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초반
데이비드 그린은 1960년 12월 4일 니카라과의 수도인 마나과에서 에드워드 그린 싱클레어와 베르타 카사야 사이에서 열 명의 자녀 중 한 명으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인 에드워드 그린은 니카라과 야구계에서 매우 성공적인 선수였으며, 마나과의 싱코 에스트레야스 클럽과 니카라과 국가대표팀의 외야수로 활약했다. 그린의 누이들인 이사벨과 카를로타 역시 농구 선수로 유명했다.
그린은 주로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가정에서 자랐으며, 그가 성장한 블루필즈는 주로 미스키토 크리올어를 사용하는 도시였다. 그의 출생 연도에 대해서는 약간의 논란이 있었으나, 일반적으로 1960년생으로 알려져 있다.
2. 프로 야구 경력
데이비드 그린은 1978년 9월 24일 아마추어 자유계약선수 자격으로 밀워키 브루어스와 계약하며 프로 경력을 시작했다. 그는 마이너 리그를 거쳐 메이저 리그에 데뷔한 후, 여러 팀을 거치며 활약했다.
2.1. 밀워키 브루어스 (마이너 리그)
그린은 1979년 클래스 A 소속의 스톡턴 포츠에서 프로 데뷔전을 치렀다. 이 시즌 136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262, 8홈런, 70타점을 기록하며 잠재력을 보여주었다. 1980년에는 클래스 AA 소속의 홀리오크 밀러스에서 뛰면서 129경기에서 타율 0.291, 8홈런, 67타점을 기록했다. 특히 이 해에는 19개의 3루타를 기록하며 이스턴 리그에서 가장 많은 3루타를 친 선수가 되었다.
2.2.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첫 번째 재적)
그린은 1980년 12월 12일 밀워키 브루어스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간의 대형 트레이드의 일부로 카디널스로 이적했다. 그는 데이브 라포인트, 식스토 레스카노, 래리 소렌슨과 함께 카디널스로 갔고, 그 대가로 브루어스는 롤리 핑거스, 테드 시몬스, 피트 버코비치를 영입했다. 이 트레이드는 후에 두 팀이 1982년 월드 시리즈에서 맞붙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1981년 그린은 클래스 AAA 소속의 스프링필드 레드버즈로 승격되어 106경기에서 타율 0.270, 10홈런, 67타점을 기록했다. 같은 해 9월 확장 로스터 기간에 카디널스로 콜업되어 1981년 9월 4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의 경기에서 20세의 나이로 대타로 출전하며 MLB 데뷔전을 치렀다. 그는 그해 메이저 리그에서 가장 어린 선수였으며, 21경기에서 타율 0.147을 기록했다. 9월 26일 피츠버그 파이리츠 투수 루이스 티안트를 상대로 타점을 기록하는 안타를 때려내며 첫 메이저 리그 안타를 기록했다.
1982년 시즌에는 카디널스와 스프링필드에서 루이빌로 연고지를 옮긴 루이빌 레드버즈를 오가며 활약했다. 루이빌에서 46경기 타율 0.345를 기록했으며, 카디널스에서는 76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283을 기록했다. 8월 15일 파이리츠 투수 랜디 니만을 상대로 첫 메이저 리그 홈런을 터뜨렸다. 그해 카디널스는 월드 시리즈에서 브루어스를 꺾고 우승했으며, 그린은 월드 시리즈에서 타율 0.200을 기록했다.
1983년에는 개인 최다인 146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284, 8홈런, 39타점, 34도루, 10개의 3루타를 기록하며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다. 1984년에는 126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268을 기록했으며, 홈런은 전년 대비 두 배 가까이 늘어난 15개를 기록했고 65타점을 올렸다.

2.3.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1985년 2월 1일 카디널스는 그린을 데이브 라포인트, 게리 라지치, 호세 우리베와 함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로 트레이드했고, 그 대가로 잭 클락을 영입했다. 그린은 1985년 시즌 동안 자이언츠 소속으로 106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248, 5홈런, 20타점을 기록했다.
