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및 배경
콘라도 마레로는 쿠바의 농촌에서 태어나 늦은 나이에 야구 경력을 시작했으며, 작은 키와 독특한 외모에도 불구하고 '코니'와 같은 여러 별명으로 불리며 뛰어난 실력을 선보였다.
1.1. 출생 및 유년 시절
마레로는 1911년 4월 25일 쿠바 사과라그란데 지역의 엘 라베린토라는 농장에서 태어났다. 그는 카나리아인 혈통을 가진 농부 집안 출신이었다. 어릴 적부터 야구에 대한 재능을 보였으며, 27세가 되던 1938년, 시엔푸에고스 아마추어 팀에 합류하며 본격적인 야구 경력을 시작했다. 이 팀은 백화점의 후원을 받아 운영되었고, 마레로는 주중에는 백화점에서 근무하며 주말에 리그 경기에 참여했다.
1.2. 별명 및 외모
마레로는 '코니'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져 있었다. 쿠바에서는 그의 시골 출신 배경을 반영하여 '엘 과히로 데 라베린토'(El Guajiro de Laberinto스페인어, '라베린토의 농부'라는 의미)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또한 '엘 프리미어'(El Premier스페인어)와 '엘 쿠르보'(El Curvo스페인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외모에 대해 로베르토 곤살레스 에체바리아는 "약간 통통하고 평균보다 작은 키(공식적으로는 1.5 m (5 ft) 0.1 m (5 in)에 72 kg (158 lb)로 기재됨), 짧은 팔과 작은 손을 가진 마레로는 유니폼을 입었을 때 선수가 아닌 야구 의상을 입은 사람처럼 보였다. 그는 운동선수라기보다는 스페인 식료품점 주인이나 농부처럼 보였다"고 묘사했다. 이러한 외모에도 불구하고 그는 뛰어난 투구 실력을 자랑했다.
2. 쿠바 야구 경력
마레로는 메이저 리그에 진출하기 전 쿠바에서 아마추어와 프로 리그를 오가며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그의 쿠바에서의 경력은 쿠바 야구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2.1. 아마추어 경력
마레로는 1938년부터 1945년까지 쿠바 아마추어 리그에서 123승을 거두며 쿠바 아마추어 리그 역사상 가장 인기 있고 성공적인 투수 중 한 명으로 명성을 떨쳤다. 곤살레스 에체바리아에 따르면, 아마추어 시절의 마레로는 쿠바의 어떤 프로 투수보다도 더 많은 관중을 끌어모으는 인물로 평가받았다.
1939년부터 1943년까지 쿠바 아바나의 라 트로피칼 스타디움에서 제2회부터 제6회까지의 아마추어 월드 시리즈가 개최되었다. 마레로는 쿠바가 처음 참가한 1939년 제2회 아마추어 월드 시리즈에서 쿠바 야구 국가대표팀의 투수로 활약했다. 당시 세 팀만이 참가한 대회에서 쿠바는 쉽게 우승했으며, 마레로는 자신이 등판한 유일한 경기에서 승리를 기록하며 팀 우승에 기여했다.
1940년 제3회 아마추어 월드 시리즈에서는 쿠바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3승 2패, 1.15 ERA를 기록했고, 대회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다. 1941년 제4회 아마추어 월드 시리즈에서는 3승을 거두었으나, 쿠바와 베네수엘라가 공동 우승을 차지했다. 베네수엘라는 다니엘 카노니코의 투구에 의존했는데, 그는 32이닝 동안 4승 무패, 1.69 ERA를 기록했다. 쿠바는 카노니코가 휴식할 시간을 주기 위해 플레이오프 경기를 제안했고, 1941년 10월 23일 마레로는 카노니코를 상대로 우승 결정전에 나섰다. 베네수엘라는 쿠바 3루수의 실책에 힘입어 1회 말 3점을 득점했고, 마레로는 2이닝 만에 교체되었다. 카노니코는 9회까지 쿠바 타선을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베네수엘라가 3대1로 승리, 첫 아마추어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1942년 마레로는 22승 5패, 1.22 ERA를 기록하며 최고의 아마추어 시즌을 보냈다. 제5회 아마추어 월드 시리즈를 위한 쿠바 국가대표팀은 팬 투표로 선정되었는데, 마레로가 가장 많은 득표를 얻었다. 이 대회에서는 마레로와 베네수엘라의 카노니코 간의 재대결이 펼쳐졌고, 이번에는 쿠바가 8대0으로 승리하며 우승컵을 되찾았다. 1943년, 마레로는 경기 대가로 돈을 받은 사실이 적발되어 아마추어 리그에서 6개월간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아 아마추어 월드 시리즈 팀에 선발되지 못했다. 1944년에는 21승 8패를 기록하며 복귀했고, 다시 아마추어 월드 시리즈 팀에 선발되었다. 이 대회는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열렸는데, 멕시코, 베네수엘라, 쿠바가 3자 동률을 이루어 플레이오프가 불가피해졌다. 그러나 베네수엘라가 제공한 심판들의 석연찮은 판정 이후 쿠바는 항의의 의미로 대회에서 기권했다. 1945년, 마레로는 다시 시엔푸에고스 소속으로 아마추어 리그에서 뛰었다. 그러나 비공식 경기에 두 번째로 등판한 것이 적발되어 무기한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았고, 이후 프로로 전향하기로 결심했다.
