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기 생애 및 배경
1.1. 어린 시절과 교육
커털린 커리코는 1955년 1월 17일 헝가리 솔노크에서 태어나, 헝가리 키슈우이샤알라시에서 수도, 냉장고, 텔레비전이 없는 작은 집에서 자랐다. 그녀의 아버지 야노시는 정육업자였고, 어머니는 경리였다. 아버지는 1956년 헝가리 혁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기도 했다. 그녀는 초등 교육 과정에서 과학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며, 헝가리 전국 생물학 경시 대회에서 3위를 차지했다.
커리코는 1978년 세게드 대학교에서 생물학 학사 학위를, 1982년 같은 대학에서 생화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녀는 토마시 예뇌와 함께 연구했으며, 헝가리 과학 아카데미 산하 생물학 연구 센터에서 박사후 연구를 계속했다. 1978년부터 1985년까지 그녀는 공산주의 헝가리 내무부 비밀 경찰의 정보원으로 등재되어 있었는데, 그녀는 이것이 자신의 경력이나 아버지에게 가해질 보복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협박당해 이루어진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녀는 정보 제공이나 요원 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2. 경력 및 연구 활동
2.1. 헝가리에서의 초기 경력 및 이민
1985년, 커리코가 속한 헝가리 생물학 연구 센터의 연구실은 자금 지원이 중단되었고, 커리코는 다른 나라의 기관에서 일자리를 찾았다. 템플 대학교의 로버트 J. 수하돌닉으로부터 연구직 제안을 받은 후, 커리코는 남편과 두 살배기 딸 수전 프런치어와 함께 헝가리를 떠나 미국으로 이주했다. 이들은 자동차를 팔아 얻은 900 GBP를 딸의 테디베어에 숨겨 가져왔으며, 암시장에서 환전하기도 했다. 미국에 도착한 다음 날부터 일하기 시작했지만, 그녀는 당시 헝가리 자택에 세탁기가 있었던 반면 미국에서는 코인 세탁소를 이용해야 하는 등 생활 수준이 낮아졌다고 회상하며, 첫 일주일 만에 도망치고 싶었다고 말했다. 남편은 연구직에 대한 이해와 지지를 보내주었으며, 미국에서 청소부로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도왔다.
2.2.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의 연구와 시련
1985년부터 1988년까지 커리코는 필라델피아 템플 대학교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재직했다. 그녀는 에이즈, 혈액 질환, 만성 피로 증후군 환자들을 이중 가닥 RNA(dsRNA)로 치료하는 임상 시험에 참여했다. 당시 이는 획기적인 연구로 평가되었는데, dsRNA에 의한 인터페론 유도의 분자 메커니즘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인터페론의 항바이러스 및 항종양 효과는 잘 문서화되어 있었다.
1988년, 커리코는 존스 홉킨스 대학교의 일자리를 수락했으나, 이를 템플 대학교의 지도 교수였던 수하돌닉에게 미리 알리지 않았다. 그레고리 저커먼의 2021년 저서 『세계를 구할 한 발의 총성』에 따르면, 수하돌닉은 그녀가 존스 홉킨스에 가면 추방시키겠다고 위협하며 그녀를 미국 이민 당국에 "불법 체류자"로 신고했다. 커리코가 추방 명령에 성공적으로 이의를 제기하는 동안 존스 홉킨스 대학교는 채용 제안을 철회했다. 수하돌닉은 "커리코를 계속 비방하여" 다른 기관에서 새로운 직위를 얻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커리코는 이 사건이 저커먼의 묘사대로 일어났음을 확인했지만, "더 중요하게는 1985년에 미국 이민세관집행국 양식을 보내주고, 그의 연구실에서 일할 기회를 준 것에 대해 항상 감사했다"고 강조하며, 몇 년 후 템플 대학교에서 강연할 때 그에게서 배운 과학에 대해 감사 인사를 전했다고 덧붙였다. 1988년부터 1989년까지 그녀는 메릴랜드주 베데스다에 위치한 미국 군의관 의과대학에서 근무하며 신호 단백질 인터페론 연구를 수행했다.
