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린 시절과 교육
기무라 사오리는 어린 시절 배구를 시작하여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을 거치며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었고,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슈퍼 여고생'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일본 배구계의 주목을 받았다.
1.1. 유년기
기무라 사오리는 1986년 8월 19일 사이타마현 야시오시에서 태어났다. 이후 아버지의 직업 때문에 오사카와 도쿄를 거쳐 아키루노시의 다세이 초등학교에 다녔다. 배구 선수였던 부모님, 특히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초등학교 2학년 때 아키가와 JVC에 입단하며 배구를 시작했다. 당시 아키가와 JVC는 수비 훈련을 중심으로 하는 팀이었고, 이때 집중적으로 한 리시브 연습은 현재의 리시브 능력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그녀는 회상했다. 팀에서는 주로 레프트를 맡았으며, 초등학교 6학년 때는 도쿄신문배에서 우승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주말에 친구들과 실컷 놀고 싶다'는 이유로 2주 정도 팀을 그만둔 적이 있는데, 배구와 떨어져 있었던 유일한 기간이었다.
1.2. 중학교 및 고등학교 시절
중학교는 배구 명문인 세이토쿠 학원 중학교에 진학했다. 이곳에서 이후 팀 동료가 될 오야마 가나, 아라키 에리카, 오야마 미키 등과 만났다. 중학교 입학 당시 키는 163 cm로 그리 크지 않았지만, 중학교 3년 동안 약 15 cm가 자랐다. 이후 포지션은 주로 센터와 라이트를 맡았고, 주력 선수로서 전일본 중학교 배구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했다. 또한 전국 도도부현 대항 중학 배구 대회에서 JOC컵을 수상했으며, B퀵은 특기라 할 정도로 숙달되어 플레이의 폭을 넓혔다. 중학교 2학년 때 배구 인생에서 처음으로 왼쪽 중지 손가락 골절을 겪었으나, 전치 2주로 경미하여 큰 지장은 없었다.
2002년, 배구 명문으로 알려진 세이토쿠 학원 고등학교(현 시모키타자와 세이토쿠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자 라이트 주전 선수로 활약하며 2003년 봄 고교 배구에서 우승을 차지해 세이토쿠의 2연패에 기여했다. 같은 해 8월 열린 인터하이에서는 3위에 그쳐 연패를 놓쳤지만, 인터하이 폐막과 동시에 전일본 대표팀 강화 합숙에 소집되었고, 같은 해 9월 아시아 선수권 대회에 출전했다. 당시 그녀는 세터로 등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11월에 열린 2003년 월드컵에는 부상당한 스즈키 히로미를 대신해 출전했다.
12월 전국 사학 대회에서 시모키타자와 세이토쿠 고등학교는 대회 사상 첫 3연패를 달성했다. 2004년 봄 고교 배구에서는 대회 3연패를 목표로 결승에 진출했으나, 1세트에서 스파이크를 성공시킨 직후 아군 선수인 요코야마 유미카와 충돌하여 넘어지면서 오른쪽 발목을 삐었다. 응급 처치 후 발을 절뚝거리면서도 플레이를 계속했지만, 결국 규슈 분카 학원 고등학교에 1-3으로 패하여 준우승에 머물렀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최종 예선에서 다시 전일본 대표팀에 소집되어 첫 경기인 이탈리아전에서 대표팀 첫 선발 출전 기회를 얻어 14득점을 기록했다. 그녀는 특유의 성격과 순진한 미소로 "슈퍼 여고생"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해졌다. 이는 일본 여자 배구팀이 2개 대회 만에 올림픽 본선 진출에 크게 기여한 일이었다.
