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기 생애 및 배경
1.1. 유년 시절 및 학력
나지완은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그는 서울수유초등학교, 신일중학교, 신일고등학교, 그리고 단국대학교를 졸업했다. 학창 시절부터 야구 선수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2. 아마추어 경력
2.1. 투수에서 타자로의 전환
나지완은 신일중학교 재학 시절, 최고 구속 142 km/h (88 mph)의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로 주목받았다. 2000년에는 대한민국 청소년 야구 국가대표팀(16세 이하)에 선발되어 초대 아시아 청소년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는 데 기여했으며, 투수로서 모든 경기에 출전하여 대회 MVP로 선정되었다. 2001년 신일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팔꿈치 부상으로 인해 야수로 전향하게 되었다.
2.2. 대학 리그에서의 활약
신일고등학교 졸업 후, 나지완은 2004년 KBO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받지 못하고 단국대학교에 진학하여 야구 경력을 이어갔다. 대학 재학 중에는 대한민국 대학 야구 리그에서 손꼽히는 강타자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으며, 2006년과 2007년에 홈런왕 타이틀을 차지했다.
2.3. 국가대표 경력
2007년 10월, 단국대학교 4학년 재학 중이던 나지완은 2007 야구 월드컵에 참가할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었다. 그는 당시 대한민국 대표팀에서 유일한 아마추어 외야수였다. 이 대회에서 그는 주전 좌익수로 출전하여 타율 0.385, 3타점을 기록하며 활약했다.
이후 2014년 인천 아시안 게임에도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참가하여 금메달을 획득하며 병역특례 혜택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이 대회 참가 당시 부상을 숨겼다는 보도가 있었다.
연도 | 팀 | 대회 | 성적 | 기록 |
---|---|---|---|---|
2007 | TPE대만영어 | 2007 야구 월드컵 | 5위 | 타율 0.385 (39타수 15안타), 3타점, 3득점, 1도루 |
2014 | 대한민국 |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 금메달 | 타율 0.000 (4타수 0안타), 0타점, 0득점, 0도루 |
3. 프로 경력
3.1. 드래프트 및 데뷔
나지완은 2008년 KBO 드래프트 2차 1라운드에서 KIA 타이거즈의 5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그는 2008년 3월 29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시즌 개막전에서 프로 데뷔전을 치렀다. 당시 그는 타이거즈 역사상 최초로 신인 타자가 개막전 4번 타자로 출전하는 기록을 세웠다. 첫 타석에서는 배영수를 상대로 헛스윙 삼진을 당했으며, 데뷔전에서 3타수 무안타 1타점을 기록했다.
3.2. 신인 시절 및 성장
프로 데뷔 초 나지완은 변화구에 약점을 보이며 타격 부진에 빠졌고, 4월 말에는 2군으로 강등되기도 했다. 6월에 다시 1군 로스터에 합류했지만, 주로 플래툰 또는 백업 외야수로 출전했다. 그는 루키 시즌을 73경기 출전, 타율 0.295, 6홈런, 30타점으로 마무리했다.
3.3. 2009년 한국시리즈와 도약
2009년 시즌 초, 주전 외야수 이용규가 발목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나지완은 타이거즈의 주전 좌익수로 자리매김했다. 그의 타율은 0.263으로 낮아졌지만, 482타석을 소화하며 타격 타이틀 규정 타석을 충족했고(리그 39위), 23홈런(리그 11위)을 기록하며 장타력을 과시했다. 또한 볼넷(66개, 18위), 타점(73개, 19위), 장타율(0.474, 23위)에서도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2009년 한국시리즈 7차전이 열린 2009년 10월 24일, 나지완은 당시 2년 연속 우승팀이었던 SK 와이번스를 상대로 극적인 활약을 펼쳤다. 6회말 KIA가 5-1로 뒤지고 있던 상황에서 와이번스 구원 투수 이승호를 상대로 2점 홈런을 터뜨리며 추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리고 5-5 동점이던 9회말, 채병용을 상대로 끝내기 솔로 홈런을 쏘아 올리며 팀의 6-5 승리를 이끌었다. 이 극적인 홈런으로 KIA 타이거즈는 12년 만에 통산 10번째 우승을 달성했다. 나지완의 끝내기 홈런은 한국시리즈 역사상 세 번째 끝내기 홈런이자, 우승을 결정짓는 끝내기 홈런으로는 역대 두 번째(7차전에서는 최초)였다. 그는 7차전에서의 결정적인 활약으로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했다. 당시 타이거즈의 선발 투수 아킬리노 로페즈가 1차전과 5차전에서 승리 투수가 되고 7차전에서도 구원 등판하여 위기를 막는 등 뛰어난 활약을 펼쳤기에 그 역시 MVP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나지완의 끝내기 홈런이 워낙 극적이었기에 MVP의 영광은 나지완에게 돌아갔다.
