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모리야마 야스유키(森山 泰行모리야마 야스유키일본어, 1969년 5월 1일 출생)는 일본 기후현 출신의 전 축구 선수이자 현 축구 지도자, 축구 해설가이다. 현역 시절 포워드(FW) 포지션에서 활약했으며, JFA 공인 S급 코치 자격을 보유하고 있다.
그는 1992년 나고야 그램퍼스 에이트에 입단하며 프로 경력을 시작했고, 이후 쇼난 벨마레, 슬로베니아의 HIT 고리차, 산프레체 히로시마, 가와사키 프론탈레, 홋카이도 콘사도레 삿포로, FC 기후, FC 마루야스 오카자키 등 일본 국내외 여러 클럽에서 뛰었다. 특히 나고야 그램퍼스 에이트 시절 아르센 벵거 감독 아래에서 경기 후반 투입되어 높은 득점률을 기록하며 '슈퍼 서브'라는 별명을 얻었다. 1997년에는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A매치 1경기에 출전했다.
선수 은퇴 후에는 지도자의 길을 걸으며 FC 기후에서 선수 겸 감독 보좌 및 이사를 역임했고, 우라와 학원 고등학교 축구부 감독, 주니어 유스 클럽 'CLUB GORICA'와 주니어 클럽 'NKFC'의 대표를 지냈다. 2019년에는 FC 마루야스 오카자키에서 선수 겸 팀 디렉터로 현역에 복귀하기도 했다. 2023년부터는 아사히 인텍 러브리지 나고야의 감독을 맡고 있다.
2. 개인 정보
모리야마 야스유키는 1969년 5월 1일 일본 기후현 기후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별명은 ゴリ고리일본어이다. 신체 조건은 키 171 cm, 몸무게 72 kg이다. 주 사용 발은 오른발이다.
3. 유소년 경력
모리야마는 가사마쓰정립 가사마쓰 중학교 시절 전국 중학교 축구 대회에서 3위를 경험했다. 중학교 시절까지는 직접 드리블하여 골을 넣는 유형의 선수였으나, 도쿄의 데이쿄 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이소가이 히로미쓰를 만나게 되었다. 이 만남을 통해 그는 자신이 주변을 살리기보다는 주변에 의해 살아나는 유형의 선수임을 자각하고 플레이 스타일을 바꾸었다. 데이쿄 고등학교 축구부에서는 한 학년 위 선배로 이와모토 사부로, 마키타 세이이치가 있었고, 동기로는 이이지마 히사히코, 이소가이 히로미쓰, 시마네 소이치, 혼다 야스토가 있었다. 한 학년 후배로는 이케다 노부야스, 엔도 마사히로, 호사카 노부유키, 아사누마 다쓰야 등이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참가한 제66회 전국 고등학교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5득점을 올렸으며, 8강전 도카이 대학 부속 시즈오카 쇼요 고등학교와의 경기에서는 경기 중 부상당한 머리를 붕대로 감고 경기를 계속하는 투혼을 보여주기도 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순텐도 대학에 진학했다. 대학 2학년 때 주전으로 자리 잡았고, 3학년 때는 간토 대학 축구 리그전에서 득점왕을 차지했다. 대학 4학년이 되기 전 봄방학에는 우루과이의 CA 프로그레소로 유학을 가서 연습 경기뿐만 아니라 공식 경기에도 출전하는 경험을 했다. 당시 CA 페냐롤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았으나, 미우라 가즈요시에게 "엉터리 에이전트를 만나면 큰일 나니 그만두는 게 좋다"는 조언을 듣고 이적을 포기했다.
4. 선수 경력
모리야마 야스유키는 1992년 J리그 출범 직전 나고야 그램퍼스 에이트에 입단하며 프로 선수 경력을 시작했다. 그는 일본 국내외 여러 클럽을 거치며 활발한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4.1. 클럽 경력
모리야마의 클럽 경력은 일본 내 클럽과 해외 클럽에서의 경험으로 나눌 수 있다.