6월에는 인터하이 간토 예선에 출전했으나 예선 탈락했다. 전일본 유럽 합숙에 소집되어 이탈리아 4개국 대항전 등에 출전했다. 7월부터 한 달간 월드 그랑프리에 출전했으나, 일본은 예선에서 탈락했고 그녀는 눈에 띄는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은 8월 14일부터 개막했지만, 허리 상태가 최악이어서 서 있는 것조차 힘들었다(아테네에서 다른 종목 트레이너로부터 추간판 탈출증 진단을 받았다). 이 때문에 출전 기회가 거의 없이 첫 올림픽을 마쳤다. 그러나 결승전인 중국 대 러시아 경기를 현장에서 관전하며 최고 수준의 경기를 목격한 것이 계기가 되어 처음으로 메달에 대한 강한 열망이 생겼다. 올림픽 종료 후 스리랑카에서 개최된 아시아 주니어 선수권 대회에 출전했다. 2004년 12월, 고등학교 마지막 대회인 전국 사학 대회 무렵에는 허리 통증이 더욱 악화되었다. 결승전 2세트 막판에 출전했지만, 득점을 기록하지 못하고 고등학교 배구 생활을 마감했다.
2. 프로 경력
기무라 사오리는 국내외 프로 배구단에서 활약하며 일본을 대표하는 윙스파이커로 성장했다. 특히 해외 리그에서의 경험은 그녀의 기량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2.1. 도레이 애로스 초기 활동 (2005-2012)
고등학교 졸업 후 도레이 애로스에 입단하여 프로 선수 경력을 시작했다. 2005년 7월에 열린 세계 주니어 여자 배구 선수권 대회 (U-20)에서는 전 경기 주전으로 출전하여 득점왕에 오르며 성공적인 부활을 알렸다. 9월 1일부터 열린 아시아 선수권 대회에서는 당시 이탈리아 리그로 파견 이적했던 NEC 레드 로케츠의 다카하시 미유키를 대신해 에이스로 활약했다.
자신의 첫 리그인 제12회 V리그에서는 개막전에서 라이트 주전으로 출전했다. 이 경기에서 그녀는 팀 최고 공격 성공률인 52.0%와 2개의 서비스 에이스를 기록하며 첫 승리에 기여했다. 이후에도 레프트와 라이트를 오가며 주전으로 출전하여 리그 전반기 팀의 돌풍을 이끌었다. 리그 후반기에는 공격 성공률이 비교적 안정적이었지만, 서브를 집중적으로 노림당하면서 공격 패턴이 봉쇄되기도 했다. 또한 허리 통증의 영향으로 서브 리시브가 불안정한 모습도 보였으나, 공격 성공률 리그 6위, 서브 효과율 리그 9위의 성적으로 신인상을 수상했다.
2006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 출전했고, 2007년 아시아 선수권 대회에서는 일본의 우승에 크게 기여하며 베스트 서버상을 받았다. 같은 해 2007년 월드컵에도 출전했다. 2007년 천황배·황후배에서는 우승하며 초대 챔피언이 되었다. 2008년 2007-08 V.프리미어 리그에서 도레이의 리그 첫 우승에 기여하며 베스트 6에 선정되었다. 같은 해 8월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했다.
2009년 2008-09 V.프리미어 리그에서 여자 배구 사상 첫 2연패에 기여하며 전년에 이어 베스트 6에 선정되었다(일본인 최다 득점). 같은 해 5월 제58회 구로와시키 전일본 남녀 선발 배구 대회에서 우승하며 자신의 첫 구로와시키상(최고 수훈 선수)과 베스트 6를 수상했다. 2010년부터는 여동생인 기무라 미사토도 도레이에 입단했다.
2010년 2009-10 V.프리미어 리그에서 여자 배구 사상 첫 3연패에 기여하며 자신의 첫 MVP에 선정되었고, 3년 연속 베스트 6를 달성했다. 또한 구마에마 치카코가 가지고 있던 최다 득점 기록을 경신하며 정규 라운드에서 총 566점(공격 496점, 블로킹 43점, 서브 27점)을 기록하여 V리그 일본 기록상(최다 득점 부문)을 받았다. 같은 해 5월 제59회 구로와시키 전일본 남녀 선발 배구 대회에서 우승하며 2년 연속 구로와시키상과 베스트 6를 수상했다. JT와의 결승전에서는 3세트에서 홀로 14득점을 올리는 맹활약을 펼쳤다.
