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기 생애와 배경
메리 내시는 개인적인 배경과 교육을 통해 배우로서의 기반을 다졌다.
1.1. 출생, 가족, 개명
메리 내시는 1884년 8월 15일 미국에서 본명인 메리 호노라 라이언으로 태어났다. 그녀의 부모는 변호사인 제임스 H. 라이언과 엘렌 프랜시스(결혼 전 성: 맥나마라)였다. 메리에게는 작가이자 배우인 여동생 플로렌스가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가 사망한 후, 어머니는 보드빌 공연 기획자인 필립 F. 내시와 재혼했고, 자매는 계부의 성을 따라 '내시'로 성을 바꿨다. 이 성 변경은 메리 내시가 브로드웨이에서 인기를 얻기 전부터 활동했던 동명이인 배우 메리 라이언과의 혼동을 피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메리 내시는 가톨릭교도였다.

1.2. 교육
메리 내시는 몬트리올에 있는 성 앤 수녀원(Convent of St. Anne)에서 학업을 마쳤다. 이후 연기 훈련을 받기 위해 아메리칸 드라마틱 아츠 아카데미에 입학하여 전문적인 연기 교육을 받았다.
2. 경력
메리 내시는 주로 연극 무대에서 활동하며 명성을 쌓았으며, 이후 할리우드 영화계로 진출하여 다양한 역할을 소화했다.
2.1. 연극 경력
내시는 뉴욕과 런던의 연극 무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성공적인 연극 배우이자 보드빌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1904년 헤럴드 스퀘어 극장에서 잠시 댄서로 출연한 후, 1905년 성탄절에는 제임스 M. 배리의 연극 《앨리스 시트-바이-더-파이어》에서 레오노라 던바 역으로 오프브로드웨이에 데뷔했다. 이 작품은 에설 배리모어가 주연을 맡았으며, 내시는 배리모어와 함께 《캡틴 징크스》와 《실버 박스》에 출연하며 2년 동안 함께 작업했다.

그녀의 마지막 브로드웨이 출연작은 1933년 《엉클 톰스 캐빈》의 캐시 역이었으며, 이 작품에는 오티스 스키너와 페이 베인터가 함께 출연했다. 그녀는 런던 무대에서도 극찬을 받았다.
2.2. 할리우드 영화 경력
메리 내시는 1934년 할리우드로 이주하여 1936년부터 1946년까지 영화에 출연했다. 이 기간 동안 그녀는 총 18편의 영화에 모습을 비췄다. 올무비(Allmovie)에 따르면, 내시는 종종 겉으로는 온순해 보이지만 도전받으면 사나워지는 여성 역할을 맡았다. 이러한 연기는 《칼리지 스캔들》(1936년)과 《찰리 챈 인 파나마》(1940년)에서 잘 드러난다.
그녀의 가장 호의적인 역할은 《이지 리빙》(1937년)에서 과도하게 허세를 부리는 자본가 J.B. 볼의 오래도록 고통받는 아내 역이었다. 1940년 영화 《골드 러시 메이지》에서는 더스트 볼과 대공황으로 인해 아칸소주의 농장을 버리고 5년 동안 계절 일자리를 찾아 전국을 떠도는 가족의 인내심 많고 관대한 아내이자 어머니 역할을 연기했다.
내시는 셜리 템플이 출연한 두 편의 영화에서 악당 역할을 맡은 것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첫 번째는 《하이디》(1937년)의 프라우라인 로텐마이어 역이었고, 두 번째는 《소공녀》(1939년)의 민친 양 역이었다. 또한 1940년 영화 《필라델피아 스토리》에서는 캐서린 헵번의 상류층 어머니 역을 맡았다. 그녀는 1936년 아카데미상 수상작인 《컴 앤 겟 잇》에서 조연으로 출연했으며, 1944년 영화 《인 더 민타임, 달링》에서는 비중 있는 역할을 수행했다.
3. 개인 생활
메리 내시는 1918년 10월 19일 프랑스 출신의 배우이자 감독인 호세 루벤(José Ruben호세 루벤영어, 1884년 ~ 1969년)과 결혼했다. 두 사람은 1923년 이후에 이혼했는데, 당시 그들은 여전히 메리 내시의 여동생 플로렌스 내시와 함께 살고 있었다.
4. 사망
메리 내시는 1976년 12월 3일 캘리포니아주 브렌트우드 자택에서 잠을 자던 중 사망했다. 그녀는 사망 당시 92세였다. 그녀의 유해는 뉴욕주 메난즈에 있는 성 아그네스 묘지(St. Agnes Cemetery)에 안장되었다.