3.4. 중반기 활약 및 주요 마일스톤
2010년에는 부상으로 인해 출전 경기 수와 홈런 수가 전년보다 감소했다. 2011년에도 부상으로 시즌 초반을 놓쳤지만, 시즌 후반 이범호의 이탈로 4번 타자를 맡아 활약했다. 2012년에는 주축 타자들이 연이어 이탈하는 상황 속에서도 2년 만에 100경기 이상 출전하며 팀의 중심을 지켰다. 2013년에는 부상 선수 속출로 어려운 타선에서 팀 내 최다인 96타점을 기록했다. 2015년에는 7년 만에 한 자릿수 홈런을 기록하는 등 성적이 저하되기도 했으나, 2016년부터 2018년까지 3년 연속 25홈런 이상을 기록하며 꾸준한 장타력을 보여주었다.
3.5. FA 및 후반기 경력
2016년 시즌 후 FA 자격을 얻은 나지완은 4년 총액 40.00 억 KRW(계약금 16.00 억 KRW, 연봉 6.00 억 KRW)에 KIA 타이거즈와 재계약하며 팀에 잔류했다. 2020년 5월 28일 KT 위즈와의 경기에서 소형준을 상대로 개인 통산 208호 홈런을 기록하며, 김성한이 보유하고 있던 타이거즈 프랜차이즈 선수 최다 홈런 기록을 경신했다. 2021년 시즌에는 팀의 주장으로 선임되었으나, 홈런을 하나도 기록하지 못하는 등 개인 커리어 최악의 성적을 남겼다. 2022년 9월 1일, 현역 은퇴를 발표했고, 10월 7일 KT 위즈와의 경기가 그의 은퇴 경기가 되었다. 이 경기에서 그는 황대인의 대타로 타석에 들어섰으나 3루수 파울 플라이로 물러났다.
4. 수상 경력
나지완은 프로 선수 경력 동안 다음과 같은 주요 수상 경력을 가지고 있다.
- 한국시리즈 MVP: 1회 (2009년)
2009년 한국시리즈 MVP는 그의 선수 경력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특히 7차전에서 터뜨린 끝내기 홈런은 팀의 우승을 결정짓는 역사적인 장면으로 기억되며, 이 공로를 인정받아 MVP로 선정되었다.
5. 개인사
5.1. 가족
나지완은 2017년에 양미희와 결혼했다.
5.2. 별명
나지완은 선수 생활 동안 여러 별명으로 불렸다. 그의 응원가가 YB의 '나는 나비'였기 때문에 팬들 사이에서 '나비'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또한, 체격이 다소 통통했기 때문에 '나지방'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리기도 했다.