2010년 월드 그랑프리에서는 부상으로 불참한 구리하라 메구미를 대신하여 임시 부주장을 맡았다. 공수 양면에서 팀의 중심이 되어 팀을 이끌었고, 예선 라운드에서 165득점, 결승 라운드에서 105득점을 기록하며 예선과 결승 모두 베스트 스코어러에 올랐다. 팀은 이탈리아를 두 번 꺾고 9년 만에 브라질에 승리하는 등 선전했지만, 최종 순위는 5위에 그쳤다. 같은 해 11월에 열린 2010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는 32년 만의 동메달 획득에 크게 기여했다. 에이스로서 거의 풀타임 출전했으며, 베스트 스코어러 랭킹에서는 터키의 네슬리한 데미르에 이어 2위를 차지했고, 공격 시도수, 서브 리시브 수, 서브 시도수에서는 전체 선수 중 가장 많은 수치를 기록했다.
2011년 11월 2일, 일본 문화 출판에서 자신의 첫 포토 & 에세이 'Saori'를 출간했다. 2011년 월드컵에서는 빠른 토스를 시도한 영향과 직전 주축 멤버들의 이탈 등으로 팀과 본인 모두 초반에는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젊은 선수들의 성장에 힘입어 점차 팀이 굳건해졌고, 당시 세계 랭킹 1위 브라질과 2위 미국을 스트레이트로 꺾는 등 파죽지세로 반격하여 5연승으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그러나 최종 순위는 4위가 되어 상위 3개 팀에게 주어지는 런던 올림픽 출전권 획득에는 아쉽게 실패했다. 그녀 자신도 초반에는 고전했지만, 이후 안정적인 활약을 보여 최종적으로 베스트 스코어러 4위, 베스트 어태커 5위, 베스트 블로커 13위, 베스트 서버 11위, 베스트 리시버 3위, 베스트 디거 10위라는 공수 균형 잡힌 개인 성적을 남겼다. 특히 베스트 리시버와 베스트 디거 부문에서는 수비 전문 선수인 리베로를 제외하면 모두 최상위였으며, 그녀의 뛰어난 수비 능력을 증명하는 결과였다.
2012년 2011-12 V.프리미어 리그에서 도레이 애로스의 4번째 우승에 기여했다. 결승전에서는 양 팀 통틀어 최다인 20득점을 기록하며 5년 연속 베스트 6에 선정되었다. 시즌 도중 2라운드 막판 팀 훈련 중 발목을 삐어 전치 3주 진단을 받았다. 2012년 2월 11일, 12일에 열린 기후 대회에서는 팀에 동행하지 않았고, 다음 주 야마가타 대회부터 벤치에 복귀했다(경기에는 출전하지 않았다). 사실상의 복귀전이었던 2월 25일 오카야마 시갈즈와의 경기에서는 공격에서 2득점밖에 올리지 못하고 2세트 도중 교체되는 등 최악의 컨디션을 보였다. 팀 동료인 세터 나카미치 히토미에 따르면 다음 날 아침 연습에서 기무라는 매우 예민한 분위기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모습은 처음이었고, 나카미치는 그날 경기(2월 26일 히사미츠 제약전)에서 최대한 그녀에게 토스를 올리려 노력했다고 한다. 부상 복귀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풀세트 경기에 풀타임 출전하여 팀 최다인 24득점을 기록하며 팀 승리를 이끌었다.

