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야마다 노부히사(山田 暢久やまだ のぶひさ일본어, 1975년 9월 10일~)는 일본의 전 축구 선수이자 축구 지도자이다. 시즈오카현 후지에다시 출신으로, 그는 주로 미드필더와 수비수로 활약했으나, 골키퍼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에서 뛸 수 있는 다재다능한 선수로 알려져 있다. J1리그의 우라와 레즈에서 1994년 입단 이후 2013년 은퇴할 때까지 20년간 한 팀에서만 뛰며 500경기 이상 출장한 '원클럽맨'이자 팀의 상징적인 존재인 '반디에라'였다.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서도 15경기에 출전하여 1골을 기록했다.
2. 유년기 및 초기 경력
야마다 노부히사는 학창 시절부터 축구에 두각을 나타냈으며, 이후 프로 무대에 성공적으로 데뷔하여 다재다능한 선수로 성장했다.
2.1. 유년기 및 학창 시절
야마다 노부히사는 1975년 9월 10일 시즈오카현 후지에다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동생인 야마다 도모키 또한 전 프로 축구 선수이다. 그는 후지에다 시립 이나바 초등학교와 후지에다 시립 후지에다 중학교를 거쳐 1991년부터 1993년까지 시즈오카 현립 후지에다 히가시 고등학교에서 축구 선수로 활동하며 기반을 다졌다. 신장은 175 cm, 체중은 72 kg이었다.
2.2. 프로 데뷔 및 초기 활동
고등학교 졸업 후, 야마다 노부히사는 1994년 우라와 레즈에 입단하며 프로 경력을 시작했다. 그는 1994년 4월 27일 시미즈 에스펄스와의 경기에서 프로 리그 데뷔전을 치렀으며, 이 경기는 구사나기 종합운동장 육상경기장에서 열렸다. 같은 해 11월 19일 요코하마 F. 마리노스와의 경기에서는 도야마 현 종합운동공원 육상경기장에서 자신의 첫 프로 득점을 기록했다. 데뷔 초에는 후쿠다 마사히로와 투톱을 이루는 공격수로도 기용되었으나, 1995년부터는 주로 오른쪽 풀백 또는 오른쪽 윙백으로 활약했다. 이 외에도 공격형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센터백 등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하며 그의 다재다능함을 입증했다.
3. 클럽 경력
야마다 노부히사는 우라와 레즈에서 20년간 활약하며 팀의 '원클럽맨'이자 상징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500경기 이상의 리그 경기에 출전하며 수많은 기록과 업적을 달성했다.
3.1. 우라와 레즈에서의 활약
야마다 노부히사는 1994년 우라와 레즈에 입단한 이래, 2013년 은퇴할 때까지 20년간 오직 우라와 레즈에서만 뛰었다. 그는 주로 오른쪽 수비수나 미드필더로 활약했지만, 스토퍼, 리베로, 공격형 미드필더 등 골키퍼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다재다능함을 보여주었다. 2004년부터 2008년까지는 팀의 주장을 맡아 리더십을 발휘했다.
그의 클럽 경력은 다음과 같은 주요 활약으로 점철되었다:
- 2003년**: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의 오른쪽 풀백 주전으로 자리매김했으며, 팀에서도 오른쪽 윙백 주전으로 활약했다. J리그컵에서 우승하며 선수 경력 첫 번째 타이틀을 획득했다.
- 2004년**: J1리그 1st 스테이지에서는 오른쪽 윙백으로, 야마세 고지의 부상으로 이탈한 2nd 스테이지에서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2nd 스테이지 우승을 이끌었다. 당시 주장을 맡아 팀의 마지막 스테이지 우승을 장식했으나, 챔피언십에서는 요코하마 F. 마리노스에 패배했다.
- 2005년**: 8월 24일 비셀 고베와의 경기에서 J1리그 통산 300경기 출장을 달성했다. 이는 20대 선수 중 리그 최초 기록이었다.
