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Jayson Richard Gowan Werth제이슨 리처드 고원 워스영어는 1979년 5월 20일 미국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에서 태어난 전 프로 야구 선수로, 메이저 리그 (MLB)에서 2002년부터 2017년까지 외야수로 활약했다. 그는 토론토 블루제이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필라델피아 필리스, 워싱턴 내셔널스 등 네 팀에서 15시즌 동안 뛰었다.
워스는 할아버지, 삼촌, 의붓아버지 모두 프로 야구 선수였던 3세대 야구 선수 집안 출신이다. 그는 조지아 불독스의 대학 야구 장학금 제안을 거절하고 1997년 MLB 드래프트에서 볼티모어 오리올스에 지명되어 프로 경력을 시작했다. 초기에는 포수로 뛰었으나, 이후 외야수로 포지션을 변경했다. 2002년 블루제이스에서 MLB에 데뷔했으며, 2004년 다저스로 이적했으나 부상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2006년 자유 계약으로 필리스에 합류한 그는 주전 외야수로 성장하여 2008년 월드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고, 2009년에는 올스타에 선정되는 등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2010년 12월, 워싱턴 내셔널스와 7년 1.26 억 USD의 대형 계약을 체결하며 팀의 핵심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내셔널스 시절에도 부상에 시달렸지만, 팀의 리더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2018년 시애틀 매리너스 산하 마이너 리그에서 잠시 활동한 후 햄스트링 부상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 후에는 일리노이주에서 유기농 농업 사업을 시작했으며, 경마 사업에도 참여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 초기 생애 및 배경
2.1. 출생 및 가족 관계
제이슨 리처드 고원 워스는 1979년 5월 20일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에서 운동선수 집안의 일원으로 태어났다. 그의 증조할아버지인 존 스코필드는 유격수였으나 다리 골절로 인해 메이저 리그 경력이 단축되었다. 워스의 할아버지인 더키 스코필드Ducky Schofield더키 스코필드영어는 1953년부터 1971년까지 MLB에서 뛰었으며, 주로 유격수로 활약하며 피츠버그 파이리츠의 1960년 월드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워스의 삼촌인 딕 스코필드Dick Schofield딕 스코필드영어 또한 14시즌 동안 MLB 유격수로 뛰었으며, 토론토 블루제이스 소속으로 1993년 월드 시리즈 우승을 경험했다.
워스의 어머니인 킴 스코필드 워스는 소프트볼 선수는 아니었지만 육상 경기 스타였으며 두 개의 전국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그의 친아버지인 제프 고원은 일리노이 주립 레드버즈 풋볼팀의 전 와이드 리시버였고,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팜 시스템에서 한 시즌 동안 뛰었다. 워스가 태어난 직후 그의 부모님은 헤어졌고, 그는 친아버지와 제한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1984년 그의 어머니는 뉴욕 양키스와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1루수였던 데니스 워스Dennis Werth데니스 워스영어와 재혼했으며, 의붓아버지의 영향으로 야구에 대한 사랑을 키우게 되었다.
2.2. 유년 시절 및 교육
워스는 7세부터 경쟁적인 야구를 시작했으며, 그의 유소년 팀인 스프링필드 플레임은 1993년 샌디 코팩스 월드 시리즈에서 3위를 차지했다. 2년 후, 워스는 주니어 팬 아메리칸 게임의 미국 팀에 선발되었다. 11세가 되었을 때, 그는 의붓아버지의 피칭 머신을 이용해 뒷마당에서 포수 훈련을 하곤 했다.
일리노이주 채텀의 글렌우드 고등학교에서 마지막 시즌을 보낼 당시, 워스는 타율 .652, 15 홈런, 56 타점, 27 도루를 기록하며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 그는 조지아 불독스로부터 대학 야구 장학금 제안을 받았으나, 볼티모어 오리올스가 그를 1997년 MLB 드래프트에서 지명하자 프로 진출을 선택하며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3. 프로 경력
워스의 프로 경력은 볼티모어 오리올스 산하 마이너 리그에서 시작하여 토론토 블루제이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필라델피아 필리스, 워싱턴 내셔널스를 거치며 메이저 리그에서 15년간 이어졌다. 그의 경력은 여러 차례의 부상과 포지션 변경, 그리고 중요한 팀 기여로 특징지어진다.
3.1. 드래프트 및 마이너 리그
3.1.1. 볼티모어 오리올스 조직 (1997-2000)
볼티모어 오리올스는 1997년 MLB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지명권을 두 개 가지고 있었는데, 워스를 전체 22순위로, 다넬 맥도널드를 26순위로 지명했다. 워스는 조지아 불독스에서 대학 야구를 하기로 약속했었지만, 오리올스와 약 85.00 만 USD에 계약하며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그는 루키 리그인 걸프 코스트 리그 (GCL) 오리올스에서 첫 20경기 동안 타율 .309, 5타점, 1홈런을 기록하며 즉시 생산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플로리다주의 더위로 인한 반복적인 허리 경련으로 인해 첫 40경기 중 절반을 결장하는 등 경력 첫 부상 문제를 겪었다. 그는 GCL 오리올스에서 총 32경기에 출전하여 88 타수에서 타율 .295, 1홈런, 8타점을 기록했다.
1998년, 워스는 로우-A 델마바 쇼어버즈에서 시즌을 시작했으며, 첫 8경기에서 3타점을 올렸다. 5월 말까지 타율 .311, 20타점, 12도루를 기록하며 6월에 열린 사우스 애틀랜틱 올스타전에 쇼어버즈 선수 4명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다. 그는 델마바에서 120경기, 408타수 동안 타율 .265, 8홈런, 53타점을 기록했다. 또한 포수로서도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는데, 투수들의 투구를 돕고 자신에게 도루를 시도한 유일한 주자를 성공적으로 잡아냈다. 쇼어버즈가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하자, 워스는 더블-A 보위 베이삭스에 합류하여 남은 시즌을 보냈다. 그는 보위에서 5경기에 출전하여 19타수 3안타, 1타점을 기록했다.
