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린 시절과 교육
로버트 키스 오리는 1970년 8월 25일 메릴랜드주 하퍼드 카운티에서 태어났다. 그 직후 그의 아버지 로버트 오리 시니어 중사는 어머니 레일라와 이혼하고 사우스캐롤라이나주로 이주했다. 오리는 앨라배마주 안달루시아에서 성장했다. 로버트 오리 시니어가 조지아주 포트 베닝에 주둔하게 되면서, 부자는 매주 만났다.
안달루시아 고등학교 재학 시절, 오리는 네이스미스 앨라배마 고등학교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며 학업과 농구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였다.
2. 대학 경력
오리는 앨라배마 대학교에 진학하여 윔 샌더슨 코치 밑에서 대학 농구를 했으며, 훗날 NBA 선수가 될 라트렐 스프레웰과 한 팀이었다.
앨라배마 대학에서 오리는 1988년부터 1992년까지 뛰었다. 그는 133경기 중 108경기에 선발 출전하여 팀이 3번의 SEC 토너먼트 우승을 차지하고 두 번의 NCAA 스위트 16 라운드에 진출하는 데 기여했다. 그의 4시즌 동안 앨라배마 대학은 98승 36패의 기록을 세웠다. 그는 282개의 블록 슛으로 학교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다. 그는 SEC 올-콘퍼런스 팀, SEC 올-디펜시브 팀, SEC 올-아카데믹 팀에 선정되었다. 몇 년 후, 오리는 학위를 마치기 위해 대학으로 돌아와 2021년 봄에 졸업했다.
3. 프로 경력
로버트 오리는 16시즌 동안 NBA에서 활약하며 '클러치 플레이어'로서 독특한 입지를 다졌고, 여러 팀에서 다수의 챔피언십 우승 기록을 세웠다.
3.1. 경력 개요
로버트 오리는 NBA에서 16시즌을 뛰며 총 7번의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한 선수로, 휴스턴 로키츠에서 2회,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에서 3회, 샌안토니오 스퍼스에서 2회 우승을 경험했다. 이는 1959년 이후 보스턴 셀틱스 소속이 아닌 선수 중 가장 많은 NBA 우승 기록이며, 세 개의 다른 팀에서 NBA 챔피언십을 우승한 단 네 명의 선수 중 한 명이라는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빅샷 롭'이라는 별명처럼 중요한 경기에서 결정적인 슛을 성공시키는 능력으로 명성을 얻었으며, 종종 "우승 청부인"(優勝請負人유쇼 우케이오닌일본어)으로 불렸다.
3.2. 휴스턴 로키츠 (1992-1996)
오리는 1992년 NBA 드래프트에서 휴스턴 로키츠에 1라운드 11순위로 스몰 포워드로 지명되며 프로 경력을 시작했다. 그는 로키츠에서 첫 4시즌을 보냈고, 1994년과 1995년 NBA 챔피언십 우승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로키츠에서 뛰는 동안 그는 등번호 25번을 달았다. 그는 NBA 파이널 한 경기에서 7개의 스틸을 기록하며 개인 최고 기록을 세웠다.
1993년 서부 콘퍼런스 준결승 시애틀 슈퍼소닉스와의 7차전에서, 그는 쿼터 종료 33초를 남기고 샷 클락이 끝날 무렵 하킴 올라주원의 패스를 받아 점프 슛을 성공시키며 로키츠를 93대91로 앞서게 했다. 그러나 로키츠는 연장전에서 패배하며 시리즈에서 탈락했다. 1994년 2월, 그와 매트 불라드는 션 엘리엇을 상대로 디트로이트 피스톤스로 트레이드될 예정이었으나, 엘리엇이 신장 문제로 신체검사에 통과하지 못해 트레이드는 취소되었다. 오리는 이 트레이드가 무산된 것이 자신의 경력을 살린 것이라고 말했다. 오리는 이후 로키츠 우승팀의 핵심 멤버가 되었고, 1995년 서부 콘퍼런스 파이널 1차전 샌안토니오 스퍼스를 상대로 6.5초를 남기고 역전 결승 점프 슛을 성공시키며 "빅샷" 명성을 쌓기 시작했다. 또한 1995년 NBA 파이널 3차전 올랜도 매직을 상대로는 14.1초를 남기고 3점 슛을 성공시켜 휴스턴이 104대100으로 앞서게 했고, 결국 106대103으로 승리했다. 로키츠는 이어서 4차전도 승리하며 두 번째 챔피언십을 차지했다.
