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년기 및 학창 시절
이바타 히로카즈는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 가와사키구에서 태어나 가와사키시립 가와나카지마 중학교 시절까지 투수로 활약했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현립 고등학교로의 진학을 고려하던 중, 조난 시나가와 리틀 시니어 소속 시절 항동 무스와의 경기에서 그를 지켜보던 노무라 가쓰야로부터 직접 전화를 받았다. 노무라는 그에게 투수에서 유격수로의 전향과 호리코시 고등학교 진학을 조언했고, 이바타는 그의 조언에 따라 호리코시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야구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1.1. 고등학교 및 대학교 시절
호리코시 고등학교 시절, 이바타는 2학년 때 제64회 선발 고등학교 야구 대회에, 3학년 때 제75회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며 고교 야구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이후 아시아 대학에 진학하여 도토 대학 야구 리그 1부 리그에서 통산 81경기에 출전, 269타수 78안타, 타율 .290, 4홈런, 33타점을 기록했다. 3학년 가을부터 3시즌 연속으로 2루수 부문 베스트 나인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2부 리그(2학년 봄 시즌 한정)에서는 통산 11경기에 출전하여 48타수 14안타, 타율 .291, 1홈런, 5타점을 기록했다.
아시아 대학 시절, 이바타는 1학년 때 4학년 오키하라 요시노리와 함께 2루와 유격수를 맡는 키스톤 콤비를 구성했다. 당시 팀에는 1년 선배인 부사카 도시유키, 나카노 에이이치(후에 프로팀 동료), 그리고 1년 후배인 아카호시 노리히로가 있었으며, 3학년 가을에는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호리코시 고등학교 시절의 구와바라 히데노리 감독과 아시아 대학 시절의 우치다 도시로 감독은 모두 히로시마 상고 출신으로, 이바타에게 약점 극복과 정신력 단련, 즉 '스몰볼' 야구를 7년간 철저히 가르쳤다. 이바타의 야구 철학은 '히로시마 상고 야구'에 뿌리를 두고 있다.
2. 프로 선수 경력
1997년 드래프트 회의에서 주니치 드래곤스로부터 5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하며 프로 경력을 시작했다.
2.1. 주니치 드래곤스 시절 (1998년-2013년)
프로 데뷔 첫 해인 1998년, 이바타는 시즌 후반부에 1군에 합류하여 18경기에 출전했다. 그러나 같은 해 드래프트에서 주니치가 자신과 같은 유격수 후쿠도메 고스케를 1순위로 지명하고 이듬해 1999년에 후쿠도메가 주전으로 자리 잡으면서, 이바타는 1군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바타는 2000년 춘계 캠프에서 팀의 주력 선수들을 관찰하며, 번트를 확실히 성공시키고 수비력이 뛰어난 선수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그는 번트와 수비 기술을 연마하여 1군 출장 기회를 얻고자 노력했다. 2000년 시즌 개막부터 1군에 동행한 그는 개막 6번째 경기인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3차전에서 상대 선발 투수 신인 다카하시 히사노리와의 상성을 호시노 센이치 감독으로부터 질문받자 "5할은 쳤습니다"라고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이 경기 8회에 대타로 기용되어 중견수 앞 안타를 기록하며 기대에 부응했다. 한 달 뒤 요미우리와의 3연전에서는 그해 처음으로 선발 출장하여 3경기 모두 2안타 1타점을 기록했다. 그 이후부터는 경기 막판의 수비 교체, 대주자, 혹은 주전 선수로서 출장 기회를 늘려갔다.
2001년부터는 모든 경기에 출장하며 2번 유격수로 주전 자리를 꿰찼다. 2002년에는 첫 베스트 나인을 수상했고, 오프 시즌에는 등번호를 '6'번으로 변경했다. 2004년에는 선수 회장에 취임하며 팀의 기둥으로서 리그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또한, 두 번째 베스트 나인(이후 2007년까지 4년 연속 수상), 첫 3할 타율, 그리고 첫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했다. 2005년에는 2년 연속 3할 타율과 함께 규정 타석 도달자 중 12개 구단 최고인 득점권 타율을 기록했다. 같은 해 8월 27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의 경기(나고야 돔)에서는 6회 2사 만루 상황에서 아마노 고이치로부터 개인 통산 첫 만루 홈런을 터뜨렸다.