1999년 마이너 리그 시즌을 앞두고, 워스는 오리올스가 그를 포수에서 외야수로 전환하려 한다는 소문을 부인하며 "고등학교 때 외야수로 두 경기 뛰었을 뿐, 외야수 플레이 방법을 잘 모른다"고 말했다。 대신 그는 클래스 A-어드밴스드 프레더릭 키스에서 포수로 시즌을 시작했다. 7월 캐롤라이나 리그 올스타전에 참가한 직후, 워스는 예상치 못하게 보위로 승격되었다. 그는 프레더릭에서 시즌 전체를 보낼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칩 앨리의 부상으로 더블-A에 자리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당시 그는 캐롤라이나 리그 66경기, 236타수에서 타율 .305, 3홈런, 30타점을 기록 중이었다. 승격 후 그는 더블-A에서 35경기에 추가로 출전하여 121타수에서 타율 .373, 1홈런, 11타점을 기록했다. 워스는 1999년 애리조나 폴 리그의 스코츠데일 스콜피온스에서 뛸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보위에서 왼쪽 손목 골절을 당해 팀 드신세스로 교체되었다.
1999-2000년 오프시즌 동안 베테랑 포수 찰스 존슨이 계약 분쟁으로 오리올스에 실망하자, 볼티모어는 워스를 그의 대체자로 계획하기 시작했다. 팜 시스템 디렉터 돈 버포드는 워스를 트리플-A로 조기 승격시키는 대신, 2000년 시즌을 보위에서 시작한 후 2001년에 MLB에 데뷔시킬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그는 더블-A에서 타율 .231, 25타점만을 기록한 후 8월 9일 프레더릭으로 다시 강등되었다. 워스는 프레더릭에서 24경기, 83타수 동안 타율 .277, 2홈런, 18타점을 기록하며 더 나은 성적을 보였다.
3.1.2. 토론토 블루제이스 조직 (2001-2002)
2000년 12월 12일, 마이너 리그 트레이드 시리즈 중 워스는 좌완 투수 존 베일과의 트레이드를 통해 토론토 블루제이스로 이적했다. 새로운 팀에서 워스는 이번에는 발 부상으로 인해 다시 부상자 명단 (DL)에서 시즌을 시작했다. 클래스 A-어드밴스드 플로리다 스테이트 리그의 더니든 블루제이스에서 21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00, 2홈런, 14타점을 기록한 후, 워스는 더블-A 서던 리그의 테네시 스모키스로 승격되었다. 그는 7월에 타율 .350, 32타점을 기록하며 성공적인 한 달을 보냈고, 이로 인해 '탑스 더블-A 이달의 타자'로 선정되었다. 그는 테네시에서 총 104경기에 출전하여 369타수에서 타율 .285, 18홈런, 69타점을 기록했다. 선발 출전한 대부분의 경기에서 포수로 뛰었지만, 28경기에서는 1루수로도 출전했다.
2002년 시즌을 위해 트리플-A 시러큐스 스카이치프스로 승격되었을 때, 조시 펠프스와 케빈 캐시가 이미 트리플-A 포수로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워스는 외야수로 포지션을 변경하게 되었다. 그는 오리올스 시절에는 이러한 변화에 저항했지만, 이번에는 캐시가 "내가 본 최고의 포수 중 한 명"이었고 외야수 포지션이 육체적으로 덜 힘들어서 경력을 연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유로 이를 받아들였다. 워스는 그 시즌 인터내셔널 리그 127경기에 출전하여 26경기에서 포수로 뛰었고 나머지 시간은 외야수로 보냈다. 타자로서 그는 443타수에서 타율 .257, 18홈런, 82타점을 기록했다.
3.2. 메이저 리그 경력
3.2.1. 토론토 블루제이스 (2002-2003)
2002년 9월 1일, 시러큐스 스카이치프스에서 타율 .257, 18홈런, 82타점을 기록 중이던 워스는 토론토 블루제이스로 콜업되어 메이저 리그에 데뷔했다. 그는 데뷔전에서 뉴욕 양키스의 데이비드 웰스를 상대로 7회에 단타를 기록하며 첫 안타를 신고했다. 메이저 리그 승격 당시 포수 미트를 챙겨왔음에도 불구하고, 블루제이스에서 첫 10경기 동안 우익수로서 보여준 여러 중요한 플레이는 그의 외야수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그는 시즌 말 15경기에 출전했으며, 10경은 우익수, 4경은 좌익수, 1경은 중견수로 뛰었다. 타석에서는 46타수에서 타율 .261, 6타점을 기록했다.
2003년, 토론토의 카를로스 토스카 감독은 워스가 프랭크 카탈라노토와 버논 웰스의 백업 외야수로 개막전에 선발 출전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워스는 스프링 트레이닝 중 왼쪽 손목 인대 부상을 당해 로우-A 더니든 블루제이스에서 재활 훈련을 거친 후 팀에 다시 합류해야 했다. 4월 14일, 그는 더니든에서 트리플-A 시러큐스 치프스로 승격되었고, 4월 22일에는 토론토로 복귀했다. 5월 6일 텍사스 레인저스를 상대로 15대5로 대승을 거둔 경기에서, 워스는 자신의 첫 홈런이자 3점 홈런을 기록했으며, 동료 신인 올랜도 허드슨도 3점 홈런을 쳤다. 워스는 시즌 대부분을 블루제이스 주전 선수들의 부상 여부에 따라 메이저 리그와 마이너 리그를 오가며 보냈다. 그러나 시즌 중반 외야수 바비 킬티의 영입과 신인 리드 존슨의 존재로 인해 워스가 토론토에서 영구적인 자리를 찾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2003년 그는 메이저 리그 26경기에 출전했으며, 주로 외야수로 뛰었지만 지명 타자로도 몇 차례 출전했다. 48타수에서 타율 .208, 2홈런, 10타점을 기록했다. 시러큐스에서는 64경기, 236타수 동안 타율 .237, 9홈런, 34타점을 기록하며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3.2.2.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2004-2006)
블루제이스에서 스프링 트레이닝을 마친 후, 워스는 2004년 3월 31일 투수 제이슨 프레이저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로 이적했다. 그는 시즌 두 번째 경기를 앞두고 사근 근육 염좌를 겪어 거의 즉시 부상자 명단에 올랐으며, 6월 4일에 복귀했다. 라인업에 복귀하자마자 그는 다저스의 공격력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쳤는데, 복귀 첫 경기에서 홈런을 치고 6월 한 달 동안 타율 .450을 기록했다. 7월 초 후안 엔카르나시온이 어깨 염증으로 부상자 명단에 오르자, 워스는 그의 자리를 대신하여 매일 우익수로 출전했다.

