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도밍고 알베르토 타라스코니는 1903년 12월 20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나 1991년 7월 3일에 사망했다. 그의 어린 시절과 초기 교육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1.1. 어린 시절과 교육
타라스코니의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 그리고 초기 교육 경험에 대한 상세한 정보는 현재까지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1.2. 축구 선수로서의 시작
타라스코니는 1921년 아틀란타에서 축구 선수로서 첫 발을 내디뎠다. 그는 1921년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에서 데뷔 경기를 치렀다. 아틀란타에서 한 시즌을 보낸 후, 그는 보카 주니어스로 이적하며 본격적인 축구 경력을 발전시켰다.
2. 주요 활동 및 업적
타라스코니는 클럽과 국가대표팀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수많은 주요 활동과 업적을 남겼다. 특히 보카 주니어스에서의 득점 기록과 올림픽에서의 인상적인 활약은 그의 경력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손꼽힌다.
2.1. 클럽 경력

타라스코니는 보카 주니어스에서 10년간 활약하며 구단의 역사적인 성공에 크게 기여했다. 그는 또한 유럽 투어에서 인상적인 득점력을 선보였다.
2.1.1. 보카 주니어스에서의 활약
타라스코니는 보카 주니어스에서 10년 동안 몸담으면서 226번의 공식 경기에 출전하여 186골을 기록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보카 주니어스와 함께 9번의 공식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그의 득점 기록은 마르틴 팔레르모, 로베르토 체로, 프란시스코 바라요에 이어 구단 역대 최다 득점 4위에 해당한다.
2.1.2. 유럽 투어 및 득점 기록
1925년, 타라스코니는 보카 주니어스의 유럽 투어에 참가하여 7골을 기록하며 마누엘 세오아네에 이어 팀 내 두 번째로 많은 득점을 올렸다. 그는 또한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에서 1922년, 1923년, 1924년, 1927년에 득점왕을 차지했다.
1932년 보카 주니어스를 떠난 후, 타라스코니는 1934년까지 공식 경기 출전 기록이 없었다. 1934년에 그는 당시 아마추어 리그로 남아있던 공식 축구 협회(AFA) 소속의 스포르티보 바라카스에 입단하여 6경기에 출전했지만 득점은 없었다. 이후 그는 헤네랄 산 마르틴을 연고로 하는 동명의 구단으로 이적하여 같은 시즌 20경기에서 16골을 기록했다. 일부 출처에서 산 마르틴 데 투쿠만으로 잘못 기록되어 있으나, 타라스코니가 뛰었던 팀은 부에노스아이레스 수도권의 헤네랄 산 마르틴에 위치한 클럽이었다.
1935년 타라스코니는 다시 스포르티보 바라카스를 거쳐, 1936년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시즌에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에서 8경기를 더 뛰고 현역에서 은퇴했다.
2.2.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 경력