2012년 6월, 2012년 런던 올림픽 대표팀 명단에 선정되었다. 8강전 중국전에서는 에바타 유키코와 함께 팀 최다인 33득점을 기록하며, 그동안 올림픽에서 한 세트도 따내지 못했던 상대를 풀세트 접전 끝에 물리치는 활약을 펼쳤다. 3위 결정전에서 대한민국을 스트레이트로 꺾고 일본 여자 배구 대표팀의 28년 만의 동메달 획득에 주역이 되었다. 중심 선수로서 전 경기에 풀타임 출전했으며,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이어 일본인 베스트 스코어러에 올랐다. 전체적으로도 베스트 스코어러 부문 3위, 베스트 스파이커 12위, 베스트 리시버 12위, 베스트 디거 부문 8위에 랭크되었다.
2.2. 해외 리그 활동 (2012-2014)
2012년 7월 10일, 런던 올림픽 종료 후 2012-13 시즌부터 터키 리그의 바크프방크 튀르크텔레콤으로 이적할 것이 발표되었다. 연봉은 1.00 억 JPY에 달했으며, 태국 언론에서는 3400.00 만 THB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같은 해 8월 16일, 스포츠 비즈와 매니지먼트 계약을 체결했다. 9월 7일 나리타 국제공항을 통해 터키로 출국하며 "여러 면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같은 날 터키 체류 기간 동안만 업데이트될 '기무라 사오리 오피셜 블로그 "기무라 사오리의 터키 분투기"'를 아메바 블로그에서 시작했다. 10일에는 이스탄불 입단 기자회견에 참석하여 새 팀에서의 포부를 밝혔으며, 본인의 희망으로 결정된 등번호 '18번' 유니폼을 처음 선보였다. 9월 말에는 도레이 주식회사를 퇴사했다.
2013년 1월 31일, 침구류 제조사 도쿄 니시카와와 스폰서 계약을 체결했음이 발표되었다. 3월 12일에는 터키항공과 공식 항공사 파트너 계약을 체결했다. 같은 해 3월, 유럽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예선 라운드에서는 선발로 출전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주로 스파이크 면에서 어려움을 겪었고, PLAYOFF12 이후에는 주로 리시브와 수비 강화를 위한 교체 서버로 기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결승전인 라비타 바쿠전에서는 3세트 모두 교체 출전하여 서브와 후위 리시브로 기여했다. 결승전 후에는 "정말 이기고 싶었기에 우승해서 정말 좋았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서브로 공격하여 흐름을 좋게 바꾸는 등, 팀의 좋은 리듬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오반니 구이데티 감독은 그녀를 "거의 완벽하다"고 극찬했다. 준결승에서는 사노 유코가 이적한 갈라타사라이 다이킨과 대결하여 사상 첫 파이널 4에서의 일본인 맞대결이 성사되었다. 이 준결승과 결승전은 BS 후지에서 생중계되었다. 바크프방크는 터키컵과 터키 리그도 제패하며 공식전 47연승으로 3관왕을 달성, 최고의 형태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2013년 5월 13일, 마나베 마사요시 일본 여자 배구 국가대표팀 감독의 지명을 받아 2013년도 국가대표팀 주장으로 취임했다(배구 인생 첫 주장). 2012-13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결심했으나, 마나베 감독의 적극적인 권유로 마음을 바꾼 사실을 공개했다. 그리고 "세계 최고를 아는" 전 주장 다케시타 요시에의 리더십을 계승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다케시타가 달았던 등번호 '3번'을 희망했다고 한다.
2013년 6월 3일, 다이킨 공업 (같은 터키 리그 갈라타사라이의 스폰서 모회사)은 바크프방크에서 갈라타사라이로의 이적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2.3. 도레이 애로스 복귀 및 은퇴 (2014-2017)
2014년 6월 5일, 도레이 애로스로의 복귀가 결정되었다. 도레이에서는 첫 프로 계약으로 계약 기간은 2년이었다. 2015년 8월 월드컵 직전, 런던 올림픽 이후 길러 경기에선 세 가닥으로 땋아 하나로 묶었던 머리를 30 cm 잘라 대회에 임했다.