오리는 자신의 7번의 챔피언십 우승 중, 로키츠가 서부 콘퍼런스 6번 시드였기 때문에 1995년 우승을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3.3. 피닉스 선즈 (1996-1997)
1996년 8월 19일, 오리는 샘 캐슬, 처키 브라운, 마크 브라이언트와 함께 찰스 바클리를 상대로 피닉스 선즈로 트레이드되었다. 오리는 휴스턴에서 슛을 충분히 던지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았고, 이것이 로키츠가 그를 트레이드하게 된 계기라고 느꼈다. 1997년 1월 5일, 그는 선즈의 코치 대니 에인지와 코트 위에서 언쟁을 벌였다. 그 경기에서 오리는 좋지 않은 플레이를 보였고, 막 교체되어 벤치로 들어오던 중이었다. 그는 에인지에게 다가가 그의 얼굴에 수건을 던졌다. 오리는 이 일로 선즈로부터 두 경기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았다. 선즈의 단장 제리 콜란젤로는 오리를 더 길게 정지시키고 싶어했지만, 당시 단체협약상 최대 두 경기까지만 가능했다.
3.4.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1997-2003)
오리는 1997년 1월 10일 세드릭 세발로스와 루메알 로빈슨을 상대로 조 클라인과 함께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로 트레이드되었다. 레이커스는 게일 구드리치를 기리기 위해 등번호 25번을 영구 결번했기 때문에, 오리는 등번호 5번을 달았다. 1997년 5월 6일, 그는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7개의 3점 슛을 연속으로 성공시키며 NBA 플레이오프 한 경기에서 무실책으로 가장 많은 3점 슛을 성공시킨 NBA 기록을 세웠다.
1999-2000 시즌 동안, 오리는 A.C. 그린의 백업으로 뛰었지만, 특히 플레이오프 동안 선발 선수들보다 벤치에서 더 많은 시간을 뛰었다. 2000년 NBA 파이널에서 인디애나 페이서스를 상대로 레이커스는 3차전까지 2대1로 앞서고 있었고, 4차전은 인디애나에서 열렸다. 경기는 연장전으로 이어졌다。 샤킬 오닐이 파울 아웃되었지만, 코비 브라이언트가 맹활약하여 레이커스의 승리를 확정 지었다. 오리는 37분 출전에 17득점을 기록하며 파이널 최고 기록을 세웠다. 레이커스는 2000년 NBA 파이널에서 6차전 만에 우승했다. 오리는 2000년 플레이오프 기간 동안 평균 7.6득점과 5.4리바운드를 기록했다.

2000-01 시즌에도 오리는 호레이스 그랜트의 백업으로 뛰었지만, 다시 한번 플레이오프에서 중요한 시간을 뛰었다. 그는 2001년 레이커스 플레이오프 16경기에 출전하여 평균 5.9득점을 기록했다. 2001년 NBA 파이널에서 레이커스는 1차전에서 패한 후 2차전에서 승리했다.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3차전에서 그는 15득점 중 12득점을 4쿼터에 올렸는데, 특히 4쿼터 종료 47.1초를 남기고 결정적인 3점 슛을 성공시켜 92대88로 앞서게 했다. 그는 이어서 마지막 21초 동안 4개의 자유투를 연속으로 성공시키며 레이커스의 96대91 승리를 확정 지었다. 4차전에서 오리는 레이커스 전체 3점 슛 10개 중 3개를 성공시키며 레이커스의 100대86 승리를 이끌었다. 레이커스는 5차전에서 108대96으로 승리하며 2연속 챔피언십을 확정 지었다. 그는 1995년 NBA 파이널 우승 다음으로 이 우승이 자신의 경력에서 두 번째로 자랑스러웠다고 말했다.