타라스코니는 1922년부터 1929년까지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에서 24경기에 출전하여 18골을 기록했다.
2.2.1. 올림픽 축구에서의 성과
타라스코니는 1928년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하계 올림픽 축구에서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은메달 획득에 크게 기여했다. 그는 이 대회에서 4경기 동안 11골을 터뜨리며 대회 최다 득점자로 등극했다. 그의 이 기록은 올림픽 축구 단일 대회 역대 최다골 기록으로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2.2.2. 코파 아메리카 우승
그는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코파 아메리카에 참가하여 1925년과 1929년에 두 차례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1925년 대회와 1929년 대회에서 팀의 우승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3. 개인 기록 및 수상
타라스코니는 클럽과 국가대표팀에서 모두 뛰어난 득점력을 선보이며 여러 개인 기록과 수상 경력을 쌓았다.
3.1. 리그 득점왕
타라스코니는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에서 총 5번의 득점왕 타이틀을 차지했다. 그는 1922년, 1923년, 1924년, 1927년, 그리고 1934년에 리그 최다 득점자로 이름을 올렸다. 1921년부터 1934년까지 리그에서 289경기에 출전하여 208골을 기록하며 리그 역대 최다 득점자 상위권에 랭크되었다.
3.2. 국가대표팀 득점 순위
타라스코니는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 역사상 13번째로 많은 골을 기록한 선수이다. 그는 1922년부터 1929년까지 24번의 국가대표팀 경기에서 총 18골을 넣었다. 또한, 1928년 하계 올림픽 축구 대회에서는 11골로 단독 득점왕에 올랐다.
4. 우승 경력
도밍고 알베르토 타라스코니는 선수 경력 동안 클럽과 국가대표팀에서 총 11개의 주요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4.1. CA 보카 주니어스 우승
- 프리메라 디비시온 (5회): 1923, 1924, 1926, 1930, 1931 (LAF)
- 코파 이바르구렌 (2회): 1923, 1924
- 코파 콤페텐시아 조키 클럽 (1회): 1925
- 코파 에스티물로 (1회): 1926
4.2.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 우승
- 코파 아메리카 (2회): 1925, 1929
- 하계 올림픽 축구 은메달: 1928
5. 대중문화 속 영향

탱고 가수이자 전설적인 인물인 카를로스 가르델은 1928년에 풍자적인 탱고 곡인 파타두라(Patadura파타두라스페인어)를 발표했는데, 이 곡은 축구를 은유적으로 사용하여 노래 속 인물의 미숙함을 묘사했다. 파타두라는 현재까지도 아르헨티나에서 축구 실력이 없는 사람을 지칭하는 현지 용어로 사용된다.
엔리케 카레라스 소텔로가 작사하고 호세 로페스 아레스가 작곡한 이 곡은 타라스코니를 그의 별명인 타라스카(Tarasca타라스카스페인어)로 부르며 "중원에서 골을 넣었다"고 언급하는데, 이는 타라스코니의 강력하고 정확한 슈팅 능력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이 곡에 언급된 당시의 다른 유명 축구 선수로는 마누엘 세오아네, 루이스 몬티, 그리고 가르델과 친분이 깊었으며 가르델이 그를 기리는 탱고 곡 오초이타(Ochoíta오초이타스페인어)를 작곡하기도 한 페드로 오초아 등이 있다.
가르델은 1929년 파리에서 파타두라의 새로운 버전을 녹음했는데, 이때 가사가 약간 변경되었다. 원래의 아르헨티나 남자 축구 선수들 대신 FC 바르셀로나 선수들인 비센테 피에라, 리카르도 사모라, 주제프 사미티에르, 프란츠 플러트코가 언급되었다. 가르델은 바르셀로나 선수들, 특히 사미티에르와 친분을 쌓으며 팀의 팬이 되었고, 구단의 명예 단원이기도 했다. 그는 1928년 코파 델 레이 결승전을 비롯한 여러 경기를 관전하기도 했다.
6. 평가 및 유산
도밍고 알베르토 타라스코니는 아르헨티나 축구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공격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보카 주니어스의 역대 최다 득점자 중 한 명이자 프리메라 디비시온의 역대 최고 득점자 중 한 명으로서 그의 득점력은 당대 최고 수준이었다.
특히 1928년 하계 올림픽에서 4경기 11골이라는 경이로운 득점 기록을 세우며 올림픽 축구 단일 대회 최다골 기록을 수립한 것은 그의 국제적인 기량을 입증하는 중요한 업적이다. 이러한 활약은 그를 아르헨티나 축구의 초기 황금기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인물로 만들었다. 그의 이름이 카를로스 가르델의 유명한 탱고 곡에 언급될 정도로 대중문화에 깊이 스며든 것은 그의 인기가 단순히 축구 팬덤을 넘어섰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타라스코니는 아르헨티나 축구의 기틀을 다지고 후대에 큰 영향을 미친 중요한 유산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