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안젤름 키퍼는 1945년 3월 8일 독일에서 태어난 저명한 화가이자 조각가이다. 그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이 배출한 가장 유명하고 성공적이며 동시에 논쟁적인 예술가로 평가받는다. 키퍼의 작품은 독일의 역사, 특히 나치즘과 홀로코스트의 어두운 과거를 정면으로 다루며, 이를 통해 금기시되거나 논쟁적인 현대사의 주제들을 탐구한다. 그의 예술은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역사적 트라우마, 기억, 그리고 정체성의 문제를 깊이 있게 파고든다.
키퍼는 1960년대 후반 페터 드레허와 호르스트 안테스에게 사사했으며, 1970년대에는 요제프 보이스의 비공식적인 지도를 받으며 예술적 기반을 다졌다. 그의 작품은 짚, 재, 점토, 납, 셸락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여 거대한 규모로 제작되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재료들은 단순한 물리적 요소가 아니라, 파울 첼란의 시나 카발라의 영적 개념과 같은 심오한 주제와 연결되어 연금술적이고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의 예술은 종종 신표현주의 및 신상징주의와 연관되며, 작품 속에 역사적 인물이나 장소의 이름, 서명 등을 암호화된 인장처럼 새겨 넣어 과거를 형상화하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1992년부터 프랑스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으며, 2008년부터는 주로 파리에서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다.
2. 생애
안젤름 키퍼의 개인적 배경과 예술가로서의 성장 과정은 그의 작품 세계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2.1. 출생 및 유년 시절
안젤름 키퍼는 1945년 3월 8일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 도나우에싱겐에서 미술 교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출생은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기 불과 몇 달 전이었으며, 그가 자란 도시는 전쟁으로 인해 심하게 폭격받아 폐허가 된 환경이었다. 키퍼는 전쟁의 파괴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이러한 경험은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역사적 트라우마와 파괴의 주제에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1951년 그의 가족은 오터스도르프로 이사했고, 그는 라슈타트의 공립학교에 다니며 1965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2.2. 교육
키퍼는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에서 법학과 로망스어학을 공부했으나, 세 학기 만에 예술로 전향했다. 그는 프라이부르크와 카를스루에의 미술 아카데미에서 예술을 공부했으며, 카를스루에에서는 사실주의 및 구상 화가인 페터 드레허에게 사사했다. 1969년에 미술 학위를 취득한 후, 1970년에는 뒤셀도르프 미술 아카데미에서 요제프 보이스의 비공식적인 지도를 받으며 그의 예술적 실천에 큰 영향을 받았다. 보이스의 영향으로 키퍼는 일상적인 재료를 작품에 통합하고 독일 문화의 심오한 측면을 탐구하게 되었다.
2.3. 초기 활동 및 예술적 시작
키퍼는 1960년대 후반부터 퍼포먼스를 시작하고 이를 사진으로 기록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특히 논란을 일으켰던 시리즈는 Besetzungen점령독일어과 Heroische Sinnbilder영웅적 상징독일어이었다. 이 시리즈에서 키퍼는 아버지의 국방군 군복을 입고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등 유럽 각지에서 나치식 경례를 흉내 내는 모습을 연출했다. 그는 이러한 도발적인 행위를 통해 독일인들에게 제3제국의 광적인 외국인 혐오증으로 인해 독일 문화가 잃어버린 것들을 기억하고 인정하도록 촉구했다. 1969년 카를스루에의 갈레리 암 카이저플라츠에서 열린 그의 첫 개인전 Besetzungen점령독일어에서 그는 이러한 논쟁적인 정치적 행위들을 담은 일련의 사진 작품들을 공개하며 예술 경력을 시작했다.
