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마우로 타소티(Mauro Tassotti이탈리아어, 1960년 1월 19일 로마 출생)는 이탈리아의 축구 감독이자 전 프로 축구 선수로, 주로 라이트 백으로 활약했다. 그는 SS 라치오에서 선수 경력을 시작한 후 AC 밀란에서 17년간 뛰며 클럽의 전설적인 인물이 되었다. 밀란에서 뛰는 동안 그는 5번의 세리에 A 우승과 3번의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포함해 총 17개의 주요 대회 우승 타이틀을 획득하며 아리고 사키와 파비오 카펠로 감독 체제 하에서 클럽의 '황금기'를 이끄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프랑코 바레시, 파올로 말디니, 알레산드로 코스타쿠르타, 필리포 갈리, 크리스티안 파누치 등과 함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수비 라인 중 하나로 널리 평가받는 밀란 수비진의 핵심 멤버로 기억된다. 타소티는 또한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32세의 늦은 나이에 성인 대표팀에 데뷔하여 1994년 FIFA 월드컵에 참가했고, 이 대회에서 이탈리아는 준우승을 차지했다. 1997년 선수 은퇴 후에는 지도자의 길을 걸으며 AC 밀란에서 유소년 코치, 수석 코치, 임시 감독, 스카우트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며 36년간 클럽에 헌신했다. 2016년에는 밀란을 떠나 안드리 셰브첸코 감독이 이끄는 우크라이나 축구 국가대표팀의 수석 코치로 부임했다.
2. 선수 경력
마우로 타소티의 축구 선수로서의 경력은 크게 SS 라치오에서의 초기 시절과 AC 밀란에서의 황금기로 나뉜다.
2.1. 초기 경력 (SS 라치오)
마우로 타소티는 로마에서 태어나, 지역 클럽인 SS 라치오의 유스 아카데미에서 축구 경력을 시작했다. 1978-79 시즌에 프로 무대에 데뷔했으며, 1978년 11월 5일 아스콜리 칼초와의 경기에서 세리에 A 데뷔전을 치렀다. 데뷔 첫해에는 리그 14경기에 출전했으며, 다음 시즌인 1979-80 시즌에는 주전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라치오에서 두 시즌 동안 세리에 A 41경기, 모든 대회를 통틀어 47경기에 출전했다. 1980년, 토토네로 스캔들로 인해 라치오가 세리에 B로 강등되면서 그는 AC 밀란으로 이적하게 되었다.
2.2. AC 밀란 경력
타소티는 AC 밀란에서 17년간 선수 생활을 하며 클럽의 역사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2.2.1. 데뷔 및 초기 시절
1980년 토토네로 스캔들로 인해 SS 라치오와 함께 AC 밀란도 세리에 B로 강등되자, 타소티는 밀란으로 이적하며 새로운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닐스 리드홀름 감독 체제에서 주장 프랑코 바레시, 필리포 갈리와 함께 주전 선수로 자리 잡았다. 1980년 8월 24일, 카타니아 칼초와의 홈 경기에서 1-0으로 승리하며 밀란 데뷔전을 치렀다. 밀란은 1980-81 시즌에 세리에 B 우승을 차지하며 한 시즌 만에 세리에 A로 복귀했고, 타소티는 팀의 핵심 선수 중 한 명으로 떠올랐다. 다음 시즌에는 미트로파컵을 우승했지만, 1981-82 시즌 세리에 A에서 3위로 마감하며 다시 세리에 B로 강등되는 아픔을 겪었다. 그러나 밀란은 1982-83 시즌에 다시 세리에 B 우승을 차지하며 세리에 A로 재승격했다. 이 시기는 클럽 역사상 비교적 암울한 시기로, 리그에서 지배적인 모습을 보이거나 주요 트로피를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1984-85 시즌에는 코파 이탈리아 결승에 진출했으며, 꾸준히 유럽 대항전 진출권을 획득하며 리그 상위권에 머물렀다.

