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린 시절과 배경
존 게리 글러버는 1976년 12월 3일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태어났다. 그는 플로리다주 딜랜드에 위치한 딜랜드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고등학교 졸업 직후인 1994년 메이저리그 드래프트에서 토론토 블루제이스에 15라운드 지명으로 입단하며 프로 경력을 시작했다.
2. 프로 경력
존 게리 글러버는 1994년 토론토 블루제이스 산하 마이너리그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한 이래, 미국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를 오가며 활약했으며, 일본과 한국의 프로 야구 리그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의 경력은 여러 팀을 거치며 선발과 구원 보직을 넘나드는 다재다능한 모습으로 특징지어진다.
2.1. 북미 마이너리그와 메이저리그 데뷔
글러버는 토론토 블루제이스에 지명된 후 1994년부터 1996년까지 루키 리그에서 뛰었다. 1994년과 1995년에는 걸프 코스트 블루제이스에서, 1996년에는 메디신 핫 블루제이스에서 활동했다. 이 시기 그는 주로 선발 투수로 기용되었으나, 메디신 핫에서는 3승 12패, 평균자책점 7.75를 기록하는 등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다.
1997년에는 싱글 A팀인 헤이거스톤 선즈로 승격되어 평균자책점을 3.73으로 낮추었지만, 28번의 선발 등판에서 6승만을 거두는 데 그쳤다. 1998년에는 하이 A팀인 더니든 블루제이스로 옮겨 7승 6패, 평균자책점 4.28로 성적이 향상되었다. 같은 해 시즌 후반에는 더블 A팀인 녹스빌 스모키스로 승격되었으나, 5패 무승, 평균자책점 6.75로 다시 부진했다.
그러나 1999년 녹스빌에서 8승 2패를 기록하며 부활했고, 서던 리그 올스타 팀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시즌 중반에는 트리플 A팀인 시러큐스 스카이치프스로 승격하여 4승 6패, 평균자책점 5.19를 기록했다. 1999년 9월 30일, 글러버는 클리블랜드 가디언스와의 경기에서 1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2.2. 메이저리그 (MLB)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이후 존 게리 글러버는 여러 팀을 거치며 선발과 구원 보직을 번갈아 맡았다. 그는 토론토 블루제이스에서 시작하여 시카고 화이트삭스, 애너하임 에인절스, 밀워키 브루어스, 탬파베이 레이스,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등에서 활약하며 다채로운 경험을 쌓았다.
2.2.1. 토론토 블루제이스
1994년 토론토 블루제이스에 15라운드 지명으로 입단한 존 게리 글러버는 1999년 9월 30일 클리블랜드 가디언스와의 경기에서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이 경기에서 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지만 팀은 9대 2로 패배했다. 2000년 시즌에는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들지 못하고 다시 녹스빌 스모키스로 강등되어 9승 9패, 평균자책점 5.02를 기록했다. 2000년 11월 7일, 토론토는 그를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좌완 구원 투수 스캇 아이어와 맞트레이드했다.
2.2.2. 시카고 화이트삭스
2000년에서 2001년 겨울 동안 베네수엘라 윈터 리그에서 뛰던 존 게리 글러버는 전 시러큐스 스카이치프스 팀 동료 존 베일과 함께 산탄총을 든 강도에게 강탈당하는 경험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윈터 리그를 마무리하며 "이 게임(야구)은 당신에게 주어진 몇 년 동안만 친절할 것이므로, 당신은 그 안에 있을 때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언급하며 프로 의식을 드러냈다.
