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Overview
루슬란 카라예프는 러시아의 오세트계 킥복싱 선수로, 1983년 5월 19일 오르조니키제(현재 블라디카프카스)에서 태어났다. 그는 아마추어 시절 '헌터 RU'라는 별명으로 활동하며 167전 159승 8패 125KO라는 뛰어난 전적을 기록했고, 2003년에는 아마추어 킥복싱 유럽 선수권 대회와 WAKO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 챔피언에 올랐다. 프로 데뷔 후에는 '러시아의 속사포'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K-1 무대에서 활약했다.
카라예프는 K-1 월드 그랑프리 2005 라스베이거스 II 대회와 K-1 월드 그랑프리 2008 타이베이 대회의 챔피언이며, 골든 글로리 소속으로 코어 헤머스의 지도를 받았다. 그는 뛰어난 스피드와 강력한 연타, 백핸드 블로우, 백킥, 백스핀킥을 주특기로 하는 공격적인 파이팅 스타일로 팬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특히 마사토는 그의 스피드를 "미들급 선수보다 빠르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공격 일변도의 스타일로 인해 디펜스가 약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으며, 잦은 실신 KO패와 부상으로 인한 경기 불참도 그의 커리어에 어려움을 안겨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니가와 사다하루 K-1 이벤트 프로듀서는 그를 "바다 하리와 함께 차세대 스타"로 평가하며 앤디 훅과 같은 위상을 기대했다.
2. Early life and background
루슬란 카라예프는 그의 고향과 개인적인 배경에서 비롯된 독특한 특징들을 지니고 있다. 그의 격투 스타일은 이러한 배경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2.1. Birth and personal details
루슬란 카라예프는 1983년 5월 19일에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북오세티야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오르조니키제(현재의 블라디카프카스)에서 태어났다. 그는 오세트인 혈통을 가지고 있으며, 그의 사촌 중에는 종합격투기 선수인 알란 카라예프가 있다.
2.2. Fighting style and characteristics
카라예프는 아마추어 시절 '헌터 RU'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K-1 무대에 진출한 후에는 '러시아의 속사포' (ロシアの速射砲로시아노 소쿠샤호일본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의 격투 스타일은 공격 일변도의 저돌적인 파이팅을 특징으로 한다. 특히 그는 헤비급 선수라고는 믿기지 않는 빠른 스피드와 함께 초고속 연타, 백핸드 블로우, 백스핀킥, 백킥 등을 주특기로 삼았다. 이 중 백스핀킥은 태권도 가문의 트레이너에게 훈련받아 더욱 연마된 기술이다. K-1의 전설적인 미들급 챔피언 마사토는 그를 평가하며 "미들급 선수보다 빠르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의 가장 큰 장점은 압도적인 공격력이었지만, 공격에 치중하는 스타일로 인해 디펜스가 약하다는 고질적인 단점을 지니고 있었다. 이로 인해 그는 경기 도중 상대의 카운터에 걸려들어 실신 KO패를 당하는 경우가 잦았으며, 이는 그의 커리어에 큰 오점으로 남았다.
개인적으로는 일본어, 영어, 오세트어, 러시아어의 4개 국어를 구사할 수 있다. 오세트어가 그의 모국어이며, 공식 인터뷰에서는 정확한 뉘앙스 전달을 위해 주로 러시아어를 사용하지만, 때로는 영어로 코멘트하기도 했다. 또한 일본어 질문에도 어느 정도 이해하고 답변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는 K-1을 게임으로 접하게 되었으며, 게임 캐릭터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카라예프는 강력하고 화려한 파이팅 스타일뿐만 아니라 준수한 외모로 인해 여성 팬들에게도 큰 인기를 얻었다. 당시 K-1 이벤트 프로듀서였던 타니가와 사다하루는 그를 "바다 하리와 함께 차세대 스타"로 지목하며, 앤디 훅과 같은 반열에 오르기를 기대하는 등 높은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다.