그의 수비 능력 또한 주목을 받았는데, 콜로라도 로키스의 제로미 버니츠의 홈런 시도를 잡기 위해 외야 벽에 부딪히면서도 공을 잡아내 더블 플레이를 성공시켰다. 이 플레이로 로키스의 득점을 2점으로 막아냈고, 다저스는 결국 데이비드 로스의 홈런으로 3대2 승리를 거두었다. 워스는 그 해 정규 시즌 89경기에 출전하여 290타수에서 타율 .262, 16홈런, 47타점을 기록했다. 이 타수 대부분은 시즌 마지막 두 달 동안 갈비뼈 골절 상태로 뛰면서 기록한 것이었다. 10월 2일, 그의 9회 단타는 스티브 핀리의 만루 홈런을 위한 발판이 되었고,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상대로 승리하며 팀이 1996년 이후 처음으로 내셔널 리그 서부 지구 우승을 확정 짓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데 기여했다. 워스가 2홈런, 3타점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저스는 2004년 내셔널 리그 디비전 시리즈 (NLDS)에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게 4경기 만에 패했다.
2005년 스프링 트레이닝 첫날, 워스는 A. J. 버넷의 투구에 맞아 왼쪽 손목의 요골이 골절되었다. 그는 개막전까지 부상자 명단에서 복귀할 수 있기를 바랐지만, 다저스는 그의 회복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경우 리키 리디를 대신 기용할 계획이었다. 워스는 5월 26일에야 부상자 명단에서 복귀할 수 있었고, 리디는 워스의 자리를 대신하여 거의 두 달 동안 경기에 출전했다. 그는 8월에 왼쪽 무릎 활액낭염으로 다시 부상자 명단에 올랐으며, 워스는 8월 중순이 되어서야 비로소 시즌을 제대로 시작할 수 있었다고 느꼈다. 이러한 추가적인 난관에도 불구하고, 그는 두 번째 부상자 명단행이 타격 코치 팀 월락과 함께 타격 메커니즘을 개선할 시간을 주었다는 점에 감사했다. 워스는 부상에도 불구하고 그 해 다저스에서 102경기에 출전하여 337타수에서 타율 .234, 7홈런, 43타점을 기록했다.
워스는 2005-06년 오프시즌 동안 이전 시즌 내내 그를 괴롭혔던 부상들을 치료하기 위해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았다. 11월 초, 그는 염증이 생긴 무릎의 활액낭을 제거하는 작은 수술을 받았으며, 스프링 트레이닝까지 완전히 회복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월말에 그는 부상당한 손목의 인대 복원 수술을 받았는데, 이 수술은 예상 회복 기간이 5개월이었고 그의 완전한 건강 회복 시기를 늦췄다.
스프링 트레이닝이 시작될 무렵, 워스는 수술 전보다 더 큰 통증을 느꼈고, 그의 의사들은 처음에는 이를 신체화 장애로 여겼다. 다저스 운동 트레이너는 워스가 회복 기간을 앞당기려다가 흉터 조직을 악화시켜 염증과 추가적인 통증을 유발했다고 판단했다. 5월 말, 그는 일련의 코르티손 주사를 맞았고, 더 이상의 움직임을 제한하고 염증을 완화하기 위해 손목에 깁스를 했다. 그 해 8월, 여전히 호전되지 않자 워스는 미네소타주 메이오 클리닉의 리처드 버거 박사와 상담했고, 그는 척골-삼각골 인대의 분열성 파열로 진단하고 손목을 수리하기 위한 추가 수술을 시행했다. 그는 6주 동안 다시 깁스를 했으며, 2007년 스프링 트레이닝까지는 다시 경기에 뛰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워스의 상태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그레이디 리틀 감독은 처음에는 "누구?"라고 되물었다. 시즌 후, 다저스는 2007년 워스에게 계약을 제안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그는 12월에 자유 계약 선수가 되었다.
3.2.3. 필라델피아 필리스 (2007-2010)
2006년 12월 20일, 필라델피아 필리스는 워스가 다가오는 시즌 동안 건강을 유지할 것임을 확인하기 위해 여러 신체 검사를 실시한 후, 1년 85.00 만 USD에 최대 100.00 만 USD의 추가 인센티브가 포함된 계약을 체결했다. 이틀 후, 필리스는 제프 코나인을 신시내티 레즈로 트레이드하여 워스를 위한 로스터 공간을 마련했다. 워스는 팻 버렐, 애런 로완드, 셰인 빅토리노 등 주전 선수들의 필요에 따라 벤치 선수로 기용될 예정이었다. 2007년 6월 28일 레즈와의 경기에서 10회 연장전에서 대주자로 나서 결승 득점을 올린 후, 워스는 이전의 문제와는 무관한 손목 부상으로 다시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그는 7월 한 달 내내 결장하다가 마이클 본과 빅토리노의 부상으로 8월 1일에 복귀했다. 복귀 직후, 워스는 8월 10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상대로 5대4 승리를 거둔 경기에서 7회 실책으로 결승 득점을 올렸고, 콜 해멀스의 13번째 승리를 이끌며 필리스가 내셔널 리그 동부 지구 우승에 3경기 차로 다가서게 했다.
9월 초까지 워스는 우익수의 주전으로 자리 잡았으며, 8월 한 달 동안 9타수 연속 안타를 기록하고 타율 .414를 기록했다. 8월과 9월 동안 워스는 타율 .340, OPS .959로 필리스를 이끌었으며, 38타점은 팀 내 선두인 라이언 하워드에 단 1타점 뒤진 기록이었다. 워스는 94경기, 255타수에서 타율 .298, 8홈런, 49타점으로 정규 시즌을 마쳤다. 10월 1일, 필리스는 내셔널 리그 동부 지구 우승을 확정하며 14년 만에 첫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뤘다. 그러나 필리스가 2007년 NLDS에서 콜로라도 로키스를 만났을 때, 찰리 마누엘 감독은 좌완 투수 제프 프랜시스를 상대하기 위해 워스 대신 스위치 히터인 빅토리노를 선발로 기용했다. 로키스는 5전 3선승제 시리즈에서 필리스를 스윕했다.

