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토마스 밀리안은 쿠바의 복잡한 정치적 배경 속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으며, 이후 배우의 꿈을 이루기 위해 미국과 이탈리아를 오가며 다국적인 삶을 살았다.
1.1. 어린 시절과 교육
밀리안은 1933년 3월 3일 쿠바 하바나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쿠바군의 장군이었으나, 바티스타 정권 하에서 부당하게 체포되고 투옥되었다. 1946년 12월 31일, 그의 아버지는 밀리안의 눈앞에서 자살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은 밀리안이 쿠바를 떠나 배우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에 정착한 후, 리 스트라스버그 밑에서 메소드 연기를 배우기 위해 액터스 스튜디오에 입학하여 연기 훈련을 받았다.
1.2. 초기 경력
미국에서 연기 경력을 시작한 밀리안은 1958년 스폴레토에서 열린 연극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이탈리아로 건너갔다. 이탈리아에 매료된 그는 그곳에 정착하기로 결심했고, 25년 이상을 이탈리아에서 성공적인 배우로 활동했다. 이탈리아에서의 첫 영화 출연은 1959년 영화 《라 노테 브라바》였다. 그의 억양 때문에 목소리가 종종 더빙되었지만, 밀리안은 이탈리아어 또는 영어로 직접 대사를 연기했다. 초기에는 마우로 볼로니니와 루키노 비스콘티와 같은 감독들과 작업하며 아트하우스 영화에 주로 출연했다. 5년간 "지적인" 영화들을 만든 후, 그는 제작자 프랑코 크리스탈디와의 계약에 불만을 품고 미국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재시작을 위한 돈이 필요했고, 그는 《바운티 킬러》라는 스파게티 웨스턴 영화에서 도적 역을 맡게 되었다. 이 영화는 그의 경력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고, 결국 그가 이탈리아에 계속 머무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2. 주요 활동 및 성과
토마스 밀리안은 이탈리아 장르 영화의 상징적인 얼굴이자 할리우드에서도 인정받은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가진 배우였다.
2.1. 이탈리아에서의 장르 영화 경력
밀리안은 이탈리아 영화계에서 다양한 장르 영화를 통해 독보적인 존재감을 확립했으며, 특히 스파게티 웨스턴과 폴리치에스코 장르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2.1.1. 스파게티 웨스턴
스파게티 웨스턴 장르의 스타가 된 밀리안은 이 장르에서 주로 멕시코 도적이나 혁명가 역을 연기했으며, 이때는 자신의 실제 목소리로 연기했다. 그는 《추한 자들》(1966), 《대추격》(1966), 《장고 킬... 살고 싶다면 쏴라!》(1967), 《페이스 투 페이스》(1967) 등의 작품에 출연했다. 특히 세르지오 솔리마 감독과는 `쿠칠로 산체스` 캐릭터로 《달려라, 남자여, 달려라!》(1968)를 함께 작업했으며, 세르지오 코르부치 감독의 《콤파네로스》(1970)와 장르 패러디인 《백색, 황색, 흑색》(1975)에서도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다. 그 외에도 《데스 센텐스》(1968), 《테페파》(1969), 《소니와 제드》(1972), 《인생은 힘들어, 프로비던스?》(1972), 《묵시록의 네 사람》(1975) 등 수많은 스파게티 웨스턴에 출연하며 장르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2.1.2. 폴리치에스코 및 기타 장르
스파게티 웨스턴의 인기가 시들해지자, 밀리안은 폴리치에스코 영화에서 악당과 영웅을 오가며 계속해서 스타로 활약했다. 그는 《거의 인간》(1974)에서 사이코패스 살인마 역으로 찬사를 받았다. 이후 《비상 분대》(1974), 《터프한 놈들》(1976), 《냉소적인 자, 쥐, 그리고 주먹》(1977) 등에도 출연했다. 또한, 브루노 코르부치 감독의 `니코 지랄디` 시리즈 (1976-1984, 《청바지를 입은 경찰》로 시작)와 움베르토 렌치 감독의 `에르 몬네짜` 영화들 (1976-1980, 《터프한 경찰을 위한 자유로운 손》으로 시작)이라는 두 편의 영화 시리즈에 출연하며 컬트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는 코미디로 전환하여 좀도둑 몬네짜와 서피코 같은 경찰관 니코 지랄디의 반복적인 캐릭터를 연기했다.

