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K.C. 존스(K.C. JonesK.C. 존스영어, 1932년 5월 25일 ~ 2020년 12월 25일)는 미국의 프로 농구 선수이자 농구 감독이었다. 그는 특히 보스턴 셀틱스와의 깊은 인연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선수로서 8회, 보조 코치로서 2회, 헤드 코치로서 2회 등 총 12번의 NBA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했다. 이는 그를 NBA 역사상 세 번째로 많은 우승을 기록한 선수로 만들며, NBA 파이널에서 8승 0패의 기록을 가진 단 세 명의 선수 중 한 명으로 기억되게 했다. 또한, 그는 빌 러셀 외에 여러 번의 NBA 챔피언십을 우승한 유일한 아프리카계 미국인 감독이기도 하다. 존스는 NCAA 챔피언십, 올림픽 금메달, NBA 챔피언십을 모두 획득한 단 8명뿐인 '농구 트리플 크라운' 달성자 중 한 명이다. 1989년에는 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 생애 초반
2.1. 유년기 및 배경
K.C. 존스는 텍사스 주 테일러에서 여섯 자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이름 "K.C."는 약어가 아닌 본명으로, 공장 노동자이자 요리사였던 아버지와 같은 이름을 물려받았다. 그의 아버지는 전설적인 철도 기관사 케이시 존스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존스가 9살이 되던 해, 부모님이 이혼하면서 그는 어머니와 두 형제자매와 함께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했다. 그는 자갈밭에서 농구를 배우며 성장했다.
존스는 샌프란시스코 상업 고등학교에 재학하며 농구와 미식축구를 병행했다. 고등학교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그는 샌프란시스코 대학교에 장학금을 받고 진학했다.
2.2. 학창 시절 및 아마추어 경력
샌프란시스코 대학교에서 존스는 이후 평생의 동지가 되는 빌 러셀과 함께 돈스를 이끌며 1955년과 1956년 NCAA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이 기간 동안 돈스 팀은 당시 기록적인 55연승을 달성했으며, 이는 1955-56 시즌 29승 0패의 무패 기록을 포함한다. 이들은 또한 나중에 앨리웁으로 알려진 플레이를 개척하는 데 기여했다. 다만, 존스는 출전 자격 규정으로 인해 1956년 NCAA 토너먼트에는 직접 출전하지 못했다.
대학 졸업 후, 존스는 러셀과 함께 1956년 미국 남자 올림픽 농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어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1956년 멜버른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 팀은 경기당 평균 53.5점이라는 전례 없는 점수 차이로 상대를 제압하며 압도적인 기량을 선보였다. 대학 졸업 후 존스는 잠시 NFL 선수 경력을 고려하여 로스앤젤레스 램스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았으나, 다리 부상으로 인해 NFL에서 뛰는 것을 포기했다. 또한 그는 NBA에 입단하기 전 병역 의무를 수행하기도 했다.
3. 선수 경력
존스는 프로 선수 시절 끈질긴 수비수로 명성을 떨쳤다.
3.1. 보스턴 셀틱스 (1958-1967)

그는 NBA에서 뛴 총 9시즌 전체를 보스턴 셀틱스에서 보냈으며, 1959년부터 1966년까지 8번의 NBA 챔피언십 우승팀의 일원이었다. 존스는 1967년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와의 동부 지구 결승전에서 패배한 후 은퇴했다.
그는 선수 생활 초기에는 밥 쿠지와 빌 샤먼이라는 두 명의 위대한 선수에 밀려 주로 백업으로 출전했다. 하지만 1961년 샤먼이, 1963년 쿠지가 은퇴하자 존스는 주전으로 도약했으며, 샘 존스와 함께 셀틱스의 백코트를 책임졌다. 수비에 능한 K.C.와 공격에 능한 샘은 균형 잡힌 백코트 조합을 이루며 팀의 우승 행진에 기여했다. 그의 성적은 화려하지 않았지만(1960-61 시즌 평균 9.2점이 커리어 하이), 1964-65 시즌에는 평균 6.3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리그 3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의 수비는 당시 리그 최고의 득점원이었던 오스카 로버트슨이나 제리 웨스트를 괴롭혔으며, 만약 올-디펜시브 팀이 있었다면 그는 항상 명단에 올랐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K.C. 존스는 NBA 역사상 빌 러셀, 매직 존슨, 마이클 조던, 제리 루카스, 클라이드 러블레트, 퀸 벅너, 앤서니 데이비스에 이어 NCAA 챔피언십, NBA 챔피언십, 올림픽 금메달을 모두 우승한 단 8명뿐인 '농구 트리플 크라운' 달성자 중 한 명이다. NBA 역사상 선수 경력에서 그보다 더 많은 챔피언십을 우승한 선수는 그의 전 동료인 러셀(11회)과 샘 존스(10회)뿐이다.