2001년 시즌에 메이저리그 개막 로스터에 포함된 그는 4월 11일 클리블랜드 가디언스전에서 짐 파케이의 구원 투수로 등판하여 첫 16타자를 범타 처리하며 빅리그 첫 승을 거두었다. 불안정한 5월을 보낸 후 트리플 A 샬럿 나이츠로 강등되었으나, 6경기에서 평균자책점 1.88를 기록하며 6월 중순 다시 메이저리그로 복귀했다. 7월 27일에는 트레이드된 제임스 볼드윈을 대신하여 클리블랜드 가디언스를 상대로 생애 첫 메이저리그 선발 등판을 가졌다. 이 경기에서 3과 3분의 1이닝 동안 2안타를 허용했으나 승패는 기록하지 못했다. 2001년 시즌에는 46경기(11경기 선발)에 출장하여 5승 5패, 평균자책점 4.93을 기록했다.
2002년 시즌 개막 전 선발 로테이션 합류가 예상되었으나, 불펜 투수로 시즌을 시작했다. 6월 셋째 주까지 불펜에서 평균자책점 1.15를 기록하며 좋은 활약을 보였지만, 선발로서는 평균자책점 6점대를 넘어서는 부진을 겪었다. 2002년 총 22경기에 선발 등판했으나,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제리 매뉴얼 감독은 9월 중순 그를 다시 불펜으로 돌렸고 2003년에도 불펜으로 기용할 뜻을 밝혔다. 글러버는 이 결정을 받아들였지만 선발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2002년 시즌 최종 기록은 7승 8패, 평균자책점 5.20이었다.
2003년 시즌에도 화이트삭스 소속이었으나, 7월 말까지 고작 24경기 출장에 그치는 등 활용도가 낮았다. 7월 30일, 화이트삭스는 그를 마이너리거 스캇 던, 팀 비트너와 함께 애너하임 에인절스의 베테랑 투수 스캇 션와이즈와 트레이드했다.
2.2.3. 애너하임 에인절스
애너하임 에인절스로 트레이드된 존 게리 글러버는 2003년 남은 시즌 동안 구원 투수로 18경기에 등판하여 1승 무패, 평균자책점 5.00을 기록하며 화이트삭스 시절과 비슷한 출장 이닝을 소화했다. 시즌 종료 후 에인절스는 그를 트리플 A팀인 솔트 레이크 스팅거스로 지명 할당했다. 12월, 글러버는 방출 통보를 받았고, 시카고 컵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다.
2.2.4. 밀워키 브루어스
2004년 시즌 초 시카고 컵스에서 부상으로 이탈한 마이크 렘링저의 불펜 자리를 메울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춘계 훈련에서 부진한 성적을 기록하며 트리플 A 아이오와 컵스에서 시즌을 시작했다. 아이오와에서 20경기에 등판(1경기 구원 등판 포함)하여 3승 2패, 평균자책점 7.93를 기록했다. 계약 옵션에 따라 컵스에서 방출된 후 미네소타 트윈스 산하 트리플 A팀인 로체스터 레드 윙즈와 계약했지만, 여기서도 평균자책점 8.44로 고전하며 7월 중순 맷 게리어 영입과 함께 방출되었다. 글러버는 2004년 시즌을 포기할 생각으로 고향인 탬파 지역으로 돌아가 허리케인 피해 복구 활동을 도울 계획이었으나, 7월 25일 밀워키 브루어스가 그에게 계약을 제시하며 프로 경력을 이어갈 수 있었다.
글러버는 브루어스 산하 트리플 A팀인 인디애나폴리스 인디언스에 합류하여 제구력을 회복했고, 3승 3패, 평균자책점 3.98을 기록했다. 마이너리그 시즌이 끝난 후 브루어스는 그를 메이저리그로 콜업했고, 글러버는 2003년 말 이후 처음으로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복귀했다. 그는 4경기(3경기 선발)에 등판하여 2승 1패, 평균자책점 3.50으로 좋은 인상을 남겼다. 2005년 춘계 훈련에서의 뛰어난 활약으로 밀워키 브루어스의 5선발 자리를 꿰찼다.