1989년, 그녀는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 고용되어 심장학자 엘리엇 바나탄과 함께 메신저 RNA(mRNA) 연구를 시작했다. 1990년,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페럴먼 의과대학의 겸임 교수로 재직하면서 커리코는 mRNA 기반 유전자 치료법을 확립할 것을 제안하는 첫 연구비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 이후로 mRNA 기반 치료법은 커리코의 주요 연구 관심사였다. 그러나 1990년대에는 많은 연구자, 생명공학 기업, 제약 회사들이 mRNA의 잠재력을 의심하면서 mRNA는 주목받지 못했다. 엘리엇 바나탄(1997년 펜실베이니아 대학교를 떠남)과 데이비드 랭어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커리코는 연구 자금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녀는 처음에는 정교수가 될 예정이었으나, 반복적인 연구비 신청 거절 끝에 1995년 대학으로부터 강등당했다. 대학은 그녀가 "성과를 내지 못하고 사회적 의미가 있는 연구라고 생각되지 않으며", "교원으로서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연구실 리더 직위에서 해고하거나 강등과 감봉을 받아들이고 연구를 계속할 것을 요구했다. 그녀는 후자를 선택하며 종신 재직권이 있는 교수직에서 해임되는 굴욕을 감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남아 mRNA 연구를 계속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그녀는 암 진단을 받아 두 차례의 수술을 앞두고 있었고, 남편은 그린카드 문제로 헝가리에 발이 묶여 6개월 동안 돌아오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녀는 이 시기에 "정말 힘들었지만, 그들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회상했다. 수술을 받는 동안 커리코는 자신의 선택지를 고민했고, 결국 남아서 강등이라는 굴욕을 받아들이고 이 분야의 연구를 계속하기로 결심했다. 펜실베이니아 대학교를 떠나지 않은 이 선택은 그녀의 경력과 과학의 방향을 바꾸게 될 우연한 드루 와이스먼과의 만남으로 이어졌다.

1997년, 그녀는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 새로 부임한 면역학 교수 드루 와이스먼을 만났다. 당시에는 과학 출판물을 온라인으로 열람할 수 없었기 때문에, 과학자들이 최신 연구를 접하는 유일한 방법은 잡지에서 복사하는 것이었다. 와이스먼은 1998년 커리코와의 첫 만남에 대해 "어느새 부서 내에서 커털린 커리코라는 과학자와 복사기를 놓고 다투고 있었다"며 "그래서 우리는 이야기를 시작했고, 서로의 행동을 비교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커리코의 학문적 지위는 여전히 낮았지만, 와이스먼은 그녀의 실험에 자금을 지원할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연구 협력을 시작했다. 와이스먼의 자금 지원은 커리코가 연구를 계속하고 확장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와이스먼의 면역학과 커리코의 생화학의 결합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그들은 기술을 발전시키고 문제를 하나씩 해결하며 결국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와이스먼은 "우리는 내내 싸워야 했다"고 언급했다. 커리코의 끈기는 학술 연구 환경의 일반적인 규범을 뛰어넘는 예외적인 것으로 평가받았다.
2.3. 드루 와이스먼과의 협력 및 주요 발견
2005년 이전에는 mRNA의 치료적 사용에 있어 생체 내 사용 시 염증 반응을 유발한다는 주요 문제가 있었다. 중요한 통찰은 커리코가 실험의 대조군으로 사용된 전달 RNA(tRNA)가 mRNA와 같은 면역 반응을 유발하지 않는 이유에 집중하면서 얻어졌다. 2005년부터 시작된 일련의 획기적인 연구는 합성 mRNA가 강한 염증을 유발하는 반면, tRNA는 비염증성임을 입증했다. 커리코와 와이스먼은 특정 뉴클레오사이드 변형이 mRNA의 면역 반응을 감소시키는 방법을 밝혀냈다. 이는 유리딘을 슈도유리딘으로 대체함으로써 가능했다. mRNA를 비면역성으로 만드는 화학적 변형에 대한 그들의 핵심 발견은 학술지 『네이처』와 『사이언스』로부터 게재를 거부당했지만, 결국 『이뮤니티』에 게재되었다.