2.2. 쿠바 리그 경력
1946-47년 겨울, 마레로는 쿠바 내셔널 페더레이션 리그의 오리엔테 팀과 계약했다. 그는 8승 5패를 기록하며 리그 최다승 투수가 되는 좋은 시즌을 보냈다. 페더레이션 리그 시즌이 끝난 후, 그는 정규 쿠바 리그의 알멘다레스 팀으로 이적하여 시즌 마지막 한 달 동안 뛰었다. 비록 4경기에 등판하여 1승 무패를 기록하는 등 비중이 적었지만, 쿠바 리그 역사상 가장 유명한 우승 경쟁에서 우승팀의 일원으로 참여했다.
1947년 봄, 마레로는 쿠바 올스타 팀의 일원으로 스프링 트레이닝 기간 동안 아바나에서 경기를 치르던 메이저 리그 팀들을 상대로 등판할 기회를 얻었다. 그는 비로 단축된 7이닝 경기에서 뉴욕 양키스를 상대로 1실점 4피안타로 승리했다. 일주일 후 (당시 마이너 리그 아바나 쿠반스 소속으로 등판), 브루클린 다저스를 상대로 4피안타 8탈삼진을 기록했으나 1대0으로 아쉽게 패배했다.
다음 쿠바 리그 시즌인 1947-48년, 마레로는 알멘다레스로 돌아와 (이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의 공식 승인을 받게 됨) 아마도 그의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그는 12승 2패를 기록하며 쿠바 리그 역대 최다 완봉승 (8회) 및 최저 1.12 ERA 기록을 세웠고, 최우수 선수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알멘다레스가 아바나 팀과 한 경기만을 남겨두고 동률을 이루었을 때, 그는 아바나의 알렉스 패터슨에게 3대2로 패하며 우승을 확정 짓지 못했다.
1948-49년 시즌, 마레로는 6승 4패를 기록했고, 알멘다레스는 또 다른 우승을 쉽게 차지했다. 리그 챔피언으로서 알멘다레스는 1949년 아바나에서 열린 첫 캐리비안 시리즈에서 쿠바를 대표했다. 쿠바는 마레로가 등판한 유일한 경기에서 1실점 4피안타 완투승을 거두며 시리즈를 휩쓸었다. 1949-50년 시즌, 마레로는 7승 3패를 기록하며 2.66 ERA로 쿠바 리그를 이끌었고, 알멘다레스는 다시 우승을 차지했다. 제2회 캐리비안 시리즈에서 마레로는 2패를 기록했고, 쿠바는 파나마에 패하며 이변의 희생양이 되었다. 다음 겨울, 마레로는 11승 7패, 2.37 ERA를 기록하며 쿠바 리그에서 승리 및 투구 이닝 부문 선두를 차지했다. 그러나 알멘다레스는 아바나에게 한 경기 플레이오프에서 아쉽게 패하며 우승을 놓쳤다. 1951-52년 시즌에는 6승 9패, 다음 겨울에는 8승 8패를 기록했다.