- 2006년**: 시즌 초반에는 오른쪽 사이드에서 출전했으나, 여름에 컨디션이 저하되며 교체 선수로 내려왔다. 하지만 9월 16일 산프레체 히로시마전에서 교체 출전하여 결승골을 기록한 이후, 공격형 미드필더로 복귀하여 시즌 최다인 6골을 기록하며 팀의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 2007년**: 다시 오른쪽 윙백으로 돌아와 10월 29일 나고야 그램퍼스와의 경기에서 근육 부상을 당하기 전까지 리그, AFC 챔피언스리그, J리그컵 등 대부분의 공식 경기에 선발 출전했다. 4월 7일 주빌로 이와타와의 경기에서 J1리그 통산 350경기 출장을 달성했으며, 이는 J1리그 최연소 기록이었다.
- 2008년**: 개막전부터 몇 경기 동안 공격형 미드필더를 맡았고, 이후 수비형 미드필더나 오른쪽 윙백으로 출전했다. 10월 19일 고베전에서는 처음으로 왼쪽 풀백으로 선발 출전했으나, 후반 시작과 동시에 오른쪽 풀백으로 포지션을 변경했다. 11월 8일 콘사도레 삿포로와의 경기에서 이토 데루요시, 나라자키 세이고에 이어 역대 세 번째로 J1리그 통산 400경기 출장을 달성했다.
- 2009년**: 팀이 8시즌 만에 포백 시스템을 채택하면서 오른쪽 풀백 주전 자리를 확보했다. 또한, 다나카 마르쿠스 툴리오가 이적한 J리그컵 예선에서는 쓰보이 게이스케와 함께 센터백으로도 활약했다.
- 2010년**: 다나카 마르쿠스 툴리오의 나고야 그램퍼스 이적 이후, 개막전부터 센터백으로 출전했다. 여름에 매슈 스피라노비치가 복귀한 이후에도 센터백 포지션을 유지했다.
- 2011년**: 시즌 초반에는 센터백으로,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리그 중단 이후에는 주로 수비형 미드필더로, 시즌 후반에는 좌우 사이드백으로 출전하며 다양한 포지션에서 팀의 핵심 전력으로 활약했다.
- 2012년**: 주로 교체 선수로 출전했지만, 부상으로 인해 장기 이탈하기도 했다. 시즌 막판 나가타 미쓰루가 오른쪽 허벅지 뒤쪽 근육 부상으로 장기 이탈하면서 센터백으로 선발 출전하여 팀이 3위로 올라서는 데 크게 기여했다.
- 2013년**: 4월 27일 시미즈 에스펄스와의 경기에서 데뷔 20주년을 맞이했다. 이는 J리그에서 한 팀에서 20년째 뛰는 최초의 기록이며, 해외에서도 골키퍼를 제외한 필드 플레이어 중 한 팀에서 20년 이상 뛴 선수는 프란체스코 토티, 라이언 긱스 등 소수에 불과하다. 이 경기는 시즈오카 현립 구사나기 종합운동장 육상경기장에서 열렸는데, 이는 그의 데뷔전과 동일한 장소와 상대 팀이었다. 이를 기념하여 '야마다 노부히사 20주년 기념 행사'가 진행되었다. 5월 11일 가시마 앤틀러스와의 경기에 후반 83분 교체 선수로 출전하며 시즌 리그 첫 경기를 치렀다. 10월 27일 가시와 레이솔전에서는 교체 선수로 출전하여 이토 데루요시, 나라자키 세이고에 이어 J리그 통산 500경기 출장을 달성했다. 동일 팀에서 20년째 활약한 선수가 500경기 출장을 달성한 것은 J리그 역사상 최초의 쾌거이다.
3.2. 주요 기록 및 성과
야마다 노부히사는 우라와 레즈 소속으로 수많은 클럽 타이틀을 획득했다.
