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Early life and personal background
브렌던 셔너헌의 초기 생애와 교육 과정, 가족 관계 및 개인적인 배경은 그의 성장과 선수 경력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1.1. Childhood and education
브렌던 프레더릭 셔너헌은 1969년 1월 23일에 태어났으며, 아일랜드인 부모인 로잘린과 도널(1990년 사망)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도널은 소방관이었고, 나중에는 토론토 소방청에서 화재 예방 책임자를 역임했다. 셔너헌은 학창 시절 라크로스에서도 뛰어난 기량을 보였다.
어린 시절 그는 미시소거의 마이너 아이스하키 팀 소속으로 1982년 퀘벡 국제 피위 토너먼트에 참가했다. 그는 토론토의 일부인 이토비코에서 성장했으며, 그곳에서 성 레오 가톨릭 학교에 다녔고, 그의 가족은 성 레오 로마 가톨릭 교회에 출석했다. 셔너헌은 잠시 온타리오주 런던에 있는 가톨릭 센트럴 고등학교에 다녔고 그곳에서 졸업했다. 또한 마이클 파워/세인트 조지프 고등학교에 재학하며 하키팀에서 뛰었고, 1985년 온타리오 학교 체육 연맹 (OFSAA) 금메달을 획득하기도 했다.
1.2. Family and personal life
셔너헌에게는 대니, 브라이언, 숀 세 명의 형제가 있다. 그는 1998년 7월 4일에 아내 캐서린과 결혼했으며, 슬하에 세 자녀를 두었다. 셔너헌은 2002년 5월 17일에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 그는 또한 몇 편의 영화에서 작은 역할을 맡기도 했는데, 캐나다 배우 짐 캐리 주연의 영화 《Me, Myself & Irene영어》에 출연했다.
2. Playing career
브렌던 셔너헌은 주니어 리그와 뉴저지 데블스에서의 초기 활약을 시작으로, 세인트루이스 블루스, 하트포드 웨일러스, 디트로이트 레드윙스, 뉴욕 레인저스에서 인상적인 선수 경력을 쌓았다.
2.1. Junior career
셔너헌은 온타리오 하키 리그 (OHL)의 런던 나이츠에서 뛰어난 경력을 쌓은 후 1987년 NHL 신인 드래프트에서 피에르 튀르종에 이어 전체 2순위로 지명되면서 큰 기대를 모았다. 런던 나이츠에서 그의 등번호 19번은 영구 결번되었다.
2.2. New Jersey Devils (first stint)
1987-88 NHL 시즌에 뉴저지 데블스 소속으로 18세의 나이에 데뷔한 셔너헌은 65경기에서 26포인트를 기록했다. 다음 시즌인 1988-89 NHL 시즌에는 22골과 50포인트로 성적을 향상시켰다. 세 번째 NHL 시즌에는 73경기에서 72포인트를 기록하며 경기당 1포인트 이상을 기록하는 선수로 성장했고, 데블스에서 존 맥린에 이어 팀 내 득점 2위를 기록하며 주포로 자리매김했다. 셔너헌은 데블스에서의 첫 번째 활동 기간의 마지막 해인 1990-91 NHL 시즌에 29골과 66포인트를 기록했다. 22세의 나이에 셔너헌은 이미 NHL의 베테랑 득점원으로 자리매김했으며, 데블스의 플레이오프 진출에도 기여했다.
2.3. St. Louis Blues
1990-91 NHL 시즌 이후 자유 계약 선수가 된 셔너헌은 1991년 7월 25일에 세인트루이스 블루스와 계약했다. 그는 제한적 자유 계약 선수였기 때문에 데블스는 보상을 받아야 했다. 보통 이러한 보상은 드래프트 픽 형태였지만, 블루스는 이미 전년도에 수비수 스콧 스티븐스 영입으로 워싱턴 캐피털스에 4장의 1라운드 드래프트 픽을 빚지고 있었다. 블루스는 커티스 조지프, 로드 브린다모어, 그리고 먼 미래의 드래프트 픽 2장으로 보상을 제안했지만, 데블스는 오직 스콧 스티븐스만을 원했다. 결국 중재인은 스티븐스가 보상으로 지명되어야 한다고 결정했고, 이에 셔너헌은 스콧 스티븐스와 맞교환되어 블루스에 합류했다.
블루스에서의 첫 시즌은 데블스 시절과 비슷한 기록을 보였지만, 1992-93 NHL 시즌에 71경기에서 51골과 94포인트를 기록하며 한 단계 더 성장했다. 그는 팀 내 득점에서는 브렛 헐에 이어 2위, 전체 포인트에서는 3위를 기록했다. 다음 시즌인 1993-94 NHL 시즌에도 이러한 페이스를 이어가며 개인 최고 기록인 52골, 50어시스트, 102포인트를 기록했다. 블루스에서 포인트 선두를 기록했으며, 시즌 중반에 1994년 NHL 올스타전에, 시즌 말에는 NHL 올스타팀의 퍼스트 올스타팀에 선정되었다.
