사하며 그의 공헌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에티오피아 문화와 역사에 대한 깊은 이해와 헌신으로 에티오피아인들에게 큰 존경을 받았다.
그는 2004년 에티오피아 연구에 대한 공로로 대영 제국 훈장 OBE영어를 수훈했으며, 악숨 오벨리스크 반환 캠페인에서의 노력으로 북미 티그라이인 연합으로부터 명예 칭호인 "데자즈마치 벤키루"를 받기도 했다. 이러한 공식적인 인정과 찬사는 그가 에티오피아 학술 및 문화 분야에 미친 지대한 영향을 보여준다.
8. 영향력
리처드 판크허스트의 학문은 에티오피아 연구 분야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 그의 경제사 및 사회문화 연구는 에티오피아의 과거와 현재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기초 자료가 되었다. 특히 에드워드 울렌도르프는 그의 저서 『에티오피아인들』을 통해 판크허스트의 "놀라운 근면함과 노력"이 에티오피아 연구에 크게 기여했음을 강조했다.
그의 방대한 저술과 편집 활동은 에티오피아 학술 커뮤니티의 성장에 기여했으며, 후대 연구자들에게도 지속적인 영감을 주었다. 그는 에티오피아의 역사, 문화, 사회에 대한 학술적 관심을 증진시키고, 국제적으로 에티오피아 연구의 중요성을 알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의 유산은 에티오피아의 문화유산을 보호하고 재조명하려는 노력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