4. 코치 경력
존스는 선수 은퇴 후 다양한 팀에서 코치 및 감독으로 활동했다.
4.1. 초기 코치 활동
그는 1967년부터 1970년까지 브랜다이스 대학교의 헤드 코치로 재직하며 코치 경력을 시작했다. 이후 1970년부터 1971년까지 하버드 대학교의 보조 코치를 맡았다. 1971-72 시즌에는 전 동료 빌 샤먼과 재회하여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의 보조 코치로 활동했으며, 이 팀은 당시 NBA 기록인 33연승을 달성하고 우승을 차지했다.
1972년 8월 8일, 그는 ABA의 샌디에이고 콘키스타도르스의 초대 헤드 코치로 부임하여 한 시즌(30승 54패)을 이끌었다. 1973년 6월 18일, 존스는 ABA를 떠나 NBA의 볼티모어 불리츠(이후 수도 불리츠 및 워싱턴 불리츠로 변경)의 헤드 코치로 진 슈의 뒤를 이어 취임했다. 워싱턴에서 보낸 3년 동안 불리츠는 155승 91패의 기록을 남겼다. 그는 1975 NBA 파이널에서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게 4-0으로 스윕당하며 우승에 실패했는데, 이는 NBA 역사상 최초로 흑인 헤드 코치(불리츠의 존스와 워리어스의 알 애틀스) 간의 파이널 대결이었다. 이듬해인 1976년 동부 컨퍼런스 준결승에서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게 7차전에서 패배한 후, 1976년 5월 7일 그의 계약은 갱신되지 않았고, 3주 후 딕 모타가 후임으로 부임했다.
4.2. 보스턴 셀틱스 감독 (1983-1988)
1983년 존스는 빌 피치의 뒤를 이어 보스턴 셀틱스의 헤드 코치로 부임했다. 당시 셀틱스는 이미 1960년대와 1970년대 중반에 이은 세 번째 황금기를 맞이하고 있었으며, 래리 버드, 케빈 맥헤일, 로버트 패리시로 구성된 역대 최강의 프런트 라인을 보유하고 있었다. 또한 존스가 감독으로 취임한 해에 데니스 존슨까지 합류하며 팀의 전력은 더욱 강화되었다.
존스는 피치 감독의 격정적인 성격과는 대조적으로 온화하고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감독으로 선수들로부터 환영받았다. 1983-84 시즌에 그는 셀틱스를 이끌고 62승을 기록했으며, NBA 파이널에서 숙적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는 그에게 선수 시절을 포함하여 통산 9번째 우승이었다. 이듬해인 1984-85 시즌에는 63승을, 1985-86 시즌에는 프랜차이즈 기록인 67승을 기록하며 두 번째 우승을 달성했다. 이 세 시즌 동안 존스가 이끈 셀틱스의 승률은 78%에 달했으며, 이는 1990년대 후반 시카고 불스에 의해 깨지기 전까지 NBA 기록이었다. 존스는 통계적으로 셀틱스의 가장 강력했던 시대를 이끈 감독이었다.
1986년에는 1986 NBA 올스타전에서 동부 컨퍼런스 팀을 이끌고 서부 컨퍼런스 팀을 139대 132로 꺾었다. 존스가 감독으로 재임한 5시즌 동안 셀틱스는 매년 애틀랜틱 디비전 우승을 차지했으며, 4차례 NBA 파이널에 진출했다. 그는 1987-88 시즌(57승)을 끝으로 예기치 않게 은퇴를 발표했고, 후임으로는 보조 코치였던 지미 로저스가 임명되었다. 빌 러셀을 제외하고는 존스가 NBA 역사상 여러 번 우승한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감독이었다.