1994-95 NHL 록아웃 기간 동안 셔너헌은 독일 아이스하키 리그 (DEL)의 뒤셀도르프 EG에서 3경기에 출전하여 5골 3어시스트를 기록했다. NHL 경기가 재개되자 그는 록아웃으로 단축된 시즌에 41포인트를 기록하며 블루스에서 좋은 활약을 이어갔다. 1995년 스탠리컵 플레이오프에서는 5경기에서 9포인트를 기록하며 팀 득점을 이끌었다.
2.4. Hartford Whalers
블루스에서 네 시즌을 보낸 후, 1995년 7월 27일, 셔너헌은 수비수 크리스 프롱어와 트레이드되어 하트포드 웨일러스로 이적했고, 팻 버빅의 뒤를 이어 팀 주장이 되었다. 웨일러스에서 보낸 유일한 풀 시즌 동안 그는 팀 최고 기록인 44골과 78포인트를 기록했으며, 이러한 활약으로 1996년 NHL 올스타전에 선정되었다. 그러나 팀의 미래가 불확실해지자 셔너헌은 트레이드를 요청했고, 1996년 10월 9일, 1996-97 NHL 시즌 개막 후 단 2경기 만에 그는 브라이언 글린과 함께 디트로이트 레드윙스로 트레이드되었다. 이 트레이드의 대가는 포워드 키스 프라이모, 수비수 폴 코피, 그리고 1라운드 드래프트 픽이었다.
2.5. Detroit Red Wings (three Stanley Cups)
셔너헌은 1996-97 NHL 시즌을 평소와 같은 생산성으로 마무리하며 총 47골을 기록했고, 1997년 NHL 올스타전에 선정되었다. 1997년 스탠리컵 플레이오프에서도 9골과 8어시스트로 기여하며 레드윙스가 1955년 스탠리컵 결승 이후 첫 스탠리컵을 들어 올리는 데 일조했다. 다음 해에는 셔너헌이 57포인트만을 기록하는 부진한 시즌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레드윙스는 스탠리컵 우승을 차지하며 2연패를 달성했다. 다음 시즌인 1998-99 NHL 시즌에도 셔너헌은 58포인트를 기록했으며, 또다시 올스타전에 초대되었다. 2연속 스탠리컵 챔피언으로 1999년 스탠리컵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레드윙스는 라이벌 콜로라도 애벌랜치에 의해 탈락했다. 다음 해인 1999-2000 NHL 시즌에는 셔너헌이 41골을 기록하며 평소의 기량을 되찾았지만, 레드윙스는 2000년 플레이오프에서 다시 한번 애벌랜치에 의해 탈락했다. 시즌 후 그는 선수 경력에서 두 번째로 NHL 올스타팀의 퍼스트 올스타팀에 선정되었다. 그는 2000-01 NHL 시즌에 76포인트를 기록하며 부활한 모습을 보였으나, 디트로이트는 2001년 스탠리컵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로스앤젤레스 킹스에게 뜻밖의 패배를 당했다.
2001-02 NHL 시즌은 셔너헌과 레드윙스 모두에게 기념비적인 시즌이었다. 오프시즌 동안 미래의 하키 명예의 전당 헌액자들인 브렛 헐, 뤽 로비타이유, 도미니크 하셰크를 영입하면서 팀은 1997년 이후 세 번째 스탠리컵 우승을 목표로 했다. 팀은 승승장구했고, 셔너헌은 정규 시즌에 37골을 기록하고 궁극적으로 우승한 2002년 스탠리컵 결승 플레이오프에서 19포인트를 기록하며 팀의 성공에 큰 역할을 계속했다. 셔너헌은 또한 솔트레이크시티에서 팀 캐나다와 함께 동계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했고, NHL 올스타팀의 세컨드 올스타팀에 선정되었다. 이 시즌은 셔너헌에게 통계적으로도 특별한 의미가 있었는데,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하기 직전인 2002년 1월 12일, 댈러스 스타스와의 경기에서 마티 튀르코를 상대로 2골을 기록하며 NHL 통산 1,000포인트를 달성했다. 시즌 후반에는 3월 23일 콜로라도와의 경기에서 패트릭 로이를 상대로 결승골을 넣어 2-0 승리를 거두며 통산 500골 고지에 올랐다. 이 승리로 디트로이트는 정규 시즌 1위 팀에게 주어지는 프레지던츠 트로피도 확정 지었다.
디트로이트의 세 번째 스탠리컵 우승 이후 시즌에 셔너헌은 30골과 68포인트를 기록했고, 그의 인도주의적 노력으로 킹 클랜시 기념 트로피를 수상했다. 그러나 다음 시즌에는 그의 생산성이 25골과 53포인트로 떨어져 15년 만에 가장 낮은 기록을 보였다. 2004-05 NHL 록아웃으로 인해 한 시즌을 쉬고 난 후, 셔너헌은 2005-06 NHL 시즌에 다시 한번 기량을 되찾아 40골과 81포인트를 기록하며 레드윙스 득점 3위를 차지했다.
