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루벤 우고 아얄라 사나브리아(Rubén Hugo Ayala Sanabria스페인어)는 1950년 1월 8일 아르헨티나 산타페주 움볼트에서 태어난 아르헨티나의 전 축구 선수이자 감독이다. 현역 시절 공격수로 활약했으며, 작은 키 때문에 '생쥐'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그는 아르헨티나의 CA 산 로렌소, 스페인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멕시코의 클루브 할리스코와 아틀란테 FC 등 여러 주요 축구 클럽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특히 산 로렌소에서는 무패 우승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는 라리가와 코파 델 레이 등 여러 타이틀을 획득하며 팀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은퇴 후에는 멕시코 리그의 여러 클럽에서 감독 및 코치로 활동하며 특히 CF 파추카의 리그 우승에 기여하는 등 지도자로서도 큰 족적을 남겼다. 그의 경력은 육체적 한계를 뛰어넘는 기술과 투지를 통해 축구계에 기여한 '인민의 선수'로서 평가받을 수 있다.
2. 유년 시절
루벤 우고 아얄라 사나브리아는 1950년 1월 8일 아르헨티나 산타페주 라스콜로니아스군의 움볼트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축구에 재능을 보였으며, 그의 작은 키는 선수로서의 별명인 '생쥐'(Ratón스페인어)의 유래가 되었다. 이 별명은 그의 민첩하고 재빠른 플레이 스타일과도 잘 어울렸다.
3. 선수 경력
루벤 아얄라는 아르헨티나와 스페인, 멕시코 리그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으며,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도 활약했다.
3.1. 클럽 경력
아얄라는 아르헨티나의 CA 산 로렌소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하여 1968년부터 1973년까지 활약했다. 그는 이 기간 동안 123경기에 출전하여 47골을 기록했으며, 특히 1972년에는 메트로폴리타노 토너먼트와 나시오날 챔피언십에서 팀의 우승을 이끄는 핵심 선수였다. 또한, 1970년 코파 아르헨티나에서는 5골로 득점왕을 차지하기도 했다.
1973년, 아얄라는 스페인의 명문 클럽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하여 10월 12일 RCD 에스파뇰과의 경기에서 라리가 데뷔전을 치렀다. 그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1979년까지 약 6시즌 동안 활약하며 총 214번의 공식 경기에 출전하여 58골을 기록했다. 이 기간 동안 팀은 1973-74 유러피언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는데, 아얄라는 FC 바이에른 뮌헨과의 결승전에 경고 누적으로 출전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겪었다. 하지만 그는 1974년 인터콘티넨털컵, 1975-76 코파 델 레이, 1976-77 라리가 우승을 경험하며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성공에 크게 기여했다.
1979년, 아얄라는 멕시코 리그로 옮겨 클루브 할리스코에서 1980년까지 1시즌 동안 29경기에 출전하여 16골을 기록했다. 이후 아틀란테 FC로 이적하여 1980년부터 1984년까지 3시즌 동안 135경기에 출전하여 29골을 기록하며 선수 경력을 마무리했다. 아틀란테 소속으로 1983년 CONCACAF 챔피언스컵 우승과 1981-82 멕시코 프리메라 디비시온 준우승을 달성했다.
클럽 | 시즌 | 리그전 | 컵대회 | UEFA | 총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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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비전 | 경기 | 득점 | 경기 | 득점 | 경기 | 득점 | 출장 | 득점 | ||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 1973-74 | 라리가 | 21 | 5 | 0 | 0 | 4 | 1 | 25 | 6 |
1974-75 | 30 | 5 | 0 | 0 | 5 | 3 | 35 | 8 | ||
1975-76 | 34 | 13 | 9 | 1 | 4 | 1 | 47 | 15 | ||
1976-77 | 34 | 13 | 1 | 1 | 8 | 4 | 43 | 18 | ||
1977-78 | 24 | 4 | 4 | 0 | 6 | 0 | 34 | 4 | ||
1978-79 | 24 | 4 | 3 | 2 | 0 | 0 | 27 | 6 | ||
1979-80 | 2 | 1 | 0 | 0 | 1 | 0 | 3 | 1 | ||
클럽 통산 | 169 | 45 | 17 | 4 | 28 | 9 | 214 | 58 |
3.2. 국가대표팀 경력
루벤 아얄라는 1969년 북한과의 친선 경기에서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에 데뷔했다. 그는 1969년부터 1974년까지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에서 총 25경기에 출전하여 11골을 기록했다. 특히 1974년 FIFA 월드컵에 참가하여 조별리그 6경기 전체에 출전했고, 아이티를 상대로 1골을 득점하는 등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도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4. 감독 경력
선수 은퇴 후, 루벤 아얄라는 멕시코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여러 축구 클럽에서 감독 및 코치로 활동하며 풍부한 경험을 쌓았다.
