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Overview
에리크 드플랑드르(Éric Deflandre프랑스어, 1973년 8월 2일 출생)는 벨기에의 전직 축구 선수로, 현역 시절 우측 수비수로 활약했다. 그는 벨기에 프로 리그의 RFC 리에주, KFC 헤르미날 에케런, 클뤼프 브뤼허 KV와 프랑스 리그 1의 올랭피크 리옹 등 여러 클럽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특히 올랭피크 리옹에서는 리그 1에서 3회 연속 우승을 차지하며 클럽의 황금기 초석을 다지는 데 기여했다. 또한 벨기에 축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서 1998년 FIFA 월드컵, UEFA 유로 2000, 2002년 FIFA 월드컵 등 주요 국제 대회에 참가하며 벨기에 축구에 헌신했다.
2. 생애 초반
에리크 드플랑드르는 1973년 8월 2일 벨기에 리에주 주 로쿠르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축구와 깊은 인연이 있었으며, 그의 아버지 마르셀과 남동생 장-마르크 또한 축구 선수였다.
2.1. 어린 시절과 유소년 경력
드플랑드르는 어린 시절 남동생 장-마르크와 함께 왕드르 유니온에서 축구 경력을 시작했다. 1년 후, 그는 과거 그의 아버지가 몸담았던 RFC 리에주의 유소년팀에 입단 테스트를 거쳐 합류했다. RFC 리에주 유소년 시절, 드플랑드르는 처음에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었으나, 훗날 에리크 게러츠 감독의 조언에 따라 오른쪽 수비수로 포지션을 변경하게 되었다. 이러한 포지션 변경은 그의 선수 경력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1991년에 RFC 리에주와 프로 계약을 체결했다.
2.2. 가족
드플랑드르의 아버지 마르셀과 남동생 장-마르크는 모두 전직 축구 선수였다. 특히 그의 남동생 장-마르크 드플랑드르는 2014년 1월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비극을 겪었다.
3. 클럽 경력
에리크 드플랑드르는 그의 선수 경력 동안 벨기에와 프랑스의 여러 주요 클럽에서 활약하며 꾸준한 모습을 보였다.
3.1. 유소년 및 초창기 프로 경력
드플랑드르는 어린 시절 반드러 우니온에서 축구를 시작했으며, 1년 뒤 RFC 리에주의 유소년 팀에 합류했다. 그는 1991년 RFC 리에주와 프로 계약을 맺고 17세부터 21세까지 4년 동안 약 100경기에 가까운 공식 경기에 출전하며 팀의 주축 선수로 성장했다. 그러나 클럽이 파산 위기에 직면하자, 그는 이적을 결심하게 되었다. 1994-95 시즌 종료 후 프랑스 2부 리그의 FC 마르티그와 스타드 라발로부터 좋은 조건의 제안을 받았으나, 그의 에이전트 이브 바레는 젊은 나이에 해외로 진출하기보다는 벨기에 국내에서 입지를 다지는 것이 우선이라고 조언했다. 이에 따라 드플랑드르는 동료 베르나르 위그리아, 크리스토프 키네트와 함께 KFC 헤르미날 에케런과 계약했다. 헤르미날 에케런에서 그는 팀이 리그 3위를 달성하는 데 기여하며 짧지만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3.2. 클뤼프 브뤼허
헤르미날 에케런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드플랑드르는 1996년 벨기에 프로 리그의 강팀인 클뤼프 브뤼허 KV로 이적했다. 이적 첫 시즌인 1996-97 시즌에는 최종전에서 그의 은사인 에리크 게러츠 감독이 이끄는 리르서 SK에게 아쉽게 우승을 내주며 리그 2위로 시즌을 마쳤다. 하지만 다음 시즌인 1997-98 시즌에는 다시 게러츠 감독의 지도를 받으며 클뤼프 브뤼허와 함께 그의 선수 경력 첫 리그 우승을 경험했다. 같은 해 벨기에 슈퍼컵에서도 우승을 차지하며 겹경사를 누렸다.