2.2.2. 황금기 (아리고 사키 및 파비오 카펠로 시대)
타소티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아리고 사키 감독, 그리고 이어서 파비오 카펠로 감독 체제 하의 AC 밀란에서 핵심적인 선수로 활약했으며, 주로 등번호 2번을 달고 뛰었다. 그는 파올로 말디니, 프랑코 바레시, 알레산드로 코스타쿠르타, 필리포 갈리, 크리스티안 파누치 등과 함께 밀란의 강력한 수비진을 구성하며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수비 라인 중 하나로 평가받았다. 주로 라이트 백으로 뛰었지만, 필요에 따라 중앙 수비수로도 활약했으며, 골키퍼 조반니 갈리와 세바스티아노 로시 앞에서 굳건한 방어를 펼쳤다.
사키 감독 체제에서 타소티는 바레시 다음으로 부주장으로 임명되었고, 1987-88 세리에 A 우승을 시작으로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우승, 그리고 1988-89 유러피언컵과 1989-90 유러피언컵에서 연속으로 유러피언컵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1988-89 시즌 유러피언컵 결승전에서는 FC 스테아우아 부쿠레슈티를 상대로 첫 골의 시발점이 되었고, 마르코 판 바스텐의 골을 어시스트하는 등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또한 1989 인터콘티넨털컵과 1990 인터콘티넨털컵에서 우승하며 두 차례 인터콘티넨털컵을 들어 올렸고, 1989 UEFA 슈퍼컵과 1990 UEFA 슈퍼컵에서도 우승했다. 1987-88 시즌에는 밀란이 세리에 A에서 단 14골만을 실점하며 리그 최소 실점을 기록하는 데 일조했다.
카펠로 감독 체제에서도 타소티는 밀란과 함께 세 번의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연속으로 진출했다. 특히 바레시가 결장한 1993-94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는 주장 완장을 차고 FC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로마리우와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를 효과적으로 막아내며 팀의 우승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또한 1992-93 UEFA 챔피언스리그와 1994-95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도 진출했다. 그는 1991-92 세리에 A, 1992-93 세리에 A, 1993-94 세리에 A에서 3년 연속 리그 우승을 차지했으며, 1995-96 세리에 A에서도 또 한 번 우승컵을 추가했다. 이와 더불어 1994 UEFA 슈퍼컵과 1992년부터 1994년까지 3년 연속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우승을 경험했다. 1991-92 시즌에는 밀란이 무패 우승을 달성하며 리그에서 58경기 연속 무패라는 기록을 세우는 데 기여했다. 1993-94 시즌에도 밀란은 단 15골만을 실점하며 리그 최소 실점 기록을 세웠다.
2.2.3. 후기 경력 및 은퇴
카펠로 감독 체제에서 AC 밀란에서의 마지막 몇 시즌 동안, 타소티는 나이가 들고 크리스티안 파누치가 그의 포지션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출전 빈도가 줄어들었다. 1994-95 시즌에는 파누치의 성장으로 인해 출전 기회가 크게 감소했다. 1995-96 시즌에는 그의 선수 경력 마지막 리그 우승을 경험했다。 그는 1996-97 세리에 A 시즌을 끝으로 동료 프랑코 바레시와 함께 AC 밀란에서 은퇴했다. 밀란에서 그는 총 429번의 세리에 A 경기에 출전하여 8골을 기록했으며, 모든 클럽 대회를 통틀어 총 583경기에 출전하여 10골을 기록했다. 이는 파올로 말디니, 프랑코 바레시, 잔니 리베라에 이어 밀란 역대 4번째로 많은 출전 기록이다.
2.3. 선수 스타일
마우로 타소티는 주로 라이트 백으로 활약했지만, 필요에 따라 중앙 수비수로도 뛸 수 있었으며, 선수 생활 초반에는 이 역할을 자주 수행했다. 때로는 중앙 미드필더나 수비형 미드필더로도 기용되었다. 그는 이탈리아의 가장 위대한 수비수 중 한 명이자 동세대 최고의 풀백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아리고 사키와 파비오 카펠로 감독 체제 하에서 파올로 말디니, 프랑코 바레시, 필리포 갈리, 알레산드로 코스타쿠르타와 함께 구축한 밀란의 전설적인 수비 라인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가장 많이 기억된다.