3. Amateur career
루슬란 카라예프는 프로 데뷔 이전 아마추어 킥복싱 무대에서 인상적인 전적을 남겼다. 그는 167번의 아마추어 경기에 출전하여 159승 8패라는 뛰어난 성적을 기록했으며, 이 중 125승을 KO로 장식하며 압도적인 파괴력을 보여주었다.
그의 아마추어 시절 주요 성과와 타이틀은 다음과 같다.
- 2002년 아마추어 킥복싱 유럽 선수권 대회 준우승
- 2003년 아마추어 킥복싱 유럽 선수권 대회 우승 (금메달)
- 2003년 WAKO 세계 아마추어 킥복싱 선수권 대회 (파리) 풀컨택트 남자 시니어 부문 91 kg 미만급 우승 (금메달)
이러한 아마추어 시절의 성공은 그가 프로 무대에 데뷔하기 전부터 '헌터 RU'라는 별명을 얻게 된 배경이 되었으며, 그의 뛰어난 재능과 잠재력을 입증했다. 2004년에는 지인인 코미디언 폴 마키의 소개로 일본에 거주하며 마루프로 짐을 훈련 거점으로 삼았고, 이하라 도장으로 자주 출장 훈련을 나가며 기량을 갈고 닦았다.
4. Professional kickboxing career
루슬란 카라예프는 프로 킥복서로서 K-1 무대에서 활동하며 파란만장한 커리어를 보냈다. 그는 골든 글로리 소속으로 코어 헤머스의 지도를 받았다.
4.1. K-1 debut and early success (2005)
2005년은 루슬란 카라예프에게 프로 킥복싱 선수로서 큰 성공을 가져다준 해였다.
- 2005년 6월 14일, K-1 월드 그랑프리 2005 히로시마 대회에서 아마추어 최강자라는 기대를 받으며 K-1 무대에 데뷔했다. 그러나 레이 세포와의 경기에서 1라운드 시작 37초 만에 두 번의 다운을 허용하며 TKO패를 당해 아쉬운 첫선을 보였다.
- 2005년 8월 13일, K-1 월드 그랑프리 2005 라스베이거스 II에서 열린 세계 최종 예선 토너먼트에 거의 무명 선수로 출전했다.
- 8강전에서는 프레디 케마요를 상대로 1라운드 1분 39초 만에 스피닝 백킥으로 몸통에 명중시키며 KO승을 거두었다.
- 준결승전에서는 무에타이 스타일의 아젬 막수타이와 대결하여 만장일치 판정승을 거두었는데, 이 경기는 훗날 K-1 역사상 가장 위대한 경기 중 하나로 평가받았다.
- 결승전에서는 미국의 스캇 라이티를 만장일치 판정으로 꺾고 토너먼트 챔피언에 올랐다. 이 우승 후 카라예프는 같은 해 4월 자살한 폴 마키를 추모하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 2005년 9월 23일, 일본 오사카 돔에서 열린 K-1 월드 그랑프리 2005 개막전에서 다리 부상으로 불참한 4회 월드 챔피언 어네스트 후스트의 대체 선수인 스웨덴의 리카르도 노르드스트란드와 맞붙어 만장일치 판정승을 거두며 첫 K-1 월드 그랑프리 파이널 본선 진출권을 획득했다.
- 2005년 11월 19일, 도쿄 돔에서 열린 K-1 월드 그랑프리 2005 결승전 8강에서는 무사시와 대결했다. 카라예프는 4라운드 내내 무사시보다 많은 유효타를 기록했지만, 연장 라운드 끝에 만장일치 판정패를 당했다. 그는 경기 후 "무사시 선수를 상대로는 녹다운이나 녹아웃을 시키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언급했다.
4.2. Challenges and setbacks (2006-2007)
2006년 이후 루슬란 카라예프는 선수 생활에서 여러 어려움과 좌절을 겪었다.
- 2006년 4월 29일, K-1 월드 그랑프리 2006 라스베이거스 대회에서 스테판 레코를 상대로 두 번의 다운을 빼앗으며 만장일치 판정승을 거두었다.