- J1리그
- 우승: 2006
- 2nd 스테이지 우승: 2004
- J리그컵
- 우승: 2003
- 천황배
- 우승: 2005, 2006
- 일본 슈퍼컵
- 우승: 2006
- AFC 챔피언스리그
- 우승: 2007
- FIFA 클럽 월드컵
- 3위: 2007
4. 국가대표 경력
야마다 노부히사는 청소년 시절부터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국제 무대를 경험했으며, 성인 대표팀에서도 활약했다. 하지만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4.1. 청소년 국가대표
야마다 노부히사는 여러 연령별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국제 대회에 참가했다. 1995년 카타르에서 열린 1995년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에 일본 U-20 축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참가했다. 그는 이 대회에서 4경기 모두 오른쪽 미드필더로 출전하여 부룬디를 상대로 득점을 기록했다.
4.2. 성인 국가대표
야마다 노부히사는 2002년 11월 20일 아르헨티나와의 친선 경기에서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성인 대표팀 데뷔전을 치렀으며, 이 경기는 사이타마 스타디움 2002에서 열렸다. 2003년에는 2003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을 포함한 대부분의 경기에서 오른쪽 풀백으로 활약했다. 그의 첫 국제 경기 득점은 2004년 2월 7일 말레이시아와의 친선 경기에서 가시마 사커 스타디움에서 나왔다. 그는 2004년까지 일본 대표팀에서 총 15경기에 출전하여 1골을 기록했다.
다음은 그의 성인 국가대표 출전 경기 상세 기록이다.
No. | 개최일 | 개최 도시 | 경기장 | 상대 | 결과 | 감독 | 대회 |
---|---|---|---|---|---|---|---|
1. | 2002년 11월 20일 | 사이타마현 | 사이타마 스타디움 2002 | 아르헨티나 | 0-2 패 | 야마모토 마사쿠니 (대행) | 키린 챌린지컵 |
2. | 2003년 6월 11일 | 사이타마현 | 사이타마 스타디움 2002 | 파라과이 | 0-0 무 | 지쿠 | 키린컵 |
3. | 2003년 6월 18일 | 생드니 | 뉴질랜드 | 3-0 승 | 컨페더레이션스컵 | ||
4. | 2003년 6월 20일 | 생테티엔 | 프랑스 | 1-2 패 | 컨페더레이션스컵 | ||
5. | 2003년 6월 22일 | 생테티엔 | 콜롬비아 | 0-1 패 | 컨페더레이션스컵 | ||
6. | 2003년 8월 20일 | 도쿄도 | 국립 가스미가오카 육상 경기장 | 나이지리아 | 3-0 승 | 키린 챌린지컵 | |
7. | 2003년 9월 10일 | 니가타현 | 니가타 스타디움 | 세네갈 | 0-1 패 | 키린 챌린지컵 | |
8. | 2003년 10월 11일 | 부쿠레슈티 | 루마니아 | 1-1 무 | 국제 친선 경기 | ||
9. | 2003년 11월 19일 | 오이타현 | 오이타 스포츠공원 종합경기장 | 카메룬 | 0-0 무 | 키린 챌린지컵 | |
10. | 2003년 12월 4일 | 도쿄도 | 국립 가스미가오카 육상 경기장 | 중국 | 2-0 승 |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 | |
11. | 2003년 12월 7일 | 사이타마현 | 사이타마 스타디움 2002 | 홍콩 | 1-0 승 |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 | |
12. | 2003년 12월 10일 | 가나가와현 | 요코하마 국제 종합 경기장 | 대한민국 | 0-0 무 |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 | |
13. | 2004년 2월 7일 | 이바라키현 | 이바라키현립 가시마 사커 스타디움 | 말레이시아 | 4-0 승 | 키린 챌린지컵 | |
14. | 2004년 2월 12일 | 도쿄도 | 국립 가스미가오카 육상 경기장 | 이라크 | 2-0 승 | 국제 친선 경기 | |
15. | 2004년 2월 18일 | 사이타마현 | 사이타마 스타디움 2002 | 오만 | 1-0 승 | 월드컵 예선 |
4.3. 국가대표팀 관련 논란
2004년 2월 9일, 이바라키현 가시마시에서 진행된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합숙 중, 야마다 노부히사는 다른 7명의 선수들과 함께 무단 외출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다른 선수들과 달리 음주를 하지는 않았으나, 당시 감독이었던 지쿠는 "배신 행위로 느꼈다"며 야마다를 포함한 8명의 선수를 대표팀에서 제외하는 중징계를 내렸다. 이 사건은 당시 일본 축구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5. 플레이 스타일 및 특징
야마다 노부히사는 골키퍼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다재다능함이 가장 큰 특징이었다. 그는 주로 오른쪽 측면 수비수나 미드필더로 활약했지만, 필요에 따라 공격수, 스토퍼, 리베로, 공격형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센터백, 왼쪽 풀백 등 다양한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며 팀 전술에 폭넓은 유연성을 제공했다. 이러한 포지션 소화 능력은 그의 높은 축구 이해도와 뛰어난 신체 능력에서 비롯되었다.
