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고바야시 사토루(小林覚코바야시 사토루일본어, 1959년 4월 5일 ~ )는 일본기원 소속의 전문 바둑 기사이다. 9단으로, 두터움을 중시하는 유연한 기풍과 날카로운 수읽기를 바탕으로 한 공격적인 바둑을 구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5년 제19기 기성 타이틀을 획득하며 기타니 미노루 문하생 중 가장 어린 나이에 7대 타이틀을 획득한 기사가 되었다. 또한 같은 해 제20기 고성 타이틀과 NHK배를 우승하며 2관왕에 올랐고, 제29회 기도상 최우수 기사상을 수상했다. 1997년에는 삼성화재배와 동양증권배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국제 무대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2019년 4월부터 일본기원 이사장으로 취임하여 바둑계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2. 생애 및 배경
고바야시 사토루는 어린 시절부터 바둑에 대한 남다른 재능을 보였으며, 일본 바둑계의 명문 도장인 기타니 미노루 문하에서 수련하며 프로 기사로서의 기틀을 다졌다.
2.1. 출생 및 유년 시절
고바야시 사토루는 1959년 4월 5일 나가노현 마쓰모토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프로 기사에게 두 점을 놓고도 지지 않을 정도의 실력을 가진 아마추어 바둑 애호가였으며, 사토루는 3세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엄격한 바둑 교육을 받았다. 1966년, 본격적인 바둑 수련을 위해 가족 모두 도쿄로 이주했다.
2.2. 가족
고바야시 사토루의 가족은 바둑에 대한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다. 그의 큰 누나인 고바야시 치즈 5단과 형인 고바야시 겐지 7단, 그리고 동생인 고바야시 다카유키(小林孝之) 준기사 2단까지 4남매 모두 프로 바둑 기사이다. 같은 기타니 미노루 문하의 사형인 고바야시 고이치 명예삼관과는 성씨가 같지만 혈연관계는 없다.
2.3. 교육 및 입문
도쿄로 이주한 후, 고바야시 사토루는 4남매와 함께 기타니 미노루 9단의 도장에 입문했다. 이듬해 8세부터는 기타니 도장의 내제자(內弟子)로 생활하며 바둑에 전념했다. 잠시 통이 제자(通い弟子)로 전환하기도 했으며, 기타니 미노루 외에도 이와모토 가오루 9단과 도미타 다다오 8단에게도 사사했다. 1967년 고바야시 사토루가 내제자로 들어갈 당시, 기타니 도장에는 이미 성인이 된 이시다 요시오 24세 본인방과 가토 마사오 명예왕좌, 그리고 막 입단한 고바야시 고이치 명예기성, 조치훈 명예명인 등 쟁쟁한 사형들이 함께 수련하고 있었다. 당시 중학생으로 급위자였던 노부타 나루히토(信田成仁)가 고바야시 사토루에게 7점을 놓고 바둑을 두었으나, 1973년 노부타가 먼저 입단하면서 고바야시 사토루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누나 고바야시 치즈에 이어 1974년에 프로에 입단하며 기타니 도장의 마지막 7대 타이틀 획득자가 되었다.
3. 프로 경력
고바야시 사토루는 1974년 프로 입단 이후 꾸준히 기량을 발전시키며 일본 바둑계의 주요 기사로 자리매김했다.
3.1. 초기 경력 및 성장
프로 입단 초기부터 좋은 성적을 거두었으며, 1976년에는 42승 10패의 성적으로 기도상 신인상을 수상했다. 동시대를 대표하는 라이벌로는 야마시로 히로시, 가타오카 사토시, 왕리청 등이 있었으며, 이들과 함께 신가키 다케시(新垣武), 형 고바야시 겐지 등과 연구회를 결성하여 '가구라자카 그룹'으로 불리기도 했다. 1981년에는 호리코시 고등학교 동창인 배우 무라치 히로미와 결혼했다. 1984년에는 당시 기성, 명인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던 조치훈 9단과 야마시로 히로시, 왕리청, 고바야시 사토루 등 '신선조' 3인이 1년간 '필살 타격 승부'를 벌여 한때 두 점을 놓고 두기도 했으나, 최종적으로 호선으로 돌아왔다. 같은 해 8단으로 승단했으며, 1986년 제2회 일중 슈퍼 바둑에서는 5연승을 달성하며 주목받았다. 1987년에는 9단으로 승단했다. 1992년 IBM 하야고 오픈전에서 우승했으며, 같은 해부터 3년 연속으로 사형 고바야시 고이치 고성에게 도전했으나 모두 패했다.
3.2. 주요 타이틀 및 성과
고바야시 사토루는 국내외 주요 기전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두었으며, 특히 1990년대 중반에 전성기를 맞이하여 여러 타이틀을 획득했다.
