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기 생애 및 경력 시작
아피아는 가나 아크라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축구에 대한 재능을 보였다. 그는 15세의 어린 나이에 현지 클럽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했으며, 이후 유럽 무대로 진출하여 국제적인 선수로 성장하는 기반을 다졌다.
1.1. 유년기 및 지역 클럽 경력
스티븐 아피아는 1980년 12월 24일 가나의 수도 아크라에서 태어났다. 1995년, 15세의 나이로 가나 현지 클럽인 하츠 오브 오크에서 축구 경력을 시작했다. 1996년에는 튀르키예의 갈라타사라이 유소년팀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았으나, 계약하지 못하고 하츠 오브 오크로 돌아왔다. 그는 1996년 가나 FA컵 우승과 1996-97 시즌 가나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경험하며 팀의 핵심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1.2. 초기 해외 이적
1997년 아피아는 해외로 눈을 돌려 세리에 A 클럽인 우디네세에 입단하며 유럽 무대에 첫 발을 내디뎠다. 우디네세에서 그는 처음에는 공격수로 뛰었으나, 점차 깊은 위치의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변경했다. 1998년 2월 11일 AC 밀란과의 경기에서 세리에 A 데뷔전을 치렀다. 첫 시즌에는 11경기에 출전하는 데 그쳤으나, 이듬해에는 21경기로 출전 기회를 늘렸다. 하지만 1999-2000 시즌에 루이지 데 카니오 감독과의 불화로 이적을 모색하게 되었다. 1999년 여름 파르마로의 이적이 바이러스성 간염으로 인해 위험에 처하기도 했으나, 아피아는 이 병을 극복하고 2000년 여름 파르마로 이적하는 데 성공했다.
2. 프로 클럽 경력
스티븐 아피아는 이탈리아 세리에 A와 튀르키예 쉬페르리그 등 유럽 주요 리그에서 활약하며 다채로운 클럽 경력을 쌓았다. 특히 유벤투스 FC와 페네르바흐체 SK에서 전성기를 보냈으며, 부상과 계약 분쟁이라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2.1. 파르마 및 브레시아
파르마로 이적한 아피아는 두 시즌 동안 팀의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그는 2001-02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에 기여했으나, 주전 자리를 완전히 꿰차지는 못했다. 이에 따라 2002-03 시즌에는 로베르토 바조가 뛰고 있던 브레시아로 임대 이적하게 되었다. 브레시아에서 아피아는 주전으로 도약하며 31경기에서 7골을 기록하는 등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이 활약은 그에게 새로운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2.2. 유벤투스
브레시아에서의 성공적인 활약은 당시 세리에 A 챔피언이었던 유벤투스의 관심을 끌었다. 2003년 여름, 유벤투스는 아피아를 임대 형식으로 영입하며 이적료 200.00 만 EUR를 지불했고, 2004년에는 완전 이적 옵션으로 600.00 만 EUR를 제시했다. 2003년, 아피아는 올해의 아프리카 축구 선수 8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마르첼로 리피 감독의 신뢰를 얻어 에드가르 다비츠로부터 주전 자리를 차지하며 알레시오 타키나르디와 함께 중원을 형성했다. 유벤투스에서의 첫 시즌에 30경기에 출전하고 코파 이탈리아 결승전에 진출하며 좋은 활약을 보였고, UEFA 챔피언스리그에도 데뷔했다. 그러나 2004-05 시즌에 파비오 카펠로 감독이 부임하면서 에메르손과 마누엘레 블라시에게 밀려 18경기에만 출전하는 등 주전 경쟁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2.3. 페네르바흐체
2005년 7월, 아피아는 유벤투스에서 튀르키예의 거함 페네르바흐체로 800.00 만 EUR의 이적료로 이적했다. 그는 팀의 중심 선수로 활약하며 구단 창립 100주년이었던 2006-07 시즌에 쉬페르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2007년 1월, 가나 국가대표팀에 차출되어 경기를 뛰던 중 왼쪽 무릎에 부상을 입었으나, 시즌이 끝날 때까지 수술을 미루며 팀에 헌신했다. 2006-07 시즌 종료 후, 아피아는 팀을 떠나고 싶다는 의사를 표명했고, 그의 에이전트가 페네르바흐체에 허락 없이 다른 클럽들과 접촉하여 독일 클럽(샬케 04로 추정)으로부터 400.00 만 EUR의 이적 제안이 들어왔으나, 페네르바흐체는 이를 거절했다.