2001-02 시즌에는 사마키 워커의 백업 파워 포워드로 뛰며 단 23경기에만 선발 출전했다. 2002년 플레이오프에서 오리는 레이커스 19경기 중 14경기에 선발 출전했으며, 평균 37분을 뛰며 9.3득점과 8.1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오리는 2002년 서부 콘퍼런스 파이널 새크라멘토 킹스와의 4차전에서 클러치 플레이어로서의 명성을 확고히 했다. 시리즈 2대1로 뒤진 상황에서 5차전이 새크라멘토에서 열릴 예정인 가운데, 레이커스는 전반전에 최대 24점 차로 뒤지고 있었다. 결국 레이커스는 경기를 99대97로 줄였고, 11.8초가 남았다. 마지막 공격에서 코비 브라이언트와 샤킬 오닐이 연속해서 레이업을 놓치자, 새크라멘토의 센터 블라데 디바츠는 시간을 소진하기 위해 공을 바스켓에서 멀리 쳐냈다. 그러나 공은 오리에게 정확히 튀어 나갔고, 그는 시간이 끝날 무렵 3점 슛을 성공시켜 4차전을 100대99로 승리했다. 하루 뒤, 매직 존슨은 오리를 "리그 역사상 10대 클러치 플레이어 중 한 명"이라고 불렀다. 레이커스는 결국 7차전에서 시리즈를 승리했고, 2002 NBA 파이널에서 뉴저지 네츠를 4대0으로 스윕하며 3연패를 달성했다. 오리는 파이널 4경기 모두 선발 출전했다.
2003년 3월 5일, 인디애나 페이서스의 센터 저메인 오닐이 샤킬 오닐에게 가는 인사이드를 쳐냈고, 이 공은 넓게 열려 있던 오리에게 향했다. 오리는 그대로 게임 위닝 샷을 성공시켰다.
2003년 플레이오프에서 레이커스는 4연속 NBA 챔피언십 우승을 노리고 있었다. 서부 콘퍼런스 준결승 5차전 막판에 오리의 잠재적인 게임 위닝 샷이 림에 맞고 튕겨 나오면서, 레이커스의 25점 차 역전 시도는 무산되었다. 레이커스는 6차전에서 탈락했고, 오리는 이 시리즈 동안 3점 라인에서 18번의 시도 중 단 하나도 성공시키지 못했다.
3.5. 샌안토니오 스퍼스 (2003-2008)
2002-03 시즌이 끝난 후, 오리는 자유 계약 선수가 되었다. 그는 휴스턴에 살고 있는 가족에 대한 염려를 이유로 샌안토니오 스퍼스와 계약했다. 2002-03 시즌 동안 레이커스는 오리의 출전 시간을 경기당 거의 30분으로 늘렸다. 스퍼스에서는 그레그 포포비치 감독이 그의 출전 시간을 크게 줄였다. 2003-04 시즌에 스퍼스는 57승을 거두고 2004년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며, 멤피스 그리즐리스를 4경기 만에 스윕했지만,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에게 6차전에서 패배했다.

다음 시즌인 2004-05 시즌에 스퍼스는 2005년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오리는 3점 슛 성공률 38/85를 기록했다. 2005년 NBA 파이널 5차전에서, 그는 처음 세 쿼터에서 단 3득점만 기록했지만, 4쿼터와 연장전에서 스퍼스의 득점 중 21점을 올렸다. 스퍼스는 오리가 5.9초를 남기고 결승 3점 슛을 성공시킨 후 96대95로 5차전을 승리했다. ESPN 칼럼니스트 빌 시몬스는 "오리의 5차전 활약은 1998년 마이클 조던의 6차전, 1988년 제임스 워디의 7차전, 1970년 월트 프레이저의 7차전, 그리고 역대 다른 모든 클러치 파이널 활약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평했다.
2007년 플레이오프 동안 오리는 피닉스 선즈의 스티브 내쉬에게 거친 몸싸움을 가해 플래그런트 파울 판정을 받았다. 이어진 소동 중 라자 벨도 그에게 달려들어 기술 파울을 받았다. 오리는 경기에서 퇴장당했고 5차전과 6차전 출장 정지를 받았다. 벤치를 떠났던 아마레 스타더마이어와 보리스 디아우도 5차전 출장 정지를 받았다. 스퍼스는 이어진 두 경기를 승리하며 2007년 NBA 파이널에 진출했고,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를 스윕했다.
오리는 2006-07 시즌 이후 다시 등번호 25번을 달기 시작했다. 2007-08 시즌 이후 오리는 자유 계약 선수가 되었지만, 어떤 팀과도 계약하지 못하며 그의 마지막 프로 시즌이 되었다.
4. 플레이오프 클러치 샷
로버트 오리는 그의 경력 전반에 걸쳐 수많은 결정적인 슛으로 '빅샷 롭'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그의 가장 기억에 남는 클러치 플레이오프 슛은 다음과 같다.