마누엘 감독은 워스의 우완 투수 상대 타격에 대해 우려하여 2008년 시즌을 지오프 젠킨스와의 플래툰으로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이 시스템은 시즌 초반 성공적이었으며, 젠킨스와 워스는 6월 12일까지 합계 타율 .273, 15홈런, 44타점을 기록했다. 마누엘은 워스를 매일 선발로 기용하는 데 관심을 표명했지만, 버렐과 빅토리노가 외야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즌이 진행될수록 젠킨스의 부진으로 워스의 출전 시간이 늘어났다. 그 해 9월, 젠킨스가 부상자 명단에 오르자 워스는 주전 우익수가 되었고, 이 기간 동안 2홈런, 9타점을 기록하며 개인 최고인 13경기 연속 안타 행진을 벌였다. 정규 시즌 134경기에서 워스는 타율 .273, 개인 최고인 24홈런, 67타점을 기록했다. 필리스는 2008년 다시 NLDS에 진출했으며, 워스는 시리즈 4차전에서 밀워키 브루어스를 6대2로 꺾고 NL 챔피언십 시리즈 (NLCS)에 진출하는 데 기여한 4개의 홈런 중 하나를 쳤다. 5경기 시리즈에서 21타수 4안타만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필리스는 워스의 옛 팀인 다저스를 꺾고 1993년 이후 처음으로 월드 시리즈에 진출했다. 월드 시리즈에서 그는 5경기에서 타율 .444를 기록했으며, 4차전 8회에 탬파베이 레이스 구원 투수 댄 휠러를 상대로 2점 홈런을 치는 등 필리스의 28년 만의 첫 월드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워스는 딕 스코필드가 1993년 블루제이스 소속으로 필리스를 꺾고 월드 시리즈 우승 반지를 획득한 이후 그의 가족 중 처음으로 월드 시리즈 우승 반지를 획득한 선수가 되었다.
2009년 1월 22일, 필리스는 워스와 2년 1000.00 만 USD 계약 연장에 합의했다. 버렐이 최근 자유 계약 선수가 되었기 때문에 팀은 워스를 외야수뿐만 아니라 주로 좌타 라인업에서 우타자 파워 히터로도 유지하는 데 관심을 보였다. 시즌 전, 필리스는 젠킨스를 방출하여 워스에게 우익수 풀타임 역할을 부여하고 타순 5번으로 배치했다. 5월 12일 다저스와의 경기에서 워스는 한 이닝에 2루, 3루, 홈까지 3개의 도루를 성공시킨 MLB 역사상 9번째 선수가 되었는데, 이는 러셀 마틴이 로널드 벨리사리오에게 공을 다시 던지는 동안 사이클을 완성한 것이었다. 다음 달, 워스는 블루제이스를 상대로 단타, 2루타, 그리고 로저스 센터 상단 관중석으로 날아가는 2개의 홈런을 포함하여 사이클링 히트에 3루타 하나가 부족했다. 맷 켐프가 부상당한 카를로스 벨트란을 대신하여 2009년 MLB 올스타전에 출전할 것이라는 소문에도 불구하고, 워스는 대신 내셔널 리그 외야수 자리를 채웠다. 빅토리노와 라울 이바녜스가 이미 출전 예정이었기 때문에, 필리스의 선발 외야수 전원이 올스타전에 출전하게 되었다. 당시 워스는 타율 .268로 켐프의 .319보다 낮았지만, 20홈런, 54타점, OPS .894는 모두 켐프보다 높았다. 7월 21일, 올스타 휴식기 직후 워스는 13회말에 컵스를 5대1로 꺾고 필리스의 10연승을 이끈 자신의 첫 끝내기 홈런을 쳤다. 필리스는 3년 연속으로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했으며, 워스는 타율 .268을 기록하고 36홈런, 99타점, 26개 2루타, 91개 볼넷, 153개 안타로 개인 최고 기록을 세웠다.
2009년 NLDS에서 다시 로키스를 만난 워스는 1차전과 2차전에서 홈런과 3루타를 치고, 우익수에서 3루로 강력한 송구를 날려 요르빗 토리알바를 막는 등 초반부터 인상적인 활약을 보였다. 4차전에서 그의 타점 단타는 라이언 하워드를 홈으로 불러들였고, 필리스에 5대4 승리를 안겨 2009년 NLCS로 진출시켰다. 다시 다저스를 상대한 NLCS 5차전에서 워스는 2개의 홈런을 쳐 필리스를 2년 연속 월드 시리즈 진출로 이끌었다. 그의 1회 홈런은 경기 내내 필라델피아를 앞서게 한 홈런이었고, 7회 홈런은 워스를 한 포스트시즌에서 7개의 홈런을 기록하게 하여 프랜차이즈 기록을 세웠다. 워스는 월드 시리즈에서도 계속해서 안타를 쳤으며, 뉴욕 양키스 선발 투수 앤디 페티트를 상대로 3차전에서 2개의 홈런을 쳤지만, 필리스는 6경기 만에 시리즈에서 패했다. 그 해 12월, 워스는 필리스의 연봉 조정 제안을 거절하고 공식적으로 자유 계약 선수가 되었다.
2010년 필리스와의 계약 마지막 해를 맞이한 워스는 다음 시즌에 고액의 장기 계약을 따낼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다. 시즌 초반 44경기에서 타율 .327, 9홈런, 그리고 MLB 전체에서 22개의 2루타로 선두를 달리며 뜨거운 출발을 보였지만, 다음 5경기에서는 한 번도 출루하지 못했고, 17타수 중 10번을 삼진당하며 며칠 휴식을 취하며 스윙 조정에 집중했다. 이러한 슬럼프는 7월까지 이어졌다. 5월 21일부터 7월 20일까지 48경기 동안 타율 .236, 55삼진을 기록했으며, 같은 기간 필리스는 22승 29패를 기록했다. 워스는 또한 7월 8일 파울볼을 잡으려던 팬에게 소리를 지른 사건으로 비난을 받기도 했는데, 그는 이를 "순간적인 감정"이었다고 사과했다. 이후 워스는 7월 28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로드리고 로페스를 상대로 29경기 연속 홈런 무안타 행진을 깨는 홈런을 쳤으며, 필리스가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하기 전 마지막 13경기에서 타율 .354, 6홈런, 17타점을 기록했다. 시즌 전체적으로 워스는 타율 .296, 27홈런, 85타점으로 필리스에서 2위를 기록했으며, 106득점, 출루율 .388, 장타율 .532로 팀 내 최고를 기록했고, 46개의 2루타로 내셔널 리그 전체 1위를 차지했다.
필리스는 2010년 NLDS에서 레즈를 스윕했지만, 워스는 타석에서 12타수 2안타만을 기록했다. 그러나 NLCS에서는 달랐다. 워스의 통산 13번째 포스트시즌 홈런은 내셔널 리그 기록을 세웠을 뿐만 아니라, 5차전에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상대로 4대2 승리를 이끄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자이언츠는 다음 경기에서 필리스를 탈락시켰고, 워스는 3년 연속 월드 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다. 그 해 12월, 워스는 필리스의 연봉 조정 제안을 거절하고 공식적으로 자유 계약 선수가 되었다.