2.6. New York Rangers
셔너헌은 2005-06 NHL 시즌 이후 자유 계약 선수가 되어 뉴욕 레인저스와 1년, 400.00 만 USD 계약을 맺었다. 디트로이트에서 성공적인 9년간의 활동을 마친 그는 NHL 경력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고자 하는 열망을 표현하며, "정말 본능적인 느낌이었습니다. 디트로이트는 훌륭한 과거를 가지고 있고 훌륭한 미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미래보다는 과거에 더 많이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던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셔너헌은 2006년 10월 5일 워싱턴 캐피털스와의 시즌 개막전에서 올라프 쾰치히를 상대로 599호, 600호 골을 기록하며 레인저스에서의 경력을 시작했다. 두 골 모두 페트르 프루차의 도움을 받아, 그는 NHL 역사상 15번째로 600골 고지에 오른 선수가 되었다. 그 직후인 2006년 11월 14일, 셔너헌은 마크 메시어가 빙상 안팎에서 리더십 기술을 가장 잘 보여주는 선수에게 매달 수여하는 초대 마크 메시어 리더십 어워드를 수상했다. 이후 8번째 올스타전에 선정되었고, 2007년 NHL 올스타전에서는 동부 콘퍼런스의 주장으로 지명되었다. 2007년 2월 1일, 그는 NHL 심판들이 팀 주장 야로미르 야그르에게 편파 판정을 하고 있다는 자신의 생각에 대해 기자회견에서 불만을 표명하며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같은 달 후반인 2월 17일 경기에서 필라델피아 플라이어스 포워드이자 전 레드윙스 팀 동료인 마이크 너블과 심한 충돌 사고에 휘말렸다. 셔너헌과 너블은 셔너헌이 벤치로 향하던 중 서로 반대 방향으로 스케이트를 타다가 충돌했고, 이로 인해 셔너헌은 머리를 빙상에 부딪혀 10분 동안 의식을 잃었다. 그는 들것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다음 날 퇴원했다. 15경기를 결장한 후, 셔너헌은 2007년 스탠리컵 플레이오프에 맞춰 라인업에 복귀했지만, 레인저스는 2라운드에서 버펄로 세이버스에게 패배했다. 셔너헌은 레인저스에서의 첫 시즌을 야그르의 부주장으로서 67경기 62포인트로 팀 득점 4위를 기록하며 마쳤다.
레인저스와 또 다른 1년 계약을 재계약한 후, 셔너헌은 2007-08 NHL 시즌에 46포인트만을 기록하며 공격 생산성에서 어려움을 겪었는데, 이는 1987-88 NHL 시즌 데뷔 시즌 이후 가장 낮은 기록이었다. 오프시즌에 그의 계약이 만료되면서, 레인저스는 자유 계약 선수 마츠 순딘 영입을 추진하며 그에게 재계약 제안을 하지 않았다.
2.7. Return to New Jersey Devils
레인저스와 합의에 이르지 못한 셔너헌은 2008-09 NHL 시즌 전반기를 결장했다. 그리고 2009년 1월 10일, 셔너헌이 뉴저지 데블스로 복귀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되었다. 나흘 후인 1월 14일, 계약 조건이 확정되었고 셔너헌은 1년, 80.00 만 USD의 비례 배분 계약을 체결했다. 셔너헌이 데블스를 떠났다가 복귀하기까지의 기간은 17년 294일로, NHL 역사상 한 팀에서 가장 긴 공백 기간이었다. 1990-91 NHL 시즌 이후 데블스로 돌아온 첫 경기에서 그는 2009년 1월 19일 내슈빌 프레데터스를 상대로 5-3 파워 플레이 상황에서 발가락으로 퍽을 상대 선수 주위로 끌어당긴 후 패드 쪽으로 슛을 날려 3-1 승리에서 첫 골을 기록했다. 2009년 8월 5일, 셔너헌은 22번째 시즌인 2009-10 NHL 시즌을 위해 데블스와 1년 계약에 합의했다. 이것은 셔너헌의 데블스 소속 여섯 번째 시즌이 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2009년 10월 1일, 데블스와 셔너헌은 결별했으며, 셔너헌은 "지난 여름 계약할 때, 루 라모리엘로, 자크 르메르 그리고 저는 제가 스스로 기대하는 수준에서 경쟁하고 기여할 수 있는 적합한 역할을 찾을 수 없다면, 단순히 물러나기로 합의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셔너헌은 2009-10 NHL 시즌 프리시즌 경기에서 4경기만을 뛰었을 뿐이었다. 그는 그 해 데블스의 마지막 프리시즌 골을 넣었는데, 이는 그의 마지막 NHL 교대 중 하나였다.
3. International play
셔너헌은 캐나다 남자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7개의 국제 대회에 참가했으며 다음과 같은 성과를 거두었다.
- 1987년 세계 주니어 아이스하키 선수권 대회 (실격)
- 1991년 캐나다컵 (금메달)
- 1994년 남자 아이스하키 세계 선수권 대회 (금메달)
- 1996년 하키 월드컵 (은메달)
- 1998년 동계 올림픽 (4위)
- 2002년 동계 올림픽 (금메달)
- 2006년 세계 아이스하키 선수권 대회 (주장, 4위)
4. Executive career
선수 은퇴 후, 브렌던 셔너헌은 NHL 중앙 조직과 토론토 메이플리프스에서 중요한 행정가 역할을 수행하며 아이스하키 발전에 기여했다.