메이저리그에서 9번의 선발 등판에서 3승 3패를 기록했으나, 5월 말 웨스 오버뮬러에게 선발 자리를 내주었다. 네드 요스트 브루어스 감독은 오버뮬러의 상승세를 이유로 들었지만, 글러버는 시카고 시절과 마찬가지로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보직 변경은 성공적이지 못했고, 오버뮬러는 연이은 부진을 보였으며, 글러버 또한 구원 등판에서 난타당했다. 결국 6월 초 백업 포수 훌리오 모스케라의 승격과 함께 트리플 A 내시빌 사운즈로 강등되었다.
내시빌에서 글러버는 16경기 선발 등판하여 6승 4패, 평균자책점 3.03를 기록하며 다시 안정감을 찾았다. 브루어스는 9월 부진에 빠진 오버뮬러를 대신하여 글러버를 다시 빅리그로 불러들였다. 2005년 마지막 선발 경기에서는 신시내티 레즈를 상대로 7이닝 무실점의 호투를 펼치며 팀의 2대 0 승리를 이끌었고, 개인 최다인 10개의 삼진을 잡아냈다. 이 승리를 포함하여 브루어스는 80승 79패를 기록했고, 시즌을 81승 81패로 마감하며 1992년 이후 처음으로 팀 승률 5할 이상을 달성했다. 11월 30일, 브루어스는 글러버를 방출했으며, 그는 일본 프로 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계약을 맺었다.
2.2.5. 탬파베이 레이스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의 활약 이후, 존 게리 글러버는 2006년 시즌 종료 후 미국으로 돌아와 탬파베이 데빌 레이스 (현 탬파베이 레이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다. 그는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었고, 오프시즌 거주지인 루츠, 플로리다주와 구장이 가까웠으며, 일본에서의 1년간 경험으로 빅리그에서 뛸 준비가 되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글러버는 과거 "나는 항상 5선발이나 마지막 불펜 투수였기 때문에 (빅리그에서 자리 잡기가) 항상 어려웠다"고 회상하며 이번에는 빅리그에 정착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는 팀에 합류하여 불펜 투수로 활약했고, 시즌 중반까지 안정적인 계투 능력을 인정받았다. 7월 30일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경기에서는 50개의 공으로 마지막 7개의 아웃 카운트를 깔끔하게 처리하며 팀의 5대 2 승리에 기여했다. 2007년 시즌 최종 기록은 6승 5패, 평균자책점 4.89, 2세이브였다.
2008년 시즌에도 탬파베이 레이스 소속으로 뛰었으나, 어깨 건염과 왼쪽 장딴지 부상에 시달렸다. 7월 29일, 레이스는 그를 지명 할당했다. 조 매든 감독은 "지금 당장은 자리가 없다... 복잡한 설명은 없다. 나는 그를 좋아하고 그는 이곳에 잘 어울린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8월 2일, 레이스는 글러버를 방출했다.
2.2.6.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탬파베이 레이스에서 방출된 존 게리 글러버는 2008년 8월 9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산하 트리플 A팀인 톨레도 머드 헨스와 계약을 맺었다. 타이거스는 8월 17일 부상자 명단에 오른 토드 존스를 대신하여 글러버를 메이저리그로 콜업했으며, 당시 글러버는 머드 헨스에서 3번의 등판 동안 무실점을 기록 중이었다. 8월 18일, 그는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경기에서 선발 케니 로저스를 구원 등판하며 타이거스 소속으로 첫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올랐다. 이 경기에서 깔끔한 1이닝을 던지며 타자 한 명을 삼진으로 잡아냈다.
2008년 디트로이트에서의 그의 최종 기록은 1승 1패, 평균자책점 4.43이었다. 글러버는 2008년 10월 30일 자유계약선수 신분이 되었다.
2.2.7. 워싱턴 내셔널스 & 플로리다 말린스
2009년 1월, 존 게리 글러버는 워싱턴 내셔널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다. 그는 2009년 내셔널스 춘계 훈련에 참가했으나, 3월 31일 다시 마이너리그로 내려갔다. 글러버는 트리플 A팀인 시러큐스 치프스에 합류했는데, 이는 9년 전 자신이 뛰었던 시러큐스 스카이치프스가 토론토 산하에서 워싱턴 산하로 소속이 바뀐 형태였다. 내셔널스는 마이크 맥두걸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 5월 9일 글러버를 방출했다.