3.2.4. 워싱턴 내셔널스 (2011-2017)
2010년 12월 5일, 아담 던을 시카고 화이트삭스에 내준 지 이틀 후, 워싱턴 내셔널스는 워스와 7년 1.26 억 USD 계약에 합의했다. 이 계약은 당시 현역 메이저 리그 선수 중 12번째로 비싼 계약이었고, MLB 역사상 14번째로 높은 금액이었다. 워스의 계약은 필라델피아에서는 필리스의 또 다른 대형 오프시즌 영입인 투수 클리프 리의 복귀에 다소 가려졌다.
2011년 5월 3일, 워스는 새로운 팀에 합류한 후 처음으로 시티즌스 뱅크 파크로 돌아왔다. 그는 소개될 때 필리스 팬들로부터 야유를 받았지만, 이내 기립 박수를 받았다. 5월 말까지 워스의 계약은 내셔널스 팬들과 스포츠 기자들로부터 집중적인 조사를 받았다. 그는 21승 28패를 기록 중인 팀에서 타율 .254 (득점권 상황에서는 .205)만을 기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어깨와 무릎 부상으로 인해 경기를 소화하고 있으며, 올스타 휴식기 이후에는 항상 더 강한 타자가 된다고 기자들에게 말하며 부진 의혹을 일축했다. 내셔널스 팬들의 야유와 지역 바에서 그의 타율에 따라 맥주 할인을 제공하는 등의 상황이 있은 직후, 워스는 7월 20일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브렛 마이어스를 상대로 홈런을 치며 105타수 연속 홈런 무안타 행진을 깼다. 그는 시즌 후반기에 개선된 모습을 보였으며, 7월 중순부터 8월까지 7홈런, 20타점을 기록했다. 그는 150경기, 561타수에서 타율 .232, 20홈런, 58타점을 기록하며 시즌을 마쳤다.

워스는 2012년 시즌을 지난 해의 부진을 잊고 새롭게 시작하려는 의욕으로 가득 찼으며, 타순 중간에 배치되어 우익수로 뛰었다. 그러나 5월 6일, 플라시도 폴랑코의 타구를 잡으려다 왼쪽 손목이 두 번째로 골절되었다. 데비 존슨 감독은 골절이 "깨끗하게 부러졌다"고 말했지만, 워스가 무기한 결장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워스는 8월 2일 필리스를 상대로 한 무실점 승리 경기에서 라인업에 복귀했다. 복귀 후, 워스는 자신을 경력 대부분 동안 "5번 타자"라고 칭했지만, 스티브 롬바르도지 주니어를 대신하여 처음으로 1번 타자로 기용되었다. 이러한 전환은 성공적이었으며, 워스는 1번 타자로 37경기에서 타율 .303, 12타점을 기록했다. 부상으로 인해 81경기 출전에 그쳤지만, 2012년 워스는 300타수에서 타율 .300, 5홈런, 31타점을 기록했다. 2012년 NLDS 4차전에서 워스는 랜스 린을 상대로 13구 승부 끝에 끝내기 홈런을 쳐 내셔널스를 탈락 위기에서 구했다. 워스의 홈런이 떨어진 지점은 내셔널스 파크에 빨간색 좌석으로 기념되었지만, 카디널스는 6대0으로 뒤지던 경기를 9대7로 뒤집고 5차전을 승리하며 워싱턴을 시리즈에서 탈락시켰다.
2013년 시즌 전반기 동안 워스는 여러 부상과 싸웠다. 그는 오른쪽 햄스트링 염좌로 28경기를 결장했고, 6월에는 사타구니 염좌로 경기를 떠났으며, 여러 질병을 앓으면서도 경기에 출전했다. 그는 이러한 어려움을 뚫고 7월에 경력 최고의 한 달을 보냈는데, 내셔널스가 경기당 3.74득점만을 기록하는 와중에도 타율 .375, 출루율 .402, 장타율 .636의 슬래시 라인을 기록했다. 24타점, 11개 2루타, 17개 장타로 내셔널 리그 선두를 달리며 워스는 7월 내셔널 리그 이달의 선수로 선정되었는데, 이는 그가 이 상을 처음 받은 것이었다. 10일 후, 워스는 필리스의 잭 마이너를 상대로 2점 홈런을 치며 통산 1,000번째 안타를 기록했다. 그는 연말까지 이러한 상승세를 이어갔으며, 타율 .318, 25홈런, 82타점을 기록했고, 개인 최고인 OPS .931은 2006년 닉 존슨의 .948에 이어 내셔널스 역사상 두 번째로 높은 단일 시즌 OPS였다.

2014년 시즌 첫 달, 워스는 승리 확률 기여도 1.756으로 MLB 전체 1위를 기록했는데, 이는 카를로스 마르몰을 상대로 8회에 터진 만루 홈런과 같은 고위험 상황에서 그의 타율 .476에 의해 측정된 통계였다. 6월의 부진 이후, 워스는 타격 자세를 약간 조정하여 자세를 곧게 했고, 이로 인해 7월에는 타율 .337, 11개 2루타, 6홈런, 그리고 내셔널 리그 선두인 24타점을 기록했다. 이러한 조정으로 워스는 7월 내셔널 리그 이달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그는 8월에 어깨 염좌로 몇 경기를 결장했지만, 9월 초까지 27경기 연속 출루 기록을 이어갔다. 워스는 정규 시즌을 147경기, 534타수에서 타율 .292, 16홈런, 82타점으로 마쳤다. 그러나 그는 2014년 NLDS에서 그 기세를 이어가지 못했고, 17타수 1안타, 3볼넷, 5삼진을 기록하며 내셔널스가 자이언츠에게 4경기 만에 패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워스의 2015년 시즌은 부상으로 점철되었다. 1월, 그는 괴사성 뼈를 제거하고 견봉쇄골관절을 수리하기 위해 오른쪽 어깨 수술을 받았으며, 시즌 초반에 경기에 복귀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복귀 후, 내셔널스는 젊고 건강한 브라이스 하퍼를 우익수에 배치하기 위해 워스를 좌익수로 옮겼다. 그는 4월 13일 라인업에 복귀했지만, 5월 15일 투구에 맞아 왼쪽 손목이 두 군데 골절되었다. 그는 7월 28일에 복귀할 수 있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복귀 후 15경기 동안 워스는 타율 .151을 기록했으며, 손목은 강하다고 믿었음에도 불구하고 투구에 대한 타격 접촉이 약해졌다. 부상으로 인해 워스는 2015년에 단 88경기 출전에 그쳤으며, 그의 타율 .221, 51안타, 출루율 .302는 2004년 이후 개인 최저 기록이었다.