2016년 5월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세계 최종 예선. 전날 1세트에서 오른손 새끼손가락을 부상당한 상태에서 2세트부터 출전한 4일째 태국전(역전승)에서는 열세인 마지막 세트에서 코트 안에서 동료들을 모아 6명이 손을 잡고 원을 이뤘다. 기무라는 이후에도 계속 출전하여 6일째에 일본은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했다. 그녀 자신도 출전이 확정되어, 일본 여자 실내 배구 역사상 최초로 4회 연속 올림픽 출전을 기록하게 되었다.
2016년 12월 31일, 전 실내 배구 및 비치발리볼 선수인 히다카 유지로와 결혼했다고 발표했다.
2017년 3월 22일, 기자회견을 열고 공식적으로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그녀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경기는 2012년 런던 올림픽 8강전 중국전이었다.
3. 국가대표팀 경력
기무라 사오리는 오랜 기간 일본 여자 배구 국가대표팀의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올림픽을 포함한 주요 국제 대회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3.1. 국가대표팀 초기 활동 및 올림픽 데뷔
고등학교 2학년 때인 2003년 야나기모토 쇼이치가 이끄는 일본 국가대표팀에 처음 발탁되었고, 같은 해 11월에 열린 2003년 월드컵을 통해 처음으로 성인 국제 대회에 참가했다. 당시 그녀는 부상당한 선수를 대신하여 출전하게 되었다.
그녀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 2008년 베이징 올림픽, 2012년 런던 올림픽,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까지 4번의 올림픽에 참가했다. 이는 일본 여자 실내 배구 선수 중 최초의 4회 연속 올림픽 출전 기록이다. 특히 런던에서 열린 2012년 올림픽에서는 동메달을 획득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3.2. 주요 국제 대회 성과
- 올림픽:
- 2004년 아테네: 5위
- 2008년 베이징: 5위
- 2012년 런던: 동메달
-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5위
- 세계 선수권 대회:
- 2006년 일본: 6위
- 2010년 일본: 동메달
- 2014년 이탈리아: 7위
- 월드컵:
- 2003년 일본: 5위
- 2007년 일본: 7위
- 2011년 일본: 4위
- 2015년 일본: 5위
- 월드 그랜드 챔피언스컵:
- 2005년 일본: 5위
- 2009년 일본: 4위
- 2013년 일본: 동메달
- 월드 그랑프리:
- 2008년 일본: 6위 (결승 라운드)
- 2009년 일본: 6위 (결승 라운드)
- 2010년 중국: 5위 (결승 라운드)
- 2011년 마카오, 중국: 5위 (결승 라운드)
- 2013년 일본: 4위 (결승 라운드)
- 2014년 일본: 은메달
- 2015년 미국: 6위 (결승 라운드)
- 아시안 게임:
- 2006년 도하: 은메달
- 아시아 선수권 대회:
- 2005년 중국: 동메달
- 2007년 수판부리: 금메달
- 2009년 하노이: 동메달
- 2011년 타이베이: 은메달
- 2013년 나콘랏차시마: 은메달
- 기타 대회:
- 2010년 피에몬테 우먼 컵 토너먼트 (이탈리아): 금메달
- 2011년 몽트뢰 발리 마스터스 (스위스): 금메달
- 2015년 몽트뢰 발리 마스터스 (스위스): 은메달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의 기무라 사오리
3.3. 국가대표팀 주장 활동
2013년 5월 13일, 마나베 마사요시 전일본 여자 배구 감독에 의해 2013년도 전일본 주장으로 지명되었다. 이는 그녀의 배구 인생에서 첫 주장이었다. 그녀는 2012-13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결심했지만, 마나베 감독의 적극적인 권유로 은퇴를 번복한 사실을 공개했다. 또한, 전 주장인 다케시타 요시에의 리더십을 이어받고 싶다는 마음에 다케시타가 사용하던 등번호 '3번'을 희망했다고 한다. 주장으로서 그녀는 팀의 구심점 역할을 하며 리더십을 발휘했다.