- 2006년 6월 3일, 대한민국 서울에서 열린 K-1 월드 그랑프리 2006 서울 대회에서 레이 세포와 재대결했다. 1라운드 초반에는 빠른 킥 기술을 선보였으나, 중반에 카운터성 부메랑 훅을 맞고 실신 KO패를 당하며 설욕에 실패했다.
- 2006년 8월 12일, K-1 월드 그랑프리 2006 라스베이거스 II에서 듀이 쿠퍼를 만장일치 판정으로 꺾으며 승리했다. 하지만 쿠퍼의 반격에 순간적으로 뒷걸음질 치는 모습도 보여, 타니가와 사다하루 K-1 이벤트 프로듀서로부터 "가드 훈련을 하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 2006년 9월 30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K-1 월드 그랑프리 2006 개막전에서 바다 하리와 대결했다. 1라운드 52초 만에 강력한 오른손 펀치로 KO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하리는 쓰러진 후에도 킥을 맞았다며 격렬하게 항의했지만 판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카라예프는 이에 대해 "무릎이 바닥에 닿기 전에 찼으니 반칙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 2006년 12월 2일, 도쿄에서 열린 K-1 월드 그랑프리 2006 결승전 8강에서 글라우베 페이토자와 맞붙었다. 스피드를 활용하여 맞섰으나, 페이토자의 독특한 궤적을 그리는 브라질리언 킥을 맞고 휘청거렸고, 이어지는 러시에 스탠딩 다운을 당했다. 10카운트 내에 파이팅 포즈를 취하지 못했고 눈의 초점도 맞지 않아 1라운드 1분 11초 만에 심판이 경기를 중단시키며 TKO패를 당했다. 이 경기를 통해 이전부터 지적되어 오던 그의 디펜스 약점이 다시 한번 여실히 드러났다.
- 2007년 3월 4일,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K-1 월드 그랑프리 요코하마 대회에서 이전 경기에서 다소 개운치 않게 끝난 바다 하리와 초대 K-1 세계 헤비급 왕자 결정전에서 재대결했다. 2라운드에 특기인 연타로 선제 다운을 빼앗았으나, 그 직후 카운터성 오른손 스트레이트를 맞고 처절한 역전 실신 KO패를 당했다. 그러나 두 선수는 역사에 남을 명승부를 펼쳤고, 경기 후 관객들로부터 기립 박수를 받았다. 카라예프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경기 전날 인플루엔자 때문에 39 °C의 고열이 있었고, 피로 때문에 가드가 내려갔다"고 언급했다. 이 경기에 대해 해설을 맡았던 마사토는 "두 선수 모두 미들급 선수보다 스피드가 빨랐다"고 평가했다.
- 2007년 6월 23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K-1 월드 그랑프리 2007 암스테르담 대회에서 멜빈 마누프와 대결했다. 바다 하리와의 명승부 이후 기대가 모아졌으나, 경기 시작 초반에 왼손 훅을 맞고 단 31초 만에 실신 KO패를 당했다.
- 2007년 9월 29일, 대한민국 서울에서 열린 K-1 월드 그랑프리 2007 파이널 16에 출전하여 제롬 르 밴너와 대결할 예정이었으나, 경기 며칠 전 겪은 교통사고로 인해 부상을 입어 출전이 불발되었다. 그의 대체 선수로 박용수가 출전하게 되었다.
4.3. Comeback and later career (2008-2010s)
2008년 이후 루슬란 카라예프는 부활의 조짐을 보였으나, 이후에도 여러 어려움에 직면하며 선수 생활 후반기를 보냈다.
- 2008년 3월 9일, 신일본 킥복싱 협회 '매그넘 16' 대회에서 아마다 히로미를 상대로 5번의 다운을 빼앗으며 KO승을 거두었다 (원래 스윈 카오와 대결 예정이었으나 변경됨). 이 경기 후 그는 네덜란드의 골든 글로리 짐에서 훈련을 시작했다.