아얄라가 감독을 맡았던 주요 클럽은 다음과 같다:
- 코브라스 데 케레타로 (1986-1987)
- 탐피코 마데로 FC (1987-1988)
- 코브라스 데 시우다드 후아레스 (1988-1989)
- 코레카미노스 UAT (1992-1994)
- CF 파추카 (2000-2005)
특히 CF 파추카에서는 2000년부터 2005년까지 수석 코치로 재직하며 팀의 2001년 인비에르노 리그와 2003년 아페르투라 리그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이 외에도 그는 2005년과 2010년에 파추카의 임시 감독을 맡기도 했다.
유소년 축구 지도에도 열정을 보여 CF 파추카 유소년 팀(2007-2008, 2010-2011)과 우니베르시다드 데 풋볼 (2008-2010)에서 지도했다. 또한, 티타네스 데 투란싱고(2011-2012)와 무르시에라고스 FC(2012)의 감독을 역임했으며, 2013년부터 2019년까지 클루브 레온의 유소년 팀을 지도했고, 2017년에는 클루브 레온의 임시 감독으로도 활동했다.
5. 플레이 스타일 및 특징
루벤 아얄라는 신장 175 cm, 체중 71 kg의 비교적 작은 체구를 가진 공격수였다. 이러한 신체적 특징 때문에 그는 '생쥐'(Ratón스페인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의 플레이 스타일은 이 별명처럼 민첩하고 날카로웠으며, 빠른 발과 뛰어난 드리블 능력을 바탕으로 상대 수비를 허물고 득점 기회를 만들어내는 데 능했다. 주로 센터 포워드로 활약했으며, 오른발을 잘 사용했다. 그는 단순히 득점만 하는 공격수가 아니라, 동료 선수들과의 연계 플레이에도 능숙하여 팀 공격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그의 강한 정신력과 투지는 작은 체구를 극복하고 최고 수준의 무대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6. 수상
루벤 아얄라는 선수 경력 동안 클럽과 개인적으로 다양한 타이틀을 획득했다.
- CA 산 로렌소
- 메트로폴리타노: 1972년
- 나시오날: 1972년
-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 유러피언컵 준우승: 1973-74
- 인터콘티넨털컵: 1974년
- 코파 델 레이: 1975-76
- 라리가: 1976-77
- 아틀란테 FC
- CONCACAF 챔피언스컵: 1983년
- 프리메라 디비시온 준우승: 1981-82
- 개인 수상
- 코파 아르헨티나 득점왕: 1970년 (5골)
7. 유산
루벤 아얄라는 아르헨티나, 스페인, 멕시코 축구계에 걸쳐 깊은 인상을 남긴 인물이다. 그는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기술과 투지, 그리고 전술 이해도를 바탕으로 공격수로서 성공적인 경력을 보냈으며, 특히 CA 산 로렌소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황금기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해당 클럽 역사에 중요한 발자취를 남겼다. 그의 '생쥐'라는 별명은 단순히 신체적 특징을 넘어, 역경을 딛고 성공을 이룬 그의 상징이 되었다.
선수 은퇴 후에는 멕시코에서 30년 가까이 지도자 생활을 이어가며 후진 양성과 팀 재건에 기여했다. 특히 CF 파추카의 수석 코치로서 두 차례의 리그 우승에 기여한 것은 그의 뛰어난 지도력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그는 유소년 팀 지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멕시코 축구 발전에 지속적으로 이바지했다. 루벤 아얄라는 단순히 한 시대를 풍미한 선수로 기억되는 것을 넘어, 남미와 유럽, 북중미 축구의 가교 역할을 하며 각 지역 축구 문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인물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