4. 플레이 스타일 및 특징
기무라 사오리는 윙스파이커(Wing-spiker영어, アウトサイドヒッター아웃사이드 히터일본어) 포지션에서 주로 활약했으며, 탁월한 다재다능함으로 어떤 포지션이든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선수 경력 초반에는 장신 세터로 기대를 받기도 했으며, 가사이 마사에로부터 지도를 받기도 했다. 이러한 배경은 그녀가 다양한 포지션에서 뛰어난 이해도를 바탕으로 경기를 펼치는 데 기여했다.
그녀는 '미라클 사오린'(Miracle Saorin), '슈퍼 여고생'(スーパー女子高生), '무한 사오리'(無限沙織) 등의 별명으로 불리며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특히 고등학교 시절부터 주목받으며 일본 배구계의 기대주로 떠올랐다. 185 cm의 큰 키에 긴 다리를 가진 뛰어난 신체 조건을 자랑했으며, 스파이크 도달점은 304 cm, 블로킹 도달점은 293 cm에 달했다.
2009-10 시즌 V.프리미어 리그에서는 외국인 선수가 팀에 잘 적응하지 못하면서 공수 양면에서 기무라에게 큰 부담이 가해졌다. 이러한 압박감 때문에 잠을 잘 이루지 못하거나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고, 체중이 전년 대비 5 kg 감소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팀의 핵심으로서 훌륭한 활약을 이어갔다.
그녀의 인기는 배구 전문 잡지 '월간 배구'의 표지를 14개월 연속(2011년 9월호부터 2012년 10월호까지) 장식할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한 선수가 1년 이상 연속으로 표지에 등장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그녀의 엄청난 인기와 영향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5. 수상 경력
기무라 사오리는 선수 경력 동안 수많은 개인상과 소속 팀과 함께 달성한 주요 수상 기록을 통해 뛰어난 기량과 팀에 대한 기여를 인정받았다.
5.1. 개인 수상
- 2005년: 제13회 세계 주니어 여자(U-20) 선수권 대회 - 베스트 스코어러상
- 2006년: 제12회 V리그 - 신인상
- 2007년: 2007년 아시아 선수권 대회 - 베스트 서버상
- 2008년: 2007/08 V.프리미어 리그 - 베스트 6
- 2009년: 2008/09 V.프리미어 리그 - 베스트 6
- 2009년: 한일 V.리그 탑 매치 - MIP (Most Impressive Player)
- 2009년: 제58회 구로와시키 전일본 남녀 선발 배구 대회 - 구로와시키상(최고 수훈 선수), 베스트 6
- 2009년: 2009년 아시아 선수권 대회 - 베스트 서버상
- 2010년: 2009/10 V.프ri미어 리그 - MVP(최고 수훈 선수), 베스트 6, V리그 일본 기록상(최다 득점 부문)
- 2010년: 한일 V.리그 탑 매치 - MVP
- 2010년: 제59회 구로와시키 전일본 남녀 선발 배구 대회 - 구로와시키상(최고 수훈 선수), 베스트 6
- 2010년: 토리노 국제 대회 - MVP, 베스트 서버상
- 2010년: 2010년 월드 그랑프리 - 베스트 스코어러
- 2011년: 2010/11 V.프리미어 리그 - 감투상, 베스트 6
- 2011년: 제60회 구로와시키 전일본 배구 선수권 대회 - 베스트 6
- 2012년: 2011/12 V.프리미어 리그 - 베스트 6
- 2016년: 제66회 일본 스포츠상 - 경기 단체별 최우수상
- 2017년: V리그 명예상 및 공로상
5.2. 클럽 수상
- 도레이 애로스:
- 2007년: 전국 스포츠 페스티벌 - 우승
- 2007-2008년: 황후배 - 우승
- 2007-2008년: V.프리미어 리그 - 우승
- 2008년: 전국 스포츠 페스티벌 - 준우승
- 2008-2009년: V.프리미어 리그 - 우승
- 2009년: 구로와시키 전일본 배구 선수권 대회 - 우승
- 2009-2010년: V.프리미어 리그 - 우승
- 2010년: 구로와시키 전일본 배구 선수권 대회 - 우승
- 2010-2011년: 황후배 - 준우승
- 2010-2011년: V.프리미어 리그 - 준우승
- 2011-2012년: 황후배 - 우승
- 2011-2012년: V.프리미어 리그 - 우승
- 바크프방크 SK:
- 2012-2013년: 터키컵 - 우승
- 2012-2013년: CEV 여자 챔피언스리그 - 우승
- 2012-2013년: 터키 여자 배구 리그 - 우승
5.3. 개인 통계
V리그 및 V.프리미어 리그 정규 라운드에서의 기무라 사오리 개인 통계는 다음과 같다.