국제 대회에서 일본 대표팀 경험도 풍부하다. 2001년 대만에서 개최된 IBAF 월드컵(4위)을 시작으로, 2002년 쿠바에서 개최된 IBAF 인터컨티넨탈컵(준준결승 리그 탈락)에 출전했다. 2003년 아테네 올림픽 예선을 겸한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는 나가시마 재팬의 일원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2007년 베이징 올림픽 예선에서도 2회 연속 본선 출전권을 획득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2006년과 2009년 WBC에는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
2008년 8월 3일 FA 권리를 취득했지만, 그날 주니치 스포츠 조간을 통해 잔류를 선언했고, 12월 16일 구단 역사상 최장 기간인 5년 계약을 맺었다. 같은 해 12월 22일에는 전 TV 아사히 아나운서 고노 아키코와 결혼했다. 2009년 초 괌에서 개인 훈련 중 눈에 붓기와 통증을 호소했으며, 귀국 후 의사 진단 결과 상피 각막 헤르페스로 판명되었다. 어깨 부상도 겹쳐 2루수로 포지션 컨버전될 예정이었으나, 눈의 부상으로 인한 훈련 지연과 함께 유격수를 맡을 예정이었던 아라키 마사히로가 개막 직전 발목을 다치면서 포지션 변경은 보류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즌에서는 주로 1번 타자로 전 경기에 출장하여 4년 만에 3할 타율을 달성했다. 12월 3일에는 일본 프로 야구 선수회의 이사장으로 취임했다(2013년 12월 퇴임).
2010년에는 계획대로 2루수로 포지션을 변경했고, 팀 방침에 따라 6번 타순에 배치되는 경우가 많았다. 6월 5일 지바 롯데 마린스와의 경기에서 개인 통산 1500안타를 달성했다. 그러나 6월 11일 등록 말소된 후 7월 15일에 잠시 1군에 복귀했으나 3경기 출장에 그쳤고, 7월 25일에 다시 등록 말소되었다. 1군 복귀는 10월 2일 시즌 최종전에서야 이루어졌다. 장기 이탈의 이유는 눈병으로 인해 공이 흐릿하게 보이는 증상 때문이었으며, 이 해는 144경기 중 53경기밖에 출장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2000년 이후 처음으로 규정 타석에 미달했고, 전년까지 6년 연속으로 수상했던 골든 글러브상도 놓쳤으며, 2루수 주전 자리를 도노에 나오미치에게 내주었다. 11월 26일에는 감액 제한액인 40% 삭감(3억 엔 → 1억 8천만 엔 추정)으로 계약을 갱신했다. 눈 치료를 계속했지만 차도가 보이지 않고 통증이 지속되어 이 시즌에는 은퇴도 고려했다.
2011년에는 다시 2번 타자로 기용되었다. 7월 26일에는 첫 아들인 장남이 태어났다. 타격 면에서는 프로 입단 후 최저 성적을 기록했다. 9월 1일에는 NPB로부터 도핑 금지 규칙 위반 징계를 받았으나, 이는 눈 치료에 사용하던 약물의 허가 기간 만료에 따른 지속 신청을 소홀히 한 주니치 구단의 과실이 큰 것으로 인정되어 가장 가벼운 견책 처분에 그쳤다.
2012년, 개막전부터 6번 타자로 기용되었으나 시즌 중반부터는 5번 타순에 배치되었다. 수비 면에서는 다시 유격수로 복귀했고, 아라키도 본래의 2루수로 다시 컨버트되었다. 최종적으로 타율 .284를 기록하며 3년 만에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했다. 오프 시즌인 11월 6일, 사무라이 재팬 매치 2012 "일본 대표 vs 쿠바 대표"의 일본 대표팀 명단이 발표되며 대표팀에 선발되었다. 12월 4일에는 제3회 WBC 일본 대표팀 후보 선수 34인에 포함되었다.

2013년 2월 20일, 제3회 WBC 일본 대표팀 최종 28인에 선발되었다. 등번호는 '3'번을 달았다. 브라질전에서 동점 타점을 기록했고, 3월 8일 대만전에서는 9회 2사 상황에서 동점 타점을 터뜨리며 타율 .556으로 결승 라운드에 진출한 모든 선수 중 가장 높은 타율을 기록했다. 지명 타자로도 출전하여 도쿄 라운드의 MVP를 수상했고, 대회 베스트 나인 지명 타자 부문에도 선정되었다. 특히 2차 라운드 대만전의 동점 적시타에 대해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즌 공식전에서는 100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36, 1홈런을 기록했다. 시즌 후 구단의 권유로 오른쪽 발목과 오른쪽 팔꿈치 수술을 받았으나, 수술 후 구단 체제가 바뀌면서 연봉 감액 한도액을 넘어서는 대폭 감봉을 제시받았다. 이에 추계 캠프에는 혼자 불참했으며, 11월 4일 구단으로부터 다음 해 계약을 맺지 않겠다는 발표가 나왔다.
2.2.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 (2014년-2015년)
2013년 11월 26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계약 합의가 발표되었고, 12월 3일 입단 기자회견을 가졌다. 등번호는 '2'번을 달았다. 12월 13일에는 둘째 딸인 장녀가 태어났다.
2014년에는 다리에 불안을 안고 있던 가타오카 야스히로에 이은 2루수 등, 주로 내야 수비 요원으로 경기에 출장했다. 또한, 가타오카가 연전으로 인한 피로를 고려해 휴식을 취할 때는 2루수로 선발 출장했고, 주전 유격수 사카모토 하야토가 부상 등으로 선발 출장이 불가능할 때는 유격수로 선발 출장했다. 7월 6일에는 친정팀 주니치를 상대로 하마다 다쓰로로부터 개인 통산 첫 홈런을 기록했다. 5년 만에 시즌 3홈런을 기록했으며,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 한신 타이거스전에서는 2차전 7회에 이와타 미노루로부터 2점 홈런을 터뜨렸다.