연구자들의 또 다른 중요한 성과는 mRNA를 지질 나노입자에 포장하는 전달 기술을 개발한 것이다. 지질 나노입자는 mRNA를 위한 새로운 의약품 전달 시스템으로, mRNA는 작은 지방 방울(지질 나노입자)에 주입되어 취약한 분자가 신체의 원하는 부위에 도달할 때까지 보호된다. 그들은 동물 실험에서 이 기술의 효과를 입증했다.
커리코와 와이스먼은 RNARx라는 작은 회사를 설립했으며, 2006년과 2013년에 mRNA에 대한 항바이러스 면역 반응을 줄이기 위해 여러 변형된 뉴클레오사이드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특허를 받았다. 곧이어 펜실베이니아 대학교는 이 지적 재산권 라이선스를 게리 달에게 판매했는데, 그는 결국 셀스크립트(Cellscript)가 된 연구실 공급 회사의 대표였다. 몇 주 후, 모더나를 후원하는 벤처 캐피털 회사인 플래그십 파이오니어링(Flagship Pioneering)이 특허 라이선스를 얻기 위해 커리코에게 연락했지만, 커리코는 이미 특허가 판매되었다고 알려야 했다.
2006년, 커털린 커리코는 생화학자 이언 매클라클런에게 화학적으로 변형된 mRNA에 대해 협력하자고 제안했다. 처음에는 매클라클런과 텍미라(Tekmira)가 협력을 거부했다. 커리코는 이언 매클라클런과 협력하기를 원했는데, 그는 mRNA 기술 발전에 기여한 팀의 리더였기 때문이다. 커리코는 혼합 과정을 통해 mRNA를 조밀한 입자로 캡슐화하는 고체 지질 나노입자 전달 시스템을 구축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2.4. 바이온텍에서의 활동
2013년 초, 커리코는 모더나가 아스트라제네카와 혈관 내피 성장 인자 mRNA 개발을 위해 2.40 억 USD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커리코는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mRNA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활용할 기회를 얻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고, 이에 따라 바이온텍 RNA 파마슈티컬스의 부사장직 제안을 수락했다. (이후 2019년에는 수석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그녀는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의 겸임 교수직을 유지했다. 그녀가 퇴직 의사를 밝혔을 때 펜실베이니아 대학교는 "바이온텍은 웹사이트조차 없다"며 조롱했다고 한다. 남편은 필라델피아에 머물렀고, 부사장이 된 커리코는 독일로 건너갔다.
2017년, 커리코는 바이온텍 및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의 여러 연구원들과 함께 mRNA 백신이 쥐와 원숭이를 지카바이러스로부터 보호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전례 없는 규모의 백신 개발이 필요해지면서, 그들의 연구가 mRNA의 임상 연구에 기여한 점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2022년, 그녀는 연구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 위해 바이온텍을 떠났다. 2023년 10월 현재, 커리코는 헝가리 세게드 대학교의 교수로 재직 중이다.
3. 과학적 기여 및 연구 성과
3.1. mRNA 기술의 발전
커리코의 연구와 전문 분야는 다능성 줄기세포 생성, mRNA 기반 유전자 치료 및 "새로운 종류의 약물"과 같은 광범위한 분야에 잠재적인 영향을 미치며 광범위한 파급 효과를 가지고 있다. 커리코의 연구는 바이온텍과 모더나가 면역 반응을 유도하지 않는 치료용 mRNA를 개발하는 토대를 마련했다.
3.2. COVID-19 백신 개발에의 기여
2020년, 커리코와 와이스먼의 기술은 바이온텍과 파트너사인 화이자, 그리고 모더나가 생산한 코로나19 백신에 사용되었다. mRNA 백신은 전례 없는 속도로 개발 및 승인되었으며, 90% 이상의 효능을 입증했다. 감염병 백신 외에도 mRNA는 암, 심혈관 질환, 대사 질환, 허혈과 같은 질병 치료에 잠재적인 응용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2024년 5월, mRNA 치료제의 면역원성을 낮추기 위한 주요 변형인 N1-메틸슈도유리딘(COVID-19 백신 개발을 가능하게 한 해결책)에 대한 한 검토 보고서에 따르면, 적어도 흑색종 백신의 경우, 100% 메틸슈도유리딘 도입 시 변형되지 않은 mRNA 백신에 비해 암 성장 및 전이가 관찰되었다고 보고되었다.
