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기 생애 및 교육
캐머런 매킨토시는 1946년 10월 17일 런던 엔필드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 다이애나 글래디스(결혼 전 성 토나)는 제작 비서였으며 몰타 출신으로 몰타 및 프랑스 혈통을 가졌다. 아버지는 이안 로버트 매킨토시로 목재 상인이자 재즈 트럼펫 연주자였으며 스코틀랜드 출신이었다. 매킨토시는 배스에 위치한 프라이어 파크 칼리지에서 교육을 받았다.
매킨토시는 여덟 살 때 이모와 함께 줄리언 슬레이드의 뮤지컬 《샐러드 데이즈》의 낮 공연을 본 후 연극 제작자가 되겠다는 꿈을 처음 갖게 되었다.
2. 연극 제작 경력

캐머런 매킨토시는 십대 후반부터 연극계에 발을 들여놓았으며, 이후 다양한 사업 활동을 통해 세계적인 뮤지컬 제작자로 성장했다.
2.1. 경력의 시작
매킨토시는 십대 후반에 드루리 레인 극장에서 무대 스태프로 일하며 연극 경력을 시작했다. 이후 여러 순회 공연의 무대 감독 보조로 활동했다. 1967년에는 로빈 알렉산더와 함께 헨리온템스의 켄턴 극장에서 다섯 편의 연극을 공동 제작했다. 1970년대에는 런던을 기반으로 자신의 소규모 순회 공연을 제작하기 시작했으며, 런던에서 본격적인 제작자로 활동하게 되었다. 그의 초기 런던 프로덕션으로는 1969년의 《애니씽 고즈》(2주 만에 막을 내렸다), 1973년의 《더 카드》, 1976년의 《사이드 바이 사이드 바이 손드하임》, 1978년의 《마이 페어 레이디》, 1980년의 《톰풀러리》 등이 있다.
2.2. 주요 성공 작품
매킨토시는 1980년대 이후 연이어 세계적인 히트작들을 제작하며 뮤지컬 산업의 판도를 바꾸었다.
- 《캣츠》 (1981):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작품으로, 당시에는 뮤지컬 소재로서는 예상치 못한 주제로 여겨졌다. 하지만 시즌 최고의 히트작이 되었고, 대서양 양쪽에서 가장 오래 공연된 뮤지컬 중 하나가 되었다. 이 작품은 토니상 7개 부문을 수상했다.

- 《레 미제라블》 (1985): 《캣츠》의 성공 후, 매킨토시는 프랑스 작가팀 클로드 미셸 쇤베르그와 알랭 부블리에게 접근하여 그들의 뮤지컬 《레 미제라블》(당시 성공적인 프랑스 콘셉트 앨범이었다)을 런던 무대에 올렸다. 이 뮤지컬은 바비칸 센터에서 초연된 후 팰리스 극장으로 옮겨졌다. 초반에는 흥행이 불안정하고 비평가들의 반응도 미온적이었으나, 입소문을 통해 엄청난 히트를 기록하며 현재 가장 오래 공연된 뮤지컬이자 런던에서 두 번째로 오래 공연된 작품이 되었다. 이 작품은 토니상 8개 부문을 수상했다. 1995년에는 런던에서 10주년 기념 콘서트를 제작하기도 했다.
- 《오페라의 유령》 (1986):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이 작품은 역사상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한 뮤지컬 중 하나이다. 런던 오리지널 프로덕션은 여전히 공연 중이며 런던에서 세 번째로 오래 공연된 작품이다. 뉴욕 프로덕션은 브로드웨이 역사상 가장 오래 공연된 뮤지컬이다. 이 작품은 토니상 7개 부문을 수상했다.
- 《미스 사이공》 (1989): 클로드 미셸 쇤베르그와 알랭 부블리의 다음 뮤지컬로, 1989년 9월 웨스트 엔드의 드루리 레인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이 작품 역시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1991년 브로드웨이 프로덕션은 당시 극장 역사상 가장 많은 사전 티켓 판매를 기록했다. 이 작품은 토니상 3개 부문을 수상했다. 2014년 5월 3일, 매킨토시는 런던 프린스 에드워드 극장에서 《미스 사이공》을 25주년 기념으로 재공연했다.