4.1. National Hockey League
2009년 11월 17일, 셔너헌은 NHL에서 21년간의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공식적으로 은퇴를 발표했다. 그는 보도자료를 통해 "가족과 친구들에게 어릴 적 꿈이었던 NHL에서 뛰는 것을 이루고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에 감사드립니다. 경력 내내 배울 수 있었고 함께 뛸 수 있었던 모든 코치와 팀 동료들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NHL에서 뛰는 것을 항상 꿈꿨지만, 제가 이렇게 운이 좋고 축복받을 줄은 솔직히 상상도 못했습니다. 이 꿈을 이루는 데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했다.
2009년 12월, 셔너헌은 NHL의 하키 및 사업 개발 부사장직 제안을 수락했다. 셔너헌은 NHL.com과의 인터뷰에서 "넓은 의미에서 저는 당연히 하키 운영 부서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존 콜린스 (NHL COO)와 게리 미거 (NHL 커뮤니케이션 수석 부사장) 그리고 빌 데일리 (NHL 부총재) 같은 분들이 저에게 하키 사업을 가르쳐주실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저를 영입하겠다는 그들의 제안에 대해 제가 흥분했던 것은, 저에게 활짝 열려있었다는 점입니다. 닫힌 문은 없을 것이고, 저는 보고 배울 기회를 얻을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제 역할이 하키에 더 집중되는 날도 있고, 사업이나 마케팅에 더 집중되는 날도 있을 것입니다."
셔너헌은 2010년 세계 하키 서밋에서 연설하며, 유소년 하키 선수들의 기술 개발에 다시 재미를 불어넣으려고 노력했다. 그는 "아이들을 빙상에 데리고 나가서 그저 즐겁게 해주고, 발전하고 향상되고 있다는 것을 모른 채 발전하고 향상되도록 하는 것, 그리고 그들이 빙상에서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에만 신경 쓰도록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당신이 정말 가치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입니다."라고 말했다.
2011년 6월 1일, 셔너헌은 콜린 캠벨의 뒤를 이어 NHL의 수석 부사장이 되었다. 자신의 사무실로 보내진 플레이에 대한 판정을 내릴 때, 셔너헌은 NHL 공식 웹사이트에 비디오를 게시하여 해당 플레이가 NHL 규칙을 위반했는지 아닌지를 설명했다. 그는 몬트리올 캐나디언스나 오타와 세너터스와 관련된 프랑스어 비디오를 제외한 모든 비디오의 내레이션을 담당했으며, 이들은 부책임자인 스테판 퀸탈이 내레이션을 맡았다. 이 비디오들은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2012년 NHL 시상식에서 윌 아넷이 셔너헌을 패러디하며 풍자되기도 했다. 수석 부사장으로서 첫 시즌에 셔너헌은 불법적인 히트에 대해 선수들에게 여러 차례 출전 정지 징계를 내렸다.
4.2. Toronto Maple Leafs presidency

2014년 4월 11일, 셔너헌은 토론토 메이플리프스의 사장이자 부지사로 공식 발표되었다. 그는 하키 클럽의 모든 운영을 총괄하기 위해 영입되었다. 같은 날, NHL은 퀸탈이 그의 뒤를 이어 리그의 최고 징계관이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셔너헌이 메이플리프스에 왔을 때, 팀은 지난 10년간 플레이오프에 단 한 번만 진출했고, 2013-14 시즌 막바지에는 플레이오프 진출권에서 벗어나 있었다. 사장으로서 첫 풀 시즌인 2014-15 시즌에 셔너헌은 장기적인 "초토화" 재건 계획을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플레이오프 진출 경쟁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즌 도중에 랜디 칼라일 감독을 해고하면서 이 계획을 시작했다. 칼라일의 임시 후임인 피터 호라첵 체제하에서는 팀이 42경기 중 9승만을 거두며 동부 콘퍼런스에서 뒤에서 두 번째, 리그 전체에서는 뒤에서 네 번째로 시즌을 마쳤다. 2015년 4월 12일, 시즌이 끝난 다음 날, 셔너헌은 호라첵과 나머지 코칭 스태프 및 데이브 노니스 단장과 팀 스카우팅 스태프의 여러 구성원을 해고했다.
2015년 5월 20일, 메이플리프스는 높은 인기를 얻고 있던 스탠리컵 우승 경험자이자 팀 캐나다와 두 차례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한 마이크 배브콕을 팀의 새 감독으로 영입했다고 발표했다. 배브콕은 8년, 5000.00 만 USD 계약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NHL 역사상 최고액을 받는 감독이 되었다. 빙상 위에서 셔너헌은 (임시 단장인 카일 듀버스와 마크 헌터와 함께) 2015년 NHL 신인 드래프트에서 토론토 지역 출신인 미치 마너를 전체 4순위로 지명했으며, 6시즌 동안 팀의 득점 선두였던 포워드 필 캐슬을 1라운드 지명권과 유망주 카스페리 카파넨이 포함된 패키지로 피츠버그 펭귄스에 트레이드했다. 2015년 7월 24일, 메이플리프스는 전 뉴저지 데블스 단장인 루 라모리엘로를 메이플리프스의 단장으로 영입했다.