4.1.1. 일본 클럽
모리야마는 1992년 J리그 개막 직전 나고야 그램퍼스 에이트에 입단했다. 1993년 J리그 1st 스테이지 2라운드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와의 경기에서 전반 34분 나고야의 J리그 첫 득점을 기록했고, 이어 후반 48분 두 번째 골을 넣어 팀의 J리그 첫 승리에 기여했다. 아르센 벵거 감독 재임 시절에는 교체 투입되어 높은 득점률을 자랑하며 '슈퍼 서브'로 활약했다. 1994년부터 3시즌 연속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했으며, 1995년 7월 19일 제프 유나이티드 이치하라 지바와의 경기에서는 8분 만에 해트트릭을 달성했다. 1996년에는 799분의 출전 시간 동안 11골을 기록했다. 1997년까지 나고야에서 146경기에 출전하여 51골을 넣었다. 나고야 그램퍼스 에이트는 1995년 천황배에서 우승했고, 아시아에서는 1996-97 아시안 컵 위너스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1998년 나고야로부터 계약 연장 제안을 받았으나, 해외 이적을 결심하고 이를 거절했다. 1998년 6월까지 3개월간 벨마레 히라츠카로 임대 이적하여 4경기에 출전했다.
1999년 8월부터 시즌 종료까지 나고야 그램퍼스 에이트에서 산프레체 히로시마로 임대 이적하여 11경기에 출전해 3골을 기록했다. 2000년에는 가와사키 프론탈레로 이적하여 14경기에 출전했다.
2001년 나고야 그램퍼스 에이트로 복귀하여 그 해 26경기 12골로 부활을 알렸으나, 2002년 시즌 중반까지 7경기 무득점을 기록했다. 2002년 8월부터 이듬해 1월 31일까지 홋카이도 콘사도레 삿포로로 임대 이적하여 4경기에 출전했고, 이후 임대 기간을 2004년 1월 31일까지 연장했다. 2003년에는 J2리그에서 5경기에 출전했다.
2004년 나고야 그램퍼스 에이트로 다시 복귀하여 1경기에 출전한 뒤, 7월 말 계약 만료와 함께 현역에서 잠정 은퇴했다.
2005년, 모리야마의 고향인 기후현에서 J리그 진출을 목표로 하는 도카이 사회인 축구 리그 2부 소속의 FC 기후에 직접 접근하여 현역 복귀를 선언했다. 그는 '선수 겸 감독 보좌'라는 직함을 달고 선수뿐만 아니라 코치 역할도 수행했으며, 클럽의 스폰서 유치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07년부터는 이사직도 겸임했다. 그는 "은퇴하면 (고향인) 기후에서 팀을 만들고 싶다. 아이들에게 꿈을 주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고, FC 기후의 J리그 진출을 실현시켰다. 이마니시 가즈오가 FC 기후의 단장으로 취임한 것도 모리야마의 열정에 감동받은 결과였다. 그는 또한 지역 방송에서 스포츠 해설가로 활동하고, 나고야의 지역 연예인 구로이와 유이치와 함께 풋살 팀 'KURO FC'를 창단하는 등 축구 문화의 지역 밀착에 큰 관심과 열정을 쏟았다. 2004년 일시 은퇴했을 때 나고야 지역 J리그 중계 해설을 겸임하기 시작했으며, FC 기후에 관여한 이후에도 해설가 활동을 계속했다. 그러나 FC 기후가 2008년부터 J2리그에 가맹하기로 결정되자 해설가 활동에 어느 정도 마침표를 찍고 "코치 겸임이 아닌 선수 한 명으로 뛰겠다"고 공언하며 FC 기후에 전념했다. 2008년 9월, 그는 해당 시즌을 끝으로 현역 은퇴를 공식 발표했다.
2019년 2월 12일, 아이치현 오카자키시에 위치한 일본 풋볼 리그(JFL) 소속의 FC 마루야스 오카자키에서 현역 복귀를 발표했다. 2018년 여름 강화 담당직 제안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되어, 강화 담당직과 겸임하여 선수로 뛰게 되었다. 그는 2020년까지 두 시즌 동안 선수로 등록되었으나, 실제 경기에는 출전하지 않았다. 2021년에는 선수 등록이 되지 않으면서 다시 현역에서 은퇴했다.