2009년 5월 26일, 글러버는 플로리다 말린스 (현 마이애미 말린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다. 2011년 SK 와이번스에서 방출된 이후인 2012년 1월 20일, 그는 다시 마이애미 말린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으며 춘계 훈련 초청도 받았으나, 개막 로스터에는 들지 못하고 말린스 산하 트리플 A팀에서 뛰었다.
2.3. 일본 프로 야구 (NPB)
존 게리 글러버는 2005년 시즌 종료 후 밀워키 브루어스에서 방출된 뒤 일본 프로 야구의 명문 구단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계약을 맺고 2006년 한 시즌을 보냈다. 그는 2006년 시즌 동안 요미우리 자이언츠 소속으로 5승 7패, 평균자책점 4.97을 기록했으며, 주로 선발 투수로 활약했다.
시즌 초반에는 다소 부진하여 2군으로 내려가기도 했으나, 후반기에는 2미터에 달하는 장신과 다양한 변화구를 활용하며 안정적인 투구를 선보여 선발 로테이션의 한 축을 담당했다.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요미우리가 훌륭한 조직임을 실감하며, 요미우리의 일원임이 행운이라고 느낀다"고 밝히기도 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그를 7일 간격의 선발 로테이션에 맞춰 등판시켰고, 이 때문에 매주 일요일마다 마운드에 오르는 경우가 많아 일본 팬들 사이에서 '미스터 선데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시즌 초반에는 불안정한 투구에도 불구하고 타선 (주로 고쿠보 히로키의 활약)의 지원을 받아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우에하라 고지, 다카하시 히사노리 등 에이스급 선발 투수들의 부상 이탈로 로테이션이 무너지면서 등판 요일이 바뀌자 타선 지원이 줄어들며 패전을 쌓기도 했다. 시즌 종료 후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구단 사정에 따라 글러버와의 재계약을 포기하고 그를 자유 계약 선수로 공시했다. 후반기의 호투를 고려할 때 그의 방출은 많은 팬들에게 놀라움을 안겼다.
2.4. 한국 프로 야구 (KBO)
2009년 6월 21일, 존 게리 글러버는 부진한 좌완 용병 크리스 니코스키를 웨이버 공시한 KBO 리그의 SK 와이번스와 계약하며 대한민국 무대에 진출했다. SK는 그를 SK 와이번스의 세 번째 우승에 기여해줄 선수로 기대했으며, 글러버 또한 "팀의 세 번째 우승에 기여하고 싶다"는 소감을 밝혔다.
글러버는 SK 와이번스의 중요한 선발 자원으로 자리매김하며 매 경기 좋은 투구를 선보였다. 특히 팀이 어려운 상황에 빠졌을 때 1선발 역할을 톡톡히 해냈으며, 간혹 중간 불펜이나 마무리 투수로 등판하기도 했다. 다만 불펜으로 등판할 때는 성적이 다소 좋지 않아 포스트 시즌에서는 선발로만 기용되었다. 2009년 시즌 막판 SK 와이번스의 19연승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그는 기존의 직구, 슬라이더, 커브 외에 한국에 와서 포크볼을 추가했다. 뛰어난 제구력과 함께 한국에서 장착한 포크볼, 다른 변화구, 직구를 경기마다 적절히 섞어 던지는 능력이 강점이었다. SK 와이번스 팬들 사이에서는 그의 뛰어난 활약과 헌신적인 모습에 감탄하며 '글느님'(글러버와 하느님의 합성어), 행운을 상징하는 네잎클로버에서 유래한 '네잎글러버' 등의 별명으로 불리며 큰 사랑을 받았다.
2009년 12월 17일, SK 와이번스는 글러버와 계약금 7.50 만 USD, 연봉 30.00 만 USD (총액 37.50 만 USD)에 1년 재계약을 체결했다.