배브콕과 라모리엘로가 이끄는 새로운 오프-아이스 조직에도 불구하고, 메이플리프스의 선수단은 여전히 부진했고, 다시 한번 순위표 하위권에 머물며 실제로 리그 최하위로 시즌을 마쳤다. 그러나 유망주인 윌리엄 닐란더, 카스페리 카파넨, 코너 브라운, 잭 하이먼이 NHL에 데뷔하면서 시즌은 어느 정도 낙관적인 분위기를 가져왔다. 시즌 말에는 메이플리프스가 2016년 NHL 신인 드래프트에서 1순위 지명권을 획득하여 오스턴 매슈스를 지명하면서 더욱 낙관적인 전망이 나왔다. 팀 주장인 다이언 파뉴프도 시즌 중반에 오타와 세너터스로 트레이드되었고, 그의 주장 자리는 이후 세 시즌 동안 공석으로 남았다.
2016-17 시즌에 접어들면서, 메이플리프스는 매슈스와 마너, 그리고 이 시즌에 풀타임 NHL 정규 선수가 된 닐란더가 이끄는 젊은 선수단으로 인해 기대치가 여전히 낮았다. 그러나 팀은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며 예상치 못하게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이는 매슈스의 40골 시즌 (그는 최고 신인 선수로 칼더 트로피를 수상), 그리고 마너와 닐란더의 강력한 신인 시즌 (각각 61포인트)에 힘입은 바가 컸다. 그들은 프레지던츠 트로피 수상자인 강력한 우승 후보 워싱턴 캐피털스에게 6경기 만에 1라운드에서 패했다. 다음 몇 년 동안 메이플리프스는 매슈스, 마너, 닐란더, 모건 라일리를 중심으로 NHL의 강팀으로 자리매김했으며, 이후 세 시즌 동안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매번 1라운드를 통과하지 못했다.
2017-18 시즌 말, 라모리엘로는 뉴욕 아일랜더스로 떠났고, 셔너헌이 처음 부임했을 때 영입했던 카일 듀버스 부단장이 그의 후임으로 승진했다. 2018년 자유 계약 시장에서는 스타 센터 존 타바레스가 7년 계약으로 메이플리프스에 합류하는 큰 영입이 있었다. 셔너헌은 또한 2019-20 시즌의 좋지 않은 시작으로 인해 2019년 11월에 배브콕을 해고하고 그의 후임으로 셸든 키프를 고용하겠다는 듀버스의 결정을 승인했다.
셔너헌의 메이플리프스 재건은 팬들 사이에서 "셔너플랜"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나이 많은 선수들을 영입하여 단기적인 해결책을 찾는 대신 젊은 핵심 선수들을 드래프트하고 육성하는 방식으로 팀을 재건한 것에 대해 칭찬을 받았다. 그러나 그와 듀버스는 여러 차례의 플레이오프 1라운드 탈락으로 인해 비판을 받았다. 메이플리프스는 2004년 이후 2023년 탬파베이 라이트닝과의 시리즈에서 승리하기 전까지는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 진출하지 못했다.
5. International play
셔너헌은 캐나다 남자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7개의 국제 대회에 참가했으며 다음과 같은 성과를 거두었다.
- 1987년 세계 주니어 아이스하키 선수권 대회 (실격)
- 1991년 캐나다컵 (금메달)
- 1994년 남자 아이스하키 세계 선수권 대회 (금메달)
- 1996년 하키 월드컵 (은메달)
- 1998년 동계 올림픽 (4위)
- 2002년 동계 올림픽 (금메달)
- 2006년 세계 아이스하키 선수권 대회 (주장, 4위)
6. Executive career
선수 은퇴 후, 브렌던 셔너헌은 NHL 중앙 조직과 토론토 메이플리프스에서 중요한 행정가 역할을 수행하며 아이스하키 발전에 기여했다.
6.1. National Hockey League
2009년 11월 17일, 셔너헌은 NHL에서 21년간의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공식적으로 은퇴를 발표했다. 그는 보도자료를 통해 "가족과 친구들에게 어릴 적 꿈이었던 NHL에서 뛰는 것을 이루고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에 감사드립니다. 경력 내내 배울 수 있었고 함께 뛸 수 있었던 모든 코치와 팀 동료들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NHL에서 뛰는 것을 항상 꿈꿨지만, 제가 이렇게 운이 좋고 축복받을 줄은 솔직히 상상도 못했습니다. 이 꿈을 이루는 데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했다.
2009년 12월, 셔너헌은 NHL의 하키 및 사업 개발 부사장직 제안을 수락했다. 셔너헌은 NHL.com과의 인터뷰에서 "넓은 의미에서 저는 당연히 하키 운영 부서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존 콜린스 (NHL COO)와 게리 미거 (NHL 커뮤니케이션 수석 부사장) 그리고 빌 데일리 (NHL 부총재) 같은 분들이 저에게 하키 사업을 가르쳐주실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저를 영입하겠다는 그들의 제안에 대해 제가 흥분했던 것은, 저에게 활짝 열려있었다는 점입니다. 닫힌 문은 없을 것이고, 저는 보고 배울 기회를 얻을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제 역할이 하키에 더 집중되는 날도 있고, 사업이나 마케팅에 더 집중되는 날도 있을 것입니다."