4.1.2. 해외 클럽
1998년, 모리야마는 슬로베니아의 1. SNL 소속 HIT 고리차로 임대 이적했다. 당시 월급은 나고야 시절의 20분의 1 수준인 20 JPY에 불과했다. 이 클럽에서는 세컨드 스트라이커 역할을 맡았으며, 1998년 10월 18일 NK 트리글라브 크라니와의 경기에서 첫 골을 기록했다.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프르바 리가의 레드 스타 베오그라드가 관심을 보였다고 알려졌으나, 코소보 전쟁의 영향으로 이적은 성사되지 않았다. 이후 리그 1의 강호 올랭피크 마르세유로의 이적설이 있었고, 1999년에는 캄페오나투 브라질레이루 세리이 A의 아소시아상 포르투게자 지 데스포르투스 이적 협상이 진행되었으나 클럽 수뇌부가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되면서 협상이 중단되었다. 또한 EC 주벤투지와는 계약을 마쳤으나 노동 비자 취득이 어려워 계약을 해지하는 등 해외 진출에 여러 난항을 겪었다.
4.2. 국가대표 경력
모리야마 야스유키는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1997년 6월 15일 나가이 육상 경기장에서 열린 기린컵 1997 튀르키예전(1-0 승)에 출전하며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이 경기는 그의 유일한 국가대표 출전 기록이며, 국가대표 통산 1경기 출전 0득점을 기록했다. 순텐도 대학 시절에도 일본 대표팀에 선발된 경험이 있었으나, 당시에는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5. 선수 특징 및 기록
모리야마 야스유키는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민첩성과 골을 향한 강한 욕구를 무기로 삼는 스트라이커였다. 골문 앞에서의 높은 집중력과 움직임의 질이 그의 특징이었다. 그는 경기장을 뛰어다니며 찬스를 만드는 유형이 아니라, 전황을 항상 냉정하게 파악하고 찬스를 노리는 스타일의 선수였다.
특히 나고야 그램퍼스 에이트 재임 시절(특히 아르센 벵거가 이끌던 1995년, 1996년)에는 경기 종반에 투입되는 '슈퍼 서브'로 신뢰를 받으며 '8時半の男8시 반의 남자일본어'라는 별명을 얻었다. 나고야에서 기록한 총 63골 중 22골은 교체 투입 후 기록한 득점으로, 이는 2020년 기준으로 오카야마 데쓰야(2위, 13골)를 크게 제치고 클럽 역대 1위 기록이다. J1리그 통산으로는 66골 중 23골이 교체 투입 후 득점이었으며, 이는 2011년 9월 10일 반도 류지가 기록을 경신하기 전까지 J리그 기록이었다.
6. 지도자 및 은퇴 후 활동
2008년 선수 생활에서 은퇴한 후, 모리야마는 FC 기후에 고문 등으로 남을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2009년 2월 27일 FC 기후는 클럽의 경영 상황이 어려워 모리야마와의 자문 계약을 체결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후 그는 다시 도카이 지방 3개 현을 중심으로 축구 해설가로 활동했다.
2009년에는 JFA 공인 S급 코치 양성 강습회를 수료하고 자격을 취득했다. 2014년 4월 1일부로 우라와 학원 고등학교 축구부 감독으로 취임했다. 또한 사이타마현 후지미노시를 거점으로 하는 주니어 유스 클럽 'CLUB GORICA'와 사이타마현 후지미시를 거점으로 하는 주니어 클럽 'NKFC'의 대표를 맡고 있다.
2019년 2월 12일, 아이치현 오카자키시에 있는 일본 풋볼 리그(JFL) 소속의 FC 마루야스 오카자키에서 선수 겸 팀 디렉터로 현역 복귀를 발표했다. 2018년 여름 강화 담당직 제안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되어, 강화 담당직과 겸임하여 선수로 뛰게 되었다. 2021년에는 선수 등록이 되지 않으면서 다시 현역에서 은퇴했다.
