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기 생애 및 배경
1.1. 어린 시절과 교육
휼렛 존슨은 1874년 1월 25일 커설에서 철강 제조업자 찰스 존슨과 로사 휼렛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매클즈필드 킹스 스쿨에서 교육을 받았고, 1894년 맨체스터의 오언스 칼리지를 졸업하며 토목 공학 학사 학위와 지질학 상을 받았다.
1.2. 초기 활동 및 사역
졸업 후 1895년부터 1898년까지 맨체스터의 오픈쇼에 있는 철도 객차 공장에서 일하며 두 동료를 통해 사회주의를 접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그는 영국 토목 기술자 협회의 준회원이 되었다. 교회 선교회에서 선교 활동을 하기로 결심한 후, 1900년 옥스퍼드의 위클리프 홀에 입학했고, 이후 와덤 칼리지에 다니며 1904년에 신학 분야에서 두 번째 학위를 취득했다. 그의 급진적인 신학적 견해로 인해 교회 선교회로부터 거부당했으나, 그는 성직자 훈련에 집중하여 같은 해에 성직에 임명되었다.
1905년에는 보조 사제가 되었고, 1908년에는 알트린참의 성 마거릿 교구의 교구 목사가 되었다. 그는 첫 번째 부인과 함께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휴가 캠프와 제1차 세계 대전 부상병을 위한 병원을 마을에 설립했다. 전쟁에 대한 그의 비전통적인 견해 때문에 현역 군목으로 임명되는 것이 거부되었지만, 그는 자신의 교구 내 포로수용소에서 직무를 수행했다. 1919년에는 체스터 대성당의 명예 참사회원이 되었고, 1923년에는 그의 교구가 위치한 보든 (그레이터 맨체스터)의 지방 참사회원이 되었다.
2. 종교 및 정치 경력
휼렛 존슨은 종교적 직책을 수행하는 동시에 급진적인 정치적 성향과 활동을 통해 주목받았다.
2.1. 맨체스터 대성당 참사회원
열렬한 기독교 마르크스주의자였던 존슨은 1917년 맨체스터에서 10월 혁명을 지지하는 연설을 한 후 MI5의 감시를 받게 되었다. 그의 정치적 견해는 대중에게 인기가 없었지만, 그의 헌신적인 노력과 목회 기술 덕분에 영국 노동당의 창립자이자 당시 총리였던 램지 맥도널드에 의해 1924년 맨체스터 대성당의 참사회원으로 임명되었다.
2.2. 캔터베리 대성당 참사회원
1931년, 그는 캔터베리 대성당의 참사회원으로 임명되었다. 이 직책에서 그는 조지프 스탈린과 소련 및 그 동맹국들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를 표명하며 '캔터베리의 붉은 참사회원'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2.3. 기독교 공산주의 및 소련 지지
존슨은 공식적으로 영국 공산당에 가입하지는 않았지만, 공산당 기관지인 데일리 워커의 이사회 의장을 맡았다. 그의 정치적 견해는 자본주의가 "도덕적 기반이 부족하다"는 확신과 공산주의의 "도덕적 동인"이 "가장 큰 매력을 구성하고 가장 광범위한 호소를 제공한다"는 믿음에서 비롯되었다고 스스로 밝혔다.
3. 주요 활동 및 업적
휼렛 존슨은 자신의 종교적 직책과 신념을 바탕으로 다양한 사회 활동과 저술 활동을 펼쳤다.
3.1. 《소련의 6분의 1 세계》와 소련 옹호
존슨은 1930년대에 소련의 제1차 5개년 계획에 따른 경제 발전과 대공황 시기 영국의 상황을 대비시키며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1934년과 1937년에 소련을 방문하여 평균적인 소련 시민의 건강과 부, 그리고 소련 체제가 시민의 자유를 보호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의 기사들을 모아 1939년 《소련의 6분의 1 세계》(The Socialist Sixth of the World소련의 6분의 1 세계영어)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했으며, 이 책은 1941년 미국에서 《소비에트 파워》(Soviet Power소비에트 파워영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이 책에는 브라질의 로마 가톨릭 주교 카를루스 두아르테 코스타가 서문을 썼다.
존슨은 소련에서의 삶에 대한 자신의 긍정적인 설명들을 옹호하며, 자신이 "다섯 개 소련 공화국과 여러 대도시"를 방문했고, "여러 번에 걸쳐 오랜 시간 동안 완전히 혼자서" 걸어 다녔으며, "다양한 도시와 마을의 모든 부분을 낮밤을 가리지 않고" 보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후 이 책의 상당 부분이 존슨이 의장을 맡았던 소련 문화 관계 협회와 같은 친소련 선전 자료에서 단어 하나하나까지 복사된 것이 밝혀졌다.