2015년에는 개막전 선발 출장하며 시즌 초반에는 주전으로도 활약했다. 6월 12일에는 셋째 딸인 차녀가 태어났다. 최종적으로는 가타오카의 부상 이탈로 인해 98경기에 출장했으나, 10월 24일 요미우리 자이언츠 구단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동갑내기인 다카하시 요시노부의 감독 취임에 따라 그 해를 마지막으로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일본 프로 야구 명구회 입회 기준인 통산 2000안타까지 88안타를 남겨둔 시점이었다. 다카하시의 은퇴 보고를 전화로 들은 이바타는 "그보다 오래 할 생각은 없었다. 전화를 받고 바로 그만두기로 결심했다"고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2.3. 선수로서의 특징
이바타 히로카즈는 현역 시절 뛰어난 수비력과 상황에 맞는 타격 능력을 겸비한 선수로 평가받았다.
2.3.1. 수비 및 주루
프로 입단 후 1군 출장 기회가 적었던 시절에는 외야를 맡기도 했으나, 프로 입단 전까지는 외야 수비 경험이 거의 없었다. 이는 당시 유격수로는 후배 후쿠도메 고스케가 있었고, 1군 출장이 어려워지자 2군 감독 니무라 토루가 1군 코칭스태프에게 "이바타는 원래 외야수였다"고 보고하여, 내외야를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1군에 승격되었기 때문이다.
2001년부터 유격수 주전으로 자리 잡았다. 아라키 마사히로와는 수비에서 키스톤 콤비를, 타순에서 1, 2번을 구성하며 '아라이바 콤비'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외야로 빠져나갈 듯한 타구를 아라키가 포구한 뒤, 무리하게 직접 1루로 송구하지 않고 이바타에게 토스하여 송구를 맡기는 등 수많은 예술적인 수비를 선보였다. 아라키와 함께 2004년부터 2009년까지 6년 연속으로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했다. 2021년 12월에 실시된 '미쓰이 골든 글러브 레전즈' 투표에서는 유격수 부문 1위를 차지하며 역대 최고의 수비수로 인정받았다.
2010년부터는 나이 부담을 고려해 2루수로 포지션을 변경하고 아라키와 수비 위치를 교체했다. 2012년부터는 그 해 감독으로 취임한 다카기 모리미치의 "이바타는 (2루를 맡을 때) 마음이 편치 않아 보였고, 아라키도 어깨에 불안이 있다"는 의견과 이바타 본인이 유격수를 희망하면서 다시 수비 위치를 바꾸게 되었다. 이 해에는 수비 이닝 1000이상을 소화한 유격수 중 양대 리그 2위인 UZR 15.9를 기록했다.
주루 면에서도 시즌 20개 이상의 도루를 세 차례 기록했으며, 우타자임에도 불구하고 1루 도달 3.98초를 기록하는 등 빠른 발을 자랑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4초 초반에서 6초 초반으로 기복이 심한 경향을 보였다. 또한, 통산 도루 성공률도 62%로 낮은 편이었다.
2.3.2. 타격
수비력 못지않게 타격도 뛰어났다. '끈질긴 타격'으로 불리며 통산 1912안타를 기록한 타격 능력을 보유했다. 2001년부터 2011년까지 주로 2번 타자로 기용되었으며, 아라키의 타격 부진 시에는 이바타가 1번 타순에 들어서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감독의 방침에 따라 3번, 5번, 6번 등 다양한 타순을 소화하기도 했다. 부드러운 손목을 활용한 뛰어난 배트 컨트롤이 특징이었다. 크게 왼쪽 다리를 들어 올리는 타격 자세를 가졌지만, 타이밍과 스텝을 미세하게 조절하여 다양한 유형의 투수에 대한 대응력이 높았다.
2006년부터 2010년까지 5년간 좌투수를 상대로 타율 .307을 기록했고, 통일구가 도입되었던 2011년부터 2012년에도 타율 .285를 기록하는 등 좌투수에 강한 모습을 보였다. 헛스윙은 적었고, 바깥쪽 공뿐만 아니라 몸쪽의 까다로운 코스도 팔을 접어 오른쪽 방향으로 보내는 기술을 갖추었다. 득점권 상황에서는 80% 이상의 타구를 오른쪽 방향으로 보내는 등 상황에 맞는 타격도 가능했으며, 파울을 만들어내는 기술은 구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았다.
현역 시절 총 홈런 수는 56개로 홈런 타자 유형은 아니었다. 이바타 본인은 프로 첫 홈런을 쳤을 때 "다행이다"라고 안도했다고 은퇴 후 밝혔으며, "홈런 1개 치는 것보다 안타 2개, 3개 치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3. 은퇴 후 지도자 경력
이바타 히로카즈는 선수 은퇴 후 다양한 팀에서 지도자 역할을 수행하며 일본 야구계에 기여하고 있다.