- 《메리 포핀스》 (2004): 2001년 디즈니 시어트리컬 프로덕션스의 사장 토마스 슈마허와 매킨토시가 만나 《메리 포핀스》를 무대 뮤지컬로 제작하는 것에 대해 논의했다. 매킨토시는 이 뮤지컬 각색 개발에 참여하여 2004년 웨스트 엔드와 2006년 브로드웨이 프로덕션을 슈마허와 함께 제작했다. 이 작품은 각각 프린스 에드워드 극장과 뉴 암스테르담 극장에서 공연되었다。 2019년에는 《메리 포핀스》가 웨스트 엔드의 프린스 에드워드 극장으로 돌아와 2023년 1월까지 공연되었다.
- 《올리버!》 (2008): 라이오넬 바트의 《올리버!》 리바이벌을 드루리 레인 극장에서 2008년부터 2009년까지 공연했다. 이 작품은 BBC 텔레비전 시리즈 《아이드 두 애니씽》을 통해 배우를 캐스팅했으며, 조디 프렌저가 낸시 역에, 로언 앳킨슨이 페이긴 역에 캐스팅되었다. 이 작품을 둘러싼 홍보와 관심은 웨스트 엔드 무대에서 전례 없는 수준이었으며, 2009년 1월에는 사전 판매액 1500.00 만 GBP를 기록하며 웨스트 엔드 역사상 가장 빠르게 판매된 쇼로 보도되었다. 2024년 여름, 매킨토시는 매튜 본이 연출하고 제작한 《올리버!》의 새로운 프로덕션을 치체스터 페스티벌 극장에서 공동 제작 및 수정했으며, 2024년 12월에는 길구드 극장에서 공연될 예정이다.
- 《해밀턴》 (2017): 린 마누엘 미란다의 브로드웨이 히트 뮤지컬 《해밀턴》의 런던 이전을 공동 제작했으며, 2017년 12월 21일 웨스트 엔드의 빅토리아 팰리스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2.3. 기타 작품 및 사업
매킨토시는 상업적으로 덜 성공적인 작품들도 제작했다. 1993년의 《모비 딕》과 1996년의 《마르탱 게르》가 이에 해당한다. 존 업다이크의 소설을 각색한 《이스트윅의 마녀들》(2000)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15개월 이상 공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전 블록버스터 작품들만큼 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그는 또한 여러 성공적인 뮤지컬을 제작했다. 1990년 런던과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된 《파이브 가이즈 네임드 모》, 1987년 스티븐 손드하임의 《폴리스》의 런던 수정판을 제작했다. 1999년 로열 내셔널 시어터의 《오클라호마!》, 2001년 《마이 페어 레이디》, 1993년 《회전목마》의 웨스트 엔드 이전 공연을 담당했다. 2006년 6월 1일 노엘 코워드 극장에서 웨스트 엔드에 초연된 《애비뉴 Q》의 런던 이전 공연을 공동 제작했다. 2010년 4월에는 런던 길구드 극장에서 뮤지컬 《헤어》의 웨스트 엔드 리바이벌을 무대에 올렸는데, 이 작품은 2009년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된 리바이벌 프로덕션이 이전된 것이다. 2013년에는 치체스터 페스티벌 극장과 함께 크리스토퍼 피츠제럴드 주연의 《바넘》 리바이벌을 작업했다. 극장 보수 공사로 인해 7월과 8월에는 '시어터 인 더 파크'라는 거대한 텐트에서 공연되었다. 2014년에는 브라이언 콘리가 주연을 맡아 영국과 아일랜드 순회 공연을 가졌다. 2016년에는 치체스터 페스티벌 극장에서 《하프 어 식스펜스》의 새로운 프로덕션을 공동 제작했으며, 이 작품은 웨스트 엔드의 노엘 코워드 극장으로 옮겨져 10개월간 공연되었다.
매킨토시는 1990년 연극 라이선싱 회사인 뮤직 시어터 인터내셔널의 공동 소유주가 되었다. 1991년에는 극장 그룹 델폰트 매킨토시 시어터스를 설립했다.
