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기 삶과 바둑 수련
야마시로 히로시는 어린 시절부터 바둑에 재능을 보였으며,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 프로 바둑 기사로서의 기반을 다졌다.
1.1. 출생과 유년기
야마시로 히로시는 1958년 8월 12일 일본 야마구치현 시모마쓰시에서 태어났다. 그는 유치원 때 바둑을 배우기 시작했으며, 초등학교 1학년이던 1965년에는 부모님 곁을 떠나 나고야로 가서 시마무라 도시히로 9단의 내제자로 들어가 바둑 수업에 전념했다.
1.2. 내제자 시절과 프로 데뷔
나고야에서 시마무라 도시히로 9단과 그의 사촌인 시마무라 도히로 5단(당시)의 문하에서 내제자 생활을 한 야마시로 히로시는 1971년 일본기원 원생이 되었다. 이듬해인 1972년에 프로 초단으로 입단하며 정식 프로 바둑 기사가 되었다. 이후 빠른 승단 속도를 보이며 1972년 2단, 1973년 3단, 1975년 4단, 1976년 5단, 1978년 6단, 1981년 7단, 1982년 8단을 거쳐 1985년에는 9단으로 승단했다. 그는 입단 초부터 일본기원 중부 총본부 소속으로 활동했다.
2. 프로 경력
야마시로 히로시는 1970년대부터 꾸준히 일본 바둑계의 주요 무대에서 활약하며 수많은 기록과 업적을 남겼다.
2.1. 초창기 프로 생활과 부상
프로 입단 후 야마시로 히로시는 빠르게 두각을 나타냈다. 1977년에는 5단으로서 이와타 다쓰아키 5단을 꺾고 왕관전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다. 이듬해인 1978년에는 명인전 리그에 처음으로 진출하며 일본 바둑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979년에는 신인왕전 결승에 진출했으나 이시다 아키라 9단에게 1-2로 패배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이 무렵 그는 같은 세대의 가타오카 사토시 9단, 오 릿세이 9단, 고바야시 사토루 9단 등과 함께 '젊은 4대 천왕'으로 불리며 일본 바둑의 미래를 이끌 재목으로 기대를 모았다.
2.2. 주요 타이틀 도전과 전성기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까지 야마시로 히로시는 일본 7대 타이틀에 꾸준히 도전하며 전성기를 맞았다. 1984년에는 왕좌전에서 가토 마사오 9단에게 도전했으나 0-3으로 패했다. 1985년에는 9단으로 승단했다. 1986년과 1987년에는 본인방전에서 다케미야 마사키 9단에게 연속으로 도전했으나 각각 1-4, 0-4로 패배했다. 이 패배를 기점으로 그는 원래 지(地)에 민감한 기풍이었음에도 대 모양을 펼치는 두터운 바둑도 구사하는 등 기풍을 넓혔다고 평가받는다. 1987년 일중 슈퍼 바둑에서는 5연승을 달성하며 주목받았으나, 마샤오춘 9단에게 패했다.
1992년에는 기성전에서 고바야시 고이치 9단에게 도전하여 큰 주목을 받았다. 초반 2연승을 거두며 앞서나가 5국까지 3-2로 앞섰으나, 6국에서 패한 뒤 최종 7국에서는 종반 끝내기 단계에서 유리한 형세를 유지하다가 반집패를 당하며 아쉽게 우승을 놓쳤다. 이 대국에서 백이 소목에 소게이마로 걸쳐 삼삼을 벌린 돌에 흑이 깊이 침투하여 형성된 형태는 이후 정석으로 유행하며 '기성전 정석'으로 불리기도 했다.
1993년에는 본인방전에서 세 번째 도전자가 되었으나, 조치훈 9단에게 1-4로 패배했다. 당시 조치훈 9단은 야마시로 9단의 바둑을 "나의 바둑은 아슬아슬하게 쌓아올린 나무 블록과 같다. 야마시로 씨의 철근 콘크리트 건물과 같은 바둑과는 다르다"고 평가하며 그의 견고하고 두터운 기풍을 비유하기도 했다. 야마시로 히로시는 통산 6회에 걸쳐 7대 타이틀에 도전했으나 단 한 번도 우승에 성공하지 못했는데, 이는 '바둑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언급될 정도였다.