2016년 시즌 초반, 워스는 첫 71타석에서 15안타와 22삼진을 기록하며 기복 있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4월 19일, 그는 마이애미 말린스와의 경기에서 통산 200번째 홈런을 쳤는데, 이 공은 말린스 파크의 중견수 벽을 넘어선 기념 홈런 구조물과 충돌했다. 5월 중순까지도 자신의 스윙에 불만을 품고 있던 워스는 카디널스와의 경기 대부분을 배팅 케이지에서 연습하며 보냈지만, 대타로 나와 내셔널스 역사상 두 번째 만루 홈런을 쳤고, 팀은 10대2로 승리했다. 그 해 6월, 그는 일주일 간격으로 두 번의 끝내기 안타를 쳤는데, 두 번째 끝내기 안타 후 자신을 비판하던 사람들에게 "내 엉덩이에 키스하라"고 말했다. 6월 20일부터 8월 20일까지 워스는 46경기 연속 출루 기록을 이어가며 러스티 스텁의 프랜차이즈 기록과 동률을 이뤘지만,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상대로 4타수 무안타를 기록하며 기록이 중단되었다. 143경기에서 워스는 525타수 동안 타율 .244, 21홈런, 69타점을 기록했다. 내셔널스는 2016년 NLDS에서 다저스를 만났고, 워스는 3차전에서 통산 15번째 포스트시즌 홈런을 쳤는데, 이는 MLB 역사상 베이브 루스와 11번째로 많은 기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저스는 5경기 만에 내셔널스를 꺾고 포스트시즌에서 탈락시켰다.
2017년 MLB 시즌 초반 38세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워스는 내셔널스의 주전 외야수로 남아 시즌 첫 47경기 동안 타율 .262를 기록하고 외야에서 몸을 던지는 수비를 선보였다. 그러나 6월 초 워킹 부츠를 착용하며 경기에 나설 수 없게 되었다. 처음에는 워스가 단순히 뼈 타박상을 입은 것으로 여겨졌지만, 부상 6주 후 그는 실제로는 왼쪽 발에 "꽤 심한 골절"을 입었으며, 이는 스프링 트레이닝 중 파울볼로 인한 미세 골절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밝혔다. 여러 차례의 마이너 리그 재활 훈련을 거친 후, 워스는 8월 28일에 마침내 내셔널스 로스터에 복귀했다. 그는 마지막 메이저 리그 시즌에서 70경기에 출전하여 252타수 동안 타율 .226, 10홈런, 29타점을 기록했다. 내셔널스 파크에서 열린 마지막 정규 시즌 경기에서는 팬들로부터 기립 박수를 받았다. 그는 2017년 NLDS 5차전에서 2안타, 2볼넷을 기록했지만, 시카고 컵스가 내셔널스를 9대8로 꺾고 NLCS에 진출했다.
3.2.5. 시애틀 매리너스 조직 (2018)
2018년 3월 27일, 시애틀 매리너스는 워스에게 트리플-A 타코마 레이니어스에서 "경력을 연장할 기회"를 제공하는 마이너 리그 계약을 제안했다. 그의 의붓아버지는 이전에 1978년 타코마 양키스 소속으로 이 팀에서 뛰었었다. 워스는 타코마에서 36경기에 출전하여 좌익수와 지명 타자로 뛰며 타율 .206, 4홈런, 11개 2루타를 기록했다. 5월 말, 매리너스는 부상당한 미치 해니거를 대신하여 워스를 승격시키는 것을 고려했지만, 워스의 건강, 특히 그의 햄스트링 부상에 대한 우려 때문에 존 안드레올리를 선택했다. 이후 햄스트링 부상으로 워스는 6월 9일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3.3. 은퇴
워스는 타코마에서 마지막 햄스트링 부상을 당한 후 자신이 프로 야구 경력을 마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았고, 2018년 6월 28일 공식적으로 은퇴를 발표했다. 부상에서 회복하는 동안 워스는 트리플-A에서 뛰는 것보다 가족과 함께 집에 있는 것을 선호하며, 복귀 후 더 심각한 부상을 당하면 은퇴 후 경력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MLB에서 15시즌 동안 워스는 타율 .267, OPS .816, 229홈런, 799타점, 132도루를 기록하며 경력을 마쳤다. 은퇴 당시 그의 85.161%의 도루 성공률은 MLB 역사상 5번째로 높은 기록이었다. 2018년 9월 8일 열린 헌정의 밤 행사에서 내셔널스는 워스를 팀의 명예의 전당에 헌액하고, 그에게 시구를 허락했으며, 그의 아들이 시구를 받았다.
4. 은퇴 후 활동
4.1. 농업
은퇴 후 워스는 일리노이주에서 유기농 농업에 종사하기 시작했다. 그는 MLB 선수 시절 매쿠핀 카운티에 300 acre 규모의 토지를 구입했지만, 은퇴 후에는 "관리 역할에서... 직접 참여하는 역할"으로 전환했다. 그는 또한 유기농 공정에 관심 있는 다른 농부들을 위한 컨설턴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2017년, 그는 유기농 무역 협회에서 유기농 농업 인증을 받는 데 겪었던 어려움에 대해 연설하며, 유기농 농업을 추구하는 농부들에게 더 많은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4.2. 경마
워스는 경마 사업에도 뛰어들어 '투 에이트 레이싱 (Two Eight Racing)'이라는 경마 마사를 설립했다. 그는 이를 "야구가 한때 채워주었던 경쟁적 공허함을 채우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워스 마사의 첫 번째 유명한 말은 도녹Dornoch도녹영어으로, 그의 마사는 도녹의 지분 10%를 소유하고 있으며, 도녹은 2024년 켄터키 더비에 출전했고 2024년 벨몬트 스테이크스에서 우승했다.
5. 개인 생활
5.1. 가족 관계
워스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아내 줄리아와 교제하기 시작했으며, 둘은 2000년 1월 8일에 결혼했다. 그들의 장남인 잭슨은 현재 벨몬트 브루인스에서 대학 야구 선수로 뛰고 있다. 2004년, 워스 부부는 줄리아의 전 남자친구이자 고등학교 동창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다. 이 동창은 워스가 여러 차례의 간통 관계를 가졌으며, 그 중 하나는 자녀 출산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5.2. 법적 문제
워스는 운전과 관련하여 여러 차례 법적 문제를 겪었다. 2015년, 그는 제한 속도 89 km/h (55 mph)인 구역에서 169 km/h (105 mph)로 운전하여 난폭 운전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다. 그는 5일간의 징역형과 30일간의 운전면허 정지 처분을 받았다. 2018년에는 음주 운전과 무등록 운전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후자의 혐의는 기각되었다. 그는 다시 유죄를 인정했으며, 전환 프로그램과 약물 및 알코올 검사를 받을 것을 명령받았고, 1600 USD의 벌금과 수수료를 지불했으며, 운전면허가 정지되었다.