- 1993년 5월 22일, 서부 콘퍼런스 준결승 7차전, 휴스턴 로키츠 대 시애틀 슈퍼소닉스: 4쿼터 후반 91대91 동점 상황에서, 샷 클락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신인 오리는 하킴 올라주원의 패스를 받아 미드레인지 점프 슛을 성공시키며 정규 시간 32.7초를 남기고 로키츠에 2점 리드를 안겼다. 그러나 오리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로키츠는 연장전에서 100대103으로 패배하며 시리즈에서 탈락했다.
- 1995년 5월 22일, 서부 콘퍼런스 파이널 1차전, 휴스턴 로키츠 대 샌안토니오 스퍼스: 오리는 6.5초를 남기고 점프 슛을 성공시켜 휴스턴이 샌안토니오에 94대93으로 승리하는 데 기여했다.
- 1995년 6월 11일, NBA 파이널 3차전, 올랜도 매직 대 휴스턴 로키츠: 로키츠가 20초를 남기고 101대100으로 앞선 상황에서, 샷 클락이 줄어들고 있었다. 하킴 올라주원은 호레이스 그랜트 위로 오리에게 공을 넘겼고, 오리는 14.1초를 남기고 3점 슛을 성공시켜 휴스턴에 104대100 리드를 안겼다. 이는 106대103 승리로 이어졌고, 시리즈 3대0 리드를 가져왔다. 휴스턴은 4차전도 113대101로 승리하며 스윕하고 2연속 NBA 타이틀을 획득했다。
- 2001년 6월 10일, NBA 파이널 3차전,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대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시리즈 1대1 동점 상황에서, 케빈 올리의 3점 플레이 후 식서스는 1분 미만을 남기고 89대88로 뒤지고 있었다. 브라이언 쇼는 코너에 넓게 열려 있던 오리를 발견했고, 오리는 47.1초를 남기고 3점 슛을 성공시켜 레이커스에 92대88 리드를 안겼다. 당시 플레이오프에서 44%의 자유투 성공률을 기록하고 있던 오리는 마지막 1분 동안 4개의 자유투를 모두 성공시켜 96대91 승리를 확정 지었다. 식서스는 이후 회복하지 못했다.
- 2002년 4월 28일, 서부 콘퍼런스 1라운드 3차전,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대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10.2초를 남기고 91대89로 뒤진 상황에서 코비 브라이언트가 루벤 패터슨을 제치고 돌파한 뒤 오리에게 공을 넘겼고, 오리는 2.1초를 남기고 결승 3점 슛을 성공시켰다.
- 2002년 5월 26일, 서부 콘퍼런스 파이널 4차전, 새크라멘토 킹스 대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킹스가 11.8초를 남기고 99대97로 앞서고 있었다. 코비 브라이언트가 동점 슛을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샤킬 오닐이 풋백을 시도했지만 역시 실패했다. 블라데 디바츠는 시간을 소진하기 위해 공을 바스켓에서 멀리 쳐냈지만, 공은 오리에게 정확히 향했고, 오리는 버저와 동시에 결승 3점 슛을 성공시켜 레이커스에 100대99 승리를 안기고 시리즈를 2대2 동점으로 만들었다. 레이커스는 결국 킹스를 7차전에서 꺾고 3연속 NBA 챔피언십을 차지했다.
- 2005년 6월 19일, NBA 파이널 5차전, 샌안토니오 스퍼스 대 디트로이트 피스톤스: 오리는 마누 지노빌리에게 인바운드 패스를 했고, 지노빌리는 두 명의 피스톤스 수비수에게 막혔다. 지노빌리는 공을 왼쪽 윙에 있던 오리에게 다시 패스했고, 오리는 5.9초를 남기고 3점 슛을 성공시켜 스퍼스에 96대95 승리를 안기고 시리즈를 3대2로 앞서게 했다. 오리는 4쿼터와 연장전을 합쳐 21점을 기록하며 스퍼스를 이끌었다.