6. 은퇴 후 활동
6.1. 방송 해설
프로 야구 선수 은퇴 후, 나지완은 방송사의 야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며 새로운 경력을 시작했다. 2023년부터 KBS N 스포츠의 야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했으며, 2024년 4월부터는 SBS 스포츠로 자리를 옮겨 야구 해설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7. 통산 기록
연도 | 팀명 | 타율 | 경기 | 타수 | 득점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루타 | 타점 | 도루 | 도실 | 볼넷 | 사구 | 삼진 | 병살 | 실책 |
---|---|---|---|---|---|---|---|---|---|---|---|---|---|---|---|---|---|---|
2008 | KIA | 0.295 | 73 | 200 | 25 | 59 | 12 | 1 | 6 | 91 | 30 | 1 | 2 | 28 | 6 | 44 | 2 | 0 |
2009 | 0.263 | 128 | 384 | 58 | 101 | 12 | 0 | 23 | 182 | 73 | 4 | 1 | 58 | 8 | 90 | 9 | 1 | |
2010 | 0.215 | 109 | 316 | 42 | 68 | 11 | 0 | 15 | 124 | 53 | 3 | 2 | 45 | 18 | 82 | 9 | 0 | |
2011 | 0.302 | 85 | 291 | 41 | 88 | 9 | 0 | 18 | 151 | 66 | 0 | 1 | 35 | 4 | 63 | 4 | 0 | |
2012 | 0.274 | 124 | 398 | 40 | 109 | 17 | 1 | 11 | 161 | 56 | 7 | 3 | 56 | 13 | 93 | 9 | 0 | |
2013 | 0.287 | 125 | 435 | 57 | 125 | 18 | 0 | 21 | 206 | 96 | 7 | 3 | 62 | 18 | 111 | 12 | 4 | |
2014 | 0.312 | 118 | 398 | 64 | 124 | 22 | 0 | 19 | 203 | 79 | 3 | 3 | 54 | 12 | 97 | 9 | 0 | |
2015 | 0.253 | 116 | 304 | 34 | 77 | 16 | 0 | 7 | 114 | 31 | 3 | 1 | 46 | 16 | 79 | 10 | 1 | |
2016 | 0.308 | 118 | 380 | 84 | 117 | 21 | 2 | 25 | 217 | 90 | 6 | 3 | 85 | 17 | 90 | 8 | 1 | |
2017 | 0.301 | 137 | 459 | 85 | 138 | 20 | 3 | 27 | 245 | 94 | 1 | 1 | 62 | 23 | 105 | 10 | 1 | |
2018 | 0.271 | 114 | 317 | 50 | 86 | 18 | 0 | 26 | 182 | 78 | 0 | 0 | 38 | 19 | 81 | 14 | 0 | |
2019 | 0.186 | 56 | 129 | 12 | 24 | 5 | 0 | 6 | 47 | 17 | 0 | 0 | 19 | 3 | 37 | 3 | 0 | |
2020 | 0.291 | 137 | 468 | 73 | 136 | 19 | 1 | 17 | 208 | 92 | 0 | 0 | 64 | 18 | 114 | 6 | 1 | |
2021 | 0.160 | 31 | 81 | 3 | 13 | 1 | 0 | 0 | 14 | 7 | 0 | 0 | 14 | 6 | 29 | 3 | 0 | |
2022 | 0.000 | 2 | 1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
통산 | 15시즌 | 0.277 | 1473 | 4561 | 668 | 1265 | 201 | 8 | 221 | 2145 | 862 | 35 | 20 | 666 | 181 | 1115 | 108 | 9 |
8. 평가 및 영향력
나지완은 2008년부터 2022년까지 선수 생활 전체를 KIA 타이거즈에서 보낸 대표적인 프랜차이즈 스타로 평가받는다. 특히 2009년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터뜨린 그의 극적인 끝내기 홈런은 12년 만에 팀의 우승을 확정 짓는 상징적인 순간으로, 타이거즈 팬들에게 영원히 기억될 명장면으로 남아있다. 그는 꾸준한 장타력을 바탕으로 팀 공격의 핵심 역할을 수행했으며, 특히 2010년대 중반 KIA 타선의 중심을 지켰다. 오랜 기간 한 팀에서 헌신하며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고, 그의 헌신과 활약은 타이거즈의 역사와 팬덤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나지완은 KIA 타이거즈의 현대사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선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