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제로드 애슐리 리건(Jerrod Ashley Riggan)은 1974년 5월 16일 미국 워싱턴주에서 태어난 전 야구 선수로, 투수로 활약했다. 그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MLB)의 뉴욕 메츠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서 뛰었으며, 일본 프로 야구(NPB)의 한신 타이거즈에서도 활약했다. 고등학교와 대학 시절에는 야구와 농구를 병행했으며, 1996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드래프트에서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에 지명되며 프로 경력을 시작했다. 특히 2003년 시즌 중 한신 타이거즈에 합류하여 팀의 18년 만의 리그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은퇴 후에는 고등학교 야구 코치와 알래스카 골드패너스의 투수 코치를 역임했으며, 현재는 스파 시설을 운영하는 사업체의 공동 소유주로 활동하고 있다.
2. 초기 생애 및 아마추어 경력
제로드 애슐리 리건은 1974년 5월 16일에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제리 리건과 카밀 리건이며, 네이트라는 형제가 있다. 리건은 1992년 워싱턴주 브루스터에 위치한 브루스터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고등학교 재학 중에는 야구와 농구 선수로 활약했으며, 학급 회장을 맡기도 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리건은 에드먼즈 커뮤니티 칼리지에 진학하여 대학 야구 팀에서는 유격수와 선발 투수로, 대학 농구 팀에서는 슈팅 가드로 뛰었다. 에드먼즈 커뮤니티 칼리지 재학 중에는 라인 드라이브 타구에 머리를 맞은 경험이 있으며, 이후 1년 동안 투구 시 야구 헬멧을 착용했다.
리건은 샌디에이고 주립 대학교에서 대학 야구 경력을 이어갔으며, 졸업반 시절에는 트래비스 리와 함께 공동 주장을 맡았다. 그는 1995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드래프트 13라운드에서 플로리다 말린스에 지명되었으나 계약하지 않았다. 이후 1996년 드래프트 8라운드에서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에 지명되며 프로의 문을 두드렸다.
3. 프로 경력
리건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MLB)과 일본 프로 야구(NPB)에서 투수로 활약했다.
3.1.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MLB) 경력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의 팜 시스템에서 2년간 선발 투수로 준수한 활약을 펼친 후, 1998년 스프링 트레이닝 기간 중 에인절스 구단으로부터 구원 투수로 전향시키기 위해 강등될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이에 리건은 방출을 요청했고, 에인절스 구단은 그를 무기한 출장 정지 처분으로 맞섰다. 결국 에인절스는 1998년 4월 리건을 방출하는 데 동의했다. 이후 그는 워싱턴주 야키마에서 열린 뉴욕 메츠의 공개 트라이아웃 광고를 지역 신문인 《웬아치 월드》에서 보고 참가하여 메츠와 계약했다.
리건은 2000년 8월 메츠의 구원 투수 존 프랑코의 부상으로 인해 처음으로 메이저 리그에 콜업되었다. 메츠는 원래 에릭 캐맥을 로스터에 추가할 예정이었으나, 버지니아주 노퍽의 악천후로 인해 그가 합류하지 못하면서 당시 빙엄턴 메츠에서 뛰던 리건이 대신 콜업되었다. 그는 2000년 8월 29일 휴스턴 애스트로스를 상대로 메이저 리그 데뷔전을 치렀으며, 2이닝 무실점 구원 투구를 기록했다. 그러나 다음 날 트리플 A로 강등되었고 티모 페레즈가 그의 자리를 대신했다. 그는 그 시즌에 더 이상 메이저 리그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2001년 시즌을 마이너 리그에서 시작했지만, 시즌 전반기에만 네 차례 메이저 리그 로스터에 포함되었다 (4월 28일~30일, 5월 1일~17일, 5월 27일~6월 6일, 6월 24일~25일). 7월 22일에는 투수 돈 월을 대신하여 다섯 번째로 콜업되었고, 시즌 남은 기간 동안 메츠의 불펜에서 정규적으로 활약했다. 2001년 8월 18일 다저 스타디움에서 열린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의 경기에서 완벽한 1이닝을 던지며 메이저 리그 첫 승을 기록했다. 리건에 따르면, 2001년 시즌 동안 구단 관계자들은 그가 여러 차례 트레이드 논의에 언급되었지만, 메츠가 그를 포기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제안을 거부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1년 12월 11일, 리건은 알렉스 에스코바, 맷 로턴, 그리고 추후 지명 선수와 함께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로 트레이드되었다. 그 대가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로베르토 알로마, 마이크 바식, 그리고 마이너 리그 선수가 메츠로 이적했다. 당시 인디언스의 단장 마크 샤피로는 리건이 포함되지 않았다면 그 거래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나중에 언급했다. 리건은 당시에는 경쟁력 있는 팀에 합류하게 되어 "기쁘고", "그들의 스태프에 합류하게 되어 설렌다"고 말했다. 그러나 은퇴 후 그는 트레이드 소식을 들었을 때 "가슴이 철렁했고", 마치 "풍선이 바람 빠진 것 같았다"고 회고했다. 이 트레이드는 그의 이후 태도에 영향을 미쳤으며, 그는 그 이후로 자신에게 "징크스"가 걸렸다고 말했다.