셔너헌은 2010년 세계 하키 서밋에서 연설하며, 유소년 하키 선수들의 기술 개발에 다시 재미를 불어넣으려고 노력했다. 그는 "아이들을 빙상에 데리고 나가서 그저 즐겁게 해주고, 발전하고 향상되고 있다는 것을 모른 채 발전하고 향상되도록 하는 것, 그리고 그들이 빙상에서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에만 신경 쓰도록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당신이 정말 가치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입니다."라고 말했다.
2011년 6월 1일, 셔너헌은 콜린 캠벨의 뒤를 이어 NHL의 수석 부사장이 되었다. 자신의 사무실로 보내진 플레이에 대한 판정을 내릴 때, 셔너헌은 NHL 공식 웹사이트에 비디오를 게시하여 해당 플레이가 NHL 규칙을 위반했는지 아닌지를 설명했다. 그는 몬트리올 캐나디언스나 오타와 세너터스와 관련된 프랑스어 비디오를 제외한 모든 비디오의 내레이션을 담당했으며, 이들은 부책임자인 스테판 퀸탈이 내레이션을 맡았다. 이 비디오들은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2012년 NHL 시상식에서 윌 아넷이 셔너헌을 패러디하며 풍자되기도 했다. 수석 부사장으로서 첫 시즌에 셔너헌은 불법적인 히트에 대해 선수들에게 여러 차례 출전 정지 징계를 내렸다.
6.2. Toronto Maple Leafs presidency

2014년 4월 11일, 셔너헌은 토론토 메이플리프스의 사장이자 부지사로 공식 발표되었다. 그는 하키 클럽의 모든 운영을 총괄하기 위해 영입되었다. 같은 날, NHL은 퀸탈이 그의 뒤를 이어 리그의 최고 징계관이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셔너헌이 메이플리프스에 왔을 때, 팀은 지난 10년간 플레이오프에 단 한 번만 진출했고, 2013-14 시즌 막바지에는 플레이오프 진출권에서 벗어나 있었다. 사장으로서 첫 풀 시즌인 2014-15 시즌에 셔너헌은 장기적인 "초토화" 재건 계획을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플레이오프 진출 경쟁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즌 도중에 랜디 칼라일 감독을 해고하면서 이 계획을 시작했다. 칼라일의 임시 후임인 피터 호라첵 체제하에서는 팀이 42경기 중 9승만을 거두며 동부 콘퍼런스에서 뒤에서 두 번째, 리그 전체에서는 뒤에서 네 번째로 시즌을 마쳤다. 2015년 4월 12일, 시즌이 끝난 다음 날, 셔너헌은 호라첵과 나머지 코칭 스태프 및 데이브 노니스 단장과 팀 스카우팅 스태프의 여러 구성원을 해고했다.
2015년 5월 20일, 메이플리프스는 높은 인기를 얻고 있던 스탠리컵 우승 경험자이자 팀 캐나다와 두 차례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한 마이크 배브콕을 팀의 새 감독으로 영입했다고 발표했다. 배브콕은 8년, 5000.00 만 USD 계약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NHL 역사상 최고액을 받는 감독이 되었다. 빙상 위에서 셔너헌은 (임시 단장인 카일 듀버스와 마크 헌터와 함께) 2015년 NHL 신인 드래프트에서 토론토 지역 출신인 미치 마너를 전체 4순위로 지명했으며, 6시즌 동안 팀의 득점 선두였던 포워드 필 캐슬을 1라운드 지명권과 유망주 카스페리 카파넨이 포함된 패키지로 피츠버그 펭귄스에 트레이드했다. 2015년 7월 24일, 메이플리프스는 전 뉴저지 데블스 단장인 루 라모리엘로를 메이플리프스의 단장으로 영입했다.
배브콕과 라모리엘로가 이끄는 새로운 오프-아이스 조직에도 불구하고, 메이플리프스의 선수단은 여전히 부진했고, 다시 한번 순위표 하위권에 머물며 실제로 리그 최하위로 시즌을 마쳤다. 그러나 유망주인 윌리엄 닐란더, 카스페리 카파넨, 코너 브라운, 잭 하이먼이 NHL에 데뷔하면서 시즌은 어느 정도 낙관적인 분위기를 가져왔다. 시즌 말에는 메이플리프스가 2016년 NHL 신인 드래프트에서 1순위 지명권을 획득하여 오스턴 매슈스를 지명하면서 더욱 낙관적인 전망이 나왔다. 팀 주장인 다이언 파뉴프도 시즌 중반에 오타와 세너터스로 트레이드되었고, 그의 주장 자리는 이후 세 시즌 동안 공석으로 남았다.