- 2008년 7월 13일, 타이완 타이베이에서 열린 K-1 월드 그랑프리 2008 타이베이 토너먼트에 출전했다. 그는 1라운드에서 도미히라 다쓰후미를, 준결승에서 김영현을, 결승에서 알렉산드르 피츠쿠노프를 모두 KO로 꺾고 우승을 차지하며 화려한 부활을 알렸다. 이는 병든 어머니를 간병한 후의 복귀전이었다.
- 1라운드: 도미히라 다쓰후미를 3라운드 2분 20초 KO승 (왼손 훅, 2녹다운)으로 꺾었다.
- 준결승: 김영현을 1라운드 15초 TKO승 (닥터 스톱, 코뼈 골절)으로 꺾었다.
- 결승: 알렉산드르 피츠쿠노프를 1라운드 2분 3초 KO승 (왼손 훅)으로 꺾었다.
- 2008년 9월 27일, 대한민국 서울에서 열린 K-1 월드 그랑프리 2008 파이널 16에서 독일의 사업가이자 파이터인 할리드 아랍을 상대로 2라운드 2분 30초 KO승을 거두었다. 이 경기에서는 두 선수 모두 다운을 주고받는 접전이 펼쳐졌으며, 타니가와 프로듀서는 이를 "진정한 K-1 경기"라고 언급했다.
- 2008년 12월 6일,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K-1 월드 그랑프리 2008 결승전 8강에서 구칸 사키와 대결했다. 'K-1 최속왕 결정전'이라고 불린 이 경기에서 카라예프는 특기인 백 블로우로 다운을 빼앗겼고, 3라운드 판정패를 당하며 다시 한번 8강 문턱을 넘지 못했다.
- 2009년 3월 28일,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K-1 월드 그랑프리 2009 요코하마 대회에서 제2대 K-1 세계 헤비급 왕자 결정 토너먼트 1회전에서 구칸 사키와 재대결할 예정이었으나, 허리 통증으로 인해 출전하지 못했다.
- 2009년 9월 26일, 대한민국 서울에서 열린 K-1 월드 그랑프리 2009 파이널 16에서 제2대 K-1 세계 헤비급 왕자 교타로 (당시 후지모토 교타로)와 무제한급 계약으로 대결하여 판정승을 거두었다.
- 2009년 10월 17일, 골든 글로리 10주년 기념 대회 '글로리 11'에서 WFCA 세계 슈퍼 헤비급 왕자 결정전에서 헤스디 게르게스와 맞붙어 0-3 판정패를 당했다.
- 2009년 12월 5일, K-1 월드 그랑프리 2009 결승전 8강에서 바다 하리와 3차전 (러버 매치)을 치렀다. 이 경기에서 카라예프는 1라운드 38초 만에 2번의 다운을 빼앗기며 KO패를 당했다.
- 2010년 4월 3일, 일본 요코하마에서 개최된 K-1 월드 그랑프리 2010 요코하마 대회에서 제롬 르 밴너와 대결할 예정이었으나, 왼쪽 무릎 인대 부상으로 인해 출전하지 못했다. 이에 대해 타니가와 사다하루 K-1 이벤트 프로듀서는 "프로 선수로서 실격이다. 엄격한 대응을 해야 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 2010년 10월 2일, 대한민국 서울에서 개최된 K-1 월드 그랑프리 2010 파이널 16에서 타이론 스퐁과 대결할 예정이었으나, 컨디션 난조로 인해 출전이 취소되었다.
- 무릎 부상과 골든 글로리 짐과의 불화로 인해 3년간의 공백기를 가진 후, 루슬란 카라예프는 2013년 10월 몰도바 기반의 킹 오브 킹스(King of Kings) 프로모션과 계약하며 링 복귀를 발표했다.
5. Titles and achievements
루슬란 카라예프 선수는 프로 및 아마추어 경력 전반에 걸쳐 다양한 타이틀을 획득했다.