1998년, 매킨토시는 자신의 쇼 비즈니스 경력 30주년을 기념하는 갈라 콘서트 《헤이, 미스터 프로듀서!》를 개최했다. 이 콘서트는 6월 7일과 8일 두 차례 공연되었으며, 수익금은 왕립 국립 맹인 연구소와 연합 극장 자선 단체에 기부되었다. 많은 유명인들이 참여했으며, 6월 8일 공연에는 엘리자베스 여왕과 에든버러 공작 필립이 참석했다.
2.4. 극장 소유
매킨토시의 델폰트 매킨토시 그룹은 런던의 주요 극장 8곳을 소유하고 있다. 이들 극장은 프린스 에드워드 극장, 프린스 오브 웨일스 극장, 노벨로 극장, 손드하임 극장, 길구드 극장, 윈덤스 극장, 빅토리아 팰리스 극장, 노엘 코워드 극장이다.
3. 영화 제작 참여
캐머런 매킨토시는 뮤지컬 제작 외에도 영화 제작에 참여했다. 그는 2012년 개봉한 뮤지컬 영화 《레 미제라블》의 프로듀서 중 한 명으로 참여했다. 이 영화는 제85회 아카데미상에서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올랐으며, 앤 해서웨이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는 등 아카데미상 3개 부문(여우조연상, 분장 및 헤어스타일링상, 음향 믹싱상)을 수상했다.
4. 개인사
4.1. 가족 및 관계
매킨토시의 남동생 로버트 매킨토시 또한 제작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파트너는 호주 출신 극장 사진작가인 마이클 르 포에르 트렌치이다. 두 사람은 1982년 호주 애들레이드에서 열린 《오클라호마!》 공연 개막식에서 만났다. 이들은 런던, 서머싯주 찰턴 머스그로브의 스타보데일 수도원, 그리고 스코틀랜드 고원 서부 하이랜드의 노스 모라에 위치한 네비스 에스테이트에 거주지를 두고 있다.
2005년과 2006년, 매킨토시는 인디펜던트 온 선데이의 '핑크 리스트'에 가장 영향력 있는 "커밍아웃한" 동성애자 남녀 중 4위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런던에 기반을 둔 HIV 자선 단체인 더 푸드 체인의 후원자이기도 하다.
4.2. 영예 및 수상
매킨토시는 뮤지컬 산업에 대한 지대한 공헌을 인정받아 수많은 영예와 상을 받았다.
- 기사 작위 서임 (1996): 1996년 신년 서훈에서 뮤지컬 산업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기사작위를 받았다.
- 선데이 타임스 리치 리스트 (2021): 2021년 기준 순자산이 약 12.00 억 GBP으로 추정되어 이 목록에 포함되었다.
- 데일리 텔레그래프 "영국 문화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2008): 7위에 선정되었다.
- 더 스테이지 100 (2007): 2000년 이후 처음으로 이 목록의 1위를 차지했다. 이 목록은 매년 말 공연 예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들을 선정한다.
- 브로드웨이 명예의 전당 헌액 (2014): 2014년 1월 27일, 브로드웨이 아메리칸 시어터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최초의 영국인 제작자가 되었다.
5. 논란 및 분쟁
5.1. 미스 사이공 캐스팅 논란
1990년, 뮤지컬 《미스 사이공》에서 백인 배우 조너선 프라이스가 포주 역의 베트남인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 보철물과 피부를 어둡게 하는 분장을 사용한 것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에 대해 매킨토시는 "우리는 고정관념적인 캐스팅을 강력히 반대한다... 프라이스 씨를 인종을 이유로 차별하기로 선택함으로써 액터스 이쿼티 어소시에이션은 연방 및 주 인권법의 기본 원칙뿐만 아니라 연방 노동법을 더욱 위반했다"고 주장하며 프라이스 캐스팅을 옹호했다. 이 논란은 아시아계 미국인 배우들이 백인 배우의 캐스팅과 '옐로페이스' 사용에 항의하며 인종 차별 문제를 제기한 사례로 기록된다.
