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게르하르트 슈트라크는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케르펜에서 태어났다. 그의 전반적인 생애는 축구 선수로서의 경력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1.1. 유년기 및 초기 경력
슈트라크는 어린 시절 지역 축구 클럽인 글뤼카우프 하벨라트-그레프라트(Glückauf Habbelrath-Grefrath)에서 축구를 시작했으며, 1966년에는 스페르페라인 프레헨 20(SpVg Frechen 20)으로 이적하여 1973년까지 유소년 선수로 활동했다. 이후 그는 1. FC 쾰른의 유소년팀에서 1년 동안 경험을 쌓은 후 성인팀으로 승격하면서 프로 축구 선수로서의 첫 발을 내디뎠다.
2. 클럽 경력
게르하르트 슈트라크는 여러 클럽에서 활약하며 인상적인 기록을 남겼다. 그의 클럽 경력은 주로 독일과 스위스 리그에서 이루어졌다.
2.1. 1. FC 쾰른
슈트라크는 1. FC 쾰른에서 총 11시즌 동안 수비수로 활약하며 전성기를 보냈다. 그는 쾰른 소속으로 모든 대회를 통틀어 339경기에 출전했으며, 이 중 261경기는 분데스리가 경기였다. 이 기간 동안 그는 총 46골을 기록했는데, 그중 31골이 분데스리가에서 터졌다. 쾰른에서 활약하는 동안 슈트라크는 팀의 주요 성공에 기여하며 DFB-포칼 우승을 세 차례(1977, 1978, 1983) 차지했고, 1978년에는 분데스리가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독일 챔피언이 되었다.
2.2. FC 바젤
1. FC 쾰른을 떠난 슈트라크는 스위스의 FC 바젤로 이적하여 헬무트 벤타우스 감독의 지휘 아래 1985-86 시즌부터 활약했다. 그는 1985년 8월 7일, 장크트 야코프-파르크에서 열린 홈 경기에서 FC 루체른을 상대로 바젤 데뷔전을 치렀으나 팀은 0-1로 패배했다. 몇 주 후인 9월 4일, 그는 장크트 갈렌과의 원정 경기에서 바젤 소속 첫 득점을 기록했으며, 경기는 1-1 무승부로 끝났다.
바젤에서 두 시즌을 보내는 동안 슈트라크는 총 71경기에 출전하여 17골을 기록했다. 이 중 48경기는 나치오날리가 A 경기였고, 6경기는 스위스컵 경기, 그리고 17경기는 친선 경기였다. 득점 기록은 나치오날리가 A에서 9골, 스위스컵에서 3골, 친선 경기에서 5골이었다.
2.3. 포르투나 뒤셀도르프
FC 바젤에서의 계약이 종료된 후, 슈트라크는 다시 독일 무대로 복귀했다. 그는 뒤셀도르프에 합류하여 1987-88 시즌에 2. 분데스리가에서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보냈다.
3. 국가대표팀 경력
게르하르트 슈트라크는 1982년부터 1983년까지 서독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총 10번의 국가대표팀 경기에 출전하여 1골을 기록했다.
그는 UEFA 유로 1984 본선에 출전하는 서독 대표팀 최종 명단에 포함되었으나, 실제로 대회 본선 경기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슈트라크가 기록한 유일한 국가대표팀 득점은 1983년 11월 20일 자르브뤼켄에서 열린 알바니아와의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예선전에서 나왔다. 이 경기에서 그의 득점은 서독에게 2-1 승리를 안겨주었으며, 이 승리는 북아일랜드를 제치고 서독이 UEFA 유로 1984 본선에 진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4. 사망
게르하르트 슈트라크는 2020년 5월 21일에 6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의 사망 장소는 독일 내에서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5. 평가
게르하르트 슈트라크는 수비수로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반 독일 축구의 주요 인물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1. FC 쾰른에서 보여준 그의 꾸준한 활약과 팀의 분데스리가 및 DFB-포칼 우승에 기여한 바는 그가 소속팀에 얼마나 중요한 선수였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서독 국가대표팀에서 보여준 짧지만 강렬했던 인상은 UEFA 유로 1984 본선 진출에 결정적인 득점을 올리며 그의 중요한 역할을 각인시켰다. 그는 단순한 수비수를 넘어, 팀의 승리에 직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춘 다재다능한 선수로 기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