5.3. 기타
워스는 워싱턴 내셔널스에서 뛰는 동안 버지니아주 맥린에 집을 소유했으나, 2019년에 매물로 내놓았다.
내셔널스 시절 워스의 특징 중 하나는 그의 독특한 긴 머리와 수염이었는데, 그는 이를 부상에 대한 미신으로 기르기 시작했다. 2005년과 2015년의 손목 부상 모두 그가 머리를 자른 경기 이후에 발생했으며, 워스는 이 경험을 머리를 자르지 말아야 할 증거로 삼았다. 2015년, 내셔널스는 팬들에게 워스의 모습을 본뜬 치아 펫을 증정하는 홍보 행사를 열기도 했다.
내셔널스 선수로서 워스는 간헐적으로 미국 정치인들과 교류했다. 그는 한때 당시 연방준비제도 의장이었던 벤 버냉키에게 양적 완화 프로그램에 대해 질문하려 했으나, 버냉키가 "경제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야구에 대해 이야기했고, 아주 즐거웠다"고 말했다. 그는 스스로를 정치적 중도주의자라고 밝혔다. 2018년, 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연설에 로드니 데이비스 하원의원의 손님으로 초대되었다. 2년 후, 워스는 플로리다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골프를 치는 모습이 포착된 여러 내셔널스 선수 중 한 명이었다.
워스는 2012년 팀에 데뷔한 브라이스 하퍼와 긴밀한 우정을 유지했다. 하퍼가 신인이었을 때, 워스는 어린 선수에게 의도적으로 엄하게 대했지만, 동시에 멘토 역할을 수행했다. 하퍼가 2019년 필리스와 계약하기 전, 그는 워스에게 자신의 옛 팀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의 회원이 아닌 워스는 하퍼의 2016년 결혼식에는 참석할 수 없었지만, 그와 동료 트레이 터너는 결혼 후 축하 행사에 참석했다.
6. 경력 통계 및 수상
6.1. 주요 통계
워스의 메이저 리그 통산 주요 타격 및 수비 기록은 다음과 같다.
연도 | 소속 | 경기 | 타석 | 타수 | 득점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루타 | 타점 | 도루 | 도루자 | 희생번트 | 희생플라이 | 볼넷 | 고의 4구 | 사구 | 삼진 | 병살타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
2002년 | TOR | 15 | 53 | 46 | 4 | 12 | 2 | 1 | 0 | 16 | 6 | 1 | 0 | 0 | 1 | 6 | 0 | 0 | 11 | 4 | .261 | .340 | .348 | .687 |
2003년 | 26 | 51 | 48 | 7 | 10 | 4 | 0 | 2 | 20 | 10 | 1 | 0 | 0 | 0 | 3 | 0 | 0 | 22 | 0 | .208 | .255 | .417 | .672 | |
2004년 | LAD | 89 | 326 | 290 | 56 | 76 | 11 | 3 | 16 | 141 | 47 | 4 | 1 | 1 | 1 | 30 | 0 | 4 | 85 | 1 | .262 | .338 | .486 | .825 |
2005년 | 102 | 395 | 337 | 46 | 79 | 22 | 2 | 7 | 126 | 43 | 11 | 2 | 1 | 3 | 48 | 2 | 6 | 114 | 10 | .234 | .338 | .374 | .711 | |
2007년 | PHI | 94 | 304 | 255 | 43 | 76 | 11 | 3 | 8 | 117 | 49 | 7 | 1 | 2 | 1 | 44 | 1 | 2 | 73 | 0 | .298 | .404 | .459 | .863 |
2008년 | 134 | 482 | 418 | 73 | 114 | 16 | 3 | 24 | 208 | 67 | 20 | 1 | 0 | 3 | 57 | 1 | 4 | 119 | 2 | .273 | .363 | .498 | .861 | |
2009년 | 159 | 676 | 571 | 98 | 153 | 26 | 1 | 36 | 289 | 99 | 20 | 3 | 0 | 6 | 91 | 8 | 8 | 156 | 11 | .268 | .373 | .506 | .879 | |
2010년 | 156 | 652 | 554 | 106 | 164 | 46 | 2 | 27 | 295 | 85 | 13 | 3 | 0 | 9 | 82 | 6 | 7 | 147 | 11 | .296 | .388 | .532 | .921 | |
2011년 | WSH | 150 | 649 | 561 | 69 | 130 | 26 | 1 | 20 | 218 | 58 | 19 | 3 | 0 | 4 | 74 | 5 | 10 | 160 | 10 | .232 | .330 | .389 | .718 |
2012년 | 81 | 344 | 300 | 42 | 90 | 21 | 3 | 5 | 132 | 31 | 8 | 2 | 0 | 1 | 42 | 2 | 1 | 57 | 3 | .300 | .387 | .440 | .827 | |
2013년 | 129 | 532 | 462 | 84 | 147 | 24 | 0 | 25 | 246 | 82 | 10 | 1 | 0 | 5 | 60 | 3 | 5 | 101 | 9 | .318 | .398 | .532 | .931 | |
2014년 | 147 | 629 | 534 | 85 | 156 | 37 | 1 | 16 | 243 | 82 | 9 | 1 | 0 | 3 | 83 | 3 | 9 | 113 | 9 | .292 | .394 | .455 | .849 | |
2015년 | 88 | 378 | 331 | 51 | 73 | 16 | 1 | 12 | 127 | 42 | 0 | 1 | 0 | 6 | 38 | 0 | 3 | 84 | 8 | .221 | .302 | .384 | .685 | |
2016년 | 143 | 606 | 525 | 84 | 128 | 28 | 0 | 21 | 219 | 69 | 5 | 1 | 0 | 6 | 71 | 0 | 4 | 139 | 17 | .244 | .335 | .417 | .752 | |
2017년 | 70 | 289 | 252 | 35 | 57 | 10 | 1 | 10 | 99 | 29 | 4 | 3 | 0 | 1 | 35 | 1 | 1 | 69 | 4 | .226 | .322 | .393 | .715 | |
MLB 통산 (15년) | 1583 | 6366 | 5484 | 883 | 1465 | 300 | 22 | 229 | 2496 | 799 | 132 | 23 | 4 | 50 | 764 | 32 | 64 | 1450 | 99 | .267 | .360 | .455 | .816 |
; 포지션별 수비 기록
연도 | 구단 | 좌익수 (LF) | 중견수 (CF) | 우익수 (RF) | 1루수 (1B) | ||||||||||||||||||||