1953-54년 시즌, 마레로는 7승 5패를 기록하며 알멘다레스가 다시 우승을 차지하는 데 기여했다. 제6회 캐리비안 시리즈에서 마레로는 유일한 등판에서 완봉승을 거두었으나, 푸에르토리코가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1954-55년 시즌, 마레로는 2승 3패를 기록하며 주로 구원 투수로 기용되기 시작했다. 알멘다레스는 우승을 차지하고 캐리비안 시리즈에 진출했지만, 마레로는 등판하지 못했다. 1955-56년 시즌, 마레로는 알멘다레스의 감독이 되었으나 팀은 최하위로 떨어졌고, 그의 감독 재임 기간은 짧았다. 그는 4경기에 등판하여 1승 무패를 기록했다. 알멘다레스에서 방출된 후, 마레로는 1956-57년 시즌을 위해 마리아나오 티그레스와 계약했다. 그는 7경기에 등판하여 19이닝을 던지며 1.37 ERA를 기록했다. 마리아나오는 우승을 차지했고, 마레로는 그의 마지막 캐리비안 시리즈에 등판하여 파나마를 상대로 3.33 이닝을 던졌다. 이 경기는 결국 그의 팀 동료인 짐 버닝의 승리로 끝났다. 쿠바는 9번의 시리즈 중 4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다음 시즌은 마레로의 마지막 시즌으로, 그는 3경기에 등판하여 4이닝만을 던졌다.
마레로의 쿠바 리그 통산 기록은 69승 43패였다. 그의 승률 0.600은 최소 40승을 거둔 투수들 중 리그 역사상 6번째로 높은 기록이다. (그보다 높은 승률을 기록한 5명의 투수 중 3명은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호세 멘데스, 레이 브라운, 마르틴 디히고이며, 나머지 두 명은 카를로스 로이어와 카밀로 파스쿠알이다.) 35세가 되어서야 쿠바 리그에서 투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69승은 쿠바 리그 역대 통산 승리 부문에서 10위를 차지한다.
3. 마이너 리그 경력
마레로는 1947년부터 1949년까지 워싱턴 세너터스의 마이너 리그 계열 팀인 플로리다 인터내셔널 리그의 아바나 쿠반스에서 뛰었다.
1947년, 마레로는 25승 6패를 기록하며 리그에서 승리(25승), 완투 (28회), 탈삼진 (251개), 완봉승 (7회), 1.66 ERA 부문 선두를 차지했다. 1947년 7월 12일, 그는 탬파 스모커스를 상대로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는데, 몸에 맞는 볼로 단 한 명의 주자만을 허용했다. 쿠반스는 105승 45패로 1위를 차지했으며, 플레이오프에서도 마이애미 선삭스와 탬파 스모커스를 꺾고 우승했다. 마레로는 플레이오프에서 두 차례 완봉승을 기록했다.
1948년, 마레로는 20승 11패, 1.67 ERA를 기록했다. 쿠반스는 97승 57패로 다시 1위를 차지하며 3년 연속 우승을 달성했다. 플레이오프에서는 레이크랜드 파일럿스와 탬파 스모커스를 모두 꺾었다. 1949년, 마레로는 25승 8패, 11완봉승, 1.53 ERA를 기록하며 리그 최우수 선수상을 수상했다. 그는 44이닝 연속 무실점이라는 리그 기록을 세웠다. 아바나는 95승 57패로 다시 1위를 차지했으며 (5년 연속 1위 중 4번째),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마이애미 비치를 꺾었다. 그러나 2라운드에서는 탬파에게 스윕당했으며, 마레로는 탬파의 오스카 델 칼보에게 패했다.
메이저 리그 워싱턴 세너터스에서 5년간 활약한 후, 마레로는 1955년부터 1957년까지 마이너 리그 팀인 아바나 슈가 킹스에서 뛰기 위해 아바나로 돌아왔다. 1954년, 이 팀은 인터내셔널 리그로 이동하여 아바나 슈가 킹스로 이름이 바뀌었다. 마레로는 팀과 함께 원정 경기를 가지 않고 홈 경기에서만 투구했다. 1955년, 그는 7승 3패를 기록했고, 5번의 완봉승 (그 중 한 번은 1피안타 경기)을 기록하며 2.69 ERA를 올렸다. 1956년, 45세의 마레로는 45이닝만을 던지며 3승 1패를 기록했다. 그의 유일한 패배는 그보다 더 나이가 많은 투수인 마이애미의 새첼 페이지에게 당한 것이었다. 1957년, 마레로는 3경기에 등판하여 5이닝만을 던지며 그의 투수 경력을 마무리했다.
4. 메이저 리그 경력
마레로는 38세의 늦은 나이에 메이저 리그에 데뷔하여 워싱턴 세너터스에서 5시즌 동안 활약하며 인상적인 기록을 남겼다.