리건은 2002년 시즌을 클리블랜드의 현역 로스터에서 시작했지만, 크리스티나 칼에 따르면 "주자를 계속 내보내면서" 4월 24일 강등되었고 채드 파론토가 그의 자리를 대신했다. 6월 13일 투수 폴 슈이의 부상으로 다시 콜업되었지만, 7월 6일 투수 제이슨 필립스를 위한 로스터 자리를 만들기 위해 다시 마이너 리그로 내려갔다. 8월 15일에는 투수 데이비드 리스키와 함께 다시 로스터에 복귀하여 시즌 남은 기간 동안 정기적으로 구원 등판했다.
2003년, 리건은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클리블랜드 로스터에 들지 못했다. 5월 13일 트래비스 해프너가 발가락 골절 부상을 당한 후 메이저 리그로 콜업되었다. 그러나 두 차례의 구원 등판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인 후 5월 18일 인디언스에 의해 지명 할당되었다. 리건은 이후 마이너 리그 강등을 거부하고 자유 계약 선수 자격을 얻었다. 5월 25일, 메츠는 그와 마이너 리그 계약을 체결했다.
3.2. 일본 프로 야구 (NPB) 경력
2003년 6월, 리건은 메츠로부터 방출 허가를 받아 한신 타이거즈와 7자리 숫자의 계약(수백만 달러 규모)을 맺고 2003년 NPB 시즌 잔여 기간과 이듬해 전체 시즌을 뛰게 되었다. 한신은 2003년 시즌 초 마무리 투수로 기대했던 루 포트가 부진하자 시즌 중반에 뉴욕 메츠 산하 트리플 A 팀인 노퍽 타이즈에서 리건을 급히 영입했다. 그는 안도 유야, 가나자와 겐토, 제프 윌리엄스, 요시노 마코토 등과 함께 강력한 불펜진의 일원으로 합류하여 그해 한신이 18년 만에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는 그해 2003년 일본 시리즈에도 출전했다.
이듬해인 2004년에도 리건은 구원 투수로서 전년도에 뒤지지 않는 활약을 보였으며, 제프 윌리엄스와 안도 유야와 함께 마무리 투수로 기용될 정도였다. 그러나 시즌 도중 오른쪽 팔꿈치 인대 손상이라는 큰 부상을 입었고, 2004년 6월 29일 토미 존 수술을 받았다. 그는 그대로 귀국했으며, 완치될 가망이 없었기 때문에 한신 타이거즈에서 퇴단했다. 이 해 한신은 부상자가 많아 어려움을 겪었는데, 특히 마무리 투수로 기대를 모았던 리건의 이탈은 큰 오산이었고, 이는 리그 우승 실패의 한 원인이 되었다.
- 등번호
- 34 (2000년)
- 38 (2001년)
- 51 (2002년 ~ 2003년)
- 65 (2003년 ~ 2004년)
3.3. 선수 특징
리건은 전신을 최대한 활용하는 투구 폼을 가지고 있었다. 타자들이 전력을 다해 스윙하더라도 타구가 제대로 앞으로 나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는 삼진으로 타자를 잡아내기보다는, 뛰어난 제구력을 바탕으로 내야 땅볼이나 뜬공을 유도하여 타자를 처리하는 인상을 주는 투수였다.
4. 은퇴 후 활동
2005년, 리건은 뉴욕 메츠의 마이너 리그 시스템으로 돌아왔다. 2005년 6월 27일, 그는 걸프 코스트 메츠 경기에서 등판했는데, 이는 그의 토미 존 수술 후 거의 1년 만이었다. 그는 더블 A까지 올라갔지만 그 이상으로는 진출하지 못했으며, 2005년이 그의 마지막 프로 야구 시즌이 되었다.