- 1979년 제4기 일본 기성전 5단전 우승
- 1980년 제4회 일본 유학원배 우승
- 1981년 제5회 일본 유학원배 우승
- 1982년 제13기 일본 신예전 우승 (상대: 간다 히데시 5단)
- 1983년 제9기 일본 명인전 리그 진입
- 1984년 제9기 일본 기성전 7단전 우승, 전단 쟁패전 우승
- 1987년 제2기 NEC 전영컵 우승 (상대: 오 메이엔 7단)
- 1989년 제3기 일본 IBM배 우승 (상대: 오히라 슈조 9단)
- 1989년 TV 바둑 아시아 선수권 대회 준우승
- 1990년 제15기 고성전 준우승 (상대: 고바야시 고이치 0:3)
- 1991년 제16기 고성전 준우승 (상대: 고바야시 고이치 2:3)
- 1992년 제17기 고성전 준우승 (상대: 고바야시 고이치 1:3)
- 1994년 제19기 일본 기성전 9단전 우승
- 1995년 제19기 기성전에서 조치훈 기성 본인방 왕좌에게 1승 2패로 밀리다 3연승을 거두며 4승 2패로 생애 첫 7대 타이틀인 기성위를 획득했다. 같은 해 제42회 NHK배 TV 바둑 선수권 대회에서 기요나리 데쓰야(清成哲也) 9단을 꺾고 우승했다. 또한 제20기 고성전에서 린하이펑 고성에게 3승 1패로 승리하며 고성위를 획득, 2관왕에 올랐다.
- 1996년 제5기 용성전 우승 (상대: 나카코노다 도모미 7단)
- 1997년 제8회 동양증권배 준우승 (상대: 조훈현 9단)
- 1997년 제2회 삼성화재배 세계 바둑 오픈 선수권 대회 준우승 (상대: 이창호 9단)
- 1998년 제5기 아함동산배 우승 (상대: 조치훈 9단)
- 1999년 후지쯔배 세계 바둑 선수권 대회 3위
- 2000년 제33회 일본 조기 선수권 우승 (상대: 고바야시 고이치 9단)
- 2000년 후지쯔배 세계 바둑 선수권 대회 4강
- 2002년 봉황배 오픈 토너먼트전 우승
- 2002년 후지쯔배 세계 바둑 선수권 대회 8강
- 2003년 봉황배 오픈 토너먼트전 준우승
- 2003년 후지쯔배 세계 바둑 선수권 대회 8강
- 2005년 제30기 일본 명인전에서 장쉬 명인 왕좌에게 3승 4패로 아쉽게 준우승했다.
- 2007년 제31기 일본 기성전 준우승 (상대: 야마시타 게이고 0:4)
- 2011년 12월 1일, 일본기원 기사 중 14번째로 통산 1000승(507패 1빅)을 달성했다.
- 2013년 제3회 마스터즈컵 우승 (상대: 이시이 구니오 9단)
- 2014년 제4회 일본 마스터즈컵 준우승 (상대: 조치훈)
- 2016년 통산 1100승을 달성했다.
- 2017년 제7회 마스터즈컵 우승 (상대: 조치훈 명예명인)
단 | 승단 연도 |
---|---|
1단 | 1974 |
9단 | 1987 |
3.3. 수상 경력
고바야시 사토루는 뛰어난 기량과 활약으로 다양한 수상 경력을 보유하고 있다.
- 1976년 제10회 기도상 신인상
- 1982년 승률 1위 (31승 8패, 0.795)
- 1983년 제17회 기도상 감투상, 승률 1위 (35승 9패, 0.795)
- 1988년 승률 1위 (24승 6패, 0.800)
- 1990년 제24회 기도상 감투상
- 1994년 승률 1위 (34승 7패, 0.829), 연승상 (18연승)
- 1995년 제28회 기도상 연승 기록상, 최다승 (44승 13패), 제13회 TV 바둑 프로그램 제작자회상 수상, 슈사이상 수상
- 1996년 제29회 기도상 최우수 기사상, 최다승리상 수상, 제33회 히데야상 수상
- 2002년 기도상 연승 기록상 (17연승)
- 2003년 통산 800승 달성
- 2005년 기자 클럽상, 최다승 (46승 16패)
- 2006년 통산 900승 달성 (달성 당시 승률 역대 1위 기록)
- 2011년 통산 1000승 달성
3.4. 기풍
고바야시 사토루의 기풍은 두터움을 중시하면서도 유연한 것으로 평가된다. 본인 스스로는 수읽기를 기본으로 하는 바둑을 둔다고 말하며, 특히 1995년 조치훈 기성과의 7번 승부 이후로는 더욱 날카로운 침투를 선보이는 바둑으로 변화했다.