4.1. 데뷔 및 활약
1950년부터 1954년까지, 마레로는 아메리칸 리그의 워싱턴 세너터스에서 투구했다. 이 기간 동안 워싱턴 로스터에는 투수 샌디 콘수에그라, 카밀로 파스쿠알, 포수 마이크 게라 등 여러 쿠바 선수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세너터스는 마레로가 뛰는 동안 8개 팀 리그에서 5위 이상을 기록하지 못한 하위권 팀이었다.
마레로의 메이저 리그 첫 등판은 1950년 4월 21일이었다. 그는 1950년 27경기 (19선발)에서 152이닝을 던지며 6승 10패, 4.50 ERA로 시즌을 마쳤다.
1951년, 마레로는 11승 9패, 187이닝, 3.90 ERA를 기록하며 팀 내 승리 및 투구 이닝 부문 선두를 차지했다. 1951년 4월 26일, 그는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를 상대로 2대1 승리를 거두는 1피안타 경기를 펼쳤다. 마레로가 허용한 유일한 안타는 바니 맥코스키의 홈런이었다.
1952년, 그는 11승 8패, 2.88 ERA (리그 9위)를 기록하며 워싱턴이 78승 76패로 성적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했다. 다음 해에는 8승 7패, 3.03 ERA를 기록했다. 1954년에는 3승 6패, 4.75 ERA로 성적이 하락했지만, 그는 당시 메이저 리그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선수였다. 1955년 1월 24일, 43세의 마레로는 세너터스에서 방출되었다.
마레로는 메이저 리그 경력을 39승 40패, 3.67 ERA로 마쳤는데, 이는 구장 차이를 조정한 후 리그 평균보다 8% 더 좋은 기록이었다. 그는 94번의 선발 등판에서 51번의 완투를 기록했으며, 이 중 7번은 완봉승이었다.
4.2. 올스타 선정
마레로는 1951년 아메리칸 리그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으나, 실제 경기에는 출전하지 않았다. 당시 40세였던 그는 그 시점까지 메이저 리그 역사상 가장 나이가 많은 첫 올스타 선수였다.
4.3. 등번호
- 21 (1950년)
- 22 (1951년 ~ 1954년)
5. 투구 스타일
마레로의 주요 구종은 주로 '느린 공'이었으며, 여기에는 커브, 슬라이더, 너클볼이 포함되었다. 쿠바 야구 전문가인 피터 C. 비야크만에 따르면, 마레로는 그의 주 구종이 슬라이더였고 때로는 슬라이더만을 던졌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구종 구성은 그의 투구 방식과 특징을 잘 보여준다.
6. 은퇴 후 경력
선수 은퇴 후 마레로는 쿠바 야구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계속 수행했다. 그는 아바나 슈가 킹스의 코치가 되었으며, 1960년에는 보스턴 레드삭스의 스카우트로도 활동했다.
쿠바 혁명 이후 피델 카스트로가 정권을 잡았을 때, 마레로는 쿠바에 남은 가장 저명한 선수 중 한 명이었다. 이로써 그는 옛 프로 쿠바 리그와 새로운 아마추어 쿠바 내셔널 시리즈 사이의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 그는 수년간 아바나 인두스트리알레스의 투수 코치로 활동했으며, 순회 투수 강사로도 일했다. 마레로는 쿠바에서 매우 존경받는 인물로, 그의 초상화는 에스타디오 라티노아메리카노의 벽화에 그려져 있으며, 1984년 야구 월드 챔피언십과 1999년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쿠바 국가대표팀 간의 친선 경기에서 시구를 던지기도 했다.
2006년, 마레로는 그의 알멘다레스 팀 동료이자 명예의 전당 헌액자인 몬테 어빈과 함께 쿠바 야구에 관한 다큐멘터리 '더 베이시스 아 로디드'(The Bases Are Loaded영어)에 출연했다. 그는 메이저 리그 연금을 받지 못했고, 아바나에 있는 친척 아파트의 방에서 소박하게 살고 있다고 보도되기도 했다. 2007년 초까지만 해도 쿠바 야구 투어는 참가자들이 95세의 마레로를 방문할 기회를 가질 것이라고 홍보했다.
2013년 4월 25일, 마레로는 가족 및 친구들과 함께 102번째 생일을 축하했다. 당시 그는 "불이 붙지 않은 쿠바 시가를 입에 물고 야구 모자를 쓴 채"였다. 그해 초, 그는 미국의 쿠바 금수 조치와 관련된 문제로 보류되었던 1947년에서 1979년 사이에 뛰었던 선수들에게 지급되는 메이저 리그 야구의 2.00 만 USD 지급금을 받았다. 마레로는 당시 시엔푸에고스 팀의 팬이었다.