2.3.1. 부상 및 계약 분쟁
페네르바흐체 시절 아피아는 장기적인 무릎 부상으로 인해 큰 어려움을 겪었으며, 이로 인해 구단과의 계약 분쟁까지 이어졌다. 2007년 10월 6일, 아피아는 쉬페르리그 경기에서 벤치에서 교체 출전하며 복귀했으나, 12월 1일 마지막 경기 이후 부상이 재발했다. 그는 2007년 12월 20일 이탈리아로 건너가 재활 치료를 받았다. 이 장기 부상으로 인해 그는 2008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 선수로 참가하지 못했고, 대신 팀의 특별 고문 역할을 맡았다.
페네르바흐체는 아피아가 외국인 선수 쿼터를 차지하고 있어 그를 선수 명단에서 제외하기를 원했지만, 아피아는 상황이 불분명하다며 이를 거부했다. 또한 아피아는 튀르키예 내에서 재활 치료를 받는 것 역시 거부했다. 구단은 아피아가 무단 이탈했다고 생각했고, 아피아는 구단이 자신의 의료 기록을 언론에 노출하고 부상을 잘못 치료했다고 주장했다. 구단은 아피아를 위해 미국의 메이오 클리닉 진료 예약을 잡았으나 아피아가 참석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2008년 2월 1일, 아피아는 구단의 부당 대우를 주장하며 2008년 7월 1일부로 자유 계약 선수로 팀을 떠나고, 2008-09 시즌에 미리 합의된 급여 200.00 만 EUR를 지급해달라고 공식적으로 요구했다. 이에 페네르바흐체는 FIFA에 이 사실을 통보했다. 2008년 4월, 이 사건은 FIFA 분쟁 해결 회의(DRC)로 넘어갔고, 양측은 서로를 고소했다. 아피아는 구단이 계약상 의무를 다하지 않아 계약을 위반했다고 판단하여 시즌 종료 후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했다. 그는 2008년 여름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와 계약 협상을 시작하기도 했다.
2009년 1월 9일, DRC는 아피아가 정당한 사유 없이 계약을 위반했다며 페네르바흐체에 228.19 만 EUR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아피아는 이 결정에 반발하여 2009년 5월 CAS에 즉시 항소했고, 구단 역시 항소했다. 2010년 6월 7일, CAS는 아피아가 페네르바흐체에 보상금을 지불할 필요가 없다고 판결했다. 이는 페네르바흐체가 아피아에게 지불하지 않은 급여(€2,633,020.65)가 발생한 손실(€2,496,278.85)보다 많았기 때문이었다.
2.4. 후기 경력 및 은퇴
페네르바흐체를 떠난 아피아는 새로운 팀을 찾기 위해 여러 구단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았다. 2009년 1월, 토트넘 홋스퍼에서 6개월 계약을 목표로 입단 테스트에 참여했으나, 무릎 부상과 체력 문제로 인해 계약을 제안받지 못했다. 토트넘은 대신 위건에서 윌슨 팔라시오스를 영입했다. 이듬달에는 러시아 챔피언인 루빈 카잔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았지만, 같은 이유로 계약이 무산되었다. 2008년 6월 페네르바흐체를 떠난 이후 소속팀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아피아는 2008-09 시즌 내내 국가대표팀에서 꾸준히 활약했다.
2009년 11월 1일, 아피아는 자유 계약 선수로 볼로냐에 입단하며 세리에 A로 복귀했다. 그러나 볼로냐에서는 단 2경기에만 출전하며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였다. 2010년 8월 7일, 그는 새로 승격한 세리에 A 팀인 체세나와 1년 계약을 맺었으며, 팀이 1부 리그에 잔류할 경우 1년 더 계약을 연장할 수 있는 옵션이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2010-11 시즌 종료 후 체세나와의 계약이 만료되어 다시 자유 계약 선수가 되었다.