3. 예술 세계
키퍼의 예술적 탐구는 독일의 역사적 트라우마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독특한 재료와 기법을 통해 심오한 철학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3.1. 주요 주제 및 영향
키퍼의 작품은 광범위한 주제와 깊은 영향을 받은 요소들을 탐구한다. 그의 주요 영감의 원천은 전통 신화, 책, 도서관이며, 특히 파울 첼란과 잉게보르크 바흐만과 같은 문학가들의 작품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그의 후기 작품들은 유대교와 기독교, 고대 이집트, 동양 문화의 주제를 통합하며, 우주 기원론 또한 중요한 초점이다. 키퍼는 이 모든 것을 통해 존재의 의미와 "이해할 수 없는 것, 형상화할 수 없는 것의 표현"을 추구한다.
그의 작품에 가장 깊은 영향을 미친 것은 독일의 역사, 특히 나치즘과 홀로코스트의 어두운 그림자이다. 그는 이러한 주제를 통해 역사적 트라우마, 기억, 그리고 정체성의 문제를 다룬다. 리하르트 바그너의 작품, 그리스 신화, 성경, 그리고 카발라와 같은 영적 및 철학적 개념들도 그의 예술에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키퍼는 이러한 요소들을 통해 과거와 논쟁하고, 현대사에서 금기시되거나 논쟁적인 문제들을 정면으로 다룬다.
3.2. 예술 철학 및 재료
키퍼는 작업하는 재료들과의 "영적인 연결"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재료 안에 이미 살아있는 "영혼을 추출"하려 한다. 그는 재료를 산으로 처리하거나 막대기, 도끼 등으로 물리적인 충격을 가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변형시킨다. 이러한 과정은 재료의 연금술적 속성을 강조하며, 특히 납은 그가 선호하는 재료 중 하나이다. 키퍼는 납의 물리적, 감각적 특성에 매료되었으며, 특히 납을 가열하고 녹일 때 나타나는 다양한 색상, 특히 금색을 연금술사들이 추구했던 상징적인 금과 연결시켰다. 그는 또한 납의 산화로 인한 흰색 표현을 좋아하며, 인위적으로 산화를 유도하기도 했다. 납은 연금술의 마법 숫자 개념과도 관련되며, 토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작품에 사용되는 짚은 에너지의 상징이다. 키퍼는 짚의 금색과 불태울 때 방출되는 에너지와 열을 그 이유로 든다. 짚이 타서 남은 재는 새로운 창조의 기반이 되어 변형과 생명의 순환이라는 모티프를 반복한다. 셸락 또한 그가 선호하는 재료로, 납과 유사하게 색상과 에너지 가능성 때문에 선택되었다. 셸락은 연마될 때 에너지를 흡수하고 따뜻해지는 특성도 지닌다.
키퍼는 또한 자신의 작품에서 질서와 혼돈의 균형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는 "질서가 너무 많으면 작품은 죽고, 혼돈이 너무 많으면 응집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또한 그는 작품이 놓이는 공간에 깊은 관심을 가지며, 잘못된 공간에 놓이면 작품이 "완전히 힘을 잃는다"고 강조한다.
3.3. 작업 방식 및 기법
키퍼의 작업 방식은 대규모 캔버스와 다양한 매체의 결합, 그리고 독특한 재료 가공 기법으로 특징지어진다. 그의 작품은 점점 더 거대한 규모로 확장되었으며, 납, 깨진 유리, 말린 꽃이나 식물 등을 추가하여 표면이 두껍게 덮이고 임파스토 기법으로 두꺼운 물감 층이 형성된다. 이러한 재료의 사용은 작품을 일시적이고 연약하게 만들지만, 키퍼는 재료가 위장되지 않고 자연스러운 형태로 표현되기를 원했다. 그의 작품의 연약성은 그림의 강렬한 주제와 대조를 이룬다.