4.3. 셀틱스 이후의 코치 활동
셀틱스 감독직에서 물러난 후, 존스는 1988-89 시즌 동안 셀틱스의 프런트 오피스에서 부사장으로 활동하며 레드 아워백을 보좌했다. 1989년 셀틱스를 떠나 시애틀 슈퍼소닉스의 보조 코치 겸 농구 컨설턴트로 활동하다가, 1990년에 슈퍼소닉스의 헤드 코치로 승격되었다. 1990-91 시즌에는 팀을 41승 41패로 이끌었으나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탈락했으며, 이듬해 시즌 초반 18승 18패를 기록한 후 시즌 도중 해임되었다.
이후 1994년에는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의 보조 코치로 한 시즌을 보냈는데, 당시 피스톤스의 헤드 코치는 존스의 셀틱스 시절 제자였던 돈 체이니였다. 1995년 오프시즌에는 다시 셀틱스 감독직으로의 복귀가 고려되기도 했다. 1996년에는 M.L. 카 감독 아래 보스턴 셀틱스의 보조 코치로 한 시즌 동안 다시 활동했다. 1997년에는 신생 미국여자농구리그(ABL)의 뉴잉글랜드 블리자드의 감독으로 부임하여 리그의 마지막 1.5시즌을 이끌었다. 블리자드는 그의 두 번째 시즌에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산호세 레이저스에게 완패했다.
5. 개인 생활 및 사망
5.1. 개인 생활
존스는 1959년 올림픽 동료였던 칼 케인의 여동생 베벌리 케인과 결혼하여 다섯 자녀를 두었으나 이혼했다. 이후 엘렌과 재혼하여 여섯 번째 자녀를 얻었다. 그의 아들 키퍼는 벤틀리 칼리지에서 가드로 뛰었고, 딸 브라이나는 하와이 대학교에서 농구와 배구 장학금을 받았다.
5.2. 사망
K.C. 존스는 2020년 12월 25일, 코네티컷주의 한 요양원에서 알츠하이머병으로 투병하다 8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6. 수상 및 영예
K.C. 존스는 선수와 코치로서 다음과 같은 주요 수상 경력과 영예를 얻었다.
- 2회 NCAA 챔피언: 1955년, 1956년
- 1956년 올림픽 금메달
- 12회 NBA 챔피언: 선수로서 8회, 보조 코치로서 2회, 헤드 코치로서 2회
- 농구 '트리플 크라운' 달성 (NCAA, NBA, 올림픽 챔피언)
- 5회 NBA 올스타전 헤드 코치
- 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 헌액: 1989년
- 컬리지 농구 명예의 전당 헌액: 2006년
- 미국 올림픽 명예의 전당 헌액: 1986년 (1956년 미국 남자 농구팀의 일원으로)
- 2016년 척 데일리 공로상
- 보스턴 셀틱스 영구 결번 (등번호 25번)
- 샌프란시스코 대학교 영구 결번 (등번호 4번)
7. 유산 및 영향
K.C. 존스는 수비 중심의 플레이 스타일과 조용한 리더십으로 농구계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는 종종 빌 러셀과 함께 농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으로 평가되며, 1대1 수비와 스틸 능력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비록 득점력이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그의 수비는 1960년대 보스턴 셀틱스의 전설적인 8연패 시대를 이끄는 데 필수적인 요소였다. 그의 대학 시절 성공은 당시 공격 위주의 농구에서 수비의 중요성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존스는 빌 러셀과 평생 동안 우정을 유지했지만, 사교적인 러셀과는 달리 내향적인 성격으로 알려져 있다. 러셀의 회고에 따르면, 존스는 처음 한 달 동안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선수로서 8번의 우승을, 그리고 감독으로서 2번의 우승을 추가하며 셀틱스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특히 빌 러셀을 제외하고 여러 번의 NBA 챔피언십을 우승한 유일한 아프리카계 미국인 감독이라는 점은 그의 역사적 중요성을 더욱 부각시킨다. 그의 업적은 농구계에 미친 지속적인 영향력과 인종적 장벽을 허무는 데 기여한 선구적인 역할을 보여준다.
