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세자르 아파레시도 로드리게스 (César Aparecido Rodrigues세자르 아파레시도 로드리게스포르투갈어, 1974년 10월 24일 ~ )는 흔히 세자르 (César)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브라질의 전 축구 선수이자 현 축구 지도자이다. 그는 주로 왼쪽 미드필더나 왼쪽 풀백으로 활약했다. 세자르는 상파울루에서 태어나 CA 주벤투스에서 선수 경력을 시작했으며, AD 상카에타누에서 핵심 선수로 성장하여 팀을 브라질 전국 리그 결승으로 이끌었다. 이후 SS 라치오와 인테르 밀란 등 세리에 A의 주요 클럽에서 활약하며 세리에 A 우승 2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2회를 차지했다. 그는 2001년에 브라질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두 차례 경기에 출전하기도 했다. 선수 은퇴 후에는 SS 라치오 유소년팀을 비롯한 여러 팀에서 지도자 경력을 이어가고 있다. 그의 경력은 축구계에서의 성공뿐만 아니라, 선수 생활 초기 절도 사건에 연루되어 수감되었던 과거를 극복하고 재활에 성공한 사례로도 평가받는다.
2. 초기 생애 및 배경
세자르의 초기 생애와 배경은 그의 축구 경력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어린 시절의 범죄 연루는 그의 삶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2.1. 출생 및 유년 시절
세자르 아파레시도 로드리게스는 1974년 10월 24일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태어났다. 그는 1983년부터 1992년까지 EC 페호유 이타케렌시 유소년팀에서 축구를 시작했으며, 1992년부터 1994년까지 CA 주벤투스 유소년팀에서 활동했다. 1994년에는 CA 주벤투스 성인팀에 합류하며 프로 경력을 시작했다.
2.2. 범죄 연루 및 수감
1994년, CA 주벤투스가 주 리그 1부로 승격하면서 팀은 성공에 대한 보상으로 상당한 금액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이 돈이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세자르는 이 절도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돈의 배달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 혐의로 5년 4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으로 인해 그는 1994년부터 1998년까지 수감 생활을 했다. 그의 수감은 축구 경력의 중단과 함께 개인적인 시련으로 기록되었다. 1998년 석방된 후, 그는 AD 상카에타누의 도움으로 축구계에 복귀할 수 있었다. AD 상카에타누는 그가 체포되기 1년 전 그와 계약했던 팀으로, 그의 복귀를 위해 위성 클럽인 우니앙 바르바렌시로 임대 보내는 등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3. 선수 경력
세자르는 브라질과 이탈리아를 오가며 다양한 클럽에서 활약했으며, 그의 다재다능한 플레이 스타일은 여러 팀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데 기여했다.
3.1. 브라질에서의 경력
세자르는 1998년 수감 생활에서 풀려난 후, 그와 계약했던 AD 상카에타누의 도움으로 축구계에 복귀했다. 그는 곧바로 우니앙 바르바렌시로 임대되어 1998년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세리에 A2 우승에 기여했다. AD 상카에타누로 복귀한 세자르는 즉시 팀의 핵심 선수로 자리매김했으며, 팀의 주장까지 맡았다. 그는 2000년 팀을 하위 리그에서 브라질 전국 리그 결승전까지 이끌며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3.2. 이탈리아에서의 경력
2001년 여름, 세자르는 SS 라치오의 오랜 추적 끝에 세리에 A 팀인 SS 라치오에 합류했다. 그는 이 로마 연고 클럽의 중요한 선수로 자리 잡았으며, 2003-04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경험했다. 2006년 1월, 인테르 밀란은 오랜 구애 끝에 세자르를 임대 영입하여 그에게 이탈리아 최고 팀 중 한 곳에서 뛸 기회를 주었다. 2006년 여름, SS 라치오와의 계약이 만료되자 세자르는 인테르 밀란에 합류하여 장기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인테르 밀란으로 완전 이적한 직후인 2006-07 시즌 개막 전, 그는 브라질의 주요 팀인 코린치앙스로 다시 임대되었다. 2006년 12월 브라질 시즌이 끝난 후, 세자르는 이탈리아로 돌아가 뛰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고, 2007년 1월 25일 리보르노로 임대 이적하여 세자르 프라테스의 공백을 메웠다. 2007년 2월 11일, 그는 리보르노 소속으로 인테르 밀란을 상대로 첫 세리에 A 경기를 치렀다.
2007-08 시즌에는 인테르 밀란으로 복귀하여 막스웰과 함께 왼쪽 측면에서 좋은 호흡을 보여주며 시즌 초반 좋은 활약을 펼쳤고, 득점까지 기록했다. 하지만 이후 그는 다시 스쿼드에서 제외되었고, 토리노와의 경기에서 45분 동안 출전했으나 많은 인테르 밀란 팬들을 실망시켰다. 당시 팀의 많은 부상 선수들로 인해 하프타임에 루이스 히메네스와 교체되었다.
2008년 여름, 인테르 밀란과의 계약이 만료되면서 세자르는 무소속 선수가 되었다. 그는 2008-09 시즌 전반기 동안 소속팀 없이 지냈다. 2008년 11월 18일, 세자르는 그의 전 인테르 밀란 수석 코치였던 시니샤 미하일로비치가 감독을 맡고 있던 볼로냐와 계약했다. 2009년 10월 9일에는 이탈리아 3부 리그 클럽인 AS 페시나 발레 델 조벤코에 합류하여 2010년까지 뛰었다. 그러나 2010년에 클럽이 파산하면서 그는 팀을 떠나야 했고, 2011년에 현역에서 은퇴했다.