6. 은퇴 및 은퇴 경기
2013 시즌을 끝으로 현역 선수 생활을 마감한 야마다 노부히사는 팬들의 아쉬움 속에 성대한 은퇴 경기를 치렀다.
6.1. 은퇴 발표 및 배경
야마다 노부히사는 2013 시즌을 마지막으로 선수 경력을 마쳤다. 2013년 11월 20일, 소속팀 우라와 레즈는 야마다와의 계약 만료를 발표했고, 이에 따라 그는 현역 은퇴를 결정했다. 그는 2014년 1월 29일에 은퇴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1994년 우라와 레즈에 입단한 이후 21년간 한 팀에서만 활약한 그는 '미스터 레즈'로 불리던 후쿠다 마사히로의 기록을 넘어 팀 최장 기간 '반디에라' (원클럽맨) 기록을 세웠다.
6.2. 은퇴 기념 경기
2014년 7월 5일, 사이타마 스타디움 2002에서 '야마다 노부히사 은퇴 경기 NOBUHISA YAMADA TESTIMONIAL'이 성대하게 개최되었다. 경기는 우라와 레즈 현역팀과 '레즈 역대 선발팀 (Rest of the REDS)' 간의 대결로 펼쳐졌다.
구분 | 내용 |
---|---|
개최일 | 2014년 7월 5일 |
시간 | 17:04 |
이벤트 | 야마다 노부히사 은퇴 경기 NOBUHISA YAMADA TESTIMONIAL |
경기장 | 사이타마 스타디움 2002 |
팀1 | 우라와 레즈 |
팀2 | 레즈 역대 선발 (Rest of the REDS) |
스코어 | 5 - 6 |
주심 | 도조 미노루 |
관객수 | 33,828명 |
- 득점자:**
6.2.1. 참가 선수
우라와 레즈 (감독: 미하일로 페트로비치)
- 6. 야마다 노부히사 (후반 71분부터 우라와 레즈 팀으로 출전)
- 현재 우라와 레즈 소속 선수들 (단, 레즈 역대 선발팀으로 출전하는 선수 및 니시카와 슈사쿠 제외)
- 야마기시 노리히로는 6월에 몬테디오 야마가타로 이적하여 레즈 역대 선발팀 출전 예정이었으나 불발되었다. 대신 미토 홀리호크에서 영입된 이와타테 나오는 우라와 레즈 팀으로 참가했다.
- 우라와 레즈 유스 선수 (24. 오가와 히로키, 25. 모테기 리키야, 26. 사이토 쇼타)
레즈 역대 선발 (Rest of the REDS) (감독: 기도 부흐발트)
- 1. 안도 도모야스, 2. 쓰보이 게이스케, 4. 다나카 마르쿠스 툴리오, 5. 네네, 6. 야마다 노부히사, 6. 야마다 이쓰오, 7. 사카이 도모유키, 8. 오노 신지, 9. 후쿠다 마사히로, 10. 로브슨 폰테, 11. 다나카 다쓰야, 12. 무로이 이치에, 13. 스즈키 게이타, 14. 히라카와 다다아키, 15. 후쿠나가 야스시, 16. 미야자와 가쓰유키, 17. 하세베 마코토, 18. 이케다 노부야스, 19. 우치다테 히데키, 20. 호리노우치 사토시, 21. 와싱톤, 22. 조테이 신지, 23. 쓰즈키 류타, 30. 오카노 마사유키
- 야마다 노부히사는 전반 65분까지 레즈 역대 선발팀으로 출전했다. 야마다 이쓰오는 야마다 노부히사의 장남이다. 하세베 마코토는 소속 클럽과의 계약 문제로 경기 출전이 불가능했다. 나가이 유이치로도 출전 예정이었으나, 아르테리보 와카야마의 천황배 2회전 진출이 결정되어 출전할 수 없었다.