- 2007년 4월 30일, 서부 콘퍼런스 1라운드 4차전, 샌안토니오 스퍼스 대 덴버 너기츠: 스퍼스가 35초를 남기고 90대89로 앞선 상황에서, 토니 파커가 페인트 존으로 돌파하여 수비수를 유인했고, 오리의 수비수였던 마커스 캠비도 끌어냈다. 파커는 열려 있던 오리에게 패스했고, 오리는 3점 슛을 성공시켜 스퍼스에 93대89 리드를 안겼다. 스퍼스는 96대89로 승리했다.
5. 기록과 수상
로버트 오리는 NBA 경력 동안 여러 중요한 기록과 수상 경력을 쌓았다.
- 은퇴 당시 그는 NBA 파이널 통산 3점 슛 성공 56개로 마이클 조던의 42개 기록을 넘어섰다. 다만, 2023년 NBA 파이널 이전에 5명의 선수가 그의 기록을 넘어섰다.
- 1997년 서부 콘퍼런스 준결승 유타 재즈와의 2차전에서 한 경기 3점 슛 성공 7개(7개 시도 모두 성공)로 NBA 플레이오프 한 경기에서 무실책으로 가장 많은 3점 슛을 성공시킨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 NBA 파이널 한 경기 최다 스틸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 한 시즌에 100개 이상의 스틸, 100개 이상의 블록, 100개 이상의 3점 슛을 동시에 기록한 최초의 선수이다. (스틸과 블록은 1973-74 시즌까지 기록되지 않았고, 3점 라인은 1979-80 시즌까지 도입되지 않았다.)
- 그는 세 번의 연장전까지 간 7차전 경기에 출전했다: 휴스턴 로키츠 소속이었던 1993년 서부 콘퍼런스 준결승,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소속이었던 2002년 서부 콘퍼런스 파이널, 샌안토니오 스퍼스 소속이었던 2006년 서부 콘퍼런스 준결승.
- 그의 플레이오프 통산 승리 수 155승은 르브론 제임스 (162승), 데릭 피셔 (161승), 팀 던컨 (157승)에 이어 역대 4위이다.
- 2010년, 그는 앨라배마 스포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 2009년에는 필리핀 마닐라의 아라네타 콜리세움에서 열린 2009 NBA 아시아 챌린지에서 필리핀 농구 협회 올스타팀을 상대로 경기를 뛰었다.
6. NBA 경력 통계
6.1. 정규 시즌
연도 | 팀 | 경기 출전 | 선발 출전 | 경기당 분 | 필드골 성공률 | 3점슛 성공률 | 자유투 성공률 | 경기당 리바운드 | 경기당 어시스트 | 경기당 스틸 | 경기당 블록 | 경기당 득점 |
---|---|---|---|---|---|---|---|---|---|---|---|---|
1992-93 | 휴스턴 로키츠 | 79 | 79 | 29.5 | .474 | .255 | .715 | 5.0 | 2.4 | 1.0 | 1.1 | 10.1 |
1993-94† | 휴스턴 로키츠 | 81 | 81 | 29.3 | .459 | .324 | .732 | 5.4 | 2.9 | 1.5 | .9 | 9.9 |
1994-95† | 휴스턴 로키츠 | 64 | 61 | 32.4 | .447 | .379 | .761 | 5.1 | 3.4 | 1.5 | 1.2 | 10.2 |
1995-96 | 휴스턴 로키츠 | 71 | 71 | 37.1 | .410 | .366 | .776 | 5.8 | 4.0 | 1.6 | 1.5 | 12.0 |
1996-97 | 피닉스 선즈 | 32 | 15 | 22.5 | .421 | .308 | .640 | 3.7 | 1.7 | .9 | .8 | 6.9 |
1996-97 |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 22 | 14 | 30.7 | .455 | .329 | .700 | 5.4 | 2.5 | 1.7 | 1.3 | 9.2 |
1997-98 |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 72 | 71 | 30.4 | .476 | .204 | .692 | 7.5 | 2.3 | 1.6 | 1.3 | 7.4 |
1998-99 |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 38 | 5 | 19.6 | .459 | .444 | .739 | 4.0 | 1.5 | .9 | 1.0 | 4.9 |
1999-00† |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 76 | 0 | 22.2 | .438 | .309 | .788 | 4.8 | 1.6 | 1.1 | 1.0 | 5.7 |
2000-01† |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 79 | 1 | 20.1 | .387 | .346 | .711 | 3.7 | 1.6 | .7 | .7 | 5.2 |
2001-02† |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 81 | 23 | 26.4 | .398 | .374 | .783 | 5.9 | 2.9 | 1.0 | 1.1 | 6.8 |