7. 개인사 및 사망
마레로는 메이저 리그 역사상 최고령 선수로서의 기록을 세웠으며, 그의 사망은 야구계에 큰 아쉬움을 남겼다.
7.1. 최고령 선수
2011년 2월 8일 토니 말리노스키가 101세의 나이로 사망한 후, 마레로는 메이저 리그에서 활약했던 생존 인물 중 최고령 선수로 등극했다.
7.2. 사망
마레로는 2014년 4월 23일, 103번째 생일을 이틀 앞두고 아바나 자택에서 10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사망 이후, 당시 98세였던 마이크 샌들록이 메이저 리그에서 활약했던 생존 인물 중 최고령 선수 자리를 이어받게 되었다.
8. 평가 및 유산
마레로는 쿠바 야구계에서 상징적인 위상을 지니며, 그의 명예의 전당 헌액은 그의 업적을 기리는 중요한 유산이다.
8.1. 쿠바 야구에서의 위상
마레로는 쿠바에서 매우 인기 있는 스타였으며, 아마추어 야구에서 길고 성공적인 경력을 쌓았다. 그는 쿠바 야구의 전설적인 인물로 평가받으며, 쿠바 혁명 이후에도 조국에 남아 새로운 아마추어 쿠바 내셔널 시리즈와 옛 프로 쿠바 리그 사이의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 그의 초상화가 에스타디오 라티노아메리카노 벽화에 그려지고, 중요한 야구 행사에서 시구를 던지는 등 쿠바 야구계에서 그의 존경받는 위상을 엿볼 수 있다.
8.2. 명예의 전당 헌액
마레로는 2014년 쿠바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이는 그의 뛰어난 선수 경력과 쿠바 야구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9. 통계
9.1. 쿠바 리그 통계
| 연도 | 팀 | 리그 | 승 | 패 | 승률 | 경기 | 완투 | 이닝 | 피안타 | 자책점 | 탈삼진 | 평균자책점 |
|---|---|---|---|---|---|---|---|---|---|---|---|---|
| 1946/47 | 오리엔테 | 내셔널 페더레이션 | 8 | 5 | .615 | 18 | - | - | - | - | - | - |
| 알멘다레스 | 쿠바 | 1 | 0 | 1.000 | 4 | 1 | 14.3 이닝 | - | 5 | 6 | - | |
| 1947/48 | 알멘다레스 | 쿠바 | 12 | 2 | .857 | 22 | 17 | 184.7 이닝 | 123 | 55 | 99 | 1.12 ERA |
| 1948/49 | 알멘다레스 | 쿠바 | 6 | 4 | .600 | 15 | 4 | 77.7 이닝 | 71 | 19 | 27 | 3.48 ERA |
| 1949/50 | 알멘다레스 | 쿠바 | 7 | 3 | .700 | 15 | 5 | 81.3 이닝 | 81 | 20 | 38 | 2.66 ERA |
| 1950/51 | 알멘다레스 | 쿠바 | 11 | 7 | .611 | 27 | 9 | 159.7 이닝 | 135 | 32 | 58 | 2.37 ERA |
| 1951/52 | 알멘다레스 | 쿠바 | 6 | 9 | .400 | 21 | 6 | 115.7 이닝 | 107 | 40 | 51 | 3.50 ERA |
| 1952/53 | 알멘다레스 | 쿠바 | 8 | 8 | .500 | 22 | 8 | 135.0 이닝 | 105 | 47 | 48 | 2.60 ERA |
| 1953/54 | 알멘다레스 | 쿠바 | 7 | 5 | .583 | 22 | 3 | 107.3 이닝 | 102 | 28 | 46 | 3.27 ERA |
| 1954/55 | 알멘다레스 | 쿠바 | 2 | 3 | .400 | 21 | 1 | 58.7 이닝 | 42 | 19 | 28 | 2.61 ERA |
| 1955/56 | 알멘다레스 | 쿠바 | 1 | 0 | 1.000 | 4 | 0 | 10.3 이닝 | 10 | 6 | 5 | 2.61 ERA |
| 1956/57 | 마리아나오 | 쿠바 | 0 | 0 | .000 | 7 | 0 | 19.7 이닝 | 13 | 6 | 7 | 1.37 ERA |
| 1957/58 | 마리아나오 | 쿠바 | 0 | 0 | .000 | 3 | 0 | 4.0 이닝 | 9 | 4 | 4 | - |