7. 은퇴 후 경력
선수 생활 은퇴 후에도 야마다 노부히사는 축구계와 연을 이어가며 지도자 및 구단 스태프로서 새로운 경력을 쌓았다.
7.1. 코칭 및 구단 스태프 활동
야마다 노부히사는 선수 은퇴 후 우라와 레즈의 클럽 스태프가 되었다. 2015년부터 2017년 2월 8일까지 우라와 레즈 유스팀의 지원 코치를 맡아 어린 선수들의 성장을 도왔다. 2017년 2월 8일, 그는 우라와 레즈와의 업무 위탁 계약이 해지되었다. 이후 2019년에는 가나가와현 사회인 축구 리그 1부 소속인 이투아누 FC 요코하마의 감독으로 취임했으며, 2020년에는 감독 겸 선수로 활동할 것이라고 발표되었다.
8. 수상 기록 및 영예
야마다 노부히사는 우라와 레즈에서 수많은 클럽 타이틀을 획득했으며, 개인적으로도 그 공로를 인정받았다.
8.1. 클럽 수상 기록
- J1리그
- 2006년
- J1리그 2nd 스테이지
- 2004년
- J리그컵
- 2003년
- 천황배
- 2005년, 2006년
- 일본 슈퍼컵
- 2006년
- AFC 챔피언스리그
- 2007년
8.2. 개인 수상 기록
- J리그 공로 선수상: 2014년
9. 경력 통계
야마다 노부히사의 프로 축구 경력은 다음과 같은 통계 자료로 요약될 수 있다.
9.1. 클럽 통계
클럽 | 시즌 | 리그 | 천황배 | J리그컵 | AFC 챔피언스리그 | 기타1 | 총계 | ||||||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