2.4. 밀워키 브루어스 (두 번째 재적) 및 멕시칸 리그
1985년 12월 4일 그린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다시 밀워키로 트레이드되었다. 일주일 후, 샌프란시스코는 마이너 리그 선수 헥토르 키뇨네스를 영입하며 트레이드를 마무리했다. 그린은 1986년 개막전 로스터에 들지 못하고 4월 1일 방출되었다가, 8일 후 브루어스에 재영입되어 브루어스와 멕시칸 팀 간의 선수 임대 계약의 일환으로 멕시칸 리그의 몬테레이 술탄스로 배정되었다. 몬테레이에서는 48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391을 기록하며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2.5. 긴테쓰 버팔로스 (일본 프로 야구)
1986년 6월 24일 그린은 일본 프로 야구(NPB) 팀인 긴테쓰 버팔로스에 영입되었다. 그는 니카라과 출신으로는 최초로 일본 프로 야구 무대를 밟은 선수가 되었다. 긴테쓰 소속으로 67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270, 10홈런, 39타점을 기록했다. 1986년 7월 6일 롯데 오리온스와의 경기에서 6번 우익수로 선발 출전하며 NPB에 데뷔했고, 이 경기 9회 말에 후카자와 메구미를 상대로 좌월 솔로 홈런을 때려내며 첫 안타, 첫 홈런, 첫 타점을 동시에 기록했다. 일본에서의 활동 기간 동안 그는 준수한 타격 능력과 빠른 발을 보여주었지만, 타격에 기복이 심하여 꾸준한 성적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그해를 끝으로 팀을 떠나게 되었다. 이후 2013년 비센테 파디야가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 입단하기 전까지 27년 동안 니카라과 출신 선수는 NPB에 없었다.
2.6.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두 번째 재적)
1987년 7월 11일 그린은 다시 카디널스 구단에 합류했다. 그는 루이빌에서 50경기에 출전했고, 세인트루이스에서는 14경기에만 출전했다. 카디널스에서 그는 타율 0.267, 1홈런을 기록했다. 1987년 10월 4일, 26세의 나이로 메이저 리그에서의 마지막 경기를 치렀다.
2.7. 마이너 리그 후기 경력
1989년 시즌 동안 그린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클래스 AA 산하 팀인 그린빌 브레이브스 소속으로 34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271, 5홈런, 22타점을 기록했다. 1990년에는 텍사스 레인저스 구단에 합류하여 클래스 AA 소속의 털사 드릴러스에서 16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286을 기록했다. 1991년에도 털사로 돌아와 59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285, 4홈런, 32타점을 기록했다. 1991년 시즌은 그의 마지막 프로 야구 선수 생활이었다.
2.8. 경력 통계
데이비드 그린은 6시즌 동안 메이저 리그에서 총 489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268 (1398타수 374안타), 168득점, 31홈런, 180타점, 68도루, 84볼넷을 기록했다. 그의 통산 수비율은 0.986이었다. 일본 프로 야구에서는 1시즌 동안 67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270, 10홈런, 39타점, 2도루를 기록했다.