2.3. 후반기 경력과 주요 기록
2000년대 이후에도 야마시로 히로시는 꾸준히 활동하며 여러 기록을 세웠다. 2008년에는 공식전 통산 1000승을 달성하며 일본 바둑 사상 10번째로 이 기록을 세운 기사가 되었다(492패 7무). 2010년에는 제35기 기성전 리그에 진출하여 B리그에서 4승 1패를 기록, 이야마 유타 9단과 동률을 이루었으나 서열상 이야마 9단이 리그 우승자가 되었다. 같은 해 제51기 왕관전에서 하네 나오키 9단을 꺾고 통산 15번째 왕관위를 차지하며 왕관전 최다 우승 기록을 경신했다.
그는 또한 바둑 기사 외의 행정 역할도 수행했다. 2006년부터 2012년까지 일본기원 중부 총본부의 기사 회장을 역임했으며, 2012년 6월에는 일본기원 부이사장으로 취임했다. 2013년 5월에는 일본 바둑 국가대표팀인 'GO·GO·재팬'의 감독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2016년 8월, 야마시로 9단은 일본기원 도쿄 본원으로 소속을 옮겼다. 그러나 2년 뒤인 2018년 8월 다시 중부 총본부로 복귀했다. 2017년 6월에는 공식전 통산 1200승을 달성하며 일본 바둑 사상 8번째로 이 기록을 세운 기사가 되었다(616패 7무). 당시 그의 나이는 58세 10개월, 입단 45년 2개월 만이었으며, 승률은 0.661을 기록했다.
3. 기풍
야마시로 히로시의 바둑 기풍은 '침투류'(浸透流일본어)로 불린다. 이는 상대의 견고한 세력이나 진영 속으로 깊이 침투하여 실리를 챙기고, 중반 이후의 끝내기에서 상대를 맹렬히 추격하여 승리를 거두는 특징을 보인다. 그는 특히 '지에 강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실리 위주의 바둑을 구사했다.
초기에는 철저한 실리 지향의 기풍이었으나, 1986년과 1987년 본인방전에서 다케미야 마사키 9단에게 연속으로 패배한 후에는 대 모양을 펼치거나 두터움을 중시하는 바둑도 구사하기 시작하며 기풍의 폭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았다. 조치훈 9단이 그의 바둑을 '철근 콘크리트 건물과 같은 바둑'이라고 비유한 것처럼, 야마시로 히로시의 바둑은 견고하고 틈이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젊은 시절 나고야 지역에서 '주쿄의 콩 다이아몬드'(중경의 다이아몬드 하네 야스마사 9단의 뒤를 잇는 애칭)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4. 성과와 기록
야마시로 히로시는 프로 경력 동안 수많은 타이틀을 획득하고 중요한 대회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다.
4.1. 공식 타이틀 획득
야마시로 히로시는 왕관전에서 통산 15회 우승을 차지하여 이 대회 최다 우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그의 왕관전 우승 연도는 다음과 같다.
- 왕관전: 1977년, 1981년, 1982년, 1984년, 1985년, 1986년, 1987년, 1993년, 1994년, 1995년, 1996년, 2000년, 2001년, 2005년, 2010년 (총 15회 우승)
4.2. 국내외 기전 기록
야마시로 히로시는 국내외 주요 바둑 대회에서 여러 차례 준우승을 기록하거나 상위권에 진출했다.