3.3. 올랭피크 리옹
2000년 7월 5일, 드플랑드르는 9000.00 만 BEF에서 1.20 억 BEF로 추정되는 이적료에 4년 계약으로 프랑스 리그 1의 올랭피크 리옹으로 이적했다. 리옹에서 그는 클럽 역사상 최초의 리그 우승을 포함하여 2001-02, 2002-03, 2003-04 시즌까지 3년 연속 리그 우승을 달성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는 훗날 리옹이 7연패를 달성하는 황금기의 초석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폴 르 구엔 감독의 신뢰를 얻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UEFA 챔피언스리그 2002-03 로젠보리 BK와의 경기에서는 하랄 브라트바크에게 페널티킥을 내주는 실수를 범하기도 했다. 비록 이 경기에서 페기 뤼앵둘라의 득점을 어시스트하긴 했지만, 수비적인 장-마르크 샤넬레와 본래 중앙 수비수인 파트리크 뮐러와 오른쪽 수비수 포지션을 놓고 경쟁해야 했다. 리옹에서의 마지막 해인 2003-04 시즌에는 새로 영입된 앙토니 레베이에르의 존재로 인해 그의 입지가 더욱 불확실해졌고, 스타드 렌으로의 이적설이 돌기도 했다. 결국 그는 2003-04 시즌 종료와 함께 계약이 만료되자 리옹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올랭피크 리옹 소속으로 그는 2000-01 쿠프 드 라 리그와 2003 트로페 데 샹피옹에서도 우승을 경험했다.
3.4. 스탕다르 리에주
2004년 4월 27일, 드플랑드르는 벨기에 무대로 복귀하여 스탕다르 리에주와 2년 연장 옵션이 포함된 3년 계약을 체결했다. 그는 입단 첫 시즌 만에 이비차 드라구티노비치의 후임으로 팀의 주장을 맡으며 빠르게 팀의 핵심 선수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2004년 12월 UEFA컵 2004-05에서 아틀레틱 빌바오와의 홈 경기에서 1대7로 대패하는 최악의 경험을 하기도 했다.
다음 시즌인 2005-06 시즌에는 미셸 프뢰돔 신임 감독의 결정에 따라 새로 영입된 세르지우 콘세이상에게 주장 완장을 넘겨주었으나, 자신은 부주장으로서 팀을 지탱했다. 이 시즌에 스탕다르 리에주는 리그 우승을 눈앞에 두었으나, 최종전 직전 KSV 루셀라레와의 경기에서 상대 골키퍼 바우터르 비바우의 선방에 막혀 0대0으로 비기면서 자력 우승 가능성을 잃었다. 결국 스탕다르 리에주는 리그 2위로 시즌을 마쳤다.
이전 두 시즌 동안 주전 오른쪽 수비수로 활약했지만, 2006-07 시즌에는 개막 후 3경기만 선발 출전한 뒤 프레데리크 뒤프레에게 주전 자리를 빼앗기며 어려운 시작을 맞이했다. 결국 이 시즌 그의 출전 기회는 예년보다 감소했다. 시즌 종료 후 계약이 만료되었고, 구단과 2년 연장 옵션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으나, 휴가 후 구단은 1년 연장으로 조건을 변경하고 드플랑드르가 희망하는 급여와 차이가 발생하면서 결국 팀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3.5. 선수 경력 말년 및 은퇴
2007년 6월 14일, 드플랑드르는 FC 브뤼셀과 2년 계약을 맺고 이적하며 큰 기대를 모았다. 그는 FC 브뤼셀에서 오른쪽 수비수로 안정적인 활약을 펼쳤지만, 요한 베르메르스 회장과의 비전 차이로 인해 불과 6개월 만인 2008년 1월 18일, 같은 1부 리그 팀인 FCV 덴더르 EH로 1년 반 계약으로 이적했다.
FC 브뤼셀과 마찬가지로 강등 위기에 처해 있었던 덴더르는 브뤼셀과는 달리 좋은 분위기와 1부 리그 잔류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요한 보스캄프 감독의 지휘 아래 팀은 잔류를 달성했고, 그의 전 소속팀인 FC 브뤼셀은 최하위로 강등되었다. 다음 시즌인 2008-09 시즌에는 리그 팀 수가 18개에서 2개 감소하는 영향으로 15위를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승강 플레이오프에 참여하여 결국 2부 리그로 강등되었다.
덴더르로부터 잔류를 설득받았으나, 재정난으로 인해 계약 조건이 하향 조정되어 제시되자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팀을 떠났다. 이후 RFC 투르네와 KSV 루셀라레로부터 제의가 있었지만, 당시 그가 거주하던 벨기에 림뷔르흐주 란아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거절했다. 최종적으로 그는 2009년 6월 25일 2부 리그의 리르서 SK와 1년 계약을 체결했다. 리르서에서 그는 2부 리그 우승과 승격을 달성하는 데 기여했지만, 나이 문제로 인해 재계약에는 실패했다.