연도 | 팀 | 경기 | 타석 | 타수 | 득점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루타 | 타점 | 도루 | 도루실패 | 희생번트 | 희생플라이 | 볼넷 | 고의4구 | 사구 | 삼진 | 병살타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
1981 |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 21 | 40 | 34 | 6 | 5 | 1 | 0 | 0 | 6 | 2 | 0 | 1 | 0 | 0 | 6 | 0 | 1 | 5 | 0 | .147 | .293 | .176 | .469 |
1982 |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 76 | 178 | 166 | 21 | 47 | 7 | 1 | 2 | 62 | 23 | 11 | 3 | 0 | 3 | 8 | 1 | 2 | 29 | 2 | .283 | .318 | .373 | .692 |
1983 |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 146 | 456 | 422 | 52 | 120 | 14 | 10 | 8 | 178 | 69 | 34 | 16 | 3 | 4 | 26 | 1 | 1 | 76 | 13 | .284 | .325 | .422 | .746 |
1984 |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 126 | 478 | 452 | 49 | 121 | 14 | 4 | 15 | 188 | 65 | 17 | 9 | 0 | 5 | 20 | 1 | 4 | 105 | 8 | .268 | .301 | .416 | .717 |
1985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 106 | 321 | 294 | 36 | 73 | 10 | 2 | 5 | 102 | 20 | 6 | 5 | 2 | 2 | 22 | 1 | 3 | 58 | 12 | .248 | .305 | .347 | .652 |
1986 | 긴테쓰 버팔로스 | 67 | 248 | 226 | 32 | 61 | 8 | 0 | 10 | 99 | 39 | 2 | 1 | 0 | 0 | 19 | 0 | 3 | 60 | 2 | .270 | .335 | .438 | .773 |
1987 |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 14 | 32 | 30 | 4 | 8 | 2 | 1 | 1 | 15 | 1 | 0 | 1 | 0 | 0 | 2 | 0 | 0 | 5 | 0 | .267 | .313 | .500 | .813 |
MLB 6년 | 489 | 1505 | 1398 | 168 | 374 | 48 | 18 | 31 | 551 | 180 | 68 | 35 | 5 | 14 | 84 | 4 | 11 | 278 | 35 | .268 | .311 | .394 | .705 | |
NPB 1년 | 67 | 248 | 226 | 32 | 61 | 8 | 0 | 10 | 99 | 39 | 2 | 1 | 0 | 0 | 19 | 0 | 3 | 60 | 2 | .270 | .335 | .438 | .773 |
등번호
- 22 (1981년 ~ 1985년)
- 10 (1986년)
- 18 (1987년)
3. 국제 경력
데이비드 그린은 니카라과 야구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국제 대회에 참가하여 활약했다. 1978년 콜롬비아 메데인에서 열린 중앙아메리카 및 카리브해 경기 대회 야구 부문에서 그는 12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470, 3홈런, 9타점을 기록하는 뛰어난 성적을 보여주며 팀의 은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4. 은퇴 후 삶과 사망
프로 야구 선수 생활을 마친 후, 데이비드 그린은 개인적인 삶을 살았다. 하지만 그의 은퇴 후 삶은 비극적인 사건과 함께 마무리되었다.
4.1. 은퇴 후 삶
야구 선수 은퇴 후 그린은 친구의 반려견 미용 사업장에서 일했다. 2010년경부터는 보안 업무에 종사하기도 했다. 그는 결혼했으며, 1980년대에 이전 관계에서 얻은 딸이 한 명 있었다.
4.2. 법적 문제 및 논란
1995년 1월, 그린은 미주리주 서부 외곽의 컨트리 클럽 힐스에서 발생한 교통사고와 관련하여 음주운전 혐의로 체포되었다. 지역 언론 보도에 따르면, 그가 충돌한 차량의 승객이었던 85세의 글래디스 윤트가 사고로 골반이 골절되었고, 두 시간 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그린은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되었고, 유죄 판결을 받아 6개월간 수감 생활을 했다.
4.3. 사망
데이비드 그린은 2022년 1월 25일 향년 61세의 나이로 미주리주 플로리샌트 근처 크리스천 노스이스트 병원에서 사망했다. 사망 원인은 그 전 주에 발생한 질식 사고로 인한 호흡 부전이었다. 다만, 일본어 출처에서는 그가 2022년 1월 29일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한 병원에서 코로나19 합병증으로 인한 심부전으로 사망했다고 보도되어 사망 날짜와 원인에 대해 다소 차이가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