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Lucius Aemilius Paullus라틴어, 별칭 Paulus파울루스라틴어)는 기원전 216년 8월 2일에 사망한 로마 공화정의 저명한 정치가이자 장군으로, 기원전 219년과 기원전 216년 두 차례에 걸쳐 집정관 직을 수행했다. 그는 특히 제2차 일리리아 전쟁에서 파로스의 데메트리오스를 물리치고 승리한 것과, 제2차 포에니 전쟁 중 칸나이 전투에서 로마군을 지휘하다 전사한 것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 마케도니쿠스의 아버지이다.
2. 초기 생애 및 가문 배경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는 로마의 명문 파트리키 계급인 아이밀리우스 씨족 출신이다. 그의 아버지 또한 기원전 255년에 집정관을 지낸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Marcus Aemilius Paullus라틴어)였다.
3. 정치 및 군사 경력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는 그의 생애 동안 두 차례에 걸쳐 로마의 최고 행정관이자 군사령관인 집정관직을 수행하며 로마 공화정의 정치 및 군사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의 집정관 재임 기간 동안 그는 일리리아 전쟁에서 군사적 성공을 거두었으며, 제2차 포에니 전쟁의 주요 전투에도 참여했다.
3.1. 첫 번째 집정관직 (기원전 219년)
기원전 219년,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는 마르쿠스 리비우스 살리나토르와 함께 첫 번째 집정관으로 선출되었다. 이 재임 기간 동안 그는 제2차 일리리아 전쟁에 참전하여 파로스의 데메트리오스(Demetrius Pharius라틴어)를 결정적으로 물리쳤고, 데메트리오스는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5세의 궁정으로 도피할 수밖에 없었다. 로마로 돌아온 파울루스는 이 승리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개선식을 거행하는 영예를 안았다. 그러나 그는 동료 집정관과 함께 전리품을 부당하게 분배했다는 혐의로 기소되기도 했으나, 결국 무죄 선고를 받았다.
3.2. 카르타고 특사
기원전 218년, 파울루스는 제2차 포에니 전쟁 발발 직전 카르타고에 로마의 최종 최후통첩을 전달하기 위해 파견된 특사단 중 한 명으로 활동했다.
3.3. 두 번째 집정관직 및 칸나이 전투 (기원전 216년)
제2차 포에니 전쟁이 한창이던 기원전 216년, 파울루스는 가이우스 테렌티우스 바로(Gaius Terentius Varro라틴어)와 함께 두 번째 집정관에 선출되었다. 그들은 칸나이 전투에서 로마군의 지휘권을 공유했다. 파울루스는 전투 이전에 신중한 전략을 제안했지만, 바로는 그의 조언을 무시하고 한니발이 이끄는 카르타고군에 맞서 성급하게 군대를 이끌었다. 이는 로마군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힌 참패로 이어졌다.
4. 죽음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는 기원전 216년 8월 2일, 칸나이 전투에서 로마군이 참패하는 과정에서 전사했다. 그의 공동 집정관이었던 가이우스 테렌티우스 바로는 전투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했지만, 파울루스는 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의 사망 후 신관의 지위는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베루코수스가 계승했다. 실리우스 이탈리쿠스(Silius Italicus라틴어)의 서사시 『푸니카』(Punica라틴어)에서는 파울루스가 죽기 전에 카르타고의 지휘관 비리아투스(Viriathus라틴어)를 죽였다고 묘사하고 있다.
5. 가족 및 후손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는 세 명의 딸과 한 명의 아들을 두었다. 그의 아들은 저명한 장군이자 제3차 마케도니아 전쟁의 영웅인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 마케도니쿠스(Lucius Aemilius Paullus Macedonicus라틴어)이다. 그의 딸들 중 아이밀리아 테르티아(Aemilia Tertia라틴어, 다른 이름은 아이밀리아 파울라)는 한니발을 물리친 로마의 위대한 사령관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Scipio Africanus라틴어)와 결혼했다. 파울루스는 또한 카르타고를 파괴한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Publius Cornelius Scipio Aemilianus라틴어)의 외할아버지이기도 하다.
6. 역사 기록 및 해석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의 행적은 여러 고대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특히 스페인 카디스에서 발견된 카디스 청동판 비문에는 그의 공적인 결정이 새겨져 있다. 이 비문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루키우스의 아들, 최고 사령관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는 라스쿠타 탑(Turris Lascutana)에 거주하는 하스타족(Hastati라틴어)의 예속 농민들의 해방을 결정했다. 그들은 당시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토지와 요새를 계속 소유할 수 있도록 인정받았으며, 로마 민중과 원로원이 원하는 한 그들을 유지할 수 있다. 이 결정은 1월 12일 진영에서 이루어졌다.