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기 생애 및 배경
오펠리아 메디나는 멕시코 메리다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멕시코시티로 이주하여 학업과 예술 훈련을 병행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예술 분야에 대한 그녀의 열정을 반대했지만, 어머니의 지지 덕분에 꿈을 이룰 수 있었다.
1.1. 출생 및 가족
오펠리아 메디나는 1950년 3월 4일 유카탄주 메리다에서 태어났다. 그녀에게는 아르투로, 레오, 에르네스토, 베아트리스 네 명의 형제자매가 있다. 여덟 살 때 가족과 함께 멕시코시티로 이주하여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과정을 마쳤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가 예술 분야에 전념하는 것을 반대했지만, 어머니의 전폭적인 지지 덕분에 예술가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고 여러 인터뷰에서 밝혔다.
1.2. 교육 및 초기 훈련
오펠리아 메디나는 멕시코시티에서 멕시코 무용 아카데미(Academia de Danza Mexicana)에 다니며 무용을 공부했고, 현대 및 지역 고전 무용 공연자이자 교사로 졸업했다. 1961년, 열한 살의 나이에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가 창설한 아동 판토마임 그룹에 소속되었으며, 그녀는 조도로프스키를 자신의 첫 스승으로 여긴다. 1968년에는 멕시코 국립 자치 대학교(UNAM)의 국립 예비 학교 학생이었다. 1977년에는 로스앤젤레스에서 리 스트라스버그에게 연기를 배웠고, 이후 덴마크의 오딘 극단(Odin Teatret)에서 훈련을 계속하기 위해 유럽으로 이주했다.
2. 경력
오펠리아 메디나는 연기, 노래, 각본, 연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재능을 발휘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특히 멕시코와 할리우드를 오가며 다채로운 역할을 소화했으며,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에도 참여했다.

2.1. 연기 경력
메디나의 전문 예술가로서의 데뷔는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와 함께한 연극 《H3O》였다. 이후 훌리오 카스티요와 작업하던 중 오펠리아 길마인의 눈에 띄었고, 길마인은 그녀를 에밀리오 아스카라가 비다우레타에게 소개했다. 아스카라가는 그녀를 루이스 데 야노에게 보냈고, 데 야노는 그녀에게 《루시아 솜브라》에서 주연을 맡을 기회를 주며 "낭만적인 히로인"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2.1.1. 영화 출연
오펠리아 메디나는 1968년 멕시코 영화 《라 파스》로 영화계에 데뷔했으며, 10년 후인 1978년에는 할리우드 영화 《빅 픽스》로 할리우드에 진출했다. 1984년에는 폴 레둑 감독의 영화 《살아있는 프리다》에서 멕시코의 유명 화가 프리다 칼로 역을 맡아 열연했으며, 이 작품을 통해 "멕시코 원주민에 대한 사랑, 공산주의, 초현실주의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1991년 캐나다 영화 《외교적 면책특권》에서의 연기로 지니상 후보에 지명되었다.
그녀의 주요 영화 출연작은 다음과 같다.
- 《라 파스》(1968)
- 《패치, 내 사랑》(1969) - 패치 역
- 《부정한 자들》(1969)
- 《피라냐는 사순절에 사랑한다》(1969) - 미르타 / 딸 역
- 《모래 인물들》(1970)
- 《딸들의 반란》(1970)
- 《파라이소》(1970) - 마갈리 역
- 《천국의 문》(1971) - 루시아 역
- 《맨발의 독수리》(1971) - 초나 역
- 《변화》(1971)
- 《인형 여왕》(1972) - 아밀라미아 역
- 《아폴리나르》(1972)
- 《바람은 무슨 색인가》(1973) - 아델리타 역
- 《세상에 맞서는 하나 반》(1973)
- 《버섯의 남자》(1976) - 루실라 역
- 《팔로밀라 구조대》(1977) - 엘리사 역
- 《신비한 휴가》(1976) - 엘리사 역
- 《보키야 마을》(1981)
- 《음모 석유: 히드라의 머리》(1981)
- 《살아있는 프리다》(1983) - 프리다 칼로 역
- 《티후아나로 가는 긴 길》(1988) - 리타 역
- 《공포의 오르기아》(1990)