타소티는 강인하고 수비 지향적인 풀백으로, 강력한 힘, 뛰어난 예측 능력, 수비 인식, 대인 마크 능력, 위치 선정 감각, 그리고 전술적 지능으로 유명했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그는 경기를 읽고 동료들을 수비적으로 커버하는 데 매우 능숙했으며, 높은 수비 라인과 오프사이드 트랩을 활용하는 밀란의 지역 방어 시스템에서 탁월한 활약을 펼쳤다. SS 라치오 시절에는 거칠고 태클이 강한 수비수로 명성을 얻었지만, AC 밀란으로 이적한 후에는 더욱 신중하고 침착하며 꾸준한 선수로 성장하여 "교수(The Professor)"라는 별명을 얻었다.
타소티는 주로 수비에서 뛰어났지만, 현대적이고 다재다능한 풀백으로서 공격에서도 위협적인 모습을 보인 최초의 선수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빠른 속도, 뛰어난 운동 능력, 강한 체력, 기술, 볼 컨트롤, 그리고 정확한 패스 능력을 바탕으로 오버래핑 공격 가담, 드리블, 그리고 오른쪽 측면에서의 정확한 크로스와 어시스트를 제공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특별히 기술적인 선수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밀란에서 닐스 리드홀름 감독의 지도를 받으며 볼 다루는 우아함과 기술적 능력을 크게 향상시켰다. 이로 인해 팀 동료들은 그에게 "새로운 잘마 산토스"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으며, 이 외에도 "Il Tasso일 타소이탈리아어" (이탈리아어로 "오소리"라는 뜻)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2.4. 경력 통계 (클럽)
| 클럽 | 시즌 | 리그 | 코파 이탈리아 | 유럽 대항전 | 기타 | 총합 | ||||||
|---|---|---|---|---|---|---|---|---|---|---|---|---|
| 디비전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
| SS 라치오 | 1978-79 | 세리에 A | 14 | 0 | 1 | 0 | - | - | 15 | 0 | ||
| 1979-80 | 세리에 A | 27 | 0 | 5 | 0 | - | - | 32 | 0 | |||
| 합계 | 41 | 0 | 6 | 0 | - | - | 47 | 0 | ||||
| AC 밀란 | 1980-81 | 세리에 B | 33 | 0 | 3 | 0 | - | - | 36 | 0 | ||
| 1981-82 | 세리에 A | 24 | 0 | 4 | 0 | - | 5 | 0 | 33 | 0 | ||
| 1982-83 | 세리에 B | 32 | 0 | 9 | 1 | - | - | 41 | 1 | |||
| 1983-84 | 세리에 A | 30 | 1 | 7 | 0 | - | - | 37 | 1 | |||
| 1984-85 | 세리에 A | 24 | 1 | 10 | 0 | - | - | 34 | 1 | |||
| 1985-86 | 세리에 A | 28 | 0 | 6 | 0 | 6 | 0 | 2 | 0 | 42 | 0 | |
| 1986-87 | 세리에 A | 25 | 1 | 4 | 0 | - | - | 29 | 1 | |||
| 1987-88 | 세리에 A | 28 | 0 | 7 | 0 | 4 | 0 | - | 39 | 0 | ||
| 1988-89 | 세리에 A | 32 | 2 | 3 | 0 | 9 | 0 | 1 | 0 | 43 | 2 | |
| 1989-90 | 세리에 A | 29 | 3 | 2 | 0 | 9 | 0 | 1 | 0 | 41 | 3 | |
| 1990-91 | 세리에 A | 28 | 0 | 2 | 0 | 6 | 0 | 1 | 0 | 37 | 0 | |
| 1991-92 | 세리에 A | 33 | 0 | 5 | 0 | - | - | 38 | 0 | |||
| 1992-93 | 세리에 A | 27 | 0 | 5 | 0 | 9 | 1 | 1 | 0 | 42 | 1 | |
| 1993-94 | 세리에 A | 21 | 0 | 1 | 0 | 10 | 0 | 2 | 0 | 34 | 0 | |
| 1994-95 | 세리에 A | 12 | 0 | 4 | 0 | 7 | 0 | 2 | 0 | 25 | 0 | |
| 1995-96 | 세리에 A | 15 | 0 | 2 | 0 | 3 | 0 | - | 20 | 0 | ||
| 1996-97 | 세리에 A | 10 | 0 | 1 | 0 | 1 | 0 | - | 12 | 0 | ||
| 합계 | 429 | 8 | 75 | 1 | 64 | 1 | 15 | 0 | 583 | 10 | ||
| 커리어 총합 | 470 | 8 | 81 | 1 | 64 | 1 | 15 | 0 | 630 | 10 | ||
- 유럽 대항전에는 UEFA 챔피언스리그, UEFA 컵, UEFA 슈퍼컵이 포함된다.