그의 목소리는 대부분 페루치오 아멘돌라에 의해 더빙되었지만, 밀리안은 로마네스코 방언(romanesco이탈리아어)으로 대사를 직접 썼다. 밀리안의 로마네스코 방언에 대한 기발한 활용은 그를 이탈리아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누리는 배우로 만들었다. 이 영화들의 감독인 브루노 코르부치는 "토마스 밀리안이 스크린에 등장하면, 그가 농담을 던지고 가장 심각한 상황에서도 아수라장이 되었는데, 마치 경기장에 있는 것 같았다"고 언급했다. 밀리안이 두 캐릭터를 연기할 때 비슷한 분장과 억양을 사용했기 때문에 이탈리아 관객들은 가끔 몬네짜와 니코를 혼동했으며, 둘 다를 '몬네짜' 또는 '에르 몬네짜'라고 잘못 부르기도 했다. 이 시기에 그는 마우로 볼로니니의 잔혹 스릴러 영화인 《오리를 고문하지 마세요》(1972)에도 출연했다. 이 외에도 비장르 영화인 데니스 호퍼의 《마지막 영화》(1971),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달》(1979),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어떤 여인의 정체》(1982), 《몬시뇰》(1982)에도 출연했다.
2.2. 할리우드 및 국제 경력
나이가 들면서 밀리안은 미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고, 1985년부터 다시 미국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는 시드니 폴락 감독의 《아바나》(1990), 올리버 스톤 감독의 《JFK》(1991),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아미스타드》(1997),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트래픽》(2000), 그리고 앤디 가르시아가 감독한 혁명기 쿠바에 관한 영화 《잃어버린 도시》(2005) 등 할리우드 및 국제적인 작품에서 조연으로 출연했다. 또한, 그는 무대에서도 활발히 활동했다. 2005년에는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소설을 영화화한 《염소의 축제》에서 독재자 라파엘 레오니다스 트루히요 몰리나 장군 역을 맡았다.
2.3. 수상 및 인정
토마스 밀리안은 그의 뛰어난 연기력으로 여러 차례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그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달》로 나스트로 디 아르젠토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2000년에는 영화 《트래픽》에 출연하여 미국 배우 조합상의 앙상블 연기상을 공동 수상했다. 2017년 10월 11일에는 제7회 알메리아 서부 영화제에서 '레오네 인 메모리암(Leone in Memoriam이탈리아어)' 상을 수상했으며, 그의 오랜 친구 루이스 산테이로가 대리 수상했다.
3. 연기 철학 및 스타일
밀리안은 뉴욕 액터스 스튜디오에서 메소드 연기를 학습하며 배우로서의 기반을 다졌다. 그는 자신의 역할에 깊이 몰입하고, 캐릭터의 감정적 측면과 유머러스한 면모를 동시에 드러내는 독특한 연기 스타일을 개발했다. 특히 이탈리아에서의 활동 중에는 대사 처리에서 혁신적인 면모를 보였다. 그의 목소리가 더빙되는 경우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대사, 특히 코미디 범죄 영화에서 맡았던 '니코 지랄디'나 '에르 몬네짜' 같은 캐릭터들의 대사를 로마네스코 방언으로 직접 쓰고 연기하여 이탈리아 관객들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이러한 로컬 방언의 활용은 그의 캐릭터에 생동감을 불어넣었고, 그를 이탈리아 대중문화의 컬트 아이콘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그는 역할에 대한 깊은 이해와 대본을 넘어선 창의적인 해석으로 자신의 연기 철학을 구현했다.
4. 개인사
토마스 밀리안은 쿠바 아바나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보냈다. 그는 배우가 되기 위해 미국으로 이주한 후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 이후 이탈리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1969년에는 이탈리아 시민권을 귀화하여, 쿠바, 미국, 이탈리아 세 나라의 정체성을 지닌 배우로 살았다.
5. 사망
토마스 밀리안은 2017년 3월 22일, 84세의 나이로 미국 플로리다 마이애미에 위치한 자택에서 뇌졸중으로 사망했다.
6. 평가 및 영향
토마스 밀리안은 그의 독특한 연기 스타일과 장르 영화에 대한 깊은 기여로 대중문화와 비평가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6.1. 긍정적 평가
그는 유럽 B급 영화에서 감성적인 강렬함과 특유의 유머를 결합하여 주연 역할을 성공적으로 소화해냈다. 특히 스파게티 웨스턴에서 멕시코 도적이나 혁명가 역을 맡아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폴리치에스코 장르에서는 악당과 영웅을 오가며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주었다. 그의 코믹하고 거친 캐릭터 연기, 특히 '니코 지랄디'와 '에르 몬네짜'는 이탈리아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얻었으며, 그가 직접 쓰고 연기한 로마네스코 방언 대사는 이탈리아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으며 그를 장르 영화의 상징적인 존재로 만들었다. 비평가들은 그의 뛰어난 캐릭터 소화 능력과 장르 영화의 한계를 넘어선 연기적 깊이를 높이 평가했다.