은퇴 후, 리건은 브루스터 고등학교의 야구 감독과 알래스카 골드패너스의 투수 코치를 역임했다. 현재는 "플로트 스포캔(Float Spokane)"이라는 스파 시설의 공동 소유주로 활동하고 있다.
5. 통계 및 기록
제로드 리건의 메이저 리그와 일본 프로 야구 통산 투수 성적 및 주요 기록은 다음과 같다.
5.1. 연도별 투수 성적
연도 | 팀 | 등판 | 선발 | 완투 | 완봉 | 무사구 | 승리 | 패전 | 세이브 | 홀드 | 승률 | 타자 | 투구회 | 피안타 | 피홈런 | 사구 | 고의사구 | 사사구 | 삼진 | 폭투 | 보크 | 실점 | 자책점 | 방어율 | WHIP |
---|---|---|---|---|---|---|---|---|---|---|---|---|---|---|---|---|---|---|---|---|---|---|---|---|---|
2000 | NYM | 1 | 0 | 0 | 0 | 0 | 0 | 0 | 0 | 0 | ---- | 10 | 2.0 | 3 | 0 | 0 | 0 | 0 | 1 | 0 | 0 | 2 | 0 | 0.00 | 1.50 |
2001 | NYM | 35 | 0 | 0 | 0 | 0 | 3 | 3 | 0 | 4 | .500 | 202 | 47.2 | 42 | 5 | 24 | 7 | 0 | 41 | 4 | 0 | 19 | 18 | 3.40 | 1.38 |
2002 | CLE | 29 | 0 | 0 | 0 | 0 | 2 | 1 | 0 | 0 | .667 | 165 | 33.0 | 53 | 3 | 18 | 4 | 0 | 22 | 4 | 1 | 28 | 28 | 7.64 | 2.15 |
2003 | CLE | 2 | 0 | 0 | 0 | 0 | 0 | 0 | 0 | 0 | ---- | 19 | 4.0 | 7 | 0 | 1 | 0 | 0 | 2 | 0 | 1 | 4 | 4 | 9.00 | 2.00 |
2003 | 한신 | 29 | 0 | 0 | 0 | 0 | 3 | 0 | 0 | -- | 1.00 | 146 | 35.2 | 29 | 2 | 11 | 0 | 2 | 30 | 0 | 0 | 8 | 6 | 1.51 | 1.12 |
2004 | 한신 | 23 | 0 | 0 | 0 | 0 | 1 | 1 | 4 | -- | .500 | 104 | 25.1 | 23 | 3 | 5 | 0 | 2 | 14 | 1 | 0 | 8 | 8 | 2.84 | 1.11 |
MLB 통산 (4년) | 67 | 0 | 0 | 0 | 0 | 5 | 4 | 0 | 4 | .556 | 396 | 86.2 | 105 | 8 | 43 | 11 | 0 | 66 | 8 | 2 | 53 | 50 | 5.19 | 1.71 | |
NPB 통산 (2년) | 52 | 0 | 0 | 0 | 0 | 4 | 1 | 4 | -- | .800 | 250 | 61.0 | 52 | 5 | 16 | 0 | 4 | 44 | 1 | 0 | 16 | 14 | 2.07 | 1.11 |
5.2. 일본 프로 야구 주요 기록
- 첫 등판: 2003년 6월 27일,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와의 15차전, 8회말 4번째 구원 투수로 등판하여 1이닝 무실점 기록.
- 첫 탈삼진: 위 첫 등판 경기에서 8회말 아이카와 료지를 상대로 헛스윙 삼진을 잡아냄.
- 첫 승리: 2003년 7월 18일, 한신 고시엔 구장에서 열린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의 15차전, 7회초 3번째 구원 투수로 등판하여 2이닝 무실점 기록.
- 첫 세이브: 2004년 4월 20일, 나고야 돔에서 열린 주니치 드래곤즈와의 4차전, 8회말 4번째 구원 투수로 등판하여 2이닝 무실점으로 경기를 마무리.
6. 개인사
제로드 리건의 부모는 제리 리건과 카밀 리건이다. 그에게는 네이트라는 형제가 있다.
리건은 아내 제니퍼와 결혼하여 터크(Turk), 목슨(Moxon), 제이스(Jace)라는 세 아들과 2011년에 태어난 라일라(Lila)라는 딸을 두었다. 장남 터크는 리건의 전 뉴욕 메츠 팀 동료인 터크 웬델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7. 관련 항목
- 한신 타이거즈의 선수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