4. 역경과 극복: 과학적 끈기와 헌신
커털린 커리코의 과학적 여정은 끊임없는 역경과 이를 극복하려는 끈질긴 노력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녀는 오랜 기간 동안 연구가 주목받지 못하고 재정적, 제도적 어려움에 직면했음에도 불구하고 연구를 지속하며 헌신적인 노력을 보여주었다.
1985년, 헝가리 과학 아카데미 산하 생물학 연구 센터에서 연구 자금이 중단되면서 그녀는 실업자가 되었다. 이후 미국으로 이주했지만, 남편이 청소부로 일해야 할 정도로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했고, 낯선 환경과 열악한 연구 시설에 좌절감을 느끼기도 했다. 템플 대학교에서는 지도 교수였던 로버트 J. 수하돌닉의 방해로 존스 홉킨스 대학교의 채용 제안이 철회되고 추방 위협까지 받았다. 수하돌닉은 그녀를 비방하며 다른 기관에서 직위를 얻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
1990년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mRNA 기반 유전자 치료법에 대한 첫 연구비 신청이 거부된 것을 시작으로, 그녀의 연구는 수많은 자금 지원 거절에 부딪혔다. 1990년대에는 mRNA 연구 자체가 과학계에서 외면받는 "과학의 변두리"로 여겨졌다. 1995년에는 펜실베이니아 대학교로부터 "성과가 없고 사회적 의미도 없으며 교원으로서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종신 재직권이 보장되는 교수직에서 강등당하고 감봉되는 굴욕을 겪었다. 이 시기에 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아야 했으며, 남편은 비자 문제로 헝가리에 발이 묶여 6개월간 돌아오지 못하는 개인적인 어려움까지 겹쳤다. 그러나 그녀는 연구를 포기하지 않고 강등을 받아들이며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 남는 길을 택했다.
이후 드루 와이스먼과의 협력을 통해 2005년 mRNA의 면역원성을 억제하는 뉴클레오사이드 변형에 대한 획기적인 연구 결과를 발표했지만, 이 역시 『네이처』와 『사이언스』로부터 게재를 거부당하는 등 주목받지 못했다. 그녀는 2008년 미국 국립보건원(NIH)으로부터 100.00 만 USD의 연구비를 지원받았는데, 이는 그녀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확보한 연구비"라고 회고했다. 2009년에는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선임 연구원에서 겸임 부교수로 또다시 강등되는 수모를 겪었다. 대학은 그녀와 와이스먼의 연구 성과에 대한 지적 재산권을 저가에 판매하기도 했다.
2013년 바이온텍으로 이직할 당시, 펜실베이니아 대학교는 바이온텍에 "공식 웹사이트조차 없다"며 그녀를 조롱했다. 이러한 수많은 좌절과 회의적인 시선에도 불구하고, 커리코는 자신의 연구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잃지 않았다. 그녀는 "나는 그것이 작동할 것이라고 결코 의심하지 않았다"고 말했으며, 와이스먼은 "우리는 내내 싸워야 했다"고 회고했다. 그녀의 이러한 끈기와 헌신은 결국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mRNA 백신 개발의 핵심 토대가 되어 인류를 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5. 수상 및 영예
커리코는 생화학 분야에서 그녀의 선구적이고 세계적으로 중요한 업적에 대해 130개 이상의 국제적인 상과 영예를 받았다.
5.1. 노벨 생리의학상
카롤린스카 연구소의 노벨 위원회는 2023년 10월 2일, 커털린 커리코와 드루 와이스먼에게 mRNA 기술 개발에 대한 공로로 202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여한다고 발표했다. 커털린 커리코는 2024년 4월 16일, 노벨상 수상으로 받은 50.00 만 USD 이상의 상금을 자신의 모교인 세게드 대학교에 기부했다.