2010년 8월 9일, 37세의 나이로 그는 프로 경력을 시작했던 친정팀 RFC 리에주로 돌아왔다. 두 번째 리에주 생활에서 그는 과거 동료였던 크리스토프 키네트와 재회했고, 주장으로서 팀을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팀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2011년 1월 14일, 클럽 수뇌부는 세르주 키모니 감독의 후임으로 키네트와 함께 드플랑드르를 감독으로 임명했다. 키네트는 감독직을 맡았고, 드플랑드르 자신은 선수 생활을 계속하면서 수석 코치를 겸임했다. 그러나 결국 팀은 3부 리그에서 4부 리그로 강등되었다.
2012년 5월 16일, 그는 스탕다르 리에주의 유소년팀 감독으로 취임하기로 결정했고, 이로 인해 5월 17일 공식적으로 현역 선수에서 은퇴하며 감독 활동에 전념하게 되었다.
4. 국가대표팀 경력
에리크 드플랑드르는 벨기에 축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오랜 기간 활약하며 주요 국제 대회에 참가했다.
4.1. 국가대표팀 데뷔 및 주요 출전
드플랑드르는 1996년 12월 1998년 FIFA 월드컵 유럽 지역 예선 네덜란드와의 경기(0대3 패배)에서 선발 출전하며 벨기에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 이후 1996년부터 2005년까지 총 57경기에 출전하며 벨기에 국가대표팀의 오른쪽 수비수 포지션을 레지스 죄노, 베르트랑 크라송, 자키 피터스 등 여러 경쟁자들과 다투면서도 꾸준히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4.2. 주요 국제 대회
드플랑드르는 세 번의 주요 국제 대회에 벨기에 국가대표로 참가했다.
- 1998년 FIFA 월드컵: 대회 첫 경기인 네덜란드전(0대0 무승부)에서 전반 22분경 마르크 오버르마르스에게 고전하던 베르트랑 크라송과 교체 투입되어 경기에 나섰다.
- UEFA 유로 2000: 공동 개최국인 벨기에의 일원으로 출전했으며, 조별 리그 3경기에 모두 선발 출전했다. 특히 튀르키예전에서 벨기에의 필리프 더 빌더 골키퍼가 레드카드를 받고 퇴장당하자, 드플랑드르는 그를 대신하여 골키퍼로 나서 경기를 마무리하는 이색적인 경험을 했다.
- 2002년 FIFA 월드컵: 이 대회에서도 벨기에 대표팀의 일원으로 참가하여 튀니지전에서 선발 출전했다. 벨기에는 이 대회에서 FIFA 페어플레이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4.3. 국제 통계
드플랑드르는 벨기에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1996년부터 2005년까지 총 57경기에 출전했으며, 득점 기록은 없다.
연도 | 출전 | 득점 |
---|---|---|
1996 | 1 | 0 |
1997 | 2 | 0 |
1998 | 9 | 0 |
1999 | 6 | 0 |
2000 | 9 | 0 |
2001 | 8 | 0 |
2002 | 7 | 0 |
2003 | 6 | 0 |
2004 | 7 | 0 |
2005 | 2 | 0 |
총합 | 57 | 0 |
5. 은퇴 후 경력
선수 은퇴 후 에리크 드플랑드르는 축구계에 남아 새로운 역할을 맡았다. 2012년 5월 16일, 그는 자신이 선수 시절 활약했던 스탕다르 리에주의 유소년팀 감독으로 공식 취임하며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6. 수상 경력
에리크 드플랑드르가 선수 경력 동안 달성한 주요 우승 기록 및 수상 내역은 다음과 같다.
클럽
- 클뤼프 브뤼허 KV
- 벨기에 퍼스트 디비전: 1997-98
- 벨기에 슈퍼컵: 1998
- 올랭피크 리옹
- 프랑스 퍼스트 디비전: 2001-02, 2002-03, 2003-04
- 쿠프 드 라 리그: 2000-01
- 트로페 데 샹피옹: 2003
국가대표팀
- 벨기에 축구 국가대표팀
- FIFA 페어플레이 트로피: 2002
7. 평가와 유산
에리크 드플랑드르는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벨기에와 프랑스 축구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선수로 평가받는다. 그는 특히 프랑스 올랭피크 리옹에서 3연속 리그 우승이라는 전례 없는 성공을 거두며 클럽의 황금기를 여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벨기에 국가대표팀에서도 꾸준히 오른쪽 수비수로서 활약하며 두 차례의 FIFA 월드컵과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는 등 국제적인 경험을 쌓았다. 그의 다재다능함은 UEFA 유로 2000에서 골키퍼로 뛰는 이색적인 상황에서도 나타났듯이, 팀에 헌신하는 그의 자세를 보여주었다. 선수 은퇴 후 유소년팀 감독으로 변신하여 후진 양성에도 기여하는 등 축구에 대한 변함없는 열정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