5. 출연작
연도 | 영화 제목 | 역할 | 감독 | 비고 |
---|---|---|---|---|
1915 | 《언브로큰 로드》 | 콘스턴스 터너 | ||
《타이즈 오브 타임》 | 메리 마틴 (다섯 시대의 여성 중) | 단편 | ||
1916 | 《총과 여인》 | 로지카 | 조지 피츠모리스 | |
1934 | 《언서튼 레이디》 | 에디스 헤이스 | 카를 프로인트 | |
1935 | 《칼리지 스캔들》 | 프레즈넬 부인 | 엘리엇 뉴전트 | |
1936 | 《컴 앤 겟 잇》 | 엠마 루이스 | 윌리엄 와일러 | |
1937 | 《킹 앤 더 코러스 걸》 | 엘버필드의 안나 공작부인 | 머빈 르로이 | |
《이지 리빙》 | 볼 부인 | 미첼 레이슨 | ||
《하이디》 | 프라우라인 로텐마이어 | 앨런 드완 | ||
《웰스 파고》 | 프라이어 부인 | 프랭크 로이드 | ||
1939 | 《소공녀》 | 아만다 민친 | 월터 랭 | |
《더 레인스 케임》 | 미스 맥데이드 | 클래런스 브라운 | ||
1940 | 《찰리 챈 인 파나마》 | 미스 제니 핀치 | 노먼 포스터 | |
《세일러스 레이디》 | 미스 퍼비스 | 앨런 드완 | ||
《골드 러시 메이지》 | 사라 데이비스 | 노먼 터로그 | ||
《필라델피아 스토리》 | 마가렛 로드 | 조지 큐커 | ||
1941 | 《맨 오브 보이스 타운》 | 마이틀랜드 부인 | 노먼 터로그 | |
1942 | 《콜링 닥터 길레스피》 | 엠마 호프 | 해럴드 S. 부케 | |
1943 | 《더 휴먼 코미디》 | 미스 힉스 | 클래런스 브라운 | |
1944 | 《더 레이디 앤 더 몬스터》 | 페임 부인 - 가정부 | 조지 셔먼 | |
《코브라 우먼》 | 여왕 | 로버트 시오드마크 | ||
《인 더 민타임, 달링》 | 베라 프레스턴 부인 | 오토 프레민저 | ||
1945 | 《욜란다 앤 더 시프》 | 두에나 | 빈센트 미넬리 | |
1946 | 《무슈 보케르》 | 두에나 | 조지 마셜 | |
《틸 더 클라우즈 롤 바이》 | 물러 부인 | 리처드 워프 | ||
《스웰 가이》 | 사라 던컨 | 프랭크 터틀 | 마지막 영화 출연 |
6. 유산과 평가
메리 내시는 40년에 걸친 연기 경력 동안 연극과 영화를 넘나들며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주었다.
6.1. 긍정적 평가
메리 내시는 특히 연극 무대에서 뛰어난 연기력으로 극찬을 받았다. 영화로 진출한 후에도 그녀는 다양한 역할을 성공적으로 소화했는데, 특히 《이지 리빙》(1937년)에서 보여준 J.B. 볼의 인내심 강한 아내 역은 그녀의 가장 호의적인 역할 중 하나로 평가받았다. 이 역할은 그녀가 단순히 악역뿐만 아니라 복잡한 감정선을 가진 인물도 훌륭하게 표현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6.2. 비판과 논란
메리 내시는 할리우드 영화에서 종종 특정 유형의 역할에 캐스팅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녀는 겉으로는 온순하고 예의 바르지만, 위협을 받거나 도전받으면 순식간에 사나워지고 사악한 본성을 드러내는 여성 역할을 자주 맡았다. 이러한 배역의 반복은 그녀의 연기 스펙트럼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한정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특히 셜리 템플 주연의 《하이디》와 《소공녀》에서 맡은 악역은 그녀의 이러한 이미지를 굳히는 데 기여했다. 비평가들은 그녀의 연기력을 인정하면서도, 이러한 유형의 역할에 고정되는 경향에 대해 주목했다.
7. 같이 보기
- 플로렌스 내시
- [https://www.ibdb.com/broadway-cast-staff/mary-nash-68694 메리 내시 - 인터넷 브로드웨이 데이터베이스]
- [https://www.findagrave.com/memorial/6657019/mary-nash 메리 내시 - 파인드 어 그레이브]
- [http://archives.nypl.org/the/18988 메리 및 플로렌스 내시 문서, 1893-1974 - 뉴욕 공립 도서관 공연 예술 빌리 로즈 극장 부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