2010년 시즌에는 초반부터 부상으로 인한 부진이 계속되어 시즌 후반에는 2군으로 내려가기도 했다. 그러나 2010년 한국시리즈 출전 선수 명단에 포함되어 삼성 라이온즈와의 4차전에 선발 등판, 4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SK의 우승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당시 SK는 그를 방출할 계획도 가지고 있었으나, 가도쿠라 겐이 무릎 부상으로 재계약을 포기하면서 글러버가 팀에 잔류하게 되었다. 하지만 결국 2011년 시즌을 끝으로 SK 와이번스에서 방출되었다.
2.5. 은퇴 및 말년
존 게리 글러버는 2011년 한국 프로 야구 SK 와이번스에서 방출된 후, 2012년 1월 20일 마이애미 말린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고 춘계 훈련에 초대받으며 다시 메이저리그 복귀를 시도했다. 그러나 개막 로스터에 포함되지 못하고 말린스 산하 트리플 A팀에서 활약한 것을 마지막으로 그의 프로 경력은 사실상 마무리되었다. 이후 그의 공식적인 은퇴 소식이나 구체적인 말년 활동에 대한 정보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3. 플레이 스타일 및 특징
존 게리 글러버는 2미터에 달하는 장신에서 나오는 안정적인 투구폼과 다양한 구종이 특징인 투수였다. 그의 주요 구종은 직구, 슬라이더, 커브였으며, 특히 한국 프로 야구 SK 와이번스에서 활동하면서 포크볼을 추가하여 자신의 투구 레퍼토리를 더욱 강화했다.
그는 뛰어난 제구력을 바탕으로 직구와 여러 변화구를 경기 상황에 맞춰 적절하게 섞어 던지는 능력이 좋았다. 이는 타자들이 그의 투구를 예측하기 어렵게 만들었고, 그의 투구 스타일은 안정적인 이닝 소화와 함께 타자들을 효과적으로 제압하는 데 기여했다. 특히 일본 프로 야구 시절에는 장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다양한 변화구로 타자들을 상대하며 선발 로테이션의 한 축을 담당하기도 했다.
4. 개인 생활
존 게리 글러버는 현재 플로리다주 루츠에 거주하고 있으며, 아내와 아들, 딸과 함께 살고 있다.
5. 통산 기록
존 게리 글러버는 메이저리그, 일본 프로 야구, 한국 프로 야구에서 활약하며 기록을 남겼다. 그의 통산 기록은 아래와 같다.
5.1. 메이저리그 기록
연도 | 소속 | 등판 | 선발 | 완투 | 완봉 | 무사구 | 승리 | 패전 | 세이브 | 홀드 | 승률 | 타자 | 투구회 | 피안타 | 피홈런 | 볼넷 | 고의4구 | 사구 | 탈삼진 | 폭투 | 보크 | 실점 | 자책점 | 방어율 | WHIP |
---|---|---|---|---|---|---|---|---|---|---|---|---|---|---|---|---|---|---|---|---|---|---|---|---|---|
1999 | TOR | 1 | 0 | 0 | 0 | 0 | 0 | 0 | 0 | -- | -- | 3 | 1.0 | 0 | 0 | 1 | 0 | 0 | 0 | 0 | 0 | 0 | 0 | 0.00 | 1.00 |
2001 | CHW | 46 | 11 | 0 | 0 | 0 | 5 | 5 | 0 | -- | .500 | 429 | 100.1 | 98 | 16 | 32 | 3 | 4 | 63 | 4 | 0 | 61 | 55 | 4.93 | 1.30 |
2002 | CHW | 41 | 22 | 0 | 0 | 0 | 7 | 8 | 1 | -- | .467 | 604 | 138.1 | 136 | 21 | 52 | 1 | 7 | 70 | 6 | 0 | 86 | 80 | 5.20 | 1.36 |
2003 | CHW | 24 | 0 | 0 | 0 | 0 | 1 | 0 | 0 | -- | 1.000 | 160 | 35.2 | 43 | 3 | 14 | 2 | 2 | 23 | 1 | 0 | 18 | 18 | 4.54 | 1.60 |