2002-03 |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 80 | 26 | 29.3 | .387 | .288 | .769 | 6.4 | 2.9 | 1.2 | .8 | 6.5 |
2003-04 | 샌안토니오 스퍼스 | 81 | 1 | 15.9 | .405 | .380 | .645 | 3.4 | 1.2 | .6 | .6 | 4.8 |
2004-05† | 샌안토니오 스퍼스 | 75 | 16 | 18.6 | .419 | .370 | .789 | 3.6 | 1.1 | .9 | .8 | 6.0 |
2005-06 | 샌안토니오 스퍼스 | 63 | 3 | 18.8 | .384 | .368 | .647 | 3.8 | 1.3 | .7 | .8 | 5.1 |
2006-07† | 샌안토니오 스퍼스 | 68 | 8 | 16.5 | .359 | .336 | .594 | 3.4 | 1.1 | .7 | .6 | 3.9 |
2007-08 | 샌안토니오 스퍼스 | 45 | 5 | 13.0 | .319 | .257 | .643 | 2.4 | 1.0 | .5 | .4 | 2.5 |
커리어 | 1,107 | 480 | 24.5 | .425 | .341 | .726 | 4.8 | 2.1 | 1.0 | .9 | 7.0 |
6.2. 플레이오프
연도 | 팀 | 경기 출전 | 선발 출전 | 경기당 분 | 필드골 성공률 | 3점슛 성공률 | 자유투 성공률 | 경기당 리바운드 | 경기당 어시스트 | 경기당 스틸 | 경기당 블록 | 경기당 득점 |
---|---|---|---|---|---|---|---|---|---|---|---|---|
1993 | 휴스턴 로키츠 | 12 | 12 | 31.2 | .465 | .300 | .741 | 5.2 | 3.2 | 1.5 | 1.3 | 10.5 |
1994† | 휴스턴 로키츠 | 23 | 23 | 33.8 | .434 | .382 | .765 | 6.1 | 3.6 | 1.5 | .9 | 11.7 |
1995† | 휴스턴 로키츠 | 22 | 22 | 38.2 | .445 | .400 | .744 | 7.0 | 3.5 | 1.5 | 1.2 | 13.1 |
1996 | 휴스턴 로키츠 | 8 | 8 | 38.5 | .407 | .396 | .435 | 7.1 | 3.0 | 2.6 | 1.6 | 13.1 |
1997 |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 9 | 9 | 31.0 | .447 | .429 | .778 | 5.3 | 1.4 | 1.1 | .8 | 6.7 |
1998 |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 13 | 13 | 32.5 | .557 | .353 | .683 | 6.5 | 3.1 | 1.1 | 1.1 | 8.6 |
1999 |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 8 | 0 | 22.1 | .462 | .417 | .786 | 4.5 | 1.4 | .8 | .8 | 5.0 |
2000† |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 23 | 0 | 26.9 | .407 | .288 | .702 | 5.3 | 2.5 | .9 | .8 | 7.6 |
2001† |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 16 | 0 | 23.9 | .368 | .362 | .591 | 5.2 | 1.9 | 1.4 | 1.0 | 5.9 |
2002† |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 19 | 14 | 37.0 | .449 | .387 | .789 | 8.1 | 3.2 | 1.7 | .8 | 9.3 |
2003 |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 12 | 10 | 31.1 | .319 | .053 | .556 | 6.7 | 3.1 | 1.3 | 1.0 | 5.6 |
2004 | 샌안토니오 스퍼스 | 10 | 0 | 21.1 | .465 | .364 | .929 | 6.3 | .9 | .8 | .2 | 6.1 |
2005† | 샌안토니오 스퍼스 | 23 | 0 | 26.9 | .448 | .447 | .732 | 5.4 | 2.0 | .9 | .9 | 9.3 |
2006 | 샌안토니오 스퍼스 | 13 | 5 | 17.2 | .405 | .353 | .731 | 3.7 | .8 | .4 | .7 | 4.2 |
2007† | 샌안토니오 스퍼스 | 18 | 0 | 20.1 | .417 | .351 | .824 | 3.9 | 1.6 | .6 | 1.3 | 4.3 |
2008 | 샌안토니오 스퍼스 | 15 | 0 | 10.3 | .194 | .227 | .667 | 2.1 | .5 | .3 | .3 | 1.5 |
커리어 | 244 | 116 | 28.0 | .426 | .359 | .722 | 5.6 | 2.4 | 1.1 | .9 | 7.9 |
6.3. 커리어 하이
- 득점: 40점 (1995년 11월 16일 밀워키 벅스 전)
- 리바운드: 15개 (2002년 5월 20일, 플레이오프)