5.2. 기타 주요 수상 및 영예
- 2020년: 공공 미디어 올해의 인물상, 루이스 S. 로젠스티엘 기초 의학 연구 공로상
- 2021년: 빌헬름 엑스너 메달, 아스투리아스 공주상 과학기술 연구 부문, 세체니 상, 젬멜바이스 상, 헝가리 정신상, 인간 존엄상, 루이자 그로스 호르비츠 상, 올버니 메디컬 센터 상, 게이오 의학상, 라스커-드베이키 임상 의학 연구상, 국제 폴 얀센 생물의학 연구상, 윌리엄 B. 콜리 상,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 그랑 메달, 프린스 마히돌 상, 독일 면역학회상, BBVA 재단 지식의 프런티어 상, 마이엔부르크 상, 하비 상, 타임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타임지 선정 2021년 올해의 영웅
- 2022년: 빌체크 재단 우수성 상, 생명과학 브레이크스루 상, 파울 에를리히 & 루트비히 다르름슈태터 상, 펄 마이스터 그린가드 상, 로레알-유네스코 여성 과학자 상, 벤자민 프랭클린 메달, 루이-장테 의학상, 헬름홀츠 메달, 제시 스티븐슨 코발렌코 메달, 일본 국제상, 가드너 국제상, 탕상 바이오 의약 부문, 유럽 발명가상
- 2023년: 국립 발명가 명예의 전당 헌액
- 2024년: 파울 카러 골드 메달, 타임지 선정 2024년 건강 분야 영향력 있는 100인, BBC 선정 100인의 여성 목록 포함
그녀는 또한 2020년 키슈우이샤알라시 명예 시민, 2021년 촌그라드처나드 주 및 세게드 명예 시민으로 선정되었으며, 2021년 세게드 대학교와 듀크 대학교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21년 11월 29일, 2002년 헝가리 천문학자들이 발견한 소행성 166028 카리코카털린은 그녀를 기리기 위해 명명되었다.
6. 개인적인 삶
커리코는 엔지니어인 프란시아 벨라와 결혼했으며, 이들은 두 차례 올림픽 조정 금메달리스트인 딸 수전 프런치어의 부모이다. 남편은 미국 이민 후 청소부로 일하며 연구에 전념하는 아내를 헌신적으로 지원했다. 2021년 2월에는 딸과 사위인 건축가 라이언 아모스 사이에서 손자가 태어났다. 그녀의 어머니는 2018년에 사망했다. 커리코는 1999년에 미국 국적을 취득하여 헝가리와 미국의 이중 국적을 가지고 있다.
7. 대중적 인지도 및 회고록
2021년 4월, 『뉴욕 타임스』는 코로나19 팬데믹에 맞서 RNA 백신의 토대를 마련한 그녀의 경력을 집중 조명했다. 2021년 6월 10일, 『뉴욕 타임스』의 팟캐스트 『더 데일리』는 커리코의 경력을 다루며 그녀의 업적이 인정받기까지 극복해야 했던 수많은 어려움을 강조했다.
2021년 11월, 미국 온라인 잡지 『글래머』는 그녀를 올해의 여성으로 선정했다. 2023년에는 그녀에 대한 두 권의 아동 도서가 출간되었다. 데비 데이디와 줄리아나 오클리가 쓴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카티 커리코 박사와 미래 백신을 위한 경쟁』과 메건 호이트와 비비안 밀든버거가 쓴 『카티의 작은 메신저: 커털린 커리코 박사와 코로나19와의 싸움』이다.
커털린 커리코의 자서전 『돌파: 과학에서의 나의 삶(Breaking Through: My Life in Science)』은 그녀가 노벨상을 수상한 지 며칠 후인 2023년 10월 10일 크라운 퍼블리싱 그룹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2023년 헝가리에서 가장 많이 팔린 비소설 서적이 되었고, 2024년 6월에는 리브리 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시점까지 그녀의 회고록은 9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2022년 4월, 그녀는 일본 국제상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그녀는 일본 언론에 "나는 칭찬받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기쁜 것은 내 연구로 누군가가 구원받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요미우리 신문 기자에게 "일본 국민의 행복을 기원합니다"라고 적힌 사인을 건넸다. 2022년 10월 4일에는 일본 주재 헝가리 대사관이 게이오기주쿠 대학 의학부의 협력으로 "커리코 커털린 전시회 오프닝 세레모니"를 개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