2003 | ANA | 18 | 0 | 0 | 0 | 0 | 1 | 0 | 0 | -- | 1.000 | 119 | 27.0 | 34 | 3 | 8 | 1 | 1 | 14 | 1 | 0 | 15 | 15 | 5.00 | 1.56 |
2003 합계 | 42 | 0 | 0 | 0 | 0 | 2 | 0 | 0 | -- | 1.000 | 279 | 62.2 | 77 | 6 | 22 | 3 | 3 | 37 | 2 | 0 | 33 | 33 | 4.74 | 1.58 | |
2004 | MIL | 4 | 3 | 0 | 0 | 0 | 2 | 1 | 0 | -- | .667 | 82 | 18.0 | 18 | 2 | 8 | 1 | 2 | 8 | 1 | 0 | 9 | 7 | 3.50 | 1.44 |
2005 | MIL | 15 | 11 | 0 | 0 | 0 | 5 | 4 | 0 | -- | .556 | 284 | 64.2 | 74 | 10 | 20 | 0 | 2 | 58 | 3 | 0 | 41 | 40 | 5.57 | 1.45 |
2007 | TBR | 67 | 0 | 0 | 0 | 0 | 6 | 5 | 2 | -- | .545 | 334 | 77.1 | 87 | 12 | 27 | 3 | 1 | 51 | 2 | 0 | 44 | 42 | 4.89 | 1.47 |
2008 | TBR | 29 | 0 | 0 | 0 | 0 | 1 | 2 | 0 | -- | .333 | 160 | 34.0 | 42 | 3 | 18 | 5 | 1 | 22 | 4 | 0 | 22 | 22 | 5.82 | 1.77 |
2008 | DET | 18 | 0 | 0 | 0 | 0 | 1 | 1 | 0 | -- | .500 | 86 | 20.1 | 22 | 4 | 4 | 1 | 1 | 15 | 0 | 0 | 11 | 10 | 4.43 | 1.28 |
2008 합계 | 47 | 0 | 0 | 0 | 0 | 2 | 3 | 0 | -- | .400 | 246 | 54.1 | 64 | 7 | 22 | 6 | 2 | 37 | 4 | 0 | 33 | 32 | 5.30 | 1.58 | |
MLB 통산: 8년 | 263 | 47 | 0 | 0 | 0 | 29 | 26 | 3 | -- | 0.527 | 2261 | 516.2 | 554 | 74 | 184 | 17 | 21 | 324 | 22 | 0 | 307 | 289 | 5.03 | 1.43 |
5.2. 일본 프로 야구 기록
연도 | 소속 | 등판 | 선발 | 완투 | 완봉 | 무사구 | 승리 | 패전 | 세이브 | 홀드 | 승률 | 타자 | 투구회 | 피안타 | 피홈런 | 볼넷 | 고의4구 | 사구 | 탈삼진 | 폭투 | 보크 | 실점 | 자책점 | 방어율 | WHIP |
---|---|---|---|---|---|---|---|---|---|---|---|---|---|---|---|---|---|---|---|---|---|---|---|---|---|
2006 | 요미우리 자이언츠 | 20 | 18 | 0 | 0 | 0 | 5 | 7 | 0 | 0 | .417 | 422 | 96.0 | 125 | 13 | 23 | 0 | 2 | 63 | 5 | 1 | 58 | 53 | 4.97 | 1.54 |
NPB 통산: 1년 | 20 | 18 | 0 | 0 | 0 | 5 | 7 | 0 | 0 | 0.417 | 422 | 96.0 | 125 | 13 | 23 | 0 | 2 | 63 | 5 | 1 | 58 | 53 | 4.97 | 1.54 |
5.3. 한국 프로 야구 기록
연도 | 소속 | 등판 | 선발 | 완투 | 완봉 | 세이브 | 홀드 | 승리 | 패전 | 승률 | 평균자책점 | 이닝 | 피안타 | 피홈런 | 볼넷 | 고의4구 | 탈삼진 | 사구 | 보크 | 폭투 | 실점 | 자책점 | 타자수 | WHIP |
---|---|---|---|---|---|---|---|---|---|---|---|---|---|---|---|---|---|---|---|---|---|---|---|---|
2009 | SK | 20 | 16 | 0 | 0 | 1 | 0 | 9 | 3 | .750 | 1.96 | 105.2 | 87 | 6 | 26 | 1 | 90 | 2 | 0 | 8 | 32 | 23 | 427 | 1.07 |