2016-17 시즌에 접어들면서, 메이플리프스는 매슈스와 마너, 그리고 이 시즌에 풀타임 NHL 정규 선수가 된 닐란더가 이끄는 젊은 선수단으로 인해 기대치가 여전히 낮았다. 그러나 팀은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며 예상치 못하게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이는 매슈스의 40골 시즌 (그는 최고 신인 선수로 칼더 트로피를 수상), 그리고 마너와 닐란더의 강력한 신인 시즌 (각각 61포인트)에 힘입은 바가 컸다. 그들은 프레지던츠 트로피 수상자인 강력한 우승 후보 워싱턴 캐피털스에게 6경기 만에 1라운드에서 패했다. 다음 몇 년 동안 메이플리프스는 매슈스, 마너, 닐란더, 모건 라일리를 중심으로 NHL의 강팀으로 자리매김했으며, 이후 세 시즌 동안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매번 1라운드를 통과하지 못했다.
2017-18 시즌 말, 라모리엘로는 뉴욕 아일랜더스로 떠났고, 셔너헌이 처음 부임했을 때 영입했던 카일 듀버스 부단장이 그의 후임으로 승진했다. 2018년 자유 계약 시장에서는 스타 센터 존 타바레스가 7년 계약으로 메이플리프스에 합류하는 큰 영입이 있었다. 셔너헌은 또한 2019-20 시즌의 좋지 않은 시작으로 인해 2019년 11월에 배브콕을 해고하고 그의 후임으로 셸든 키프를 고용하겠다는 듀버스의 결정을 승인했다.
셔너헌의 메이플리프스 재건은 팬들 사이에서 "셔너플랜"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나이 많은 선수들을 영입하여 단기적인 해결책을 찾는 대신 젊은 핵심 선수들을 드래프트하고 육성하는 방식으로 팀을 재건한 것에 대해 칭찬을 받았다. 그러나 그와 듀버스는 여러 차례의 플레이오프 1라운드 탈락으로 인해 비판을 받았다. 메이플리프스는 2004년 이후 2023년 탬파베이 라이트닝과의 시리즈에서 승리하기 전까지는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 진출하지 못했다.
7. Achievements and honours
브렌던 셔너헌은 스탠리컵 챔피언, NHL 올스타전 참가, 올스타팀 선정 등 선수로서의 뛰어난 업적과 함께 킹 클랜시 기념 트로피 수상 등 다양한 영예를 얻었다.
그의 주요 업적 및 수상 경력은 다음과 같다.
- 스탠리컵 챔피언 3회 - 1997년, 1998년, 2002년
- NHL 올스타전 참가 - 1994년, 1996년, 1997년, 1998년, 1999년, 2000년, 2002년, 2007년 (주장)
- NHL 올스타팀 퍼스트 올스타팀 선정 - 1994년 및 2000년
- NHL 세컨드 올스타팀 선정 - 2002년
- 킹 클랜시 기념 트로피 수상 - 2003년
- 2004년 월드스타 팀과 함께 프리무스 챌린지 보울 우승
- 1994년 숏핸디드 골 NHL 선두
- 1997년 파워 플레이 골 NHL 선두
- 600골 이상과 2,000페널티분 이상을 기록한 유일한 선수
- 하키 명예의 전당 헌액
- 미시간 스포츠 명예의 전당 헌액
- 정규 시즌 중 가장 많은 고디 하우 해트트릭 비공식 기록 보유 (17회)
- 비디오 게임 《NHL 2K》 (2001년) 초대 표지 선수
8. Legacy and evaluation
브렌던 셔너헌은 '셔너헌 서밋'을 통한 아이스하키 스포츠에 대한 영향, 메이플리프스 재건 '셔너플랜' 등 선수 및 행정가로서의 중요한 유산을 남겼으며, 이에 대한 대중과 언론의 평가가 다양하게 존재한다.
8.1. Impact on the sport
2004-05 NHL 록아웃 기간 동안, 셔너헌은 토론토에서 이틀간 진행된 "셔너헌 서밋"이라고 불리는 회의의 주역이었다. 이 회의는 선수, 코치 및 기타 영향력 있는 인사들을 모아 경기의 흐름과 템포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했다. 총 10가지 권고 사항이 NHL과 내셔널 하키 리그 선수 협회 (NHLPA) 양측에 제출되었다.
은퇴 당시 셔너헌은 현역 NHL 선수들 중 17개의 고디 하우 해트트릭으로 선두를 달렸다. 그러나 모든 팀이 이 기록을 유지하지는 않았으며, 고디 하우 자신도 공식적으로는 두 번만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야후! 스포츠 기사에 따르면, 셔너헌은 선택해야 한다면 레드윙스 선수로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것이라고 말했다.
8.2. Public and media reception
메이플리프스의 재건을 이끈 그의 "셔너플랜"은 팬들 사이에서 큰 찬사를 받았다. 특히, 노련한 선수들을 영입하여 단기적인 성과를 내는 대신 젊은 핵심 선수들을 드래프트하고 육성하는 방식으로 팀을 재건한 그의 접근 방식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셔너헌과 듀버스는 2004년 이후 2023년까지 메이플리프스가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 진출하지 못했던 여러 차례의 1라운드 탈락으로 인해 비판을 받기도 했다.
9. Career statistics
브렌던 셔너헌의 프로 선수 생활 통계는 그의 뛰어난 득점 능력과 꾸준한 활약을 보여준다.