3.1. 프로 및 아마추어 팀 지도자 경력
2015년 선수 은퇴 후, 2016년부터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1군 내야 수비 및 주루 코치로 취임했다. 그러나 2018년 10월 22일 코치직에서 물러났다.
2019년부터는 닛폰TV, TBS 채널, 후지TV ONE, 도카이 TV, 닛폰 방송, 도카이 라디오의 야구 해설가로 활동하기 시작했으며, 주니치 스포츠와 도쿄 주니치 스포츠의 야구 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또한 2019년 10월, 닛폰TV 서비스가 유튜브 채널 '이바TV ~ 이바타 히로카즈 공식 채널'을 개설했다. 이 채널에서는 현역 시절의 비하인드 스토리, 야구계의 문제점, 주목할 만한 선수 등에 대한 야구 관련 주제를 미치가 사회를 맡아 이바타의 독자적인 시각으로 이야기하는 영상이 주 1회 업로드된다.
2020년부터는 아시아 대학 시절 동기인 이즈카 토모히로가 감독으로 있는 인연으로 NTT 히가시 니혼 경식 야구부의 임시 코치로 취임했다. 2022년부터는 벤치에 합류하여 NTT 히가시 니혼의 유니폼을 착용하기 시작했으며, 등번호는 '88'번이다.
2022년 10월 4일부터 17일까지 2주간 대만 TSG 호크스의 객원 코치로 취임하기도 했다. 2023년 8월 1일부로 모교인 아시아 대학 경식 야구부의 외부 코치로 야구부 동기 이즈카 토모히로와 함께 취임했다.
3.2. 국가대표팀 지도자 및 감독 경력
이바타 히로카즈는 코치 재임 기간 동안 사무라이 재팬에 꾸준히 참여해왔다. 탑 팀의 이나바 아쓰노리 감독 체제 하에서 2017년 제1회 아시아 프로 야구 챔피언십과 2018년 미일 야구에서 일본 대표팀의 내야 수비 및 주루 코치를 맡았다.

2019년 1월에는 사무라이 재팬 강화 본부 편성 전략 담당으로 취임했다. 2019년 제2회 프리미어 12와 2021년 도쿄 올림픽에서도 내야 수비 및 주루 코치를 계속해서 맡았다.
2022년부터는 U-12 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하여 제6회 WBSC U-12 월드컵에서 7위를, 이듬해 제7회 WBSC U-12 월드컵에서 4위를 기록했다.
2023년 10월 3일, 그 해 3월에 개최된 WBC에서 세계 챔피언을 이끈 구리야마 히데키 감독의 후임으로 탑 팀 감독에 취임했다. 또한 U-12 감독직에서 물러나는 동시에 U-15 감독도 겸임하게 되었다. 같은 해 11월 도쿄 돔에서 개최된 제2회 아시아 프로 야구 챔피언십이 탑 팀 감독으로서의 첫 공식전이었으며, 4전 전승으로 우승하며 대회 2연패를 달성했다.

2024년에는 U-15 감독으로서 첫 지휘봉을 잡은 제6회 WBSC U-15 월드컵에서 일본 대표팀을 2012년 대회 개편 이후 처음으로 우승으로 이끌었다. 10월 9일에는 2026년에 개최될 예정인 제6회 WBC까지 계속해서 감독직을 맡을 것이라고 발표되었다.
2024년 WBSC 프리미어 12에서는 결승전에서 대만에 패배하며 준우승을 차지했다. 이로써 2019년 프리미어 12, 2020년 도쿄 올림픽, 202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으로 이어지던 일본 대표팀의 세계 대회 연속 우승 기록은 3회에서 멈추게 되었다.
4. 인물
주니치 드래곤스 팀 내에서 이바타의 애칭은 '이바친'이었는데, 이는 그가 입단할 당시 감독이었던 호시노 센이치가 지어준 이름이다.
그의 취미는 경정이다. 매년 연말연시에는 아이치현에 있는 가마고리 경정장에서 토크쇼에 출연하는 것이 최근 몇 년간의 연례행사가 되었다. 경정 선수 중에서는 하라다 사치야와 친분이 두텁다.
대학 시절 야구부에는 "1, 2학년은 전철 좌석에 앉아서는 안 된다"는 규칙이 있었다. 어느 날 앞뒤 칸에 선배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좌석에 앉았는데, 선배가 건널목에 서서 전철 밖에서 감시하고 있어 간담이 서늘했던 경험이 있다고 한다.