국내 기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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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틀 | 우승 | 준우승 |
기성전 | 1회 (1992) | |
본인방전 | 3회 (1986, 1987, 1993) | |
천원전 | 1회 (1992) | |
왕좌전 | 1회 (1984) | |
신인왕전 | 1회 (1979) | |
왕관전 | 15회 (1977, 1981, 1982, 1984-1987, 1993-1996, 2000, 2001, 2005, 2010) | 11회 (1978, 1983, 1988, 1997, 1998, 2002, 2004, 2006, 2008, 2009, 2011) |
총계 | 15회 | 18회 |
그 외 국내 기전 기록:
- 류엔배 속기 토너먼트전 준우승 (1978년)
- 기성전 5단전 우승 (1977년)
- 기성전 6단전 우승 (1981년)
- 명인전 리그 5회 진출
- 본인방전 리그 9회 진출
- 기성전 리그 (S리그 포함) 7회 진출
국제 기전 기록:
- 후지쓰배 세계바둑선수권 8강 진출 (1990년)
- 동양증권배 세계선수권전 4강 진출 (1995년)
- 일중 바둑 결전
- 1984년: 1승 2패 (vs 첸위핑)
- 1988년: 1승 2패 (vs 마샤오춘)
- 일중 슈퍼 바둑
- 1986년: 0승 1패 (vs 녜웨이핑)
- 1987년: 5승 1패 (vs 왕췬 승, 첸위핑 승, 루이나이웨이 승, 장주주 승, 차오다위안 승, 마샤오춘 패)
- 1989년: 1승 1패 (vs 장원둥 승, 위빈 패)
- 1992년: 0승 1패 (vs 마샤오춘)
- 1994년: 2승 1패 (vs 류샤오광 승, 천린신 승, 차오다위안 패)
- 진로배 SBS 세계바둑최강전
- 1994년: 1승 1패 (vs 차오다위안 승, 서봉수 패)
- 1996년: 0승 1패 (vs 유창혁 패)
5. 행정 및 지도 활동
야마시로 히로시는 바둑 기사 활동 외에도 일본 바둑계의 발전을 위해 다양한 행정 및 교육 활동에 참여했다.
- 2006년부터 2012년까지 일본기원 중부 총본부의 기사 회장을 역임했다.
- 2012년 6월에는 일본기원 부이사장으로 취임하여 주요 의사 결정에 참여했다.
- 2013년 5월에는 일본 바둑 국가대표팀 'GO·GO·재팬'의 감독으로 임명되어 유망주 육성 및 국제 경쟁력 강화에 기여했다.
- 나고야시에서 '야마시로 히로시 어린이 바둑 교실'을 운영하며 어린이 바둑 교육에도 힘쓰고 있다.
6. 저작
야마시로 히로시는 바둑 관련 전문 서적을 여러 권 저술하여 바둑 팬들과 학습자들에게 그의 지식과 경험을 공유했다.
- 『詰碁ジョイブックス 9 中級編』 (일본기원, 1982년)
- 『強くなる詰め碁100 実戦力をアップする』 (일본문예사, 1986년)
- 『消しと利かし (烏鷺うろブックス)』 (일본기원, 1989년)
- 『棋聖決定七番勝負 激闘譜〈第16期〉棋聖 小林光一-挑戦者 山城宏』 (요미우리신문사, 1992년)
- 『山城宏の置碁戦術 序盤50手必勝法』 (일본방송출판협회, 1996년)
- 『山城宏 打碁鑑賞シリーズ(10)』 (일본기원, 2005년)
7. 수상 및 영예
야마시로 히로시는 그의 뛰어난 바둑 실력과 바둑계에 대한 공헌을 인정받아 여러 상을 수상했다.
- 일본기원 기도상
- 신인상 (1973년)
- 수훈상 (1978년)
- 최다승 (38승 10패), 최고 승률 (.792), 연승상 (12연승) (1981년)
- 연승상 (11연승) (1983년)
- 감투상 (1984년)
- 기능상 (1986년)
- 최고 승률 (28승 7패, .800) (2011년)
- 쓰치카와상 (1985년, 1987년, 2011년)
8. 유산과 평가
야마시로 히로시는 일본 바둑계에 독특한 '침투류' 기풍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는 7대 타이틀 6회 도전에서 무관에 그쳐 '바둑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불리기도 했지만, 이는 오히려 그가 얼마나 꾸준히 최정상권에서 활약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는 통산 15회 왕관전 우승으로 이 대회 최다 우승 기록을 세우며 지역 타이틀의 강자임을 입증했다. 또한, 통산 1000승과 1200승을 달성하며 오랜 기간 동안 정상급 기량과 꾸준함을 유지한 몇 안 되는 기사로 평가받는다. 바둑 기사로서의 활동 외에도 일본기원의 행정 직책을 맡고 국가대표팀 감독을 역임하며 바둑 행정과 후진 양성에도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그의 바둑은 조치훈 9단에게 '철근 콘크리트 건물'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견고하고 계산에 밝아 후대 기사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9. 외부 링크
- [http://gobase.org/information/players/?pp=Yamashiro%20Hiroshi 고베이스 프로필]
- [http://www.nihonkiin.or.jp/player/htm/ki000044.htm 일본기원 프로필]
- [http://www.nihonkiin-chubu.jp/poto-9dan.html#kisi.ymasiro 일본기원 중부 총본부 프로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