3.2. 전후 활동 및 인정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존슨은 소련의 노선을 철저히 따랐다. 1939년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 이후, 영국이 독일과 전쟁 중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전쟁에 반대했으며, 패배주의적 선전을 퍼뜨린다는 비난을 받았다. 1941년 나치 독일이 소련을 침공한 후에는 전쟁을 지지했지만, 그의 MI5 파일에는 "캔터베리 참사회원이 군대에게 강연하는 것을 허용하는 것은 여전히 바람직하지 않다"고 기록되어 있다.
전쟁이 끝난 후, 존슨은 "소련 원조 공동 위원회 의장으로서의 뛰어난 공로"를 인정받아 노동 적기 훈장을 수여받았고, 1951년에는 스탈린 국제 평화상을 수상했다. 전쟁 후에도 존슨은 자신의 공적인 지위를 이용하여 친소련적 견해를 계속 주장했다. 1948년부터 그는 영국-소련 친선 조직의 지도자로 활동했다. 1954년, 데일리 스케치 신문은 존슨을 악마의 뿔을 달고 흑인 민권 운동가 빌리 스트라찬과 폴 로브슨 옆에 서 있는 모습으로 묘사한 만화를 게재하며 그를 공격했다.
3.3. 모스크바 총대주교청 복원 관련 역할
존슨은 조지프 스탈린이 모스크바 총대주교청을 복원하도록 설득하는 데 기여했다고 알려진 서방 교회 지도자 중 가장 저명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스탈린은 이러한 조치가 서방 연합국과의 관계를 개선할 것이라고 성공적으로 설득되었다. 드미트리 볼코고노프는 "소련 지도자를 움직인 것은 전 신학교 중퇴자의 허영심이 아니라 연합국과의 관계에 대한 실용적인 고려였다"고 주장했다.
4. 사상 및 철학
휼렛 존슨의 사상은 기독교 신앙과 마르크스주의의 독특한 결합을 특징으로 한다.
4.1. 기독교와 마르크스주의의 결합
그는 공산주의가 반기독교적인 세력이 아니라 오히려 "기독교 복음의 자연스러운 결과이자 실제적인 실천"이라고 보았다. 그는 기독교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결합하려는 자신의 노력을 "새로운 종교에 관한 이단적 가르침"이라는 비난에 대해 부인했으며, 종교(기독교)와 정치(마르크스-레닌주의)의 차이를 매우 잘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종교적 견해는 주류 성공회와 일치했다.
4.2.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에 대한 견해
존슨은 자본주의가 "도덕적 기반이 부족하다"고 보았으며, 공산주의의 "도덕적 동인"이 "가장 큰 매력을 구성하고 가장 광범위한 호소를 제공한다"고 믿었다. 이러한 관점은 그의 정치적 선택과 소련에 대한 지지를 뒷받침하는 핵심 논리였다.
5. 개인 생활
존슨은 두 번 결혼했다. 1903년 옥스퍼드에서 학생이던 시절 맨체스터의 브로턴 파크 상인 프레더릭 테일러의 딸 메리와 결혼했다. 두 사람 사이에 자녀는 없었고, 메리는 1931년 암으로 사망했다. 1938년에는 그의 사촌이자 성공회 사제인 조지 에드워즈의 딸 노웰 메리(1906년~1983년)와 재혼하여 두 딸을 두었다.
6. 후기 생애 및 사망
존슨은 89세 생일이 되던 해인 1963년 캔터베리 대성당 참사회원직에서 은퇴했지만, 캔터베리 뉴 스트리트의 레드 하우스에 정착하여 계속 거주했다. 그는 공산주의 세계 발전 동향에 대한 관심을 유지하는 한편, 심령 연구에 몰두했으며 사망 전 자서전 《빛을 찾아서》(Searching for Light빛을 찾아서영어)를 완성했다. 이 책은 1968년 사후 출판되었다. 그는 1966년 92세의 나이로 켄트 앤 캔터베리 병원에서 사망했으며, 캔터베리 대성당 회랑 뜰에 안장되었다.
7. 평가 및 영향
휼렛 존슨은 그의 급진적인 정치적 견해와 종교적 직책의 결합으로 인해 역사적으로 다양한 평가를 받았다.
