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Overview
루차노 파베로(Luciano Favero이탈리아어, 1957년 10월 11일 출생)는 이탈리아의 전직 축구 선수로, 주로 수비수로 활약했다. 그는 현역 시절 뛰어난 수비력과 다재다능함, 그리고 강력한 신체적 능력을 바탕으로 팀의 후방을 든든하게 지켰다. 특히 유벤투스에서 5시즌 동안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유러피언컵, 인터콘티넨털컵, UEFA 슈퍼컵, 세리에 A 우승 등 수많은 영광을 함께 했다. '공장 노동자'라는 별명을 얻으며 성실한 플레이 스타일과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한 배경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이는 단순히 뛰어난 선수였을 뿐만 아니라, 끈기와 노력으로 성공을 이뤄낸 인물로서 그의 삶을 조명하는 데 중요한 부분이다.
2. Early Life and Personal Background
루차노 파베로는 1957년 10월 11일, 이탈리아 베네토주 산타마리아디살라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코라도라는 이름의 농부였고, 어머니 비앙카와 함께 산타 마리아 디 살라 시골 지역에서 메차드리아(mezzadria이탈리아어, 이탈리아의 소작제도) 방식으로 농사를 지으며 6남매 중 한 명으로 자랐다. 어린 시절, 그는 테르차 카테고리아의 페니체 카셀레에서 축구를 병행하면서 미라네세 지역의 공장에서 금속 노동자로 일했다. 15세가 되던 해, 그는 프로모치오네 소속의 노알레로 이적하며 본격적인 축구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그의 별명인 로페라이오(l'operaio이탈리아어, '공장 노동자'라는 뜻의 이탈리아어)는 바로 이렇게 젊은 시절 공장에서 일했던 경험에서 유래했다.
3. Playing Career
루차노 파베로는 1975년부터 1991년까지 16년 동안 프로 축구 선수로 활약하며 여러 이탈리아 클럽들을 거쳤다. 그의 선수 경력은 초기 클럽에서의 성장부터 유벤투스에서의 전성기, 그리고 은퇴까지의 여정으로 나뉜다.
3.1. Club Career
루차노 파베로는 다양한 클럽에서 뛰며 수비수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각 클럽에서의 역할과 기여를 통해 그는 꾸준히 성장하며 이탈리아 축구계에서 중요한 수비수로 자리매김했다.
3.1.1. Early Clubs
유벤투스 입단 전, 루차노 파베로는 여러 클럽에서 초기 프로 경험을 쌓고 기량을 발전시켰다.
클럽 | 활동 기간 | 출전 수 | 득점 수 |
---|---|---|---|
밀라네세 | 1975-1976 | 31 | 0 |
메시나 | 1976-1977 | 37 | 1 |
살레르니타나 | 1977-1978 | 17 | 0 |
시라쿠사 | 1978-1980 | 67 | 3 |
리미니 | 1980-1981 | 38 | 0 |
아벨리노 | 1981-1984 | 78 | 0 |
3.1.2. Juventus F.C.
1984년 여름, 루차노 파베로는 아벨리노에서 라치오로의 이적이 유력했으나, 극적으로 유벤투스로 이적하게 되었다. 그는 유벤투스에 막 피오렌티나로 이적한 전설적인 수비수 클라우디오 젠틸레를 대체할 선수로 영입되었다. 유벤투스에서 1984년부터 1989년까지 5시즌 동안 활약하며 총 133경기에 출전하여 2골을 기록했으며, 모든 대회를 통틀어 200경기 이상을 뛰었다. 그는 이 기간 동안 안토니오 카브리니와 가에타노 시레아와 함께 유벤투스의 강력한 수비진을 구축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1985년에는 유러피언컵 우승을 차지했고, 그 외에도 1985-86 시즌 세리에 A 우승, 인터콘티넨털컵, 그리고 유러피언 슈퍼컵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3.1.3. Later Career and Retirement
유벤투스를 떠난 후, 루차노 파베로는 엘라스 베로나로 이적하여 1989년부터 1991년까지 2시즌 동안 활약했다. 베로나에서 그는 65경기에 출전하여 0골을 기록했다. 1990-91 시즌을 끝으로 엘라스 베로나에서 프로 선수 경력을 마감하고 은퇴했다.
3.2. International Career
루차노 파베로는 클럽 수준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벤투스의 동료 수비수 세르조 브리오와 마찬가지로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공식 경기에 출전할 기회를 잡지 못했다. 이는 그의 뛰어난 클럽 활약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으로 남는 부분이다.
4. Style of Play and Nickname
루차노 파베로는 다재다능하고 전술적으로 지능적이며 꾸준함을 유지하는 수비수였다. 그는 뛰어난 대인 방어 능력을 갖추고 있었고, 후방 라인의 어느 위치에서든 플레이할 수 있었다. 여기에는 오른쪽 또는 왼쪽 풀백과 센터백이 포함되었으며, 대인 방어 또는 지역 방어 시스템 모두에서 효과적이었다. 그는 주로 클라우디오 젠틸레가 유벤투스를 떠난 후 그 자리를 대체하며 라이트백으로 기용되거나, 맨 마킹 센터백 혹은 '스토퍼' 역할을 수행했다. 그의 강한 태클과 피지컬 위주의 플레이 스타일 때문에 처음에는 기술적으로 투박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좋은 기술과 공격적인 본능, 득점 감각 덕분에 가에타노 시레아가 없을 때에는 리베로 또는 스위퍼 역할까지 소화할 수 있었다. 파베로는 또한 그의 강인한 힘, 뛰어난 예측 능력, 공중볼 장악력, 그리고 강력한 신체적 특성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선수 생활 내내 언론으로부터 로페라이오(l'operaio이탈리아어, "공장 노동자"라는 뜻의 이탈리아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 별명은 그가 어린 시절 테르차 카테고리아의 페니체 카셀레에서 축구를 하던 동시에 미라네세 공장에서 금속 노동자로 일했던 배경에서 비롯되었다. 이 외에도 그는 인상적인 콧수염으로도 잘 알려져 있었다.
5. Life After Retirement
축구계에서 은퇴한 후 루차노 파베로는 다양한 활동을 했지만, 순탄치 않은 길을 걷기도 했다. 그는 아벨리노와 유벤투스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골키퍼 스테파노 타코니와 절친한 친구였으나, 2000년대에 후원 문제로 인해 둘 사이에 갈등이 생기기도 했다. 타코니는 파베로를 상대로 법적 조치를 취해 소송에서 승소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파베로는 2022년 일 코리에레 델 베네토(Il Corriere del Veneto이탈리아어)와의 인터뷰에서 두 사람이 오해를 풀었다고 밝혔다. 축구 은퇴 후 그는 몇몇 투자에서 실패를 겪기도 했다. 이후 파베로는 골프에 대한 열정 때문에 집 근처의 골프 클럽에서 캐디로 일했다. 이러한 그의 은퇴 후 삶은 화려한 스타의 이미지보다는 평범한 시민의 삶에 더 가까웠으며, 이는 그의 '공장 노동자'라는 별명과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6. Honours
루차노 파베로는 그의 축구 경력 동안 다음과 같은 단체 및 개인 타이틀을 획득했다.
6.1. Club Honours
루차노 파베로가 소속 클럽에서 획득한 주요 우승 기록은 다음과 같다.
- 시라쿠사
- 코파 이탈리아 세리에 C: 1978-79
- 유벤투스
- 세리에 A: 1985-86
- 유러피언 슈퍼컵: 1984
- 유러피언컵: 1984-85
- 인터콘티넨털컵: 19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