프로페셔널
- 2008년 K-1 월드 그랑프리 2008 타이베이 토너먼트 챔피언
- 2005년 K-1 월드 그랑프리 2005 라스베가스 II 토너먼트 챔피언
아마추어
- 2003년 W.A.K.O. 세계 선수권 대회 (파리) -91 kg (풀컨택트) 금메달
- 2003년 아마추어 킥복싱 유럽 선수권 대회 금메달
- 2002년 아마추어 킥복싱 유럽 토너먼트 준우승
6. Fight record
루슬란 카라예프 선수의 프로 킥복싱 경기 전적은 총 22전 13승 9패 (KO승 7회, TKO승 포함; KO패 6회, TKO패 포함)이다.
승패 | 상대 | 결과 | 내용 | 대회 | 개최지 | 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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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 | 바다 하리 | 1R 0:38 KO | (오른손 훅, 2녹다운) | K-1 월드 그랑프리 2009 결승전 8강 | 일본 요코하마 | 2009년 12월 5일 |
패 | 헤스디 게르게스 | 3R 종료 판정 0-3 | (만장일치 판정) | 얼티밋 글로리 11: 어 데케이드 오브 파이츠 (WFCA 세계 슈퍼 헤비급 왕자 결정전) |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 2009년 10월 17일 |
승 | 교타로 | 3R 종료 판정 3-0 | (만장일치 판정) | K-1 월드 그랑프리 2009 파이널 16 | 대한민국 서울 | 2009년 9월 26일 |
패 | 구칸 사키 | 3R 종료 판정 0-3 | (만장일치 판정) | K-1 월드 그랑프리 2008 결승전 8강 | 일본 요코하마 | 2008년 12월 6일 |
승 | 할리드 아랍 | 2R 2:30 KO | (심판 중단: 펀치 연타) | K-1 월드 그랑프리 2008 파이널 16 | 대한민국 서울 | 2008년 9월 27일 |
승 | 알렉산드르 피츠쿠노프 | 1R 2:03 KO | (왼손 훅) | K-1 월드 그랑프리 2008 타이베이 (ASIA GP 결승) | 타이완 타이베이시 | 2008년 7월 13일 |
승 | 김영현 | 1R 0:15 TKO | (닥터 스톱: 코뼈 골절) | K-1 월드 그랑프리 2008 타이베이 (ASIA GP 준결승) | 타이완 타이베이시 | 2008년 7월 13일 |
승 | 도미히라 다쓰후미 | 3R 2:20 KO | (왼손 훅, 2녹다운) | K-1 월드 그랑프리 2008 타이베이 (ASIA GP 1회전) | 타이완 타이베이시 | 2008년 7월 13일 |
승 | 아마다 히로미 | 3R 2:06 KO | (펀치) | 신일본 킥복싱 협회 매그넘 16 | 일본 도쿄 | 2008년 3월 9일 |
패 | 멜빈 마누프 | 1R 0:31 KO | (왼손 훅) | K-1 월드 그랑프리 2007 암스테르담 |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 2007년 6월 23일 |
패 | 바다 하리 | 2R 2:46 KO | (오른손 크로스) | K-1 월드 그랑프리 2007 요코하마 | 일본 요코하마 | 2007년 3월 4일 |
패 | 글라우베 페이토자 | 1R 1:11 TKO | (하이킥) | K-1 월드 그랑프리 2006 결승전 8강 | 일본 도쿄 | 2006년 12월 2일 |
승 | 바다 하리 | 1R 0:52 KO | (오른손 펀치) | K-1 월드 그랑프리 2006 오사카 개막전 | 일본 오사카 | 2006년 9월 30일 |
승 | 듀이 쿠퍼 | 3R 종료 판정 3-0 | (만장일치 판정) | K-1 월드 그랑프리 2006 라스베이거스 II | 미국 라스베이거스 | 2006년 8월 12일 |
패 | 레이 세포 | 1R 1:42 KO | (오른손 훅) | K-1 월드 그랑프리 2006 서울 | 대한민국 서울 | 2006년 6월 3일 |
승 | 슈테판 레코 | 3R 종료 판정 3-0 | (만장일치 판정) | K-1 월드 그랑프리 2006 라스베이거스 | 미국 라스베이거스 | 2006년 4월 29일 |
패 | 무사시 | 연장R 종료 판정 0-3 | (만장일치 판정) | K-1 월드 그랑프리 2005 | 일본 도쿄 | 2005년 11월 19일 |