우라와 레즈 | 1994 | 15 | 1 | 3 | 0 | 0 | 0 | - | - | 18 | 1 | ||
1995 | 42 | 1 | 3 | 0 | - | - | - | 45 | 1 | ||||
1996 | 30 | 3 | 4 | 1 | 11 | 0 | - | - | 45 | 4 | |||
1997 | 22 | 1 | 2 | 0 | 6 | 0 | - | - | 30 | 1 | |||
1998 | 34 | 0 | 3 | 0 | 4 | 0 | - | - | 41 | 0 | |||
1999 | 29 | 1 | 2 | 1 | 4 | 1 | - | - | 35 | 3 | |||
2000 | 39 | 2 | 2 | 0 | 2 | 0 | - | - | 43 | 2 | |||
2001 | 27 | 3 | 4 | 1 | 6 | 0 | - | - | 37 | 4 | |||
2002 | 28 | 1 | 1 | 0 | 8 | 0 | - | - | 37 | 1 | |||
2003 | 27 | 3 | 1 | 0 | 11 | 0 | - | - | 39 | 3 | |||
2004 | 27 | 2 | 4 | 0 | 9 | 2 | - | 2 | 0 | 42 | 4 | ||
2005 | 32 | 3 | 5 | 2 | 10 | 1 | - | - | 47 | 6 | |||
2006 | 32 | 6 | 5 | 0 | 7 | 1 | - | 1 | 0 | 45 | 7 | ||
2007 | 29 | 0 | 0 | 0 | 2 | 0 | 9 | 1 | 6 | 0 | 46 | 1 | |
2008 | 28 | 0 | 2 | 0 | 6 | 0 | 4 | 0 | - | 40 | 0 | ||
2009 | 30 | 0 | 1 | 0 | 7 | 1 | - | - | 38 | 1 | |||
2010 | 27 | 0 | 4 | 0 | 4 | 0 | - | - | 35 | 0 | |||
2011 | 24 | 0 | 4 | 0 | 4 | 0 | - | - | 32 | 0 | |||
2012 | 8 | 0 | 2 | 0 | 5 | 0 | - | - | 15 | 0 | |||
2013 | 10 | 0 | 1 | 0 | 3 | 0 | 1 | 0 | - | 15 | 0 | ||
총계 | 540 | 27 | 53 | 5 | 109 | 6 | 14 | 1 | 9 | 0 | 725 | 39 |
1 J리그 챔피언십, 일본 슈퍼컵, A3 챔피언스컵, FIFA 클럽 월드컵 포함.
9.2. 국가대표 통계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 ||
---|---|---|
연도 | 출전 | 득점 |
2002 | 1 | 0 |
2003 | 11 | 0 |
2004 | 3 | 1 |
총계 | 15 | 1 |
9.3. 국가대표팀 득점
- U-20 대표팀
# | 날짜 | 경기장 | 상대 | 득점 | 결과 | 대회 |
---|---|---|---|---|---|---|
1. | 1995년 4월 19일 | 칼리파 국제 경기장, 도하, 카타르 | 부룬디 | 2-0 | 2-0 | 1995년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
- 성인 대표팀
# | 날짜 | 경기장 | 상대 | 득점 | 결과 | 대회 |
---|---|---|---|---|---|---|
1. | 2004년 2월 7일 | 가시마 사커 스타디움, 가시마시, 일본 | 말레이시아 | 3-0 | 4-0 | 친선 경기 |
10. 주요 일화 및 에피소드
야마다 노부히사의 선수 경력 중에는 주목할 만한 몇 가지 일화와 에피소드가 있었다.
- 2004년 국가대표팀 무단 외출 사건**: 2004년 2월 9일, 이바라키현 가시마시에서 진행된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합숙 중, 야마다 노부히사는 다른 7명의 선수들과 함께 감독인 지쿠의 허락 없이 숙소를 이탈했다. 비록 그는 음주를 하지 않았지만, 지쿠 감독은 이를 "배신 행위"로 간주하며 야마다를 포함한 8명의 선수를 대표팀에서 제외하는 강력한 징계를 내렸다. 이 사건은 당시 일본 축구계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 "불쌍한 옐로카드"**: 2005년 4월 오이타 트리니타와의 경기에서, 야마다는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 상대 선수에게 넘어지며 어깨가 탈골되는 부상을 입었다. 그러나 심판은 상대방의 파울을 선언하는 대신, 야마다의 시뮬레이션을 선언하며 옐로카드를 부여했다. 이 장면은 2013년 8월 22일 TV 아사히에서 방영된 프로그램 『마쓰코&아리요시의 분노 신당』의 한 코너에서 "불쌍한 옐로카드"로 소개되기도 했다.
11. 유산 및 평가
야마다 노부히사는 우라와 레즈의 상징적인 선수이자 일본 축구의 발전에 기여한 중요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11.1. '원클럽맨'으로서의 상징성
야마다 노부히사는 1994년 입단부터 2013년 은퇴까지 우라와 레즈에서만 20년간 활약하며 J1리그 500경기 이상 출장을 기록한 진정한 '원클럽맨'이자 팀의 '반디에라' (프랜차이즈 플레이어)로 불렸다. 그의 21년이라는 최장 기간 단일 클럽 활약 기록은 '미스터 레즈'라 불리던 후쿠다 마사히로를 뛰어넘는 것이었다. 이러한 헌신적인 경력은 우라와 레즈 팬들에게 깊은 감동과 유대감을 안겨주었으며, 팀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중요한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11.2. 일본 축구에 대한 기여
야마다 노부히사는 골키퍼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었던 탁월한 다재다능함으로 일본 축구에 큰 기여를 했다. 그의 이러한 유연성은 팀 전술의 폭을 넓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현대 축구에서 요구되는 멀티 포지션 소화 능력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다. 또한, 우라와 레즈의 주장으로서 보여준 리더십과 꾸준한 활약은 후배 선수들에게 모범이 되었으며, 그의 성실하고 헌신적인 태도는 일본 축구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