내야 수비가 특히 뛰어난 선수로는 주니치 시절 팀 동료였던 구지 데루요시와 사카이 다다하루를 꼽는다. 이바타는 두 선수의 수비를 "매력적인 수비(화려한 글러브 핸들링)"라고 표현했다. 현역 시절에는 "매력적인 수비에서는 그들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들처럼 글러브를 다루면 가벼운 플레이라고 오해받을까 봐 두려웠다"고 회고하며, 견실한 플레이 스타일이 특징인 가와이 마사히로를 참고했다고 한다. 그러나 구지나 사카이의 수비 스타일 연습은 계속했으며, "결정적인 순간에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할 수 있다"는 스타일을 유지했다고 밝혔다.
2004년부터 2018년까지 모교인 가와사키시립 가와나카지마 초등학교에서 개최되는 '이바타 마츠리'에 참가하여 아이들과 교류했다. 2006년부터 2015년까지는 가와사키시 야구 소년들을 위해 '이바타 히로카즈 배'를 주최하기도 했다。
이바타의 팬임을 자처한 인물로는 그의 아내인 고노 아키코와 SKE48의 다카야나기 아카네, 요시다 사오리 등이 있다.
2021년 8월 8일에 방송된 NHK 교육 텔레비전 프로그램 아빠와 함께의 코너 '도산노보리(아빠 오르기)'에 두 딸과 함께 출연했다. 그의 소개 장면에는 미즈키 이치로가 부른 '불타라 드래곤즈'가 흘러나왔다. 미즈키는 '아빠와 함께'의 자매 프로그램인 엄마와 함께의 2대 '노래하는 오빠'였다.
2022년에는 그의 장남이 5학년임에도 불구하고 베이스타즈 주니어에 선발되었다. 등번호는 아버지 이바타가 주니치 시절 달았던 번호와 같은 '6'번이었다. 장남은 이듬해 2023년에도 베이스타즈 주니어에 선발되었고, 주장으로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재능을 인정받았기에 오치아이 히로미쓰 감독으로부터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았던 선수 중 한 명이었다. 오치아이는 이바타의 탁월한 수비 능력에 대해 "도움을 받은 적이 많았다"고 인정했지만, 이바타는 훈련으로 인해 "꽤 화난 표정"을 자주 지었다고 한다.
5. 수상 및 영예
5.1. NPB 수상
- 베스트 나인: 5회 (2002년, 2004년 ~ 2007년)
- 골든 글러브상: 7회 (2004년 ~ 2009년, 2012년)
- 유격수로서 7회 수상은 야마시타 다이스케에 이어 역대 2위 기록이다.
- 미쓰이 골든 글러브 레전즈 (유격수 부문)
- 월간 사요나라상: 1회 (2015년 6월)
- 올스타전 우수 선수상: 1회 (2007년 2차전)
- 올스타전 베스트 배터상: 1회 (2009년 2차전, 스즈키 이치로 (당시 오릭스 블루웨이브), 우치카와 세이이치 (당시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에 이어 5타석 연속 안타)
- 아시아 시리즈 MVP: 1회 (2007년)
- 월간 앳홈 히어로상: 1회 (2015년 6월)
5.2. 국제대회 수상
- WBC 2차 라운드 MVP (2013년)
- WBC 베스트 나인 (지명 타자: 2013년)
6. 기록 및 이정표
6.1. 첫 기록
- 첫 출장·첫 선발 출장: 1998년 9월 8일, 대 한신 타이거스 23차전 (나고야 돔), 7번·유격수로 선발 출장
- 첫 타석: 상동, 1회말에 대럴 메이로부터 투수 땅볼
- 첫 안타·첫 타점: 상동, 3회말에 대럴 메이로부터 중전 2점 적시타
- 첫 희생타: 1998년 9월 15일, 대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23차전 (메이지 진구 야구장), 5회초에 가와사키 겐지로로부터 투수 앞 희생타
- 첫 도루: 1998년 9월 17일, 대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25차전 (메이지 진구 야구장), 1회초에 2루 안착 (투수: 야마베 후토시, 포수: 후루타 아쓰야)
- 첫 홈런: 2000년 6월 8일, 대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9차전 (메이지 진구 야구장), 1회초에 도널드 레몬으로부터 좌월 솔로 홈런
6.2. 주요 이정표
- 1000안타: 2007년 4월 1일, 대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3차전 (나고야 돔), 1회말에 후지이 슈고로부터 좌중간 2루타 ※역대 243번째
- 1000경기 출장: 2007년 7월 16일, 대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12차전 (나고야 돔), 3번·유격수로 선발 출장 ※역대 419번째
- 1500안타: 2010년 6월 5일, 대 지바 롯데 마린스 4차전 (나고야 돔), 2회말에 요시미 유지로부터 우중간 적시 2루타 ※역대 105번째
- 200희생타: 2011년 9월 1일, 대 한신 타이거스 18차전 (나고야 돔), 6회말에 제이슨 스탠드리지로부터 투수 앞 희생타 ※역대 32번째 (다카기 모리미치와 대등한 통산 희생타 구단 타이 기록)
- 1500경기 출장: 2012년 5월 3일, 대 한신 타이거스 6차전 (나고야 돔), 6번·유격수로 선발 출장 ※역대 174번째
6.3. 기타 기록
- 올스타전 출장: 8회 (2001년, 2002년, 2005년, 2007년, 2008년, 2009년, 2010년, 2011년)
- 사이클링 히트: 2002년 9월 21일, 대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25차전 (나고야 돔) ※역대 53번째
7. 상세 통계
7.1. 연도별 타격 성적