키퍼는 회화 외에도 조각, 수채화, 사진, 목판화, 책 작업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다. 특히 목판화는 그가 수십 년 동안 모든 매체에서 반복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인물들의 레퍼토리를 만들어냈으며, 이는 그의 작품에 얽히고설킨 주제적 일관성을 부여한다. 그는 또한 콘크리트를 사용하여 밀라노의 피렐리 창고를 위한 탑이나 벨리미르 흘레브니코프에게 바치는 해양 그림 시리즈와 같은 조각 작품들을 제작했다. 그의 스타일은 표현주의적이며, 특히 신표현주의 경향을 띤다.
4. 주요 작품 및 전시
키퍼의 예술적 여정은 그의 상징적인 작품들과 세계적인 주요 전시들을 통해 명확히 드러난다.
4.1. 주요 작품 및 시리즈
키퍼의 작품 세계는 독일의 역사, 신화, 그리고 존재론적 질문을 탐구하는 다양한 시리즈와 개별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다.
- Margarete마르가레테독일어 (1980-1983): 유화와 짚을 캔버스에 사용하여 제작된 이 작품은 파울 첼란의 유명한 시 Todesfuge죽음의 푸가독일어에서 영감을 받았다. 이 시리즈는 홀로코스트의 비극과 기억을 다루는 키퍼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 Occupations점령독일어 (1969): 초기 사진 작업으로, 키퍼 자신이 나치식 경례를 하는 모습을 담아 논란을 일으켰다. 이는 독일의 과거를 직시하려는 그의 예술적 의지를 보여준다.
- Athanor아타노르독일어 (1988-1991): 고치현립미술관에 소장된 이 작품은 연금술의 개념을 탐구하며, 물질의 변형과 영적인 정화를 상징한다.
- Princess of Siberia시베리아의 공주영어 (1988): 나고야시미술관에 소장된 이 복합 매체 작품은 신화적이고 역사적인 서사를 담고 있다.
- Sternenhimmel별이 빛나는 하늘독일어 (1995): 국립국제미술관에 소장된 이 작품은 우주적 주제에 대한 키퍼의 관심을 보여준다.
- Der Rhein라인독일어 (1981): 25개의 목판화로 구성된 책 작업으로, 라인강을 따라가는 여정을 통해 독일의 지리적, 역사적 발전을 상징하며, 리하르트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와 같은 작품에서 라인강이 갖는 신화적 의미를 강조한다. 이 작품은 1941년 비스마르크호 침몰 사건을 암시하는 어두운 페이지들로 라인강의 순수한 모습을 방해한다.
- Dem Unbekannten Maler미지의 화가에게독일어 (1983): 이 그림은 알베르트 슈페어와 빌헬름 크라이스가 설계한 나치 독일 건축물, 특히 1938년 히틀러의 제국 수상부 안뜰을 참조하여 거대한 석조 건물을 묘사한다.
- Heavy Cloud무거운 구름영어 (1985): 전봇대와 전선이 있는 황량한 풍경의 흑백 사진을 조작하여 제작된 작품으로, 1980년대 초 서독에서 NATO의 전술 핵미사일 배치와 핵연료 처리 시설 설치에 대한 논쟁에 간접적으로 반응한 것이다.
- Osiris and Isis오시리스와 이시스영어 (1985-1987): 고대 히브리 및 이집트 역사에 대한 참조를 포함하는 대형 회화이다.
- Palmsonntag종려주일독일어 (2006): 기념비적인 종려나무와 36개의 강철 및 유리 성유물함으로 구성된 설치 작품이다.
- Karfunkelfee카르푼켈페독일어 (2009): 유리 진열장에 담긴 숲의 이중화 및 삼중화 작품으로, 모로코 가시로 가득 차 있으며 잉게보르크 바흐만의 시에서 영감을 받았다.
- The Fertile Crescent비옥한 초승달영어 (2009): 15년 전 인도 여행에서 영감을 받은 서사적인 회화 그룹으로, 메소포타미아의 첫 인류 문명부터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의 폐허까지 광범위한 문화적, 역사적 참조를 담고 있다.