8. 경력 통계
8.1. 선수 통계
연도 | 팀 | GP | MPG | FG% | FT% | RPG | APG | PPG |
---|---|---|---|---|---|---|---|---|
1958-59 | 보스턴 | 49 | 12.4 | .339 | .603 | 2.6 | 1.4 | 3.5 |
1959-60 | 보스턴 | 74 | 17.2 | 0.408 | 0.753 | 2.7 | 2.6 | 6.3 |
1960-61 | 보스턴 | 78 | 20.6 | .338 | .664 | 3.6 | 3.2 | 7.6 |
1961-62 | 보스턴 | 80 | 25.7 | .406 | .634 | 3.7 | 4.3 | 9.2 |
1962-63 | 보스턴 | 79 | 24.6 | .389 | .633 | 3.3 | 4.0 | 7.2 |
1963-64 | 보스턴 | 80 | 30.3 | .392 | .524 | 4.7 | 5.1 | 8.2 |
1964-65 | 보스턴 | 78 | 31.2 | .396 | .630 | 4.1 | 5.6 | 8.3 |
1965-66 | 보스턴 | 80 | 33.9 | .388 | .690 | 3.8 | 6.3 | 8.6 |
1966-67 | 보스턴 | 78 | 31.4 | .397 | .630 | 3.1 | 5.0 | 6.2 |
커리어 | 676 | 25.9 | .387 | .647 | 3.5 | 4.3 | 7.4 |
플레이오프
연도 | 팀 | GP | MPG | FG% | FT% | RPG | APG | PPG |
---|---|---|---|---|---|---|---|---|
1959 | 보스턴 | 8 | 9.4 | .250 | 1.000 | 1.5 | 1.3 | 1.9 |
1960 | 보스턴 | 13 | 17.8 | .338 | .773 | 3.5 | 1.1 | 5.5 |
1961 | 보스턴 | 9 | 11.4 | .300 | .500 | 2.1 | 1.7 | 2.8 |
1962 | 보스턴 | 14 | 23.5 | 0.431 | .717 | 4.0 | 3.9 | 9.0 |
1963 | 보스턴 | 13 | 19.6 | .297 | .700 | 2.8 | 2.8 | 4.5 |
1964 | 보스턴 | 10 | 31.2 | .347 | .520 | 3.7 | 6.8 | 6.3 |
1965 | 보스턴 | 12 | 33.0 | .413 | .778 | 3.3 | 6.2 | 10.1 |
1966 | 보스턴 | 17 | 31.9 | .413 | .684 | 3.1 | 4.4 | 7.6 |
1967 | 보스턴 | 9 | 28.2 | .320 | .611 | 2.7 | 5.3 | 6.6 |
커리어 | 105 | 23.8 | .367 | .691 | 3.0 | 3.8 | 6.4 |
8.2. 감독 통계
팀 | 시즌 | 정규 시즌 | 플레이오프 | |||||||
---|---|---|---|---|---|---|---|---|---|---|
G | W | L | W-L% | G | W | L | W-L% | 결과 | ||
샌디에이고 (ABA) | 1972-73 | 84 | 30 | 54 | .357 | 4 | 0 | 4 | .000 | 디비전 준결승 패배 |
캐피탈 | 1973-74 | 82 | 47 | 35 | .573 | 7 | 3 | 4 | .429 | 컨퍼런스 준결승 패배 |
워싱턴 | 1974-75 | 82 | 60 | 22 | .732 | 17 | 8 | 9 | .471 | NBA 파이널 패배 |
워싱턴 | 1975-76 | 82 | 48 | 34 | .585 | 7 | 3 | 4 | .429 | 컨퍼런스 준결승 패배 |
보스턴 | 1983-84 | 82 | 62 | 20 | .756 | 23 | 15 | 8 | .652 | NBA 챔피언십 우승 |
보스턴 | 1984-85 | 82 | 63 | 19 | .768 | 21 | 13 | 8 | .619 | NBA 파이널 패배 |
보스턴 | 1985-86 | 82 | 67 | 15 | .817 | 18 | 15 | 3 | .833 | NBA 챔피언십 우승 |
보스턴 | 1986-87 | 82 | 59 | 23 | .720 | 23 | 13 | 10 | .565 | NBA 파이널 패배 |
보스턴 | 1987-88 | 82 | 57 | 25 | .695 | 17 | 9 | 8 | .529 | 컨퍼런스 결승 패배 |
시애틀 | 1990-91 | 82 | 41 | 41 | .500 | 5 | 2 | 3 | .400 | 1라운드 패배 |
시애틀 | 1991-92 | 36 | 18 | 18 | .500 | - | - | - | - | - |
NBA 경력 | 774 | 522 | 252 | .674 | 138 | 81 | 57 | .587 | - | |
ABA 경력 | 80 | 30 | 54 | .357 | 4 | 0 | 4 | .000 | ||
총합 경력 | 858 | 552 | 306 | .643 | 142 | 81 | 61 | .57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