4. 주요 사건 및 논란
고바야시 사토루의 프로 경력 중에는 한 차례의 논란이 되는 사건이 있었다.
4.1. 류시쿤 사건 및 징계
2000년 12월 26일, 중국 장쑤성 타이저우시에서 열린 춘란배에 참가했을 때 발생한 사건이다. 대국 후 술자리에서 상대 선수인 류시훈 9단에게 브랜디 잔을 든 손으로 제스처를 취하다가 실수로 잔이 깨지면서 류시훈의 뺨과 자신의 손에 부상을 입혔다. 싸움을 벌인 것은 아니었으나, 류시훈이 부상을 입은 사실로 인해 같은 달 일본기원은 고바야시 사토루에게 1년간의 근신 처분을 내렸다. 고바야시 사토루는 이에 대해 은퇴 의사를 표명했으나, 일본기원은 그의 충분한 반성을 이해하고 미래 바둑계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하여 은퇴 요청을 보류했다. 이후 중국과 한국 바둑계에서도 고바야시 사토루에 대한 관용을 요청했으며, 일본기원은 당초 1년이었던 근신 기간을 4개월 단축하여 2001년 9월에 근신을 해제했다. 이는 고바야시 사토루와 류시훈 9단 사이에 화해가 성립되었기 때문이라고 일본기원은 설명했다.
5. 개인 생활
고바야시 사토루는 바둑 외적으로도 다양한 관심사를 가지고 있다. 1981년 배우 무라치 히로미와 결혼했다. 그의 취미는 경륜으로, "경륜은 지력이고, 바둑은 체력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6. 은퇴 후 활동 및 영향
고바야시 사토루는 현역 기사 활동 외에도 일본 바둑계의 발전을 위해 공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6.1. 일본기원 이사장 취임
2019년 4월 2일, 고바야시 사토루는 같은 해 3월 사임한 단 히로아키(團宏明)의 뒤를 이어 일본기원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이사장으로서 일본 바둑의 발전과 보급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2019년 10월에는 활동을 재개한 전일본바둑연합의 이사 겸 부회장으로도 취임하여 바둑계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7. 저작
고바야시 사토루는 자신의 바둑 철학과 경험을 담은 여러 서적을 저술했다.
- 『기성 고바야시 사토루의 세계 바둑계의 뉴 히어로』 (일본기원, 1995년)
- 『제19기 기성 결정 7번 승부 격투보 - 조치훈·고바야시 사토루』 (요미우리 신문사)
- 『제20기 기성 결정 7번 승부 격투보 - 고바야시 사토루·조치훈』 (요미우리 신문사)
- 『제21기 기성 결정 7번 승부 격투보 - 조치훈·고바야시 사토루』 (요미우리 신문사)
- 『제31기 기성 결정 7번 승부 격투보 - 야마시타 게이고·고바야시 사토루』 (요미우리 신문사)
- 『제30기 바둑 명인전 전 기록 - 명인위 결정 7번 승부·도전자 결정 리그전』 (아사히 신문사)
- 『고바야시 사토루 (바둑 문고 타보 감상 시리즈 2)』 (일본기원, 2003년)
- 『별에의 삼삼』 (가와데쇼보신샤, 2003년)
- 『고바야시 사토루 명국 세밀 해설』 (세이분도신코샤, 2005년)
- 『40세부터의 바둑 입문 첫 도전!』 (기원도서, 1998년)
8. 평가 및 유산
고바야시 사토루는 기타니 미노루 도장 출신 중 7대 타이틀을 획득한 마지막 기사이자 가장 어린 나이에 타이틀을 획득한 기사로 기록되어 있다. 그의 바둑은 두터움을 바탕으로 한 유연함과 날카로운 수읽기를 겸비하여 많은 바둑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특히 조치훈, 고바야시 고이치 등 당대 최강의 기사들과 겨루며 일본 바둑계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현재는 일본기원 이사장으로서 바둑의 보급과 발전을 위해 힘쓰며 바둑계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9. 관련 항목
- 바둑
- 바둑 기사
- 일본기원
- 기타니 미노루
- 고바야시 치즈
- 고바야시 겐지
- 고바야시 고이치
- 조치훈
- 류시훈
- 기성 (바둑)
- 고성 (바둑)
- 삼성화재배 세계 바둑 오픈
- 동양증권배 세계 바둑 선수권 대회
- NHK배 TV 바둑 토너먼트
- 용성전 (일본)
- 아함동산배
- 마스터즈컵 (바둑)
- 기도상
- 경륜
- 나가노현
- 마쓰모토시
- 도쿄
- 호리코시 고등학교
- 무라치 히로미
- 이시다 요시오
- 가토 마사오
- 왕리청
- 야마시로 히로시
- 가타오카 사토시
- 린하이펑
- 야마시타 게이고
- 장쉬
- 조훈현
- 이창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