7. 영화 및 TV 출연 목록
공개년도 | 제목 | 역할 | 비고 |
---|---|---|---|
1958 | 《디코이》: "Fiesta at Midnight" | 후안 오르테가 | TV 시리즈 (에피소드) |
1959 | 《백만장자》: "The Louise Benton Story" | 두 번째 선원 | TV 시리즈 (에피소드) |
1959 | 《배드 걸스 돈 크라이》 | 모레토 | |
1960 | 《아름다운 안토니오》 | 에도아르도 | |
1960 | 《Silver Spoon Set》 | 알베르토 데 마테이스 | |
1961 | 《사고》 | 토마스 플레미안 | |
1961 | 《사자심을 위한 하루》 | 지노 미글리아치 | |
1961 | 《매일, 절박하게》 | 다리오 도미니치 | |
1962 | 《보카치오 '70》 | 오타비오 백작 | |
1962 | 《무질서》 | 브루노 | |
1962 | 《카사롤리 갱단》 | 가브리엘레 인제니스 | |
1963 | 《Ro.Go.Pa.G.》: "La ricotta" | 켄투리오네 | |
1963 | 《미친 바다》 | 에프시오 | |
1965 | 《나는 죽인다, 너는 죽인다》 | 로렌초 베르티 | |
1965 | 《무관심의 시간》 | 미셸레 | |
1965 | 《캠프 추종자들》 | 가에타노 마르티노 중위 | |
1965 | 《고뇌와 환희》 | 라파엘 | |
1966 | 《마드미젤 드 모팽》 | 슈발리에 달베르 | |
1965 | 《돈》 | 밥 | |
1966 | 《추한 자들》 | 호세 고메즈 | |
1966 | 《대추격》 | 쿠칠로 산체스 | |
1967 | 《페이스 투 페이스》 | 보 베넷 | |
1967 | 《장고 킬... 살고 싶다면 쏴라!》 | 낯선 사람 | |
1968 | 《밀라노의 은행 강도》 | 왈터 바세비 경감 | |
1968 | 《데스 센텐스》 | 오하라 | |
1968 | 《달려라, 남자여, 달려라!》 | 쿠칠로 산체스 | |
1968 | 《멋진 한 쌍》 | 로저 | |
1969 | 《테페파》 | 헤수스 마리아 "테페파" 모란 | |
1969 | 《베아트리체 첸치》 | 올림피오 칼베티 | |
1969 | 《어디로 그렇게 벌거벗고 가는 거야?》 | 만프레도 | |
1970 | 《콤파네로스》 | 엘 바스코 | |
1970 | 《비바 칸가세이로》 | 에스페디토 | |
1970 | 《카니발》 | 에모네 | |
1971 | 《지정된 희생자》 | 스테파노 아우젠티 | |
1971 | 《마지막 영화》 | 사제 | |
1972 | 《찢겨진》 | 낯선 사람 | |
1972 | 《소니와 제드》 | 제드 트리가도 | |
1972 | 《오리를 고문하지 마세요》 | 안드레아 마르텔리 | |
1973 | 《범죄 상담가》 | 토마스 아카르도 | |
1972 | 《인생은 힘들어, 프로비던스?》 | 프로비덴자 | |
1974 | 《비상 분대》 | 토마스 라벨리 | |
1974 | 《거의 인간》 | 줄리오 사치 | |
1975 | 《침묵의 행동》 | 리엔치 | |
1975 | 《신디케이트 새디스트》 | 람보 | |
1975 | 《백색, 황색, 흑색》 | 사쿠라 | |
1975 | 《묵시록의 네 사람》 | 차코 | |
1975 | 《Folle à tuer프랑스어》 | ||
1976 | 《미소 띤 섹스》 | 카발리에레 마렐리 | |
1976 | 《터프한 놈들》 | 빈센조 모레토 | |
1976 | 《청바지를 입은 경찰》 | 니코 지랄디 | |
1976 | 《트위스트》 | 탐정 | |
1976 | 《히트 분대》 | 니코 지랄디 | |
1976 | 《젊고, 폭력적이며, 위험한》 | 위원장 | |
1977 | 《냉소적인 자, 쥐, 그리고 주먹》 | 루이지 마이에토 | |
1977 | 《터프한 경찰을 위한 자유로운 손》 | 세르지오 마라치 | |
1977 | 《우리가 죽을 때까지 형제들》 | 세르지오 마라치/꼽추 | |