연도 | 소속 | 경기 | 타석 | 타수 | 득점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루타 | 타점 | 도루 | 도루사 | 희생타 | 희생플라이 | 볼넷 | 고의4구 | 사구 | 삼진 | 병살타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
1998 | 주니치 | 18 | 60 | 49 | 2 | 12 | 1 | 0 | 0 | 13 | 2 | 4 | 0 | 4 | 0 | 6 | 0 | 1 | 8 | 0 | .245 | .339 | .265 | .605 |
2000 | 92 | 270 | 242 | 35 | 74 | 7 | 0 | 3 | 90 | 16 | 6 | 8 | 8 | 2 | 16 | 0 | 2 | 22 | 1 | .306 | .351 | .372 | .723 | |
2001 | 140 | 625 | 531 | 53 | 139 | 25 | 3 | 1 | 173 | 32 | 14 | 12 | 37 | 2 | 49 | 2 | 6 | 60 | 10 | .262 | .330 | .326 | .656 | |
2002 | 135 | 596 | 531 | 67 | 154 | 25 | 1 | 4 | 193 | 25 | 6 | 9 | 6 | 0 | 53 | 1 | 6 | 77 | 11 | .290 | .361 | .363 | .724 | |
2003 | 105 | 447 | 386 | 44 | 103 | 14 | 0 | 5 | 132 | 27 | 5 | 3 | 30 | 1 | 28 | 0 | 2 | 50 | 9 | .267 | .319 | .342 | .661 | |
2004 | 138 | 642 | 562 | 81 | 170 | 30 | 2 | 6 | 222 | 57 | 21 | 10 | 18 | 3 | 54 | 0 | 5 | 74 | 16 | .302 | .367 | .395 | .762 | |
2005 | 146 | 659 | 560 | 87 | 181 | 22 | 5 | 6 | 231 | 63 | 22 | 8 | 19 | 2 | 72 | 3 | 6 | 77 | 11 | .323 | .405 | .413 | .817 | |
2006 | 146 | 666 | 573 | 97 | 162 | 19 | 2 | 8 | 209 | 48 | 17 | 12 | 27 | 1 | 61 | 0 | 4 | 72 | 13 | .283 | .355 | .365 | .720 | |
2007 | 144 | 665 | 588 | 87 | 174 | 34 | 4 | 5 | 231 | 45 | 23 | 6 | 8 | 1 | 63 | 1 | 5 | 74 | 13 | .296 | .368 | .393 | .761 | |
2008 | 106 | 466 | 408 | 51 | 113 | 16 | 3 | 5 | 150 | 23 | 8 | 3 | 16 | 2 | 37 | 1 | 3 | 56 | 7 | .277 | .340 | .368 | .708 | |
2009 | 144 | 657 | 569 | 80 | 174 | 24 | 2 | 5 | 217 | 39 | 13 | 7 | 8 | 2 | 72 | 0 | 6 | 66 | 13 | .306 | .388 | .381 | .770 | |
2010 | 53 | 212 | 180 | 18 | 47 | 6 | 0 | 0 | 53 | 16 | 0 | 0 | 6 | 2 | 21 | 1 | 3 | 28 | 13 | .261 | .345 | .294 | .639 | |
2011 | 104 | 434 | 376 | 28 | 88 | 9 | 1 | 1 | 102 | 29 | 3 | 3 | 31 | 2 | 25 | 1 | 0 | 53 | 10 | .234 | .280 | .271 | .551 | |
2012 | 140 | 553 | 489 | 35 | 139 | 17 | 0 | 2 | 162 | 35 | 4 | 4 | 8 | 1 | 52 | 2 | 3 | 58 | 14 | .284 | .356 | .331 | .687 | |
2013 | 100 | 376 | 326 | 30 | 77 | 9 | 0 | 1 | 89 | 18 | 0 | 2 | 8 | 0 | 38 | 0 | 4 | 51 | 13 | .236 | .323 | .273 | .596 | |
2014 | 요미우리 | 87 | 187 | 164 | 16 | 42 | 3 | 0 | 3 | 54 | 16 | 0 | 0 | 4 | 1 | 18 | 0 | 0 | 24 | 11 | .256 | .328 | .329 | .657 |
2015 | 98 | 321 | 269 | 20 | 63 | 9 | 0 | 1 | 75 | 19 | 3 | 3 | 10 | 2 | 37 | 0 | 3 | 36 | 4 | .234 | .331 | .279 | .610 | |
통산: 17년 | 1896 | 7836 | 6803 | 831 | 1912 | 270 | 23 | 56 | 2396 | 510 | 149 | 90 | 248 | 24 | 702 | 12 | 59 | 886 | 169 | .281 | .352 | .352 | .706 |
7.2. 국제 대회 타격 성적
연도 | 대표팀 | 경기 | 타석 | 타수 | 득점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루타 | 타점 | 도루 | 도루사 | 희생타 | 희생플라이 | 볼넷 | 고의4구 | 사구 | 삼진 | 병살타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
2013 | 일본 | 6 | 23 | 18 | 6 | 10 | 1 | 0 | 0 | 11 | 4 | 0 | 1 | 0 | 0 | 5 | 0 | 0 | 3 | 0 | .556 | .652 | .611 | 1.263 |