- 《헤르트루디스 보카네그라》(1992) - 헤르트루디스 보카네그라 역
- 《로사리오에게 바치는 녹턴》(1992) - 로사리오 데 라 페냐 역
- 《친밀한 공포》(1992)
- 《침묵의 벽》(1993) - 실비아 역
- 《사랑에 대해 말할 때》(2002) - 그라시엘라 가르보 역
- 《날아다니는 에세키엘》(2004, 단편) - 엄마 역
- 《이노센트 보이스》(2004) - 토야 할머니 역
- 《안락사 클럽》(2005) - 감독 역
- 《소금물》(2005) - 올비도 역
- 《아름다운 죽음》(2005, 단편)
- 《설화 석고 여인》(2006)
- 《아이 러브 마이애미》(2006) - 도냐 에밀리아 역
- 《칼레우체: 바다의 부름》(2006) - 이사벨 수녀 역
- 《나우알라의 전설》(2007) - 나우알라 (목소리) / 마초로 부인 (목소리) 역
- 《좋은 허브》(2010) - 랄라 역
- 《콜롬비아나》(2011) - 엄마 역
-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2011) - 회색 옷을 입은 여인 역
- 《푸른 눈》(2012) - 약스테 역
- 《파노라마》(2013) - 오펠리아 역
- 《마초》(2016) - 에바리스토 엄마 역
- 《아무도 모를 것이다》(2018) - 피델라 역
- 《플랜 V》(2018)
- 《노 맨스 랜드》(2021)
2.1.2. 텔레비전 출연 (텔레노벨라 및 TV 쇼)
오펠리아 메디나는 텔레비전 드라마와 쇼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했다. 1971년에는 프로듀서 에르네스토 알론소의 부름을 받아 시리즈 《란두르》에 처음 출연했으며, 이어서 《루시아 솜브라》(1971)에서 주연을 맡았다. 이후 《라 히에나》(1973)에서는 암파로 리벨레스와 함께, 《팔로마》(1975)에서는 안드레스 가르시아와 함께 출연했다. 1977년에는 텔레노벨라 《리나》에서 꼽추 역을 맡아 대중과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이 시기에 등 통증으로 수술을 받기도 했다. 그녀는 또한 《라 세뇨라 호벤》, 《팔로마》, 엔리케 알바레스 펠릭스와 함께한 《리나》, 《라 글로리아 이 엘 인피에르노》, 그리고 엑토르 멘도사가 연출한 《토다 우나 비다 데삼》에 출연했는데, 이 작품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마리아 코네사와 다른 여배우들의 삶을 바탕으로 했다. 《평생 동안》이라는 텔레노벨라에도 참여했는데, 이 작품은 페루와 멕시코에서 일부 촬영되었으며, 유명한 《비비르 운 포코》의 새로운 버전이었다. 《아 코라손 아비에르토》에서는 특별 출연했다.
그녀의 주요 텔레노벨라 및 TV 쇼 출연작은 다음과 같다.
- 《가면들》(1971)
- 《루시아 솜브라》(1971) - 루시아 솜브라 역
- 《젊은 부인》(1972) - 수사나 리카르테 역
- 《하이에나》(1973) - 이사벨 솔리스 역
- 《팔로마》(1975) - 팔로마 역
- 《리나》(1977) - 리나 역
- 《평생》(1981) - 알레한드라 파스토라 역
- 《영광과 지옥》(1986) - 이네스 아르테아가 역
- 《평생 동안》(1996) - 엘레나 역
- 《아 코라손 아비에르토》(2012) - 이레네 데 산체스 역
- 《로스 레이》(2012)
- 《가족의 비밀》(2013)
- 《탄토 아모르》(2015) - 실비아 이투르비데 브다. 데 롬바르도 역
- 《살인자들: 궁지에 몰린 모니카》(2008) - 베아트리스 페르난데스 역
2.1.3. 연극 활동
오펠리아 메디나는 전 세계 여러 극장에서 공연했다. 그녀는 움베르토 로블레스의 연극 《결코 존재하지 않았던 밤》을 연출하고 주연을 맡았으며, 이 작품은 2014년 에밀리오 카르바히도 국립 드라마상을 수상했다. 그녀는 또한 2006년 5월 산살바도르 아텐코 탄압에 대한 연극 《두려움 없는 여성들: 우리는 모두 아텐코다》에 참여했으며, 베고냐 레쿰베리, 훌리에타 에구롤라, 카르멘 우에테, 프란체스카 기옌, 움베르토 로블레스 등 배우 및 초청 음악가들과 함께 동명의 그룹에 소속되어 있다. 2000년부터는 연극 《각자의 프리다》에서 프리다 칼로 역을 연기했으며, 2007년에는 이 작품으로 덴마크의 오르후스, 코펜하겐, 오덴세를 순회 공연했다. 그녀는 《버자이너 모놀로그》, 《각자의 프리다》, 《친밀하게, 치아파스의 로사리오》 등 다양한 연극에 출연했으며, 이 중 후자 두 작품은 그녀가 직접 쓰고 연출하고 연기했다. 2009년에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멕시코의 목소리》를 초연했는데, 이 작품에서 프리다 칼로, 소르 후아나 이네스 데 라 크루스, 로사리오 카스테야노스 등 멕시코 역사 속 여성 인물들을 연기했다.