- 어시스트: 10개 (1995년 2월 25일, 1996년 12월 10일)
- 스틸: 7개 (1995년 6월 9일, NBA 파이널 2차전)
- 블록: 6개 (1996년 3월 19일)
- 3점슛: 9개 (1996년 2월 22일)
7. 개인 생활
오리의 첫째 딸 애슐린은 희귀 유전 질환인 1p36 염색체 결실 증후군 진단을 받았다. 그녀는 2011년 6월 14일 1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의 큰아들 캠론 오리는 텍사스 A&M 대학교에서 미식축구를 했다. 그의 막내딸 제이드 오리는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 살고 있다. 그의 막내아들 크리스천 "CJ" 오리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농구 선수로 활약하고 있으며, UCLA에서 농구를 하고 있다. 오리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자신의 AAU 농구팀 '빅샷'을 지도하기도 했다. 2019년 9월 29일, 그는 오랜 여자친구인 캔디스 마드리드와 결혼했다.
오리는 2023년 TV 시리즈 링컨 변호사의 한 에피소드에 본인 역으로 출연했다.
8. 은퇴 후 활동
프로 농구 선수 은퇴 후, 로버트 오리는 스포츠 해설자로서 활동하고 있다. 그는 현재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의 공식 방송국인 스펙트럼 스포츠넷에서 해설을 맡고 있다. 또한 2009년에는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NBA 아시아 챌린지에 참가하는 등 공개적인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9. 유산과 평가
로버트 오리는 농구 역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며 다양한 평가를 받고 있다.
9.1. 긍정적 평가
오리는 "빅샷 롭"(Big Shot Rob빅샷 롭영어)이라는 별명처럼 플레이오프와 NBA 파이널과 같은 중요한 경기에서 결정적인 슛을 성공시키는 능력으로 명성을 얻었다. 그는 마이클 조던의 6개 챔피언십 우승 기록을 넘어선 7개의 NBA 챔피언십 우승 반지로, 1959년 이후 보스턴 셀틱스에 소속되지 않은 선수 중 가장 많은 우승을 차지한 선수로 기록된다. 그는 결코 스타 플레이어나 팀의 에이스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휴스턴 로키츠,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샌안토니오 스퍼스 등 여러 강팀에서 "우승 청부인"(優勝請負人유쇼 우케이오닌일본어)으로서 활약하며 팀의 승리에 중요한 '톱니바퀴'(重要な歯車쥬요나 하구루마일본어) 역할을 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그의 클러치 능력과 승리팀에 미친 긍정적인 영향은 농구계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9.2. 비판과 논란
로버트 오리는 '클러치 플레이어'라는 명성과 함께 "치프 샷 롭"(Cheap Shot Rob치프 샷 롭영어)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는데, 이는 그의 다소 거친 플레이나 논란의 여지가 있는 행동에서 비롯되었다. 대표적인 사건으로는 피닉스 선즈 시절 대니 에인지 감독의 얼굴에 수건을 던진 온-코트 언쟁과, 샌안토니오 스퍼스 시절 스티브 내쉬에게 몸싸움을 가해 플래그런트 파울을 선언받은 사건 등이 있다. 이러한 사건들은 그의 플레이 스타일과 관련하여 비판적인 시각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10. 영향
로버트 오리는 농구 경기를 넘어 다른 선수들이나 더 넓은 스포츠 커뮤니티에도 구체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의 클러치 플레이는 많은 선수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결정적인 순간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은퇴 후 스포츠 해설자로 활동하며 그는 현대 농구에 대한 자신의 통찰력을 공유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23년 1월 31일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와 뉴욕 닉스의 경기에서 하치무라 루이가 이적 후 최다 득점을 기록하며 팀 승리에 기여하자, 오리는 TV 프로그램에서 "루이는 최고의 플레이를 하고 있다. 이제 오펜스에서 더욱 자신감을 얻고 팀이 그를 이해하는 일만 남았다"고 칭찬하며 하치무라 루이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는 등 현역 선수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