1977 | 《파괴력》 | 세르지오 마라치 | |
1977 | 《사기 방지반》 | 니코 지랄디 | |
1978 | 《리틀 이탈리아》 | 니코 지랄디 | |
1979 | 《미국을 판 갱단》 | 니코 지랄디 | |
1979 | 《테베레강 살인》 | 니코 지랄디 | |
1979 | 《달》 | 주세페 | |
1979 | 《겨울 살인》 | 프랭크 마요 | |
1980 | 《늑대와 어린 양》 | 쿠쿠 | |
1980 | 《포르타 로마나의 범죄》 | 니코 지랄디 | |
1981 | 《마놀레스타》 | 지노 퀴리노 | |
1981 | 《중국 식당에서의 범죄》 | 니코 지랄디 | |
1981 | 《서로 대항하며, 사실상 친구들》 | 퀸토 세치오네 | |
1982 | 《고속도로에서의 범죄》 | 니코 지랄디 | |
1982 | 《어떤 여인의 정체》 | 니콜로 | |
1982 | 《몬시뇰》 | 프란시스코 신부 | |
1982 | 《고양이와 개》 | 토니 로마 | |
1983 | 《포뮬러 원에서의 범죄》 | 니코 지랄디 | |
1984 | 《여장 경찰》 | 니코 지랄디 | |
1985 | 《다윗왕》 | 아키스 | |
1985 | 《이퀄라이저》: "Reign of Terror" | 임마누엘 페냐 | TV 시리즈 (에피소드) |
1985 | 《마이애미 바이스》: "Bought and Paid For" | 옥타비오 아로요 | TV 시리즈 (에피소드) |
1986 | 《살로메》 | 헤로데 | |
1987 | 《이퀄라이저》: "Shadow Play" | 두란 | TV 시리즈 (에피소드) |
1987 | 《먼 빛》 | 베르나르도 베르나르디 | |
1989 | 《캣 체이서》 | 안드레스 데보야 | |
1989 | 《대학살 연극》 | 클렘 다 실바 | |
1990 | 《마약 전쟁: 카마레나 이야기》 | 플로렌티노 벤투라 | |
1990 | 《리벤지》 | 세자르 | |
1990 | 《아바나》 | 메노칼 대령 | |
1991 | 《돈》 | 로버트 자라 | |
1991 | 《JFK》 | 레오폴도 | |
1992 | 《프래니의 차례》 | 조셉 에스코바르 | TV 시리즈 |
1992 | 《제시카의 추리극장》: "Day of the Dead" | 엔리코 몬테야노 | TV 시리즈 (에피소드) |
1992 | 《네일스》 | 페드로 헤레라 | |
1992 | 《스크린플레이》: "Bitter Harvest" | 라몬 시레스 | TV 시리즈 (에피소드) |
1993 | 《사랑, 명예, 그리고 복종: 마지막 마피아 결혼》 | 조 프로파치 | |
1993 | 《Marilyn & Bobby: Her Final Affair》 | 칼로 로시 | |
1994 | 《불타는 계절》 | 달시 알베스 | |
1994 | 《카우보이 웨이》 | 매니 후에르타 | |
1997 | 《서둘러 사랑에 빠진 바보들》 | 토마스 푸엔테스 | |
1997 | 《오즈》 | 리카르도 알바레즈 | TV 시리즈 |
1997 | 《아미스타드》 | 칼데론 | |
2000 | 《야드》 | 마누엘 세퀘이라 | |
2000 | 《로앤오더》 | 에밀리오 판토야 대령 | TV 시리즈 (에피소드) |
2000 | 《사랑을 위하여 또는 조국을 위하여: 아르투로 산도발 이야기》 | 소사 | |
2000 | 《트래픽》 | 아르투로 살라자르 장군 | |
2001 | 《더 하이어: 앰부시》 | 단편 | |
2002 | 《워싱턴 하이츠》 | 에디 | |
2005 | 《잃어버린 도시》 | 돈 페데리코 펠로베 | |
2005 | 《염소의 축제》 | 라파엘 레오니다스 트루히요 | |
2013 | 《Tomas Milian: Acting on Instinct》 | 본인 | |
2014 | 《어글리!》 | 그램프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