시즌 | 소속 | 출장 | 공격 | 블로킹 | 서브 | 리시브 | 총득점 | 비고 | |||||||||
---|---|---|---|---|---|---|---|---|---|---|---|---|---|---|---|---|---|
경기 | 세트 | 타수 | 득점 | 결정률 | 효과율 | 결정 | /세트 | 타수 | 에이스 | 득점률 | 효과율 | 수수 | 성공률 | ||||
2005/06 | 도레이 애로스 | 27 | 99 | 635 | 281 | 44.3% | % | 19 | 0.19 | 401 | 26 | 6.48% | 12.6% | 564 | 63.1% | 326 | |
2006/07 | 27 | 111 | 1086 | 411 | 37.8% | % | 25 | 0.23 | 446 | 21 | 4.71% | 11.1% | 784 | 75.0% | 457 | ||
2007/08 | 27 | 84 | 779 | 285 | 36.6% | % | 31 | 0.37 | 279 | 16 | 6.43% | 12.7% | 560 | 72.1% | 332 | ||
2008/09 | 27 | 106 | 1243 | 413 | 33.2% | % | 40 | 0.38 | 380 | 22 | 5.79% | 12.8% | 795 | 70.7% | 475 | ||
2009/10 | 28 | 108 | 1306 | 496 | 38.0% | % | 43 | 0.40 | 390 | 27 | 6.92% | 16.1% | 1088 | 61.5% | 566 | 총득점 566점은 일본인 선수 최고 기록. | |
2010/11 | 26 | 100 | 1329 | 488 | 36.7% | % | 29 | 0.29 | 408 | 26 | 6.37% | 13.6% | 912 | 69.7% | 543 | ||
2011/12 | 19 | 64 | 673 | 256 | 38.0% | % | 16 | 0.25 | 223 | 13 | 5.83% | 13.8% | 469 | 61.6% | 285 | ||
2014/15 | 도레이 애로스 | 21 | 82 | 879 | 295 | 33.6% | % | 31 | 0.38 | 331 | 10 | 3.02% | 11.2% | 582 | 70.3% | 336 | |
2015/16 | 21 | 80 | 786 | 269 | 34.2% | % | 25 | 0.31 | 391 | 27 | 6.91% | 15.4% | 359 | 68.0% | 321 | ||
2016/17 | 21 | 77 | 739 | 226 | 30.6% | % | 27 | 0.35 | 253 | 4 | % | 8.2% | 552 | 72.8% | 257 | ||
통산 | 244 | 911 | 9455 | 3420 | 36.2% | % | 286 | 0.31 | 3502 | 192 | % | 12.9% | 6665 | 68.4% | 3898 |
6. 개인 생활
기무라 사오리는 2016년 12월 31일, 전 실내 배구 및 비치발리볼 선수인 히다카 유지로와 결혼했다. 2023년에는 아들 고타로를 낳으며 부모가 되었다.