| 총계 | 12시즌 | 69 | 46 | .600 | 201 | 54 | 968.3 이닝 | 798 | 281 | 417 | 2.51 ERA | |
9.1.1. 캐리비안 시리즈
| 연도 | 팀 | 승 | 패 | 승률 | 경기 | 완투 | 이닝 | 피안타 | 자책점 | 탈삼진 | 평균자책점 |
|---|---|---|---|---|---|---|---|---|---|---|---|
| 1949 | 알멘다레스 | 1 | 0 | 1.000 | 1 | 1 | 9.0 이닝 | 4 | 3 | 5 | - |
| 1950 | 알멘다레스 | 0 | 2 | .000 | 2 | 0 | 7.0 이닝 | 9 | 0 | 3 | - |
| 1954 | 알멘다레스 | 1 | 0 | 1.000 | 1 | 1 | 9.0 이닝 | 5 | 2 | 5 | 0.00 ERA |
| 1957 | 마리아나오 | 0 | 0 | .000 | 1 | 0 | 3.3 이닝 | 5 | 0 | 0 | - |
| 총계 | 4시리즈 | 2 | 2 | .500 | 5 | 2 | 28.3 이닝 | 23 | 5 | 13 | - |
9.2. 마이너 리그 통계
| 연도 | 팀 | 리그 | 승 | 패 | 승률 | 경기 | 완투 | 이닝 | 피안타 | 자책점 | 탈삼진 | 평균자책점 |
|---|---|---|---|---|---|---|---|---|---|---|---|---|
| 1947 | 아바나 | 플로리다 인터내셔널 리그 | 25 | 6 | .806 | 40 | 28 | 271 이닝 | 180 | 46 | 251 | 1.66 ERA |
| 1948 | 아바나 | 플로리다 인터내셔널 | 20 | 11 | .645 | 35 | 24 | 264 이닝 | 206 | 24 | 168 | 1.67 ERA |
| 1949 | 아바나 | 플로리다 인터내셔널 | 25 | 8 | .758 | 35 | 26 | 258 이닝 | 175 | 47 | 167 | 1.53 ERA |
| 1955 | 아바나 | 인터내셔널 리그 | 7 | 3 | .700 | 16 | 5 | 87 이닝 | 71 | 27 | 54 | 2.69 ERA |
| 1956 | 아바나 | 인터내셔널 | 3 | 1 | .750 | 15 | 0 | 45 이닝 | 45 | 11 | 20 | 3.40 ERA |
| 1957 | 아바나 | 인터내셔널 | 0 | 0 | .000 | 3 | 0 | 5 이닝 | 3 | 1 | 1 | 1.93 ERA |
| 총계 | 6시즌 | 80 | 29 | .734 | 144 | 83 | 930 이닝 | 680 | 156 | 661 | 1.81 ERA | |
9.3. 메이저 리그 통계
| 연도 | 팀 | 리그 | 승 | 패 | 승률 | 경기 | 완투 | 이닝 | 피안타 | 자책점 | 탈삼진 | 평균자책점 | 조정 ERA+ |
|---|---|---|---|---|---|---|---|---|---|---|---|---|---|
| 1950 | 워싱턴 | 아메리칸 리그 | 6 | 10 | .375 | 27 | 8 | 152.0 이닝 | 159 | 55 | 63 | 4.50 ERA | 100 |
| 1951 | 워싱턴 | AL | 11 | 9 | .550 | 25 | 16 | 187.0 이닝 | 198 | 71 | 66 | 3.90 ERA | 105 |
| 1952 | 워싱턴 | AL | 11 | 8 | .579 | 22 | 16 | 184.3 이닝 | 175 | 53 | 77 | 2.88 ERA | 124 |
| 1953 | 워싱턴 | AL | 8 | 7 | .533 | 22 | 10 | 145.7 이닝 | 130 | 48 | 65 | 3.03 ERA | 129 |
| 1954 | 워싱턴 | AL | 3 | 6 | .333 | 22 | 1 | 66.3 이닝 | 74 | 22 | 26 | 4.75 ERA | 75 |
| 총계 | 5시즌 | 39 | 40 | .494 | 118 | 51 | 735.3 이닝 | 736 | 249 | 297 | 3.67 ERA | 108 | |
10. 관련 항목
- 백세인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선수 목록)
- 백세인 (스포츠인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