7.1. 긍정적 평가
존슨은 목회자로서의 헌신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을 통해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는 알트린참에서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휴가 캠프와 제1차 세계 대전 부상병을 위한 병원을 설립하는 등 실질적인 사회 공헌 활동을 펼쳤다. 또한, 그의 노력과 목회 기술은 그가 맨체스터 대성당의 참사회원으로 임명되는 데 기여했다. 그의 기독교 복음에 대한 해석과 사회 정의에 대한 헌신은 일부 기독교 사회주의자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특히, 스탈린이 모스크바 총대주교청을 복원하도록 설득하는 데 기여한 역할은 서방 연합국과의 관계 개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7.2. 비판 및 논란
존슨의 영향력은 1956년 소련의 헝가리 침공 이후 영국에서 소련에 대한 대중적 동정이 급격히 감소하면서 약화되기 시작했다. 영국 정부는 외국인들이 캔터베리 참사회원인 존슨을 캔터베리 대주교와 혼동하는 경향이 있어 그의 친공산주의 활동을 특히 곤란하게 여겼다. 페르디난드 마운트와 같은 비평가들은 존슨이 1930년대 기근부터 한국 전쟁에서의 세균전 논란에 이르기까지 그가 유창하게 주장했던 문제들에 대해 피상적인 연구만 했을 뿐이라는 증거가 없다고 비판했다.
캔터베리 킹스 스쿨의 교장 프레드 셜리는 존슨에게 반대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어느 해 존슨이 참사회장 건물 전면에 "기독교인들은 핵무기를 금지한다"는 거대한 파란색과 흰색 현수막을 내걸자, 일부 학생들은 학교 건물에 "킹스 스쿨은 공산주의자를 금지한다"는 현수막을 내걸며 맞섰다. 존슨의 반대자들은 기독교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통합하려는 그의 노력을 "새로운 종교에 관한 이단적 가르침"이라고 비난했다.
그의 전기 작가 내털리 K. 왓슨은 2004년 옥스포드 국립 전기 사전에서 "존슨에게 공산주의는 반기독교적인 세력이 아니라, 오히려 기독교 복음의 자연스러운 결과이자 실제적인 실천이었다. ... 소련 러시아에 대한 그의 광범위한 저술은 1917년 혁명 이후 [러시아 생활의] 변화에 대한 순진하고 낭만적인 시각을 반영했다. 그는 평생 동안 대규모 박해와 정치적 반대자들의 절멸,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와 스탈린주의의 반종교적 측면을 무시했다"고 평가했다.
7.3. 후대에 미친 영향
휼렛 존슨의 삶과 사상은 기독교와 사회주의, 특히 공산주의의 관계에 대한 논쟁에 중요한 사례로 남아있다. 그의 저술과 활동은 종교적 신념이 급진적인 정치적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으며, 이는 후대의 기독교 사회주의 운동과 신학적 논의에 영향을 미쳤다. 그의 개인 문서들은 연구 자료로 보존되어 그의 복합적인 유산을 탐구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8. 저서
- 《소련의 6분의 1 세계》(The Socialist Sixth of the World소련의 6분의 1 세계영어), 1939년
- 《빛을 찾아서: 자서전》(Searching for Light: an Autobiography빛을 찾아서: 자서전영어), 1939년 (런던, V. 골란츠)
- 《소련의 힘의 비밀》(The Secrets of Soviet Strength소련의 힘의 비밀영어), 1943년
- 《전후 소련 러시아》(Soviet Russia since the war전후 소련 러시아영어), 1947년 (뉴욕, 보니 앤 게어)
- 《중국의 새로운 창조 시대》(China's New Creative Age중국의 새로운 창조 시대영어), 1953년 (런던, 로렌스)
- 《사회주의 세계의 동유럽》(Eastern Europe in the Socialist World사회주의 세계의 동유럽영어), 1955년 (런던, 로렌스 앤 위샤트)
- 《기독교인과 공산주의》(Christians and Communism기독교인과 공산주의영어), 1956년 (런던); 러시아어 번역본 - Хьюлетт Джонсон. Христиане и коммунизм. М., Изд. иностранной литературы, 1957, 154 с.
- 《중국의 급부상》(The Upsurge of China중국의 급부상영어), 1961년
- 《빛을 찾아서》(Searching for Light빛을 찾아서영어), 1968년 (자서전, 사후 출판)
9. 자료 소장
2007년 존슨의 개인 문서들은 그의 가족에 의해 켄트 대학교 특별 컬렉션 및 아카이브에 기증되었다. 이 아카이브에는 사진, 광범위한 서신, 신문 스크랩, 출판 및 미출판 저작물 사본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이 컬렉션에는 존슨 부부가 해외에 머물던 시절 직접 그린 삽화가 담긴 노웰 존슨의 여행 일기도 포함되어 있다.
10. 외부 링크
- [https://www.kent.ac.uk/library-it/special-collections/hewlett-johnson-papers 켄트 대학교 특별 컬렉션 및 아카이브의 휼렛 존슨 문서]
- [http://www.marxists.org/archive/johnson-hewlett/index.htm marxists.org의 휼렛 존슨 아카이브]
11. 관련 항목
- 기독교 공산주의
- 조지프 스탈린
- 소련
- 영국 국교회
- 맨체스터 대성당
- 캔터베리 대성당
- MI5
- 공산당 (영국)
-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
- 모스크바 총대주교청
- 영국-소련 친선 조직
- 마르크스-레닌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