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기 생애 및 교육
델포 촐지의 초기 생애 및 학업 과정은 그의 이탈리아 북부 아르치냐노에서의 출생부터 나폴리로 이주하여 동양 언어를 연구하고 박사 학위를 취득하기까지의 과정을 포함한다.
1.1. 출생 및 가족 배경
델포 촐지는 1947년 7월 3일, 이탈리아 비첸차 근교의 아르치냐노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베네토주 메스트레 지역에서 피혁 산업에 종사했다.
1.2. 학업 및 초기 관심사
1968년, 델포 촐지는 동양 언어를 공부하기 위해 나폴리로 이주했다. 이후 그는 동양 언어 분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특히 일본의 전통 무사도 정신을 다룬 무사도를 주제로 졸업 논문을 작성했다.
2. 초기 정치 활동 및 극우 연루 논란
델포 촐지는 청년기에 이탈리아의 극우 네오파시즘 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하며 초기 정치적 행보를 시작했다.
2.1. 오르디네 누오보 가입
델포 촐지는 1966년 네오파시즘 단체인 '오르디네 누오보'(Ordine Nuovo이탈리아어)에 가입했다. 이후 1968년에는 그의 가족이 피혁업을 영위했던 베네토주 메스트레 지부의 책임자로 활동했다.
3. 주요 테러 사건 연루 및 법적 공방
델포 촐지는 이탈리아에서 발생한 두 건의 주요 폭탄 테러 사건, 즉 폰타나 광장 폭탄 테러 사건과 로자 광장 폭탄 테러 사건에 연루되어 오랜 기간 동안 복잡한 법적 공방을 겪었다.
3.1. 폰타나 광장 폭탄 테러 사건
델포 촐지는 1969년 밀라노의 폰타나 광장 폭탄 테러 사건의 주요 용의자로 지목되었다. 이탈리아 정부는 1980년대와 2000년 3월 30일 두 차례에 걸쳐 일본 정부에 그의 신병 인도를 요청했다. 또한 1997년에는 이탈리아 수사 당국이 인터폴을 통해 일본 경찰청에 델포 촐지에 대한 국제 수배를 요청하기도 했다.
2001년 6월, 밀라노 지방 법원은 델포 촐지가 차량으로 폭탄을 밀라노로 운반했다는 증언을 근거로 피고인 불출석 상태에서 그에게 종신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2004년 3월 12일 밀라노 고등 법원은 해당 증언의 신빙성이 부족하다고 판단하여 이 판결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최종적으로 2005년 5월 3일, 이탈리아 대법원은 고등 법원의 무죄 판결을 지지함으로써 델포 촐지에 대한 무죄가 최종 확정되었다.
3.2. 로자 광장 폭탄 테러 사건
델포 촐지는 1974년 5월 28일 롬바르디아주 브레시아에서 발생하여 8명의 사망자와 102명의 부상자를 낸 로자 광장 폭탄 테러 사건에도 연루되었다는 의혹을 받았다. 2010년 11월 16일, 그는 해당 사건의 다른 피고인들과 함께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후 2014년에는 이탈리아 대법원에 의해 해당 혐의에 대해 최종적으로 무죄가 확정되었다.
4. 일본에서의 삶과 사업 활동
이탈리아를 떠나 일본으로 이주한 델포 촐지는 일본 국적을 취득하고 이름을 개명한 뒤, 무역업을 기반으로 유럽과 일본을 오가며 사업 활동을 확장했다.
4.1. 일본으로의 이주 및 귀화
델포 촐지는 1974년 일본에 거주하는 이탈리아인들이 설립한 장학금 제도를 통해 일본으로 이주했다. 1980년대에 그는 일본인 여성과 결혼했으며, 1989년 12월 18일에는 일본 국적을 취득하고 이름을 '나미모토 로이'(波元路伊일본어)로 개명했다.
4.2. 사업 활동
일본으로 귀화한 후 나미모토 로이는 도쿄에서 무역업을 시작했다. 그는 또한 유럽 내 여러 패션 산업 상점들(예: 명품 가방, 모피, 가죽 제품)의 금융 책임자로 활동했으며, 그중 일부는 스웨덴에도 위치해 있었다.
5. 재정적 논란
델포 촐지의 사업 활동은 상당한 재정적 성공을 거두었으나, 동시에 탈세 의혹을 비롯한 여러 재정적 불법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5.1. 모피 거래 관련 의혹
2005년 9월, 이탈리아의 시사 잡지 L'Espresso는 델포 촐지가 이탈리아에서 가명(假名)을 사용하여 여러 회사를 통해 모피 거래를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와 관련하여 2014년, 이탈리아 대법원은 해당 의혹에 대해 델포 촐지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5.2. 판도라 페이퍼스 연루
2021년 10월, 델포 촐지의 이름이 국제적인 조세 회피 폭로 자료인 판도라 페이퍼스에 언급되었다. 그는 약 7500.00 만 EUR 규모의 탈세 혐의를 받았으며, 유령 회사의 서비스를 이용하여 호화 주택을 구매한 사실도 드러났다.
6. 평가와 유산
델포 촐지는 이탈리아의 극우 네오파시스트로 시작하여 일본으로 귀화한 사업가로 변모한 인물이다. 그는 폰타나 광장 폭탄 테러 사건과 로자 광장 폭탄 테러 사건이라는 이탈리아 현대사의 주요 비극적인 사건들에 연루되어 오랫동안 법적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비록 두 사건 모두에서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그의 과거 극우 단체 활동과 테러 연루 의혹은 이탈리아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비판적인 시각으로 재조명되고 있으며, 일부 단체들은 폰타나 광장 사건을 잊지 않기 위한 시위 과정에서 델포 촐지를 거론하기도 했다.
또한 그의 사업 활동은 성공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2005년의 모피 거래 의혹과 2021년 판도라 페이퍼스를 통한 대규모 탈세 의혹이 제기되는 등 재정적 불법 행위와 관련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델포 촐지의 삶은 극단적인 정치적 이념과 연루된 과거, 그리고 국제적인 사업가로서의 현재가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 그의 행적은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책임, 그리고 투명한 경제 활동의 중요성 측면에서 지속적으로 비판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