- 기타 대회에는 미트로파컵,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인터콘티넨털컵이 포함된다.
2.5. 선수 경력 수상

AC 밀란
- 세리에 A: 1987-88, 1991-92, 1992-93, 1993-94, 1995-96
- 세리에 B: 1980-81, 1982-83
-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1988, 1992, 1993, 1994
- UEFA 챔피언스리그: 1988-89, 1989-90, 1993-94
- UEFA 슈퍼컵: 1989, 1990, 1994
- 인터콘티넨털컵: 1989, 1990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 FIFA 월드컵 준우승: 1994
개인 수상
- 게린 스포르티보 세리에 A 올해의 팀: 1987, 1988
- 옹즈 몽디알: 1992, 1993
- 가에타노 시레아 모범 경력 국가상 (Premio Nazionale Carriera Esemplare "Gaetano Scirea"): 1996
- AC 밀란 명예의 전당 헌액
3. 국제 축구 경력
마우로 타소티의 국제 축구 경력은 청소년 대표팀에서 시작하여 성인 대표팀으로 이어졌다.
3.1. 청소년 대표팀 및 올림픽
마우로 타소티는 성인 국가대표팀에 데뷔하기 전부터 이탈리아 U-21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하며 10경기에 출전하여 1골을 기록했다. 또한 파올로 말디니와 함께 1988년 서울 올림픽에 이탈리아 U-23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장으로 참가하여 팀을 4위로 이끌었다.
3.2. 성인 대표팀 데뷔 및 월드컵
마우로 타소티는 32세의 나이에 아리고 사키 감독 체제 하에서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에 처음으로 발탁되었다. 이는 1992년 10월 14일 스위스와의 1994년 FIFA 월드컵 예선 홈 경기에서 2-2 무승부를 기록하며 데뷔전을 치른 것이다. 당시 그의 늦은 국가대표 데뷔는 다른 세계적인 수준의 이탈리아 수비수들이 많았기 때문이기도 했으며, 특히 사키 감독의 전임자였던 아젤리오 비치니 감독은 자신이 U-21 대표팀 감독 시절 함께했던 풀백들을 선호하여 타소티의 뛰어난 클럽 활약에도 불구하고 그를 외면했다.
타소티는 사키 감독 체제에서 1994년 FIFA 월드컵 예선 경기와 친선 경기에 출전한 후, 미국에서 열린 1994년 FIFA 월드컵 본선에 참가했다.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은 이 대회에서 결승에 진출했으나 브라질에 승부차기 끝에 패하며 준우승을 차지했다. 이 대회는 타소티가 이탈리아 대표팀과 함께 참가한 유일한 주요 토너먼트였다. 그는 조별 리그 첫 경기인 아일랜드와의 1-0 패배 경기에 선발 출전했으며, 다음 출전은 스페인과의 8강전이었다.
그러나 스페인과의 8강전 경기에서 타소티는 후반 추가시간에 스페인 미드필더 루이스 엔리케의 얼굴을 팔꿈치로 가격하여 코뼈를 부러뜨리는 사건을 일으켰다. 당시 주심은 이 장면을 보지 못하여 타소티는 파울이나 경고를 받지 않았고, 이탈리아는 2-1로 승리했다. 하지만 경기 후 FIFA 관계자들은 비디오 판독을 통해 이 사건을 검토했고, 타소티에게 8경기 출장 정지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이는 2014년 FIFA 월드컵에서 루이스 수아레스가 조르조 키엘리니를 물어 징계를 받기 전까지 FIFA 월드컵 역사상 가장 긴 출장 정지 징계였다. 이 사건 이후 타소티는 다시는 국가대표팀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그는 나중에 자신의 행동을 즉시 그리고 깊이 후회했으며 "어리석었다"고 표현했다. 그는 이 행동이 고의적인 것이 아니라 루이스 엔리케가 자신의 유니폼을 잡아당기는 상황에서 순전히 본능적으로 나온 것이었다고 설명하며, 이후 루이스 엔리케에게 개인적으로 사과했다. 1992년부터 1994년까지 타소티는 이탈리아 대표팀에서 총 7경기에 출전했다.