2023년부터는 아사히 인텍 러브리지 나고야의 감독으로 취임하여 활동하고 있다.
7. 통계
7.1. 클럽 통계
클럽 성적 | 리그 | 컵 | 리그컵 | 합계 | ||||||
---|---|---|---|---|---|---|---|---|---|---|
시즌 | 클럽 | 리그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일본 | ||||||||||
1992 | 나고야 | J1 | - | 1 | 1 | 4 | 0 | 5 | 1 | |
1993 | 12 | 4 | 1 | 1 | 0 | 0 | 13 | 5 | ||
1994 | 39 | 13 | 2 | 1 | 1 | 0 | 42 | 14 | ||
1995 | 42 | 14 | 4 | 0 | - | 46 | 14 | |||
1996 | 26 | 11 | 1 | 0 | 14 | 4 | 41 | 15 | ||
1997 | 29 | 9 | 1 | 0 | 5 | 1 | 35 | 10 | ||
1998 | 벨마레 히라츠카 | 4 | 0 | 2 | 0 | 0 | 0 | 6 | 0 | |
슬로베니아 | ||||||||||
1998-99 | HIT 고리차 | 프르바리가 | 10 | 1 | 10 | 1 | ||||
일본 | ||||||||||
1999 | 산프레체 히로시마 | J1 | 11 | 3 | 3 | 0 | 0 | 0 | 14 | 3 |
2000 | 가와사키 프론탈레 | 14 | 0 | 1 | 0 | 5 | 0 | 20 | 0 | |
2001 | 나고야 | 26 | 12 | 1 | 0 | 3 | 0 | 30 | 12 | |
2002 | 7 | 0 | 0 | 0 | 5 | 0 | 12 | 0 | ||
2002 | 콘사도레 삿포로 | 4 | 0 | 3 | 0 | 0 | 0 | 7 | 0 | |
2003 | J2 | 5 | 0 | 0 | 0 | - | 5 | 0 | ||
2004 | 나고야 | J1 | 1 | 0 | 0 | 0 | 0 | 0 | 1 | 0 |
2005 | FC 기후 | JRL (도카이) | 8 | 2 | - | - | 8 | 2 | ||
2006 | 11 | 5 | 2 | 1 | - | 13 | 6 | |||
2007 | JFL | 8 | 0 | 3 | 1 | - | 11 | 1 | ||
2008 | J2 | 13 | 1 | 0 | 0 | - | 13 | 1 | ||
2019 | 마루야스 오카자키 | JFL | 0 | 0 | - | - | 0 | 0 | ||
2020 | 0 | 0 | 0 | 0 | - | 0 | 0 | |||
일본 통산 | 260 | 74 | 23 | 5 | 39 | 5 | 322 | 84 | ||
슬로베니아 통산 | 10 | 1 | 10 | 1 | ||||||
총 통산 | 270 | 75 | 23 | 5 | 39 | 5 | 332 | 85 |
; 기타 공식전
- 1996년
- 슈퍼컵 1경기 0득점
- 산토리컵 2경기 0득점
; 국제 경기
- 1996년 아시안 컵 위너스컵 1경기 0득점
7.2. 국가대표팀 통계
일본 국가대표팀 | ||
---|---|---|
연도 | 출전 | 득점 |
1997 | 1 | 0 |
합계 | 1 | 0 |
; 국가대표팀 출전 기록
No. | 개최일 | 개최 도시 | 경기장 | 상대팀 | 결과 | 감독 | 대회 |
---|---|---|---|---|---|---|---|
1. | 1997년 6월 15일 | 일본 오사카부 | 나가이 육상 경기장 | 튀르키예 | 승 1-0 | 가모 슈 | 기린컵 |
8. 수상 경력
- 천황배 우승: 1995년 (나고야 그램퍼스 에이트)
- 아시안 컵 위너스컵 준우승: 1996-97 시즌 (나고야 그램퍼스 에이트)
- 슬로베니아 프르바리가 준우승: 1998-99 시즌 (HIT 고리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