- Morgenthau Plan모겐소 플랜독일어 (2012): 5미터 높이의 강철 새장 안에 황금빛 밀밭 조각이 가득 찬 설치 작품이다.
- Étroits sont les Vaisseaux좁은 그릇들프랑스어 (2002): 길이 25 m (82 ft)의 물결 모양 조각으로, 주조 콘크리트, 노출된 철근, 납으로 만들어졌다.
- Les Femmes de la Revolution혁명의 여인들프랑스어 (1992): 20개 이상의 납 침대와 사진, 벽 글로 구성된 작품이다.
- Velimir Chlebnikov벨리미르 흘레브니코프영어 (2004): 해전과 관련된 30개의 그림을 담은 강철 파빌리온으로, 러시아 수학 실험주의자 벨리미르 흘레브니코프의 기이한 이론에서 영감을 받았다.
- Uraeus우라에우스영어 (2018): 록펠러 센터에 설치된 공공 미술 작품으로, 이집트의 종교적 상징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영감을 받았다.
4.2. 주요 전시 및 설치
키퍼는 국제적인 명성을 얻으며 수많은 주요 전시회와 설치 작업을 선보였다.

- 초기 개인전**: 1969년 카를스루에의 갈레리 암 카이저플라츠에서 첫 개인전 Besetzungen점령독일어을 열었다.
- 베네치아 비엔날레**: 1980년 게오르크 바젤리츠와 함께 독일 대표로 참가했으며, 1997년에는 코레르 박물관에서 회화와 책을 중심으로 한 단독 전시를 가졌다.
- 주요 회고전**: 쿤스트할레 뒤셀도르프 (1984), 시카고 미술관 (1987), 도쿄 세존 미술관 (1993), 베를린 신국립미술관 (1991),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1998), 바젤 베이엘러 재단 (2001), 포트워스 현대미술관 (2005), 워싱턴 D.C. 허시혼 박물관 및 조각 정원 (2006),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2007),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2007)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 그의 작품을 대규모로 조명했다.
- 루브르 박물관 및 그랑 팔레**: 2007년 키퍼는 조르주 브라크 이후 약 50년 만에 루브르 박물관에 영구 설치 작품을 의뢰받은 최초의 살아있는 예술가가 되었다. 그는 삼부작인 벽화 Athanor아타노르독일어와 두 조각 Danae다나에영어, Hortus Conclusus닫힌 정원라틴어을 선보였다. 같은 해 그는 파리 그랑 팔레에서 열린 Monumenta모뉴멘타영어 전시 시리즈를 개막하며 파울 첼란과 잉게보르크 바흐만 시인에게 특별히 헌정하는 작품들을 선보였다.
- 순회 전시**: 2005년 잘츠부르크의 타데우스 로팍 갤러리에서 열린 Für Paul Celan파울 첼란을 위하여독일어 전시는 이듬해 파리의 타데우스 로팍 갤러리와 이본 람베르 갤러리로 순회했다. 2006년에는 Velimir Chlebnikov벨리미르 흘레브니코프영어 전시가 바르자크 근처의 작은 스튜디오에서 처음 선보인 후 런던의 화이트 큐브와 코네티컷의 올드리치 현대미술관으로 이어졌다.
- 최근 전시**: 2009년 런던 화이트 큐브 갤러리에서 Karfunkelfee카르푼켈페독일어와 The Fertile Crescent비옥한 초승달영어 두 전시를 열었다. 2012년에는 타데우스 로팍 갤러리의 팡탱 공간 개관전으로 기념비적인 신작 Die Ungeborenen태어나지 않은 자들독일어을 선보였다. 2013년에는 매사추세츠 현대미술관과 협력하여 조각과 회화의 장기 설치전을 열었고, 2014년에는 야외 조각 설치를 위해 건물 주변 조경을 정비했다. 2015년에는 그의 70번째 생일을 기념하여 퐁피두 센터, 프랑스 국립도서관, 라이프치히 미술관에서 회고전이 개최되었다. 2016년 알베르티나 미술관은 1977년부터 2015년 사이에 제작된 35점의 목판화 전시회를 열었다. 2018년 5월에는 록펠러 센터에서 미국 최초의 공공 미술 작품인 Uraeus우라에우스영어 조각을 공개했다.