3.3. 국제 경기 통계
| 국가대표팀 | 연도 | 출전 | 득점 |
|---|---|---|---|
| 이탈리아 | 1992 | 1 | 0 |
| 1993 | 1 | 0 | |
| 1994 | 5 | 0 | |
| 총합 | 7 | 0 | |
4. 지도자 경력
선수 은퇴 후 마우로 타소티는 AC 밀란과 우크라이나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다양한 지도자 역할을 수행했다.
4.1. AC 밀란에서의 지도자 활동

마우로 타소티는 1997년 선수 은퇴 후에도 AC 밀란에 남아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밀란의 유소년 시스템에서 코치직을 맡아 1999년과 2001년에 비아레조 토너먼트에서 밀란 유소년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2001년, 알베르토 자케로니 감독이 경질된 후에는 체사레 말디니와 함께 성인팀의 임시 감독을 맡아 2000-01 시즌 남은 기간 동안 팀을 이끌며 UEFA컵 진출권을 획득하는 데 기여했다. 이후 파티흐 테림 감독이 부임하며 임시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2001-02 시즌부터 타소티는 전 동료였던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의 코칭 스태프에 합류하여 수석 코치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는 안첼로티 감독이 떠난 후에도 레오나르두, 마시밀리아노 알레그리, 클라렌스 세도르프, 필리포 인차기 등 여러 감독 아래에서 수석 코치직을 유지했다. 2014년 1월에는 알레그리 감독 경질 후 세도르프 감독이 부임하기 전까지 임시 감독을 맡아 스페치아 칼초와의 코파 이탈리아 경기에서 3-1 승리를 이끌기도 했다. 2015년 7월부터는 밀란의 스카우트로 활동하기 시작했으며, 시니샤 미하일로비치 감독 부임 후에는 슈퍼바이저로 보직을 변경했다.
4.2. 우크라이나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
마우로 타소티는 2016년 7월 12일 AC 밀란과의 계약을 해지하며, 36년간 이어온 밀란에서의 선수 및 지도자 경력을 마무리했다. 그의 계약은 본래 2017년 6월에 만료될 예정이었다. 이후 그는 전 AC 밀란 공격수이자 새로이 우크라이나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임명된 안드리 셰브첸코의 요청을 받아들여, 밀란 유소년팀 코치였던 안드레아 말데라와 함께 우크라이나 대표팀의 수석 코치로 부임했다.
4.3. 기타 지도자 경력
우크라이나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직을 마친 후, 마우로 타소티는 2021-22 시즌에 제노아 CFC의 코치로 활동하기도 했다.
5. 평가 및 유산
마우로 타소티는 AC 밀란의 황금기를 이끈 핵심적인 인물 중 한 명으로, 특히 아리고 사키와 파비오 카펠로 감독 체제 하에서 프랑코 바레시, 파올로 말디니, 알레산드로 코스타쿠르타, 필리포 갈리, 크리스티안 파누치와 함께 구축한 밀란의 수비 라인에서 그의 역할로 가장 많이 기억된다. 이 수비진은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수비 라인 중 하나로 널리 평가받는다.
그는 이탈리아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수비수 중 한 명이자 동세대 최고의 풀백 중 한 명으로 인정받는다. SS 라치오 시절의 거친 플레이 스타일에서 벗어나 AC 밀란에서 보여준 신중하고 침착하며 꾸준한 플레이는 그에게 "교수(The Professor)"라는 별명을 안겨주었다. 타소티는 수비적인 능력뿐만 아니라, 닐스 리드홀름 감독의 지도를 통해 향상된 기술력과 볼을 다루는 우아함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자신의 포지션에서 공격적인 위협을 가할 수 있었던 최초의 현대적이고 다재다능한 풀백 중 한 명으로, 동료들로부터 "새로운 잘마 산토스"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이러한 그의 기여는 AC 밀란의 수많은 우승과 함께 축구 역사에 깊은 유산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