연도 | 팀 | 경기 | 타석 | 타수 | 득점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루타 | 타점 | 도루 | 도루사 | 희생타 | 희생플라이 | 볼넷 | 고의4구 | 사구 | 삼진 | 병살타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
2004 | NPB | 6 | 13 | 10 | 2 | 1 | 0 | 0 | 0 | 1 | 1 | 1 | 0 | 0 | 1 | 2 | 0 | 0 | 2 | 1 | .100 | .100 | .231 | .331 |
7.3. 연도별 수비 성적
; 내야
연도 | 구단 | 1루 | 2루 | 3루 | 유격 | ||||||||||||||||||||
---|---|---|---|---|---|---|---|---|---|---|---|---|---|---|---|---|---|---|---|---|---|---|---|---|---|
경기 | 척살 | 보살 | 실책 | 병살 | 수비율 | 경기 | 척살 | 보살 | 실책 | 병살 | 수비율 | 경기 | 척살 | 보살 | 실책 | 병살 | 수비율 | 경기 | 척살 | 보살 | 실책 | 병살 | 수비율 | ||
1998 | 주니치 | - | 6 | 5 | 10 | 1 | 2 | .938 | - | 12 | 23 | 34 | 0 | 10 | 1.000 | ||||||||||
2000 | - | 23 | 15 | 22 | 0 | 7 | 1.000 | 2 | 2 | 3 | 0 | 0 | 1.000 | 51 | 70 | 122 | 5 | 16 | .975 | ||||||
2001 | - | 15 | 9 | 10 | 0 | 3 | 1.000 | - | 134 | 193 | 381 | 4 | 66 | .993 | |||||||||||
2002 | - | - | - | 134 | 237 | 387 | 6 | 69 | .990 | ||||||||||||||||
2003 | - | - | - | 104 | 150 | 319 | 2 | 62 | .996 | ||||||||||||||||
2004 | - | - | - | 138 | 213 | 472 | 4 | 90 | .994 | ||||||||||||||||
2005 | - | - | - | 146 | 204 | 480 | 5 | 97 | .993 | ||||||||||||||||
2006 | - | - | 2 | 0 | 0 | 0 | 0 | ---- | 146 | 242 | 475 | 4 | 77 | .994 | |||||||||||
2007 | - | - | - | 144 | 222 | 465 | 6 | 97 | .991 | ||||||||||||||||
2008 | - | - | - | 106 | 139 | 311 | 8 | 50 | .983 | ||||||||||||||||
2009 | - | - | - | 144 | 218 | 477 | 8 | 92 | .989 | ||||||||||||||||
2010 | - | 45 | 114 | 114 | 1 | 27 | .996 | - | 8 | 15 | 18 | 2 | 1 | .943 | |||||||||||
2011 | - | 102 | 260 | 328 | 5 | 54 | .992 | 2 | 1 | 2 | 0 | 0 | 1.000 | - | |||||||||||
2012 | - | - | - | 140 | 186 | 450 | 4 | 94 | .994 | ||||||||||||||||
2013 | - | 2 | 1 | 3 | 0 | 0 | 1.000 | - | 93 | 118 | 248 | 6 | 40 | .984 | |||||||||||
2014 | 요미우리 | 14 | 36 | 2 | 0 | 7 | 1.000 | 42 | 84 | 84 | 1 | 21 | .994 | 16 | 4 | 7 | 0 | 1 | 1.000 | 14 | 9 | 18 | 0 | 4 | 1.000 |
2015 | 26 | 154 | 10 | 1 | 9 | .994 | 33 | 63 | 55 | 1 | 10 | .992 | 39 | 23 | 35 | 2 | 2 | .967 | 11 | 11 | 28 | 1 | 4 | .975 | |
통산 | 40 | 190 | 12 | 1 | 16 | .995 | 268 | 551 | 626 | 9 | 124 | .992 | 61 | 30 | 47 | 2 | 3 | .975 | 1525 | 2250 | 4685 | 65 | 869 | .991 |
; 외야
연도 | 구단 | 외야 | |||||
---|---|---|---|---|---|---|---|
경기 | 척살 | 보살 | 실책 | 병살 | 수비율 | ||
2000 | 주니치 | 21 | 18 | 0 | 1 | 0 | .947 |
2001 | 11 | 16 | 2 | 0 | 0 | 1.000 | |
통산 | 32 | 34 | 2 | 1 | 0 | .973 |
8. 미디어 출연 및 출판 활동
8.1. 미디어 출연
- CBC 라디오 - 히사노 마코토의 드래곤즈 월드, 미야베 가즈히로의 드래곤즈 익스프레스 (주 1회 정도 전화 출연, 주로 월요일)
- 닛폰 방송 - 닛폰 방송 쇼업 나이터 (2019년 ~ 2023년)
- 도카이 라디오 - 가츠나이터 (2019년 ~ 2023년)
- 스카파!e2 (스카파!) - 2009년 프로 야구 (지역 한정판)
- 나고야 철도 - 메이테쓰 특급 뮤스카이 광고 포스터
- 오쓰카 제약 - W 아미노 밸류 (아라키와 함께 광고 포스터 출연)
- 칼럼 - 이바타 히로카즈의 이치노 야구 (부정기 업데이트. 이와세 히토키 (이와세 히토키의 인생 야구)와 함께 주니치 스포츠 휴대폰 사이트 '드래곤즈 정보' 내에서 '현황 레포트'와 팬 질문에 답하는 '무엇이든 Q&A' (질문은 같은 페이지에서 접수 중), 이바타의 메시지 영상 (다운로드 필요) 외에, 이바타 오리지널 콘텐츠로 '마이 붐'으로 구성되어 있다.)