---|---|---|---|---|---|---|---|---|---|---|---|---|---|---|---|---|---|---|---|---|---|---|---|---|---|
경기 | 자살 | 보살 | 실책 | 병살 | 수비율 | 경기 | 자살 | 보살 | 실책 | 병살 | 수비율 | 경기 | 자살 | 보살 | 실책 | 병살 | 수비율 | 경기 | 자살 | 보살 | 실책 | 병살 | 수비율 | ||
2002 | TOR | 4 | 5 | 0 | 0 | 0 | 1.000 | 1 | 6 | 0 | 0 | 0 | 1.000 | 10 | 22 | 1 | 0 | 0 | 1.000 | - | - | - | - | - | - |
2003 | - | 1 | 6 | 0 | 0 | 0 | 1.000 | 19 | 23 | 1 | 0 | 0 | 1.000 | - | - | - | - | - | - | ||||||
2004 | LAD | 65 | 116 | 6 | 4 | 2 | .968 | 6 | 11 | 0 | 0 | 0 | 1.000 | 14 | 19 | 0 | 0 | 0 | 1.000 | - | - | - | - | - | - |
2005 | 64 | 84 | 3 | 0 | 0 | 1.000 | 30 | 63 | 0 | 3 | 0 | .955 | 43 | 71 | 3 | 0 | 2 | 1.000 | - | - | - | - | - | - | |
2007 | PHI | 37 | 35 | 2 | 0 | 1 | 1.000 | 2 | 3 | 0 | 0 | 0 | 1.000 | 58 | 109 | 7 | 2 | 1 | .983 | 1 | 1 | 0 | 0 | 0 | 1.000 |
2008 | 28 | 15 | 0 | 0 | 0 | 1.000 | 31 | 73 | 2 | 2 | 1 | .974 | 88 | 143 | 7 | 0 | 1 | 1.000 | - | - | - | - | - | - | |
2009 | 3 | 3 | 1 | 0 | 0 | 1.000 | 12 | 23 | 0 | 2 | 0 | .920 | 146 | 327 | 10 | 4 | 4 | .988 | - | - | - | - | - | - | |
2010 | - | 21 | 44 | 0 | 0 | 0 | 1.000 | 135 | 249 | 8 | 4 | 2 | .985 | - | - | - | - | - | - | ||||||
2011 | WSH | - | 19 | 55 | 1 | 0 | 1 | 1.000 | 134 | 287 | 10 | 8 | 3 | .974 | - | - | - | - | - | - | |||||
2012 | - | 11 | 14 | 0 | 1 | 0 | .933 | 76 | 152 | 4 | 0 | 1 | 1.000 | - | - | - | - | - | - | ||||||
2013 | - | - | 126 | 235 | 7 | 2 | 1 | .992 | - | - | - | - | - | - | |||||||||||
2014 | - | - | 139 | 247 | 8 | 5 | 1 | .981 | - | - | - | - | - | - | |||||||||||
2015 | 76 | 104 | 3 | 2 | 0 | .982 | - | 14 | 9 | 0 | 0 | 0 | 1.000 | - | - | - | - | - | - | ||||||
2016 | 131 | 197 | 5 | 1 | 1 | .995 | - | 2 | 4 | 0 | 0 | 0 | 1.000 | - | - | - | - | - | - | ||||||
2017 | 51 | 92 | 1 | 1 | 0 | .989 | - | 16 | 24 | 0 | 3 | 0 | .889 | - | - | - | - | - | - | ||||||
MLB 통산 | 459 | 651 | 21 | 8 | 4 | .988 | 134 | 298 | 3 | 8 | 2 | .974 | 1020 | 1921 | 66 | 28 | 16 | .986 | 1 | 1 | 0 | 0 | 0 | 1.000 |
6.2. 개인 수상 및 영예
- 올스타전 선정: 1회 (2009년)
- 내셔널 리그 이달의 선수: 2회 (2013년 7월, 2014년 7월)
- 이주의 선수: 3회 (2009년 8월 17일 ~ 8월 23일, 2010년 5월 3일 ~ 5월 9일, 2014년 6월 30일 ~ 7월 6일)
- 워싱턴 내셔널스 명예의 전당 헌액 (2018년)
7. 영향 및 평가
7.1. 팀에 대한 영향
제이슨 워스는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워싱턴 내셔널스 두 팀 모두에서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필리스 시절, 그는 2008년 월드 시리즈 우승의 핵심 멤버로서, 특히 포스트시즌에서 클러치 히팅으로 팀의 성공에 크게 기여했다. 그의 활약은 팀의 공격력을 강화하고, 젊은 선수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내셔널스에서는 7년 1.26 억 USD의 대형 계약으로 팀의 얼굴이자 리더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단순히 타격 성적을 넘어, 팀의 분위기를 이끌고 젊은 선수들에게 멘토 역할을 수행하며 팀의 성장에 중요한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2012년 내셔널스 파크에 그의 끝내기 홈런을 기념하는 빨간 좌석이 설치된 것은 그가 팀 역사에 남긴 상징적인 영향력을 보여준다. 비록 부상으로 결장하는 시기도 있었지만, 그의 복귀는 항상 팀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불어넣었다.
7.2. 야구계에서의 평가
워스는 야구계에서 그의 독특한 플레이 스타일과 개성적인 외모로 기억된다. 그는 특히 클러치 상황에서 강한 면모를 보였으며, 중요한 순간에 결정적인 안타나 홈런을 터뜨리는 능력으로 팬들과 언론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의 긴 머리와 수염은 그의 상징이 되었고, 이는 그의 미신과 결합되어 팬들에게 흥미로운 이야기로 회자되었다.
동료 선수들 사이에서는 특히 브라이스 하퍼와 같은 젊은 선수들에게 엄하면서도 멘토 역할을 하는 리더십을 발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야구에 대한 깊은 이해와 끈질긴 승부욕을 가진 선수로 평가되었으며, 수많은 부상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복귀하여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 노력했다. 그의 경력은 부상과의 싸움 속에서도 인상적인 기록을 남긴 강인한 선수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