9.1. Regular season and playoffs
정규 시즌 | 플레이오프 | |||||||||||||
---|---|---|---|---|---|---|---|---|---|---|---|---|---|---|
시즌 | 팀 | 리그 | GP | G | A | Pts | PIM | GP | G | A | Pts | PIM | ||
1985-86 | 런던 나이츠 | OHL | 59 | 28 | 34 | 62 | 70 | 5 | 5 | 5 | 10 | 5 | ||
1986-87 | 런던 나이츠 | OHL | 56 | 39 | 53 | 92 | 128 | - | - | - | - | - | ||
1987-88 | 뉴저지 데블스 | NHL | 65 | 7 | 19 | 26 | 131 | 12 | 2 | 1 | 3 | 44 | ||
1988-89 | 뉴저지 데블스 | NHL | 68 | 22 | 28 | 50 | 115 | - | - | - | - | - | ||
1989-90 | 뉴저지 데블스 | NHL | 73 | 30 | 42 | 72 | 137 | 6 | 3 | 3 | 6 | 20 | ||
1990-91 | 뉴저지 데블스 | NHL | 75 | 29 | 37 | 66 | 141 | 7 | 3 | 5 | 8 | 12 | ||
1991-92 | 세인트루이스 블루스 | NHL | 80 | 33 | 36 | 69 | 171 | 6 | 2 | 3 | 5 | 14 | ||
1992-93 | 세인트루이스 블루스 | NHL | 71 | 51 | 43 | 94 | 174 | 11 | 4 | 3 | 7 | 18 | ||
1993-94 | 세인트루이스 블루스 | NHL | 81 | 52 | 50 | 102 | 211 | 4 | 2 | 5 | 7 | 4 | ||
1994-95 | 뒤셀도르프 EG | DEL | 3 | 5 | 3 | 8 | 4 | - | - | - | - | - | ||
1994-95 | 세인트루이스 블루스 | NHL | 45 | 20 | 21 | 41 | 136 | 5 | 4 | 5 | 9 | 14 | ||
1995-96 | 하트포드 웨일러스 | NHL | 74 | 44 | 34 | 78 | 125 | - | - | - | - | - | ||
1996-97 | 하트포드 웨일러스 | NHL | 2 | 1 | 0 | 1 | 0 | - | - | - | - | - | ||
1996-97 | 디트로이트 레드윙스 | NHL | 79 | 46 | 41 | 87 | 131 | 20 | 9 | 8 | 17 | 43 | ||
1997-98 | 디트로이트 레드윙스 | NHL | 75 | 28 | 29 | 57 | 154 | 20 | 5 | 4 | 9 | 22 | ||
1998-99 | 디트로이트 레드윙스 | NHL | 81 | 31 | 27 | 58 | 123 | 10 | 3 | 7 | 10 | 6 | ||
1999-2000 | 디트로이트 레드윙스 | NHL | 78 | 41 | 37 | 78 | 105 | 9 | 3 | 2 | 5 | 10 | ||
2000-01 | 디트로이트 레드윙스 | NHL | 81 | 31 | 45 | 76 | 81 | 2 | 2 | 2 | 4 | 0 | ||
2001-02 | 디트로이트 레드윙스 | NHL | 80 | 37 | 38 | 75 | 118 | 23 | 8 | 11 | 19 | 20 | ||
2002-03 | 디트로이트 레드윙스 | NHL | 78 | 30 | 38 | 68 | 103 | 4 | 1 | 1 | 2 | 4 | ||
2003-04 | 디트로이트 레드윙스 | NHL | 82 | 25 | 28 | 53 | 117 | 12 | 1 | 5 | 6 | 20 | ||
2005-06 | 디트로이트 레드윙스 | NHL | 82 | 40 | 41 | 81 | 105 | 6 | 1 | 1 | 2 | 6 | ||
2006-07 | 뉴욕 레인저스 | NHL | 67 | 29 | 33 | 62 | 47 | 10 | 5 | 2 | 7 | 12 | ||
2007-08 | 뉴욕 레인저스 | NHL | 73 | 23 | 23 | 46 | 35 | 10 | 1 | 4 | 5 | 8 | ||
2008-09 | 뉴저지 데블스 | NHL | 34 | 6 | 8 | 14 | 29 | 7 | 1 | 2 | 3 | 2 | ||
NHL 합계 | 1,524 | 656 | 698 | 1,354 | 2,489 | 184 | 60 | 74 | 134 | 280 |
9.2. International
연도 | 팀 | 대회 | GP | G | A | Pts | PIM | |
---|---|---|---|---|---|---|---|---|
1987 | 캐나다 | WJC | 6 | 4 | 3 | 7 | 4 | |
1991 | 캐나다 | CC | 8 | 2 | 0 | 2 | 6 | |
1994 | 캐나다 | WC | 6 | 4 | 3 | 7 | 6 | |
1996 | 캐나다 | WCH | 7 | 3 | 3 | 6 | 8 | |
1998 | 캐나다 | OLY | 6 | 2 | 0 | 2 | 0 | |
2002 | 캐나다 | OLY | 6 | 0 | 1 | 1 | 0 | |
2006 | 캐나다 | WC | 8 | 3 | 1 | 4 | 10 | |
주니어 합계 | 6 | 4 | 3 | 7 | 4 | |||
성인 합계 | 41 | 14 | 8 | 22 | 5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