5.2. 네비스 에스테이트 토지 분쟁
1994년, 매킨토시는 스코틀랜드 고원 서부 하이랜드의 말레이그 동쪽에 위치한 노스 모라의 네비스 에스테이트(약 1.40 만 ha)를 매입했다. 이후 그는 이 부지의 토지 사용을 둘러싸고 소작농과 오랜 분쟁에 휘말렸다. 지주로서 매킨토시는 이 땅을 휴가용 주택 건설에 사용하기를 원했지만, 소작농은 이 땅이 방목에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6. 정치적 관여
매킨토시는 정치적 기부와 발언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표명해왔다. 1998년, 그는 영국 노동당에 가장 많은 개인 재정 기부자 중 한 명으로 지명되었다. 그러나 2010년에는 이 결정에 대해 후회한다고 밝히며 "노동당은 정말 망쳤다. 우리가 잘 나갈 때 그들은 낭비벽이 심했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겪는 문제의 원인이다. 그들은 비상금을 전혀 저축하지 않았다. 지난 12년 동안 더 나쁠 수는 없었다"고 비판했다.
2015년 영국 총선에서는 서머턴 앤드 프롬 지역구의 보수당 후보 데이비드 워버턴에게 2.50 만 GBP를 기부했다. 2016년 유럽 연합 회원국 국민투표에서는 영국이 유럽 연합을 탈퇴하는 데 찬성표를 던졌다. 그는 "유럽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나는 유럽에서 많은 일을 하고 유럽인들을 사랑한다. 하지만 '뚱뚱한 컨트롤러(Fat Controller)'가 책임지지 않는 시스템에는 문제가 있다"고 발언하며 자신의 브렉시트 찬성 입장을 설명했다.
7. 영향력 및 유산
캐머런 매킨토시는 뮤지컬 산업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업적은 뮤지컬의 세계화와 상업적 성공 모델 구축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뮤지컬을 전 세계적으로 확장하고 높은 수익을 창출하는 브랜드로 변모시킨 인물로 평가받는다. 특히 그는 순회 공연과 전 세계 공연(예: 1990년대 초반 동구권 국가와 같이 뮤지컬이 거의 공연되지 않던 지역)이 뉴욕과 런던 공연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능가할 수 있는 잠재적으로 매우 수익성 높은 시장임을 처음으로 인식한 연극 제작자였다.
또한 매킨토시는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의 트레버 넌과 니콜라스 하이트너와 같은 정통 연극 감독 및 기술자들을 뮤지컬의 세계로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이는 뮤지컬의 예술적 깊이와 기술적 완성도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 그가 소유하고 운영하는 델폰트 매킨토시 그룹은 런던의 주요 극장 8곳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런던 웨스트 엔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의 이러한 활동은 문화 산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지만, 상업적 성공을 최우선으로 하는 모델이 예술적 다양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비판적 측면도 존재한다.
8. 주요 제작 작품 목록
- 《애니씽 고즈》
- 《샐러드 데이즈》
- 《더 카드》
- 《갓스펠》
- 《사이드 바이 사이드 바이 손드하임》
- 《올리버!》
- 《마이 페어 레이디》
- 《오클라호마!》
- 《톰풀러리》
- 《캣츠》
- 《리틀 숍 오브 호러스》
- 《송 앤 댄스》
- 《블론델》
- 《아바카다브라》
- 《더 보이 프렌드》
- 《레 미제라블》
- 《오페라의 유령》
- 《폴리스》
- 《미스 사이공》
- 《파이브 가이즈 네임드 모》
- 《모비 딕》
- 《푸팅 잇 투게더》
- 《회전목마》
- 《마르탱 게르》
- 《더 픽스》
- 《헤이, 미스터 프로듀서!》
- 《백조의 호수》
- 《이스트윅의 마녀들》
- 《메리 포핀스》
- 《저스트 소》
- 《애비뉴 Q》
- 《더 선다우》
- 《헤어》
- 《베티 블루 아이즈》
- 《바넘》
- 《킹키 부츠》
- 《스위니 토드: 플리트가의 악마 이발사》
- 《하프 어 식스펜스》
- 《해밀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