3.3. 주요 이적 및 임대
세자르의 선수 경력 동안 여러 클럽을 거치며 중요한 이적 및 임대 기록을 남겼다.
연도 | 클럽 |
---|---|
1994년 | CA 주벤투스 |
1998년 | 우니앙 바르바렌시 (임대) |
1998년 | AD 상카에타누 |
2001년 여름 | SS 라치오 |
2006년 1월 | 인테르 밀란 (임대) |
2006년 여름 | 인테르 밀란 |
2006년 여름 | 코린치앙스 (임대) |
2007년 1월 | 리보르노 (임대) |
2007년 여름 | 인테르 밀란 |
2008년 11월 | 볼로냐 |
2009년 10월 | AS 페시나 발레 델 조벤코 |
2011년 | 현역 은퇴 |
3.4. 포지션 및 플레이 스타일
세자르는 주로 왼쪽 미드필더로 뛰는 것을 선호했지만, 왼쪽 풀백으로도 능숙하게 활약할 수 있는 다재다능한 선수였다. 그의 키는 181 cm이고 몸무게는 71 kg이었다. 그는 왼쪽 측면에서 공격과 수비를 오가며 팀에 기여했으며, 특히 인테르 밀란 복귀 후 막스웰과 함께 왼쪽 측면에서 좋은 연계 플레이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의 플레이는 팀의 측면 공격에 활력을 불어넣고 수비적인 안정감을 더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4. 국가대표 경력
세자르는 2001년 브라질 국가대표팀에 소집되어 두 차례 국제 경기에 출전했다. 비록 짧은 국가대표 경력이었지만, 이는 그의 선수 경력에서 중요한 부분으로 기록되었다.
5. 지도자 경력
선수 은퇴 후 세자르는 축구 지도자로 변신하여 유소년팀 육성에 힘쓰고 있다.
2011년 8월, 세자르는 선수 경력을 마감하고 친정팀인 SS 라치오의 코치직을 수락했다. 그는 SS 라치오의 유소년팀인 '조바니시미 프로빈치알리 B' 팀의 감독으로 임명되었으며, 2011년부터 2012년까지 SS 라치오 U-15팀, 2012년부터 2013년까지 SS 라치오 U-17팀을 지도했다. 2013년부터 2014년까지는 프로시노네 U-17팀의 감독을 맡았다. 2018년 3월 19일에는 US 사마고르의 U-15팀 감독으로 부임하며 지도자 경력을 이어가고 있다.
6. 수상 경력
세자르는 선수 경력 동안 여러 팀에서 다음과 같은 주요 대회 우승 기록을 달성했다.
- 우니앙 바르바렌시
-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세리에 A2: 1998
- AD 상카에타누
-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세리에 A2: 2000
- SS 라치오
- 코파 이탈리아: 2003-04
- 인테르 밀란
- 코파 이탈리아: 2005-06
- 세리에 A: 2005-06, 2007-08
7. 평가 및 논란
세자르의 경력은 뛰어난 축구 실력과 함께 과거의 논란이 공존하는 복합적인 평가를 받는다.
7.1. 긍정적 평가
세자르는 AD 상카에타누 시절 팀의 핵심 선수이자 주장으로서 팀을 브라질 전국 리그 결승전까지 이끄는 등 뛰어난 리더십과 기량을 선보였다. SS 라치오와 인테르 밀란과 같은 이탈리아 명문 클럽에서도 중요한 선수로 활약하며 팀의 세리에 A와 코파 이탈리아 우승에 기여했다. 특히 인테르 밀란 복귀 후 시즌 초반 보여준 활약은 그의 잠재력과 기여도를 입증하는 사례로 평가받는다. 그의 다재다능함과 측면에서의 기여는 여러 감독에게 높이 평가받았다.
7.2. 논란 및 비판
세자르의 경력에서 가장 큰 논란은 1994년 절도 사건 연루로 인한 수감 이력이다. 그는 팀의 운영 자금 절도에 정보를 제공한 혐의로 5년 4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며, 이는 그의 선수 경력 초기에 큰 오점으로 남았다. 일본 언론에서는 그가 SS 라치오로 이적했을 당시 "교도소에서 라치오로 이적"이라는 자극적인 헤드라인으로 그의 과거를 보도하기도 했다. 이러한 과거는 그의 재활과 성공적인 복귀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지속적인 비판과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그의 이야기는 범죄를 저지른 인물이 어떻게 사회로 복귀하고 성공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지만, 동시에 그의 행동에 대한 책임과 그로 인한 사회적 시선을 피할 수 없게 만들었다.
8. 영향력
세자르의 삶과 경력은 축구계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여러 가지 의미 있는 영향을 미쳤다. 그의 이야기는 개인의 역경 극복과 재활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언급될 수 있다.
그는 절도 사건으로 수감되는 큰 시련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축구에 대한 열정과 AD 상카에타누의 도움으로 성공적인 선수 경력을 이어갔다. 이는 어려운 환경에 처한 이들에게 재기의 희망을 주는 메시지가 될 수 있다. 또한, SS 라치오와 인테르 밀란 등 유럽 명문 클럽에서 활약하며 브라질 선수로서의 입지를 다졌고, 이후 지도자로서 유소년 선수들을 양성하는 데 기여하며 축구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그의 복잡한 경력은 스포츠 스타의 사회적 책임과 함께, 개인의 변화와 성장이 사회에 미칠 수 있는 긍정적, 부정적 영향을 동시에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