2011년 12월 7일, 영국 언론은 아피아가 블랙번 로버스 입단 테스트에 합격하여 1년 계약을 앞두고 있었으나, 부친의 장례를 위해 가나로 귀국했다고 보도했다. 2012년 2월 2일, 아피아는 메디컬 테스트를 통과한 후 세르비아 클럽인 보이보디나와 6개월 계약을 체결했다. 그는 알마미 모레이라, 알렉산다르 카타이와 함께 보이보디나의 겨울 이적시장 주요 영입 선수였으며, 베오그라드 클럽들의 지배에 도전하고 유럽 대회 출전권을 확보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는 2012년 3월 4일 라드니치키 크라구예바츠와의 경기에서 선발 출전하며 세르비아 수페르리가 데뷔전을 치렀다. 2011-12 시즌 종료까지 11경기에 출전하여 유일한 득점을 기록했다. 그의 득점은 레드 스타와의 2-1 승리 경기에서 나왔는데, 이 승리로 보이보디나는 리그 3위를 차지하며 다음 시즌 UEFA 유로파리그 출전권을 획득했다. 보이보디나는 재계약을 원했으나, 아피아는 팀에 잔류하지 않았다.
2012년 11월 8일, 아피아는 이란의 페르세폴리스와 계약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며칠 후 마누엘 주제 감독이 영입을 부인하며 최종적으로 메디컬 테스트 불합격으로 인해 계약이 무산되었다. 이에 대해 아피아는 메디컬 테스트에 문제가 없었으며, 감독이 자신이 원하는 선수를 데려오려 했다고 주장했다.
무릎 부상으로 2년 동안 활동이 없었던 아피아는 2015년 1월 14일, 33세의 나이로 프로 축구 선수 은퇴를 공식 발표했다.
3. 국가대표 경력
스티븐 아피아는 가나의 모든 연령대별 대표팀을 거치며 국제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성인 국가대표팀인 '블랙 스타즈'의 주장으로서 FIFA 월드컵 본선 진출과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끌어냈다.
3.1. 유소년 및 올림픽 대표팀
아피아는 14세의 나이로 1995년 FIFA U-17 월드 챔피언십에 참가한 가나 대표팀의 일원이었다. 가나는 결승전에서 브라질을 꺾고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또한, 그는 1997년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에도 가나 U-20 대표팀으로 참가하여 8경기에 출전해 1골을 기록했으며, 팀은 준우승을 차지했다.
2004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아테네 올림픽 축구 경기에는 3명의 와일드카드 선수 중 한 명으로 참가했다. 아피아는 이 올림픽에서 세련되고 침착한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득점 능력까지 겸비한 선수로 이름을 알렸다. 그는 3번의 조별리그 경기에서 모두 빛나는 활약을 펼치며 공격을 이끌었고, 2골을 기록했다.
3.2. 성인 국가대표팀 (블랙 스타즈)
아피아는 자신의 16번째 생일이었던 1996년 12월 24일, 베냉과의 4개국 토너먼트 경기에서 성인 국가대표팀인 블랙 스타즈에 데뷔했다. 당시 주장인 아베디 펠레를 대신해 후반 80분 교체 투입되어 가나의 2-0 리드를 지켰다.
그는 슬로베니아와의 친선 경기에서 처음으로 주장 완장을 찼으며, 이후 가나를 2006년 FIFA 월드컵 본선으로 이끌며 역사적인 첫 월드컵 진출을 이뤄냈다. 스티븐 아피아는 2006년과 2010년 FIFA 월드컵에서 가나의 주장을 맡았다.

2006년 FIFA 월드컵에서 아피아는 등번호 10번을 달고 가나의 전 경기에 선발 출전하여 팀을 이끌었다. 특히 미국과의 조별리그 경기에서는 맨 오브 더 매치에 선정되는 등 맹활약하며 가나가 16강에 진출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2008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는 부상으로 인해 선수로 출전하지 못하고 팀의 특별 고문 역할을 수행했다.
아피아는 2010년 FIFA 월드컵에도 가나 대표팀을 이끌었다. 2010년 8월 22일, 가나가 월드컵에서 8강이라는 역대 최고 성적을 기록한 후, 아피아는 29세의 나이로 국가대표팀 은퇴를 발표했다. 그의 국가대표 경력은 67경기 출전, 15골로 마무리되었다.
4. 플레이 스타일
스티븐 아피아는 다재다능하고 끈기 있으며, 신체적으로 강인한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였다. 그는 뛰어난 시야, 기술, 강력한 태클, 뛰어난 운동 능력, 스태미나, 그리고 오른발에서 나오는 강력하고 정확한 중거리 슈팅 능력을 바탕으로 수비는 물론 공격을 조율하고 동료들에게 득점 기회를 제공하며 직접 골을 넣는 능력까지 갖추고 있었다.