승 | 리카르도 노르드스트란드 | 3R 종료 판정 3-0 | (만장일치 판정) | K-1 월드 그랑프리 2005 오사카 최종 예선 | 일본 오사카 | 2005년 9월 23일 |
승 | 스캇 라이티 | 3R 종료 판정 3-0 | (만장일치 판정) | K-1 월드 그랑프리 2005 라스베이거스 II | 미국 라스베이거스 | 2005년 8월 13일 |
승 | 아젬 막수타이 | 3R 종료 판정 3-0 | (만장일치 판정) | K-1 월드 그랑프리 2005 라스베이거스 II | 미국 라스베이거스 | 2005년 8월 13일 |
승 | 프레디 케마요 | 1R 1:39 KO | (스피닝 백 미들킥) | K-1 월드 그랑프리 2005 라스베이거스 II | 미국 라스베이거스 | 2005년 8월 13일 |
패 | 레이 세포 | 1R 0:37 TKO | (심판 중단) | K-1 월드 그랑프리 2005 히로시마 | 일본 히로시마 | 2005년 6월 14일 |
7. Public image and reception
루슬란 카라예프는 그의 파이팅 스타일과 개인적인 매력으로 대중과 격투기계로부터 다양한 평가를 받았다.
7.1. Popularity and positive evaluations
카라예프는 그의 강력함과 화려한 파이팅 스타일, 그리고 준수한 외모 덕분에 특히 여성 팬들 사이에서 높은 인기를 누렸다. 그의 경기는 항상 팬들에게 큰 기대를 안겨주었으며, 격투기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그의 잠재력은 높이 평가되었다. K-1 이벤트 프로듀서인 타니가와 사다하루는 그를 "바다 하리와 함께 K-1의 차세대 스타"로 언급하며, 전설적인 선수인 앤디 훅과 같은 반열에 오르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또한 마사토와 같은 동료 선수들도 그의 스피드를 "미들급 선수보다 빠르다"고 칭찬하며 그의 재능을 인정했다.
7.2. Criticisms and career challenges
루슬란 카라예프는 뛰어난 공격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파이팅 스타일에서 비롯된 몇 가지 약점과 경기 외적인 문제들로 인해 비판과 어려움에 직면하기도 했다. 가장 두드러진 비판은 그의 '디펜스 약점'이었다. 공격 일변도의 스타일로 인해 가드가 자주 허술해졌고, 이는 상대의 카운터에 취약해져 '잦은 실신 KO패'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듀이 쿠퍼와의 경기 후 타니가와 프로듀서는 그의 가드 훈련 부족을 지적하기도 했다.
또한, 잦은 부상과 컨디션 난조는 그의 선수 생활에 큰 걸림돌이 되었다. 2007년 제롬 르 밴너와의 경기를 앞두고는 교통사고로 출전하지 못했으며, 2007년 바다 하리와의 재대결에서는 경기 전 인플루엔자로 인한 고열과 피로가 패배의 원인 중 하나였다고 본인이 언급했다. 2009년 구칸 사키와의 재대결을 앞두고는 허리 통증으로 결장했고, 2010년 르 밴너와의 경기는 왼쪽 무릎 인대 부상으로 취소되었다. 같은 해 타이론 스퐁과의 경기도 컨디션 난조로 불참하는 등 빈번한 경기 불참은 팬들과 관계자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2010년 르 밴너와의 경기 불참 당시 타니가와 프로듀서는 "프로 선수로서 실격이다. 엄격한 대응을 해야 한다"고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이러한 문제들은 그의 꾸준한 활약을 방해하고, 잠재력에 비해 아쉬운 커리어로 남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8. External links
- [https://web.archive.org/web/20110103122534/http://www.k-1.co.jp/en/fighter/player.php?index=ruslan_karaev K-1 선수 프로필] (영어)
- [https://web.archive.org/web/20090408205439/http://www.k-1.co.jp/jp/fighter/player.php?index=ruslan_karaev K-1 선수 데이터] (일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