5. 개인 생활 및 거주지
키퍼의 개인적인 삶과 작업 공간의 변화는 그의 예술적 발전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5.1. 스튜디오 및 거주지
키퍼의 첫 대규모 스튜디오는 혼바흐에 있는 그의 집, 즉 이전에 학교 건물이었던 곳의 다락방이었다. 수년 후 그는 혼바흐 근처 부헨에 있는 공장 건물을 스튜디오로 사용했다. 1988년에는 횢프핑겐(부헨 근처)의 옛 벽돌 공장을 수많은 설치 작품과 조각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예술 작품으로 변모시켰다.
1991년, 오덴발트에서 20년간 작업한 후 키퍼는 독일을 떠나 인도, 멕시코, 일본, 태국, 인도네시아, 호주, 미국 등 전 세계를 여행했다. 1992년 그는 프랑스 바르자크에 정착하여 35 ha에 달하는 스튜디오 단지 La Ribaute라 리보트프랑스어를 Gesamtkunstwerk로 탈바꿈시켰다. 버려진 비단 공장이었던 그의 스튜디오는 거대하며 여러 면에서 산업화에 대한 논평이기도 했다. 그는 이곳에 유리 건물, 기록 보관소, 설치물, 재료 및 그림을 위한 저장실, 지하 방 및 복도로 이루어진 광범위한 시스템을 만들었다.
소피 파인즈는 2010년 다큐멘터리 영화 Over Your Cities Grass Will Grow당신의 도시 위에 풀이 자랄 것이다영어를 위해 바르자크의 키퍼 스튜디오 단지를 촬영하여 환경과 작업 중인 예술가를 기록했다. 한 비평가는 이 영화에 대해 "버려진 비단 공장에서 거의 맨땅에서부터 시작하여 키퍼는 수 에이커에 걸쳐 확장되는 예술 프로젝트를 고안했다. 수 마일에 달하는 복도, 야심 찬 풍경화와 주변 숲의 기념비적인 구조물에 해당하는 조각품들, 그리고 종유석이나 흰개미 굴을 닮은 거대한 흙 기둥이 있는 구불구불한 지하 미로들. 완성된 작품이 어디에 명확히 서 있는지 불분명하다. 아마도 모든 것이 진행 중인 작업, 기념비적인 개념 예술 유기체일 것이다"라고 평했다.
2008년 키퍼는 바르자크의 스튜디오 단지를 떠나 파리로 이주했다. 110대의 트럭이 그의 작품을 파리 외곽 크루아시보부르에 있는 0.3 만 m2 (3.50 만 ft2) 규모의 창고로 운반했는데, 이곳은 한때 라 사마리텐 백화점의 창고였다. 키퍼는 마레 지구의 큰 집에서 오스트리아 사진작가인 두 번째 아내 레나테 그라프와 두 자녀와 함께 살았다. 키퍼와 그라프는 2014년에 이혼했다. 그는 버려진 바르자크 스튜디오 단지에 대해 "바르자크의 위대한 작품들, 즉 예술과 건물들을 남겨두었다. 관리인이 돌보고 있다. 사람이 살지 않는 그곳은 조용히 자연이 점령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알다시피, 우리의 도시 위에 풀이 자랄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키퍼는 2019년 여름을 바르자크에서 보내며 작업했다.
2018년 키퍼는 오스트리아 시민권을 취득했다. 2017년에는 월간 경제지 Manager Magazin매니저 매거진영어에 의해 독일에서 가장 부유한 1,001명의 개인 및 가족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다. 2023년에는 빔 벤더스 감독의 3D 다큐멘터리 영화 Anselm안젤름영어의 주제가 되었다.