그는 경기장 내 미드필드 어느 곳에서든 뛸 수 있었고, 다양한 전술적 포메이션에 자신을 맞출 수 있었지만, 주로 중원에서 활약했다. 경기 전반에 걸쳐 기회를 창출하고 스스로 득점까지 올리는 능력 때문에 "토네이도"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5. 은퇴 후 활동 및 기타
선수 생활 은퇴 후, 스티븐 아피아는 축구계에 대한 기여를 이어갔을 뿐만 아니라, 사회 공헌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다방면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5.1. 은퇴 및 기념 경기
2015년 1월 14일, 스티븐 아피아는 무릎 부상으로 인해 2년 동안 경기에 나서지 못한 끝에 공식적으로 은퇴를 발표했다. 그의 은퇴를 기념하기 위한 기념 경기는 2015년 6월 27일 아크라 스포츠 스타디움에서 열렸다. 이 경기에서는 '블랙 스타즈' 팀과 '아피아 XI' 팀이 맞붙었으며, 아피아 XI 팀에는 주세페 콜루치, 리차드 킹슨, 조지 보아텡, 새미 아제이, 사무엘 에투, 바푸르 잔, 엠마뉘엘 아데바요르 등 전설적인 국제 축구 선수들이 대거 참여했다. 경기는 2대2 무승부로 끝났으며, 아피아는 아피아 XI의 첫 골을 프리킥으로 기록했다. 아사모아 잔과 벤 아챔퐁이 블랙 스타즈의 골을 넣었고, 바푸르 잔이 아피아 XI의 마지막 동점골을 넣었다.
경기는 매진되었으며, 아피아는 경기 종료 후 가족들과 함께 트랙을 돌며 팬들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이 기념 경기에는 제리 롤링스 전 대통령과 존 아제쿰 쿠푸르 전 대통령, 에드워드 도 아자호 국회의장, 그리고 당시 현직 대통령인 존 드라마니 마하마를 포함한 고위 인사들이 참석했으며, 마하마 대통령은 시축을 직접 하기도 했다. 가나의 이슬람 최고 지도자인 셰이크 오스만 누후 샤라부투와 로열 하우스 예배당의 사도 총회장인 레브 샘 코란키 안크라 등 종교 지도자들도 자리를 빛냈다. 기념 경기 전날인 6월 26일에는 아크라의 주 연회장에서 특별 만찬과 모금 행사가 열렸다. 경기와 모금 행사에서 모인 모든 수익금은 아피아가 설립한 자선 재단인 'StepApp' 재단의 자선 사업에 사용되었다.
5.2. 팀 매니저 및 재단 활동
2017년 5월, 아피아는 가나 축구 협회(GFA)에 의해 블랙 스타즈의 팀 매니저로 임명되었다. 그는 선수 은퇴 후 처음으로 팀의 기술 스태프 일원으로 봉사할 기회를 얻었다.
또한 아피아는 자신의 이름을 따서 'StepApp'이라는 의류 브랜드를 디자인했으며, 2007년 11월 말 자신의 고향인 아크라에서 이 브랜드를 출시했다. 이 의류 브랜드의 모든 수익금은 'StepApp' 재단의 자선 활동에 기부되었다. 이 의류 라인은 처음에는 아프리카에서 출시되었고, 몇 달 후 유럽과 미국에도 진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출시 이후 'StepApp' 의류 라인은 어려움에 직면하기도 했다.
6. 개인 생활
스티븐 아피아는 결혼하여 세 아들을 두고 있다. 그의 아들 중 한 명인 로드니 아피아는 현재 가나 프리미어리그의 아크라 그레이트 올림픽스에서 뛰고 있다. 또한 그의 다른 두 아들은 한때 유벤투스 유소년 아카데미에 소속되어 있었다.
아피아는 전 가나 국가대표팀 선수인 엠마뉘엘 하마와 사촌 관계이지만, 동명이인인 제임스 퀘시 아피아와는 혈연 관계가 없다. 그는 마이클 에시엔, 라리아 킹스턴, 술레이 문타리 등 가나 국가대표팀의 다른 미드필더들과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7. 주요 성과 및 수상
스티븐 아피아는 클럽과 국가대표팀,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여러 중요한 업적과 수상 경력을 가지고 있다.