2.2. 노래 및 각본
오펠리아 메디나는 배우 활동 외에도 가수로 두 장의 음반을 발매했으며, 영화 각본가로도 활동했다. 특히 그녀가 직접 연출할 첫 영화의 각본을 집필했다.
2.3. 연출 경력
2016년 7월, 오펠리아 메디나는 그해 말에 감독으로서 첫 영화 촬영을 시작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영화는 마야 공동체의 한 소년에 대한 이야기로, 그녀 자신이 각본을 썼으며 현실에서 영감을 받았다.
3. 사상 및 활동
오펠리아 메디나는 연기 활동 외에도 멕시코 남부의 원주민을 지지하는 등 정치적, 사회적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왔다. 그녀는 특히 인권 옹호와 사회 정의 실현을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3.1. 원주민 지원
메디나는 현재 멕시코 남부 원주민의 적극적인 지지자이다. 그녀의 자서전에서 1983년 폴 레둑 감독의 영화 《살아있는 프리다》에 출연하며 프리다 칼로 역을 맡은 덕분에 "멕시코 원주민에 대한 사랑, 공산주의, 초현실주의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회고했다. 1985년에는 멕시코 원주민의 인권 보호를 위한 최초의 멕시코 조직인 "소외된 민족 집단과의 연대 위원회"의 공동 설립자였다. 이 위원회는 멕시코의 기아 문제에 대한 세미나로 시작하여, 이후 멕시코 교도소에 수감된 원주민 죄수들의 변호와 원주민 공동체와의 문화 활동으로 확대되었다. 이때부터 오펠리아 메디나는 멕시코에서 인권 옹호 활동으로 인해 위협을 받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1990년에는 "멕시코 원주민 아동 건강을 위한 신탁 기금"(Trust for the Health of Indigenous Children of Mexico, A.C.)을 공동 설립했으며, 같은 해 이 기금은 치아파스주의 사파티스타 공동체에서 영양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3.2. 인권 옹호
메디나는 인권 옹호 활동으로 인해 위협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활동을 이어갔다. 그녀는 현재 인권 아카데미, 소외된 민족 집단과의 연대 위원회 재단, 유엔 평화 위원회, 그리고 100인 그룹의 회원이다. 2006년에는 여성 인권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후아레스: 여성들이 버려지는 도시》에 참여하기도 했다.
3.3. 사회 운동 참여
오펠리아 메디나는 사파티스타 운동과 같은 주요 사회 운동 및 정치적 사건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녀는 사파티스타 영토 내 선거를 조직하고 해당 선거의 부정을 고발했으며, 선거 변호사로 활동했다. 또한 치아파스주 평화 대화의 시민 사회 그룹과 산 안드레스 협정의 공식화에 참여했다. 1998년에는 멕시코를 다민족, 다문화 국가로 규정하기 위해 멕시코 헌법 제4조 개정을 추진한 그룹의 일원이었다. 그녀는 "치아파스주 정부가 나를 주 내에서 '페르소나 논 그라타'로 선언하고 추방하려 했지만,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현재까지 그곳에서 계속 일하고 있다"고 밝혔다.
4. 개인적인 삶
오펠리아 메디나는 두 번 결혼했으며, 두 명의 자녀를 두었다.
4.1. 결혼 및 자녀
오펠리아 메디나는 영화 감독 알렉스 필립스 주니어와 1973년에 결혼하여 1978년에 이혼했다. 이후 배우 페드로 아르멘다리스 주니어와 1981년에 결혼했으며, 그는 2011년에 사망했다. 그녀는 두 명의 자녀를 두었다.
5. 수상 및 후보 지명
오펠리아 메디나는 그녀의 연기 경력을 통해 여러 상을 수상하고 후보로 지명되었다.
- 2005년 아리엘상
- 《이노센트 보이스》로 여우조연상 수상
- 1991년 지니상
- 《외교적 면책특권》으로 여우조연상 후보 지명
6. 음반
오펠리아 메디나는 두 장의 음반을 발매했다.
- 《토다 우나 비다》(1982)
- 《소르 후아나 오늘》(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