6. 평가 및 논쟁
안젤름 키퍼의 작품은 예술계와 비평계에서 다양한 평가를 받으며, 그의 역사적 주제 접근 방식은 여러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이 낳은 가장 유명하고 성공적이며 동시에 가장 논쟁적인 화가로 평가된다. 그의 작품의 예술적 가치에 대한 논쟁은 수십 년 동안 언론 매체에서 계속되어 왔다.
1969년 초기 개인전에서 선보인 사진 시리즈 Besetzungen점령독일어은 그가 나치식 경례를 흉내 내는 모습을 담아 큰 논란을 일으켰다. 1980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게오르크 바젤리츠의 조각과 함께 전시된 그의 회화는 격론을 불러일으켰다. 관람객들은 작품에 나타난 노골적인 나치 모티프가 아이러니한 의도로 사용된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파시스트적인 이념을 담고 있는 것인지 스스로 판단해야 했다. 이러한 논쟁은 키퍼가 과거의 어두운 측면을 직시하려는 예술적 의도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의 작품이 사회에 미치는 충격적인 영향을 드러냈다.
키퍼는 예술이 트라우마를 입은 민족과 고통받고 분열된 세계를 치유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작업해 왔다. 그는 거대한 캔버스 위에 리하르트 바그너나 요한 볼프강 폰 괴테와 같은 인물들을 묘사함으로써 독일의 문화사를 환기하는 서사시적인 회화를 창조했으며, 이를 통해 세계를 제시하는 도구로서의 회화라는 역사적 전통을 지속시키고 있다. 그의 작품은 역사와 현재의 윤리적 문제에 참여해야 하는 예술의 의무를 확고히 천명하며, 인간적인 노력을 통해 죄의식 해소의 가능성을 표현하는 드문 예술가로 평가받는다.
그의 그림의 특징인 둔하고 무기력하며 거의 억압적이고 파괴적인 스타일은 대형 그림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작품 대부분에서 사진이 표면에 사용되는 경향이 현저하며, 흙과 기타 무가공 재료들이 종종 혼합되어 왔다. 그의 작품 거의 모든 곳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 전설적인 인물 또는 장소들의 서명이나 이름을 찾을 수 있는 것이 특징인데, 이것들은 모두 키퍼가 과거를 형상화시키는 데 사용하는 암호화된 인장들이다. 이러한 특성은 그를 종종 신상징주의라고 불리는 사조와 연결시킨다.
키퍼는 자신의 창작 과정의 자발적인 특성 때문에 많은 작품들이 안정성 문제를 가지고 있음을 인정한다. 그는 변화가 과정의 일부이며 본질은 궁극적으로 동일하게 유지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변형에 대한 생각은 키퍼에게 일종의 매력을 가지며 그의 많은 작품에 반영되어 있다. 연금술에 대한 그의 깊은 관심 또한 이러한 과정에 대한 매혹에서 비롯되었을 수 있다.
1993년 5월 뉴욕에서 열린 한 만찬에서 키퍼와 그의 두 번째 아내 레나테 그라프는 흰색 모슬린과 벗겨진 동물을 갈고리에 걸어 천장에 매달고, 흰 모래를 깔아 놓은 바닥 위에 양초를 밝힌 상업용 로프트를 장식했다. 흰색 분장을 한 마임 복장의 웨이터들이 셰리 레빈과 같은 소수의 예술계 인사들에게 췌장과 같은 희귀한 장기 고기를 여러 코스로 제공했는데, 대부분 흰색이었다. 예상대로 손님들은 이 식사를 특별히 맛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러한 사건은 예술계에 또 다른 충격을 주었다.
7. 수상 및 영예
안젤름 키퍼는 그의 예술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수많은 상과 영예를 받았다.