- 클럽
- 하츠 오브 오크
- 가나 프리미어리그: 1996-97
- 가나 FA컵: 1996
- 파르마
- 코파 이탈리아: 2001-02
- 유벤투스
- 세리에 A: 2004-05 (단, 칼치오폴리 스캔들로 인해 타이틀 박탈)
-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2003
- 페네르바흐체
- 쉬페르리그: 2006-07
- 터키 슈퍼컵: 2007
- 국가대표팀
- 가나 U-17
- FIFA U-17 월드 챔피언십: 1995
- 개인
- 올해의 가나 스포츠 기자 협회 유망 축구 선수상(SWAG Most Promising Football Star of the Year): 1997
- 하계 올림픽 축구 올스타 팀: 2004
- 가나 올해의 선수상: 2004, 2005
-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토너먼트 팀: 2006
- FIFA 월드컵 맨 오브 더 매치: 2006년 FIFA 월드컵 조별리그 미국전
- 가나 U-17
- 하츠 오브 오크
8. 경력 통계
8.1. 클럽
클럽 | 시즌 | 리그 | 컵 | 대륙 대회 | 기타 | 총합 | |||||||
---|---|---|---|---|---|---|---|---|---|---|---|---|---|
디비전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
우디네세 | 1997-98 | 세리에 A | 11 | 0 | 0 | 0 | - | - | 11 | 0 | |||
1998-99 | 세리에 A | 21 | 0 | 6 | 3 | - | 2 | 0 | 29 | 3 | |||
1999-2000 | 세리에 A | 4 | 0 | 0 | 0 | 1 | 0 | - | 5 | 0 | |||
합계 | 36 | 0 | 6 | 3 | 1 | 0 | 2 | 0 | 45 | 3 | |||
파르마 | 2000-01 | 세리에 A | 15 | 0 | 5 | 1 | 6 | 1 | - | 26 | 2 | ||
2001-02 | 세리에 A | 13 | 0 | 3 | 0 | 7 | 0 | - | 23 | 0 | |||
합계 | 28 | 0 | 8 | 1 | 13 | 1 | 0 | 0 | 49 | 2 | |||
브레시아 (임대) | 2002-03 | 세리에 A | 31 | 7 | 1 | 0 | 0 | 0 | - | 32 | 7 | ||
유벤투스 | 2003-04 | 세리에 A | 30 | 1 | 8 | 0 | 7 | 0 | 1 | 0 | 46 | 1 | |
2004-05 | 세리에 A | 18 | 2 | 2 | 0 | 3 | 0 | - | 23 | 2 | |||
합계 | 48 | 3 | 10 | 0 | 10 | 0 | 1 | 0 | 69 | 3 | |||
페네르바흐체 | 2005-06 | 쉬페르리그 | 32 | 8 | 6 | 1 | 6 | 2 | - | 44 | 11 | ||
2006-07 | 쉬페르리그 | 26 | 3 | 1 | 0 | 10 | 3 | - | 37 | 6 | |||
2007-08 | 쉬페르리그 | 6 | 0 | 1 | 0 | 2 | 0 | - | 9 | 0 | |||
합계 | 64 | 11 | 8 | 1 | 18 | 5 | 0 | 0 | 90 | 17 | |||
볼로냐 | 2009-10 | 세리에 A | 2 | 0 | 0 | 0 | 0 | 0 | - | 2 | 0 | ||
체세나 | 2010-11 | 세리에 A | 14 | 0 | 1 | 0 | 0 | 0 | - | 15 | 0 | ||
보이보디나 | 2011-12 | 수페르리가 | 11 | 1 | 2 | 0 | 0 | 0 | - | 13 | 1 | ||
커리어 총합 | 234 | 22 | 36 | 5 | 42 | 6 | 3 | 0 | 315 | 33 |
8.2. 국가대표팀
국가대표팀 | 연도 | 출전 | 득점 |
---|---|---|---|
가나 | 1995 | 1 | 0 |
1996 | 0 | 0 | |
1997 | 0 | 0 | |
1998 | 2 | 0 | |
1999 | 1 | 0 | |
2000 | 5 | 1 | |
2001 | 5 | 2 | |
2002 | 2 | 0 | |
2003 | 5 | 3 | |
2004 | 5 | 2 | |
2005 | 7 | 2 | |
2006 | 16 | 2 | |
2007 | 3 | 1 | |
2008 | 3 | 1 | |
2009 | 7 | 1 | |
2010 | 5 | 0 | |
총합 | 67 | 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