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기 생애
엔리케 페르난데스 비올라는 1912년 6월 10일 우루과이의 수도인 몬테비데오에서 태어났다.
2. 선수 경력
페르난데스의 선수 경력은 우루과이와 스페인을 넘나들며 중요한 대회 우승과 인상적인 활약을 기록했다. 특히 나시오날 소속으로 두 차례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을 차지하고,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의 남미 축구 선수권 대회 우승에 기여하며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다.
2.1. 클럽 경력
페르난데스는 선수로서 우루과이의 나시오날에서 활약하며 1933년과 1934년에 두 차례 리그 우승을 경험했다. 1935년 1월, 그는 바르셀로나에 입단하여 플러트코 페렌츠 감독과 패트릭 오코넬 감독의 지도 아래 팀이 두 차례 카탈루냐 선수권 대회 우승을 차지하는 데 일조했다. 또한, 코파 데 에스파냐 결승에 진출하는 데에도 기여했다. 바르셀로나 시절 그의 팀 동료로는 벨라스코, 라마예츠, 에스타니슬라오 바소라, 주제프 에스콜라, 그리고 도메네크 발마냐 등이 있었다.
페르난데스와 발마냐는 1935년 11월 10일 에스파뇰과의 경기에서 0-1로 패배하며 바르셀로나 소속으로 라리가 데뷔전을 치렀다. 그는 바르셀로나에서 총 17번의 라리가 경기에 출전하여 8골을 기록했다. 특히 1936년 3월 29일 오사수나를 상대로 5-0 승리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했으며, 1936년 4월 4일 아틀레틱 빌바오와의 경기에서는 2골을 추가했다. 1936년 4월 19일, 에르쿨레스와의 2-2 무승부 경기가 그의 마지막 라리가 출전이었다.
이후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면서 그의 바르셀로나 선수 경력은 끝나게 되었다. 전쟁 발발 당시 그는 몬테비데오에 있었고, 구단은 그에게 그곳에 머무르도록 권고했다. 또한 타예레스 RE와 인데펜디엔테에서도 선수로 활동했다.
2.2. 국제 경력
페르난데스는 1935년 1월, 나시오날에서 활약하던 중 우루과이 국가대표팀에 합류하여 1935년 남미 축구 선수권 대회 우승을 이끄는 데 기여했다. 당시 엑토르 카스트로는 그의 나시오날과 우루과이 국가대표팀 동료였다.
바르셀로나 소속 시절에는 카탈루냐 대표팀 경기에 세 차례 출전하기도 했다. 1936년 1월 19일, 그는 바르셀로나의 구장인 레스 코르츠에서 체코슬로바키아의 SK 시데니체를 상대로 주제프 사미티에르 헌정 경기에 나섰다. 이 경기에서 사히바르바와 도메네크 발마냐도 카탈루냐 대표팀의 일원으로 뛰었다.
3. 감독 경력
선수 생활을 마감한 엔리케 페르난데스는 곧바로 축구 감독으로 변신하여 여러 클럽과 국가대표팀을 이끌며 성공적인 지도력을 선보였다. 특히 스페인의 두 거대 클럽인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에서 모두 라리가 우승을 달성하며 역사에 남을 독특한 업적을 세웠다.
3.1. 클럽 지도
무릎 부상으로 선수 경력을 마친 페르난데스는 감독이 되어 1946년 나시오날을 이끌고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1947년, 그는 스페인으로 돌아와 라리가의 바르셀로나 감독으로 부임했다. 벨라스코, 라마예츠, 에스타니슬라오 바소라 등의 선수들을 지도하며, 1948년과 1949년에 두 차례 라리가 우승을 이끌었다. 그의 세 번째 시즌에는 바르셀로나의 역사상 첫 주요 국제 대회 우승인 라틴배를 들어 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리가에서 5위에 머물면서 다음 시즌에는 페르디난트 다우치크에게 지휘봉을 넘겨주었다.
바르셀로나를 떠난 후, 페르난데스는 다시 나시오날의 감독을 맡아 1950년에 두 번째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1953-54 시즌, 그는 레알 마드리드의 사령탑에 취임했다.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프란시스코 헨토, 미겔 무뇨스, 루이스 몰로니, 그리고 엑토르 리알 등 전설적인 선수들로 구성된 팀을 이끌고 레알 마드리드의 1933년 이후 첫 라리가 우승을 달성했다. 그는 1954-55 시즌 초반 10경기 동안 레알 마드리드를 지휘했으나, 이후 호세 비얄롱가에게 감독직을 넘겨주었다.
페르난데스는 1959-60 시즌 동안 베티스를 10경기 지휘하기도 했다. 그는 또한 1955년부터 1956년까지 칠레의 콜로-콜로를 이끌며 프리메라 디비시온 1956 시즌 우승을 달성했다. 포르투갈의 스포르팅 CP에서는 1957년부터 1959년까지, 아르헨티나의 리버 플레이트에서는 1963년에, 그리고 칠레의 팔레스티노에서는 1965년에 감독직을 수행했다.
3.2. 국제 지도
페르난데스는 1961년 7월 우루과이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볼리비아와의 두 차례 1962년 FIFA 월드컵 예선 경기를 치렀다. 이후 1967년부터 1969년까지 다시 우루과이 국가대표팀을 지휘하기도 했다.
4. 수상 경력
엔리케 페르난데스는 선수와 감독 경력을 통틀어 다수의 중요한 타이틀을 획득했다.
4.1. 선수 수상
;나시오날
-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1933, 1934
;우루과이
- 남미 축구 선수권 대회: 1935
;바르셀로나
- 코파 데 에스파냐 준우승: 1936
- 카탈루냐 선수권 대회: 1934-35, 1935-36
4.2. 감독 수상
;나시오날
-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1946, 1950
;바르셀로나
- 라리가: 1947-48, 1948-49
- 라틴배: 1949
;레알 마드리드
- 라리가: 1953-54
;콜로-콜로
- 프리메라 디비시온: 1956
5. 사망
엔리케 페르난데스 비올라는 1985년 10월 6일, 그의 고향인 몬테비데오에서 사망했다.
6. 유산
엔리케 페르난데스의 가장 두드러진 업적은 FC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라는 스페인 축구의 두 거대 라이벌 클럽에서 모두 라리가 우승을 이끈 유일한 감독이라는 점이다. 이는 라도미르 안티치와 함께 이 두 클럽을 모두 지휘했던 감독 중에서도 그만이 달성한 전례 없는 기록으로, 그의 탁월한 전술적 능력과 지도력을 입증한다. 그의 이러한 업적은 스페인 축구 역사상 독특하고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으며, 그를 기억하는 중요한 상징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