- 1983년 - 바덴뷔르템베르크주의 한스 토마 상
- 1985년 - 카네기 상
- 1990년 - 볼프 예술상
- 1990년 - 고슬라어 카이저링
- 1999년 - 프레미엄 임페리알레 (일본 예술 연맹)
- 2002년 - 예술문화훈장 오피서
- 2004년 - 미국 예술 과학 아카데미 외국 명예 회원
- 2005년 - 오스트리아 과학 예술 훈장
- 2008년 - 독일 서적상 평화상 (시각 예술가로서는 최초 수상)
- 2009년 - 아데나워-드골 상 (파리, 베를린)
- 2010년 - 콜레주 드 프랑스 예술 창작 석좌 교수
- 2011년 - 베를리너 베어 (B.Z.-문화상)
- 2011년 - 뉴욕 레오 백 연구소의 레오 백 메달
- 2014년 - 토리노 대학교 명예 철학 박사
- 2015년 - 세인트앤드루스 대학교 명예 문학 박사
- 2015년 - 안트베르펜 대학교 일반 공로 명예 박사
- 2017년 - J. 폴 게티 트러스트 메달상
- 2017년 - 프라이부르크 대학교 명예 박사
- 2019년 -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 이해와 관용상
- 2020년 - 브레라 아카데미 (밀라노, 이탈리아) 예술 커뮤니케이션 및 교육 명예 박사
- 2023년 - 독일연방공화국 공로장 기사십자대훈장
- 2023년 - 독일 국가상
8. 영향
안젤름 키퍼의 예술은 후대 예술가들과 현대 미술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작품은 문화적,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키퍼는 신표현주의와 신상징주의 운동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특히 줄리안 슈나벨과 함께 신표현주의의 대표적인 작가 중 한 명으로 간주된다. 그의 작품은 요제프 보이스의 예술적 실천에 영향을 받아 익숙한 재료를 사용하여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또한 그의 화풍은 초기에는 게오르크 바젤리츠의 접근 방식과 유사한 경향을 보였다.
키퍼는 예술이 트라우마를 입은 국가와 분열된 세계를 치유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작업했으며, 독일 문화사를 환기하는 서사시적인 회화를 창조함으로써 세계를 제시하는 도구로서의 회화라는 역사적 전통을 지속시켰다. 그의 작품은 과거와 현재의 윤리적 문제에 참여해야 하는 예술의 의무에 대한 확고한 인식을 보여주며, 인간적인 노력을 통해 죄의식 해소의 가능성을 표현하는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러한 깊이 있는 접근 방식은 현대 예술가들에게 역사와 사회적 문제에 대한 예술적 개입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9. 소장처
안젤름 키퍼의 작품은 전 세계 수많은 공공 및 사립 미술관과 컬렉션에 소장되어 있다.
- 독일**: 함부르거 반호프 (베를린)
-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 (뉴욕), 디트로이트 미술관 (디트로이트),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노스캐롤라이나 미술관 (롤리), 하이 미술관 (애틀랜타), 올브라이트녹스 미술관 (버팔로), 필라델피아 미술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뉴욕, 희귀 수채화 20점 소장)
- 영국**: 테이트 모던 (런던)
- 캐나다**: 온타리오 미술관 (토론토)
- 호주**: 호주 국립 미술관 (캔버라)
- 이스라엘**: 텔아비브 미술관
- 오스트리아**: 알베르티나 미술관 (빈)
- 일본**: 고치현립미술관 (아타노르), 국립국제미술관 (별이 빛나는 하늘), 나고야시미술관 (시베리아의 공주)
주목할 만한 개인 소장가로는 엘리 브로드와 앤드루 J. 홀 등이 있다.
10. 외부 링크
- [http://www.neugraphic.com/kiefer/index.html 안젤름 키퍼] (기사, 인터뷰, 참고 문헌 및 전시 포스터 갤러리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