- 블로그 - 장인의 말 (2019년 ~ )
- 유튜브 - 이바TV (2019년 ~ , 매주 수요일 업데이트)
- 기타 - 홋토 아오지루 (판매원: 도카도. 전 동료 아라키 마사히로와 함께 TV 쇼핑 및 온라인 쇼핑 페이지에도 등장했다.)
8.2. 출판물
- 『토단바력: 후회와 동경이 무한한 힘을 낳는다』 (다케쇼보, 2013년 7월, ISBN 978-4812495964)
- 『승부 강함』 (가도카와 one 테마 21, 2013년 7월, ISBN 978-4041105160)
- 『수비의 힘』 (고분샤 신쇼, 2014년 12월, ISBN 978-4334038328)
- 『내야 수비의 신상식 4포지션의 철칙·역설 & 배터리·외야·공격과의 관계』 (고사이도 출판, 2019년 8월, ISBN 978-4331522387)
- 『이바타 히로카즈의 유격수 「초」전문 강좌』 (베이스볼 매거진사, 2019년 9월, ISBN 978-4583112350)
- 『아라이바의 철칙』 (고사이도 출판, 2020년 7월 20일, ISBN 978-4-331-52296-7) - 아라키 마사히로와 공저
- 『야구관 ~승부를 가르는 두뇌와 감성~』 (일본문예사, 2022년 6월 2일, ISBN 978-4-537-21994-4)
- 『최강 이루수유격수론』 (엑시아 출판, 2022년 10월 3일, ISBN 978-4-910-88401-1)
- 『소년 야구 잘하는 선수는 이렇게 한다 「치고·달리고·던지고·수비하는」』 (일본문예사, 2023년 7월 23일, ISBN 978-4-537-22122-0)
9. 유산 및 평가
이바타 히로카즈는 일본 프로 야구에서 독보적인 수비력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선수이다. 특히 아라키 마사히로와 함께 '아라이바 콤비'로 불리며 보여준 환상적인 키스톤 콤비 플레이는 수비의 예술 경지를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가 유격수로서 7번의 골든 글러브를 수상하며 이 부문 역대 2위를 기록한 것은 그의 수비 능력이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증명한다. 단지 화려함만이 아니라 견실함을 추구하는 그의 수비 철학은 후배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선수 시절 '끈질긴 타격'으로 팀에 기여했던 그는, 2000안타에 근접한 타격 실력과 함께 필요할 때마다 해결사 역할을 수행하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눈병과 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현역 생활을 이어가며 보여준 투지와 불굴의 정신은 많은 팬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은퇴 후 지도자로서의 빠른 전환과 성공은 그의 리더십과 야구에 대한 깊은 이해를 보여준다. 요미우리 코치와 사회인 야구 팀 임시 코치를 거쳐,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의 유소년 감독과 최고 팀 감독이라는 중책을 맡은 것은 그의 역량과 비전을 인정받은 결과이다. 특히 U-15 월드컵 우승과 아시아 프로 야구 챔피언십 우승은 그가 단순히 과거의 명성을 가진 선수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일본 야구를 이끌어갈 중요한 인물임을 입증한다. 그의 지도력은 선수 개개인의 기술 향상을 넘어, 팀 전체의 정신력과 조직력을 강화하는 데 기여하며 일본 야구의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바타 히로카즈는 그의 선수 경력과 지도자로서의 활약을 통해 일본 야구 역사에 길이 남을 중요한 인물로 기억될 것이다.
10. 같이 보기
- 가나가와현 출신 인물 목록
- 아시아 대학
- 주니치 드래곤스 선수 목록
- 요미우리 자이언츠 선수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