2010 | SK | 22 | 22 | 0 | 0 | 0 | 0 | 6 | 8 | .429 | 5.66 | 105.0 | 113 | 18 | 50 | 1 | 85 | 5 | 1 | 7 | 71 | 66 | 471 | 1.55 |
2011 | SK | 24 | 24 | 0 | 0 | 0 | 0 | 7 | 6 | .538 | 4.24 | 121.0 | 115 | 11 | 41 | 0 | 122 | 9 | 0 | 9 | 65 | 57 | 518 | 1.29 |
KBO 통산: 3년 | 66 | 62 | 0 | 0 | 1 | 0 | 22 | 17 | 0.564 | 3.96 | 331.2 | 315 | 35 | 117 | 2 | 297 | 16 | 1 | 24 | 168 | 146 | 1416 | 1.30 |
6. 주요 기록 및 업적
존 게리 글러버는 프로 경력 전반에 걸쳐 다양한 팀에서 활약하며 여러 기록과 업적을 남겼다. 특히 일본 프로 야구와 한국 프로 야구에서는 중요한 순간 팀의 승리에 기여하며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다.
- 일본 프로 야구 (NPB)**
- 첫 등판 및 첫 선발: 2006년 4월 2일, 대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3회전 (도쿄 돔)
- 첫 탈삼진: 2006년 4월 2일, 대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전 1회 초 무라타 슈이치 상대 삼진
- 첫 승리 및 첫 선발 승리: 2006년 4월 9일, 대 주니치 드래곤즈 3회전 (나고야 돔), 6이닝 3실점
- 첫 안타: 2006년 4월 9일, 대 주니치 드래곤즈전 4회 초 도밍고 구스만 상대 2루 내야 안타
- 한국 프로 야구 (KBO)**
- 2010년 한국시리즈 우승 기여: SK 와이번스 소속으로 2010년 한국시리즈 4차전에 선발 등판하여 4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팀의 우승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는 1999년 토론토 블루제이스에서 등번호 51번을 시작으로,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애너하임 에인절스에서는 38번을 달았다. 2004년과 2005년 밀워키 브루어스에서는 58번, 2006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는 46번을 사용했다. 2007년부터 2008년 초까지 탬파베이 레이스에서는 47번을, 2008년 중반부터 시즌 종료까지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에서는 41번을 착용했다. 한국 프로 야구 SK 와이번스에서는 2009년부터 2011년까지 59번을 달고 뛰었다.
7. 평가와 별명
존 게리 글러버는 긴 프로 경력을 통해 특히 일본 프로 야구와 한국 프로 야구에서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일본 프로 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 소속이던 2006년, 그는 주로 일요일 경기에 선발 등판하는 경우가 많아 일본 팬들로부터 '미스터 선데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는 그의 등판 요일과 꾸준함을 반영하는 별명이었다.
한국 프로 야구 SK 와이번스에서 활동할 당시에는 팬들에게 특히 사랑받는 선수였다. 그의 뛰어난 활약과 팀에 대한 헌신적인 모습에 감동한 팬들은 그를 '글느님'(글러버와 하느님의 합성어), 행운을 상징하는 네잎클로버에서 유래한 '네잎글러버' 등의 별명으로 불리며 큰 사랑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