7. 은퇴 후 활동
선수 은퇴 후 기무라 사오리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7.1. 미디어 출연 및 광고 활동
그녀는 여러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버라이어티 쇼에 출연하며 대중적 인기를 이어갔다. TBS의 'バース・デイ'(2011년, 2012년), MBS/TBS의 '정열대륙'(2011년, 2012년), BS 후지의 '아스리토노 치카라'(2012년), NHK BS1/종합의 '아스리토노 타마시'(2012년) 등 스포츠 및 정보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또한 BS-TBS의 '벌거벗은 애슬리트'(2012년), TBS의 '하나마루 마켓'(2012년), 분카 방송의 '세키네 츠토무의 스포파라'(2012년) 등 다양한 방송에 모습을 비쳤다.
버라이어티 쇼로는 후지 TV의 '갑자기 점쳐도 될까요?'(2021년 9월), 니혼 TV의 '힐난데스!'(2019년 12월~2020년 1월, 수요일 시즌 레귤러)에 출연하기도 했다. 특히 2015년 8월 23일에는 애니메이션 '사자에상'에 본인 역할로 출연하여 가쓰오와 악수하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광고 및 홍보 활동으로는 게이한 전기 철도의 '파인 플레이 선언' 매너 포스터(2007년), 제비오의 '여자 부활동 응원 서포터'(2013년)로 활동했다. 스포츠 브랜드 미즈노의 자문 스태프 계약을 맺기도 했다.
2010년 10월 25일에는 TBS에서 방영된 드라마 '내일도 또 살아갈 거야'에서 그녀의 친구 요코야마 유미카의 저서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에 출연했다. 드라마에서는 아이부 사키가 기무라 사오리를, 히가 마나미가 요코야마를 연기했다.
7.2. 출판물
기무라 사오리는 두 권의 서적을 출판했다.
- Saori - 기무라 사오리 포토 & 에세이: 일본 문화 출판, 2011년. ISBN 978-4890841950.
- 232 days in Turkey - 기무라 사오리 포토북: 일본 문화 출판, 2013년. ISBN 978-4890842155.
7.3. 기타 사업 및 활동
은퇴 후에는 일본 배구 협회 선수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8년 8월에는 마루노우치 스포츠 페스 2018에서 기무라가 직접 기획한 'kimura saori "Chocotto" cafe Gallery'를 한시적으로 운영했다. 그녀는 "카페를 갖는 것은 어린 시절부터의 꿈이었다"고 밝혔다. 2019년 10월에는 남편과 함께 오사카시 니시구에 카페 '32(서니)'를 개업했다. 그러나 2023년 말에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카페 'sunny_thirty_two_club'을 그 해 말까지 폐점할 예정임을 알렸다.
8. 유산과 영향
기무라 사오리는 일본 배구계에 지대한 유산과 영향을 남겼다. 그녀는 2003년부터 2016년까지 국가대표팀의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일본 배구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특히 2012년 런던 올림픽 동메달과 2010년 세계 선수권 대회 동메달 획득은 일본 여자 배구의 역사적인 성과로 기록되었으며, 그녀는 이러한 성공의 중심에 있었다.
그녀의 다재다능한 플레이 스타일은 '어떤 포지션이든 소화할 수 있는' 능력으로 평가받으며 후대 선수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또한 '미라클 사오린', '슈퍼 여고생' 등의 별명에서 알 수 있듯이, 뛰어난 기량뿐만 아니라 밝고 친근한 이미지로 대중적 인기를 얻으며 배구의 대중화에도 크게 기여했다. 그녀는 배구 전문 잡지 표지를 14개월 연속 장식하며 스포츠 스타로서의 영향력을 입증했다.
은퇴 후에도 선수위원회 위원, 미디어 활동, 사업 등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며 배구계와 사회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무라 사오리는 단순한 배구 선수를 넘어, 일본 스포츠계의 상징이자 많은 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준 인물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