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로드니 윌프리드 히스(Wilfrid Rodney Heath윌프리드 로드니 히스영어, 1884년 6월 15일 ~ 1936년 10월 26일)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저명한 테니스 선수로, 1905년 창설된 호주아시아 선수권 대회 남자 단식에서 초대 우승을 차지한 인물이다. 그는 1910년에 다시 이 대회에서 우승하며 두 차례 단식 우승을 기록했고, 남자 복식에서도 1906년과 1911년에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히스는 오른손잡이 선수였으며, 특히 포핸드 스트로크의 드라이브에 능숙했다. 제1차 세계 대전 중에는 영국 육군항공대에 복무하며 소령으로 진급하기도 했으나, 비행 중 사고로 부상을 입기도 했다. 그는 1919년 윔블던 선수권 대회 남자 복식 결승에도 진출하는 등 국제 무대에서도 활약했다. 로드니 히스는 1936년 멜버른에서 흑색종으로 인해 사망했다.

2. 생애
로드니 히스의 생애는 빅토리아 시대 오스트레일리아의 스포츠계와 군 복무 경험으로 특징지어진다.
2.1. 가족 관계 및 초기 생활
로드니 윌프리드 히스는 1884년 6월 15일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에서 태어났다. 그는 F. W. 히스의 둘째 아들이었다. 그의 아버지 F. W. 히스는 빅토리아 레이싱 클럽과 빅토리아 아마추어 잔디 클럽의 공식 시간 기록원으로 활동했다. 로드니의 형제인 C. V. 히스 또한 테니스 선수로 활동했으며, 1902년 남호주 남자 단식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2.2. 군 복무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로드니 히스는 1915년 6월 오스트레일리아를 떠나 영국으로 건너가 영국 육군항공대에 입대했다. 군 복무 중 그는 군용 항공기 조종에 참여했으며, 입대 2년 후인 1917년에는 소령으로 진급했다. 1916년에는 영국에서 프랑스로 향하던 중 눈보라를 만나 비행기가 추락하는 사고를 겪었고, 이 사고로 인해 부상을 입기도 했다.
3. 테니스 경력
로드니 히스는 오스트레일리아 테니스 역사에 중요한 발자취를 남긴 선수로 평가받는다.
3.1. 주요 업적
히스는 1905년 11월 멜버른의 '웨어하우스맨스 크리켓 클럽'에서 처음으로 개최된 호주아시아 선수권 대회 남자 단식의 초대 챔피언에 올랐다. 이 대회에서 그는 아더 커티스(오스트레일리아)를 4-6, 6-3, 6-4, 6-4의 세트 스코어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5년 후인 1910년, 그는 제6회 호주아시아 선수권 대회에서 호레이스 라이스(오스트레일리아)를 6-4, 6-3, 6-2로 물리치고 두 번째 단식 우승을 달성했다.
남자 복식에서도 히스는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었다. 그는 1906년 호주아시아 선수권 대회에서 앤서니 와일딩(뉴질랜드)과 팀을 이루어 우승했으며, 1911년 대회에서는 랜돌프 라이셋(영국)과 파트너를 맺어 다시 한번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또한 그는 1910년과 1914년 호주아시아 선수권 대회 남자 복식에서 두 차례 준우승을 기록했다.
1911년, 히스는 데이비스 컵에 미국을 상대로 뉴질랜드에서 열린 챌린지 라운드에 출전하여 윌리엄 라네드(미국)를 4세트 만에 꺾는 활약을 펼쳤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인 1919년에는 그의 오랜 친구인 랜돌프 라이셋과 함께 윔블던 선수권 대회 남자 복식에 참가하여 결승에 진출했다. 비록 결승에서는 팻 오하라-우드(오스트레일리아)와 로널드 토마스(오스트레일리아) 조에 4-6, 2-6, 6-4, 2-6으로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으나, 이로써 그는 그랜드 슬램 대회 중 호주 오픈 외의 다른 대회에서도 중요한 기록을 남겼다.
3.2. 그랜드 슬램 결승전 기록
로드니 히스의 그랜드 슬램 결승전 기록은 다음과 같다.
3.2.1. 단식
3.2.2. 복식
| 결과 | 연도 | 대회 | 표면 | 파트너 | 상대 | 점수 |
|---|---|---|---|---|---|---|
| 우승 | 1906 | 호주아시아 선수권 대회 | 잔디 | 앤서니 와일딩(뉴질랜드) | 세실 C. 콕스(오스트레일리아) 해리 파커(뉴질랜드) | 6-2, 6-4, 6-2 |
| 준우승 | 1910 | 호주아시아 선수권 대회 | 잔디 | 제임스 오데이(영국) | 애슐리 캠벨(오스트레일리아) 호레이스 라이스(오스트레일리아) | 3-6, 3-6, 2-6 |
| 우승 | 1911 | 호주아시아 선수권 대회 | 잔디 | 랜돌프 라이셋(영국) | 존 애디슨(오스트레일리아) 노먼 브룩스(오스트레일리아) | 6-2, 7-5, 6-0 |
| 준우승 | 1914 | 호주아시아 선수권 대회 | 잔디 | 아더 오하라 우드(영국) | 애슐리 캠벨(오스트레일리아) 제럴드 패터슨(오스트레일리아) | 5-7, 6-3, 3-6, 3-6 |
| 준우승 | 1919 | 윔블던 | 잔디 | 랜돌프 라이셋(영국) | 팻 오하라-우드(오스트레일리아) 로널드 토마스(오스트레일리아) | 4-6, 2-6, 6-4, 2-6 |
3.3. 플레이 스타일
로드니 히스는 오른손잡이 선수였으며, 강력하고 효과적인 포핸드 스트로크의 드라이브를 주요 무기로 삼았다. 그의 이러한 플레이 스타일은 당시 테니스 경기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데 기여했다.
4. 사망
로드니 히스는 1936년 10월 26일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에 있는 여동생의 집에서 향년 52세의 나